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 위로하는 자

노아의 가족

by 이 범

노아, 위로하는 자
고된 삶의 땅
1960년 겨울, 서울 청계천 판잣집 골목.
이라멕은 쉰다섯 살이었다.
6.25 전쟁 때 평양에서 피난 내려와 청계천변에 판잣집을 지었다. 스물여섯 살 때였다.
"영감, 밥이요."
아내 김 씨가 보리밥 한 그릇을 내놓았다.
"고맙소."
라멕은 거친 손으로 밥그릇을 들었다.



청계천에서 고물상을 하며 30년을 살았다. 구리, 철, 헌 신문, 병... 무엇이든 주워다 팔았다.



"큰애는?"
"공장 갔어요. 평화시장."



"둘째는?"
"구두닦이 나갔고요."




"셋째는?"
"학교 갔어요. 그래도 국민학교는 보내야죠."
라멕은 한숨을 쉬었다.
일곱 자식을 키웠다. 큰딸, 둘째 아들, 셋째 딸... 모두 열다섯만 되면 일을 시켰다.
"이 땅은 저주받았소."
라멕이 중얼거렸다.
"뭐라고요?"
"아무리 일해도 못 먹고 못 사오. 전쟁통에 모든 게 무너졌소. 이 땅은 주님께서 저주하신 땅이오."
김 씨는 아무 말 없이 자기 몫의 밥을 남편에게 더 떠주었다.
"왜 이러시오?"
"당신이 더 드셔야 힘쓰죠. 전 보리밥도 많아요."
라멕은 눈물이 났다.
그날 저녁, 김 씨가 산통이 왔다.
"영감! 애가... 애가 나와요!"
"뭐?"
라멕은 놀라 뛰어갔다.
쉰둘의 나이에 여덟째 아이를 갖다니.
"산파 불러야 해!"
큰딸이 뛰어나갔다.
판잣집에는 난로 하나가 전부였다. 김 씨는 누더기 이불 위에서 신음했다.
"으으... 주님..."
한 시간 후, 아기가 태어났다.
아들이었다.
"울지 않네요!"
산파가 아기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
"으앙!"
아기가 울었다.
라멕은 아기를 안았다. 작고 주름진 얼굴.
"이름을... 무엇이라 할까?"
"당신이 지으세요."
김 씨가 힘없이 말했다.
라멕은 창밖을 보았다. 청계천물이 흐르고, 판잣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연탄 연기가 하늘을 뒤덮었다.
"노아."
"노아?"
"위로하다는 뜻이오. 성경에 나오는 이름이오."
라멕은 아기를 들어 올렸다.
"이 아이가 우리를 위로해 줄 것이오. 주님께서 저주하신 이 땅 때문에 수고하고 고생하는 우리를..."

판잣집의 아이들
노아는 자랐다.
1965년, 다섯 살이 된 노아는 골목을 뛰어다녔다.
"야, 꼬마!"
동네 아이들이 놀렸다.
"너네 집 제일 좁다며?"
"닥쳐!"
노아는 주먹을 휘둘렀지만, 큰 아이들에게 맞고 돌아왔다.
"노아야, 왜 그래?"
아버지 라멕이 물었다.
"애들이... 우리 집이 좁다고..."
라멕은 아들을 안았다.
"미안하다. 아버지가 못나서..."
"아니에요."
노아가 고개를 저었다.
"우리 집이 제일 따뜻해요. 형들, 누나들 다 있고."
라멕은 눈물을 흘렸다.
노아에게는 일곱 형제자매가 있었다.
큰누나 명자(28세) - 평화시장 재봉사
둘째 형 성수(26세) - 청계천 고물상
셋째 누나 영자(24세) - 식모살이
넷째 형 철수(22세) - 건설 노동자
다섯째 누나 순자(19세) - 양재천 공장
여섯째 형 만수(17세) - 구두닦이
일곱째 누나 정자(15세) - 평화시장 시다
모두 일을 했다. 노아를 먹여 살리기 위해.
"노아만은 공부시켜야 해."
큰누나 명자가 말했다.
"우리는 다 못 배웠어. 노아는 달라야 해."
"맞아. 노아는 중학교도 가고, 고등학교도 가야 해."
형제들은 돈을 모았다. 한 푼, 두 푼.
1970년, 노아는 열 살이 되었다.
국민학교 4학년.
"노아야, 이거 가져가라."
둘째 형 성수가 공책을 주었다.
"형, 어디서 났어?"
"주웠다. 쓸만해."
노아는 알았다. 형이 돈 주고 산 것을.
"고마워, 형."
"공부 열심히 해라. 너는 우리 희망이야."

위로의 손길
1973년, 노아는 열세 살이 되었다.
그해 11월 13일, 평화시장에서 전태일이 분신했다.
"형! 큰누나가!"
노아가 집으로 뛰어왔다.
"무슨 일이냐?"
"평화시장에서 사람이 불탔대! 큰누나가 거기 있다고!"
가족들이 평화시장으로 달려갔다.
명자는 무사했다. 하지만 충격에 떨고 있었다.
"언니, 괜찮아?"
"노아야..."
명자가 동생을 끌어안았다.
"전태일 형님이...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어..."
"왜요?"
"우리가 너무 힘들게 일하니까. 하루 14시간씩, 월급도 못 받고..."
노아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럼 안 하면 되잖아요?"
"못 해, 노아야. 안 하면 우리 가족이 굶어."
그날 밤, 라멕은 아들을 불렀다.
"노아야."
"네, 아버지."
"네 이름 뜻 아느냐?"
"위로..."
"그래. 위로하는 자다."
라멕은 아들의 손을 잡았다.
"네 형들, 누나들이 고생하는 걸 봐라. 이 땅은 저주받았다. 아무리 일해도 가난에서 못 벗어난다."
"..."
"그래도 우리는 너를 보면 위로받는다. 너는 다를 거라고. 너는 이 저주를 끊을 거라고."
노아는 눈물을 흘렸다.
"전 어떻게 해야 해요?"
"공부해라. 그리고 기도해라. 주님께서 길을 보여주실 것이다."
1975년, 노아는 중학교에 입학했다.
가족 모두가 돈을 모아 학비를 마련했다.
"노아, 교복이다."
셋째 누나 영자가 새 교복을 사 왔다.
"누나, 이거 비싼 건데..."
"너 입으라고 산 거야. 남한테 빌려 입지 말고."
노아는 교복을 입었다. 생전 처음 새 옷이었다.
"우와, 우리 노아 학생 같은데!"
가족들이 웃었다.
하지만 노아는 웃을 수 없었다.
형들, 누나들은 모두 누더기 옷을 입고 있었다.


새로운 세대
1978년, 노아는 열여덟이 되었다.
경기고등학교 3학년. 전교 1등.
"노아야, 서울대 갈 수 있겠니?"
담임선생이 물었다.
"노력하겠습니다."
"네 집안 형편이 어려운 거 안다. 장학금 알아봐 주마."
그해 겨울, 노아는 서울대 법대에 합격했다.
"합격했어요!"
노아가 집으로 뛰어왔다.
판잣집에 가족들이 모여 있었다.
아버지 라멕은 일흔셋. 허리가 굽어 있었다.
"아버지!"
"노아야... 합격했구나..."
라멕은 아들을 안았다.
"내가... 내가 네 대학 입학식을 볼 수 있을까..."
"무슨 소리예요, 아버지. 건강하세요."
하지만 라멕은 알았다. 자기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1979년 2월, 노아의 입학식 날.
가족들이 모두 서울대 정문 앞에 섰다.
라멕은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노아야."
"네, 아버지."
"내 이제 눈을 감아도 되겠다."
"아버지!"
"내가 너를 낳을 때 기도했다. 이 아이가 우리를 위로해 달라고."
라멕은 아들의 손을 잡았다.
"너는 진짜 위로가 되었다. 우리 가족의, 아니 이 땅의."
"아버지..."
"이제 네 차례다. 이 저주받은 땅을 위로해 다오. 고생하는 사람들을."
두 달 후, 라멕은 세상을 떠났다.
칠십오 세.
장례식은 판잣집 골목에서 치러졌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였다.
"라멕 영감님, 좋은 데 가시오."
"아들 잘 키우셨어요."
노아는 아버지 영정을 안고 울었다.
"아버지, 약속할게요. 제가 이 땅을 위로할게요."
1985년, 노아는 스물다섯 살.
서울대를 졸업하고 변호사가 되었다.
첫 사건은 판잣집 철거 문제였다.
"청계천 재개발로 주민들을 내쫓으려 합니다."
"제가 맡겠습니다."
노아는 무료로 변론을 맡았다.
"철거는 부당합니다. 이 사람들에게 보상이 있어야 합니다!"
법정에서 노아는 외쳤다.
"이 사람들은 30년을 여기서 살았습니다. 전쟁 피난민으로 내려와, 아무것도 없는 땅에 집을 짓고, 자식들을 키웠습니다!"
"이 땅이 저주받았다고요? 아닙니다! 이 땅에서 피땀 흘려 일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판사가 판결했다.
"철거를 중지하고, 주민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하라."
주민들이 환호했다.
"노아 변호사님!"
"고맙습니다!"
노아는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 제가 해냈어요. 이 땅을 위로했어요.'
1990년, 노아는 서른 살에 결혼했다.
아내 미영도 가난한 집 출신이었다.
"우리 아이들은 다르게 키웁시다."
노아가 말했다.
"가난하지만 따뜻하게. 제 형들, 누나들처럼."
"좋아요."
세 아들이 태어났다.
첫째 이름은 셈. "이름"이라는 뜻.
둘째 이름은 함. "뜨겁다"는 뜻.
셋째 이름은 야벳. "넓다"는 뜻.
"아이들아."
노아가 말했다.
"너희 할아버지는 칠십오 년을 청계천 판잣집에서 사셨다. 가난했지만, 여덟 자식을 키우셨다."
"그리고 아버지를 낳으며 말씀하셨다. '이 아이가 우리를 위로해 줄 것이다'라고."
"아버지는 그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했다. 너희도 그래야 한다."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2000년, 노아는 마흔 살.
청계천이 복원되기 시작했다.
"추억의 장소가 사라지네요."
미영이 말했다.
"아니요. 추억은 남아요."
노아는 옛 판잣집 자리를 찾아갔다.
지금은 아파트가 들어섰지만, 그 자리를 기억했다.
"아버지, 저 여기 있어요."
노아는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칠십오 년을 사시면서, 가난과 싸우셨죠."
"하지만 포기하지 않으셨어요. 여덟 자식을 키우시며, 희망을 놓지 않으셨어요."
"제게 이름을 주셨죠. 노아. 위로하는 자."
"저는 그 이름대로 살았어요.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억울한 이들을 변론하고."
"이제 제 아들들도 그렇게 살 거예요."
노아는 가방에서 낡은 사진을 꺼냈다.
1960년, 판잣집 앞에서 찍은 가족사진.
아버지 라멕, 어머니, 그리고 여덟 남매.
"아버지, 보세요."
노아는 사진을 땅에 대고 눈물을 흘렸다.
"저주받은 땅이 아니었어요. 축복받은 땅이었어요."
"여기서 사랑이 자랐고, 희망이 자랐고, 저 같은 사람이 자랐으니까요."
그날 저녁, 노아는 가족들을 모았다.
형들, 누나들, 조카들, 자기 아들들.
"오늘 우리 아버지를 기억합시다."
노아가 말했다.
"이라멕. 칠십오 년을 사신 분."
"가난했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고생했지만 희망을 잃지 않았던 분."
"그분이 제게 이름을 주셨습니다. 노아. 위로하는 자."
"저는 그 이름대로 살았습니다. 이제 제 아들들도 그렇게 살 것입니다."
"셈, 함, 야벳."
세 아들이 일어섰다.
"너희는 새 시대를 살 것이다. 할아버지가 사신 판잣집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하지만 잊지 마라. 너희 뿌리를. 청계천 판잣집에서 시작된 이 가족을."
"그리고 기억해라. 가난한 이들을, 고생하는 이들을."
"그들을 위로하는 것이 우리 이름이다."
모두가 함께 기도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라멕 할아버지를 주셔서."
"노아 아버지를 주셔서."
"이 가족을 주셔서."
"아멘."
2020년, 노아는 예순 살.
손자들이 태어났다.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는 어떤 분이셨어요?"
손자가 물었다.
"가난했지만 위대한 분이셨단다."
노아가 대답했다.
"청계천 판잣집에서 칠십오 년을 사시며, 여덟 자식을 키우셨지."
"와..."
"그분이 나를 낳으며 말씀하셨단다. '이 아이가 우리를 위로해 줄 것이다'라고."
"할아버지가 위로해 주셨어요?"
"노력했단다. 가난한 사람들을, 힘든 사람들을."
노아는 손자를 안았다.
"너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며."
"네, 할아버지!"
그날 밤, 노아는 청계천을 걸었다.
복원된 청계천. 깨끗한 물이 흐르고, 불빛이 반짝였다.
'아버지, 보세요. 이 땅이 얼마나 아름다워졌는지.'
'저주받은 땅이 아니었어요. 축복받은 땅이었어요.'
'여기서 사랑이 자랐고, 여기서 희망이 자랐으니까요.'
노아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이 빛나고 있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제게 이름을 주셔서."
"노아. 위로하는 자."
"저는 그 이름대로 살았습니다."
"이제 제 아들들이, 손자들이 이어갈 것입니다."
"아멘."
*"이 아이가 주님께서 저주하신 땅 때문에 수고하고 고생하는 우리를 위로해 줄 것이다." - 창세기 5:29*
1960년 청계천 판잣집.
가난했지만, 사랑이 있었다.
고생했지만, 희망이 있었다.
그리고 노아가 있었다.
위로하는 자.

월, 화, 수,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