셋, 그리고 주님의 이름(1)

상실 후에 온 은총

by 이 범


대한제국 광무 5년(1901년), 서울 북촌.
양반 김석주는 사랑채에 홀로 앉아 상복을 입고 있었다.
쉰 줄에 접어든 그는 두 아들을 두었으나, 이제 한 아들만 남았다.
둘째 아들 석현이 죽은 지 사십구재가 지났다.
장남 석문이 동생을 죽인 것이다.
일본과의 무역 사업을 놓고 형제가 다투었다. 석문은 친일을 주장했고, 석현은 의병을 도왔다. 결국 석문은 밀고로 동생을 일본 헌병대에 넘겼고, 석현은 고문 끝에 옥사했다.



"영감마님."
아내 정씨 부인이 문 밖에서 조용히 불렀다.
"들어오시오."
"소첩이... 다시 아이를 가진 것 같습니다."
석주는 연죽 담뱃대를 떨어뜨렸다.
"뭐라고?"
"석현이가 떠난 지 백 일이 지났습니다. 하느님께서 위로를 주시는 것 같습니다."
석주는 아내의 손을 잡았다.
"천주님께서... 다른 자식을 세워주시는구려."




두 사람은 눈물을 흘렸다.
석문은 친일파가 되어 일본인들과 어울리며 부를 쌓았다. 하지만 동생의 피를 팔아 얻은 부였다. 그는 지금 인천에서 일본 상인들과 사업을 하며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석현아..."
석주는 창호지 너머로 보이는 하늘을 우러렀다.
"네 대신 하느님께서 다른 아이를 보내주신다. 이 아비가... 이번에는 나라를 위해, 주님을 위해 키우마."
열 달 후, 아들이 태어났다.
"이름을 무엇이라 할까요?"
정씨 부인이 물었다.
"세립(世立)이라 하겠소. 세상을 세우는 아이."
"세립...?"
"하느님께서 석현이 대신 세워주신 아이요. 이 나라가 무너져가지만, 이 아이가 하느님의 나라를 세울 것이오."
아기는 건강하게 울었다.
석주는 아기를 안고 집안의 작은 경당으로 갔다. 십자가가 걸린 방.
"천주님, 감사하나이다. 셋째 아들 세립이가 태어났나이다. 이 아이를 잘 키워, 주님의 뜻을 이루게 하겠나이다."


다른 길을 가는 아이

세립은 자라며 형들과 달랐다.

석문은 일본 유학을 다녀왔다. 신식 학문을 배워 부자가 되었다. 조국을 팔아서.

석현은 명동성당에서 세례를 받고 의병을 도왔다. 조국을 지키려다 죽었다.

하지만 세립은 달랐다.

"아버님, 소자는 신학교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열여덟이 된 세립이 말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해였다.

"신학교?"

"예.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에 들어가 사제가 되고 싶습니다."

석주는 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네 큰형은 일본을 따라 부자가 되었다. 둘째 형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너는 어찌하려느냐?"

"소자는 주님을 섬기며 살고 싶습니다. 형님들은 세상의 길을 걸었습니다. 큰형님은 욕심으로, 둘째 형님은 의로움으로. 하지만..."

세립은 잠시 말을 멈췄다.

"둘 다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지는 않았습니다."

석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말해보거라."

"카인은 아벨을 죽였습니다. 큰형님이 둘째 형님을 죽인 것처럼. 하지만 성경은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세립은 낡은 한글 성경을 펼쳤다.

"'셋에게서도 아들이 태어나자 그는 아들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다. 그때부터 사람들이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기 시작하였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느냐?"

"소자가 그 일을 하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주님의 이름을 부르게 하고 싶습니다."

석주는 눈물을 흘렸다.

"이 나라는 망해가고 있다. 일본이 우리를 짓밟고 있다. 이럴 때 네가 사제가 되어 무엇을 하겠느냐?"

"바로 그렇기 때문입니다, 아버님. 나라가 무너질 때,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력이나 부가 아닙니다. 주님의 이름입니다."

월, 화, 수,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