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받은 자

신부님의 강론

by 이 범



저주받은 땅에서
"형제자매 여러분, 평화를 빕니다."
박요한 신부가 강론대에 섰다. 오십 대 중반, 회색 머리가 섞인 그는 30년간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아온 사제였다.



"오늘 독서에서 우리는 라멕과 노아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라멕은 백팔십이 세에 아들을 낳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아이가 주님께서 저주하신 땅 때문에 수고하고 고생하는 우리를 위로해 줄 것이다.'"
신부는 성경을 덮고 교우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저주받은 땅.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혹시 지금 살고 있는 이 땅이 저주받았다고 느낀 적 있으십니까?"
침묵이 흘렀다.



"저는 있습니다."
신부가 고백했다.
"제가 처음 사제 서품을 받고 파견된 곳은 구로공단이었습니다. 1990년. 그곳에는 작은 성당 하나와 판잣집들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김 씨 가족을 만났습니다."
신부는 강론대를 내려와 교우들 사이로 걸어왔다.
"김라멕 씨. 당시 예순다섯 살. 일곱 자녀를 둔 가장이었습니다. 전쟁 때 피난 내려와 고물상으로 평생을 사셨죠."
"제가 처음 그 집을 방문했을 때, 라멕 씨는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부가 목소리를 낮췄다.
"'신부님, 이 땅은 저주받았어요. 아무리 일해도 가난에서 못 벗어나요. 제 자식들도, 손주들도 다 고생이에요.'"
"여러분."
신부가 교우들을 보았다.


"우리도 그렇게 느낄 때가 있지 않습니까?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나아지지 않는 삶. 자식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주지 못하는 현실. 그럴 때 우리는 생각합니다. '이 땅은 저주받은 게 아닐까?'"

위로의 이름

"하지만 라멕 씨에게는 막내아들이 있었습니다."
신부가 다시 강론대로 돌아왔다.
"김노아. 당시 스물다섯 살. 서울대 법대를 나와 막 변호사가 된 청년이었죠."
"라멕 씨가 쉰다섯에 낳은 아들입니다. 늦둥이였죠. 그 아들을 낳으며 라멕 씨는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신부는 눈을 감았다.
"'주님, 이 아이가 우리를 위로해 주기를 바랍니다. 이 저주받은 땅에서 고생하는 우리를, 이 아이가 위로해 주기를.'"
"그래서 이름을 노아라고 지었습니다. 위로하는 자."
신부는 눈을 떴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가난 속에서도,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것. 하느님께서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다고 믿는 것. 이 아이를 통해 위로가 올 것이라고 믿는 것."
한 교우가 손을 들었다.
"신부님, 그래서 그 노아라는 분이 정말 위로를 주었나요?"
신부는 미소 지었다.
"들어보십시오."
"노아는 어릴 때부터 달랐습니다. 형들과 누나들이 모두 공장과 건설장에서 일할 때, 노아는 공부했습니다. 가족 모두가 돈을 모아 노아를 학교에 보냈죠."
"왜였을까요? 노아도 일을 시키면 당장 돈이 되는데 말입니다."
신부가 물었다.
"그것은 희망 때문입니다. 이 아이만은 다를 것이라는 희망. 이 아이가 우리를 위로해 줄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노아는 그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위로의 삶
"노아는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신부가 계속 이야기했다.
"하지만 대형 로펌에 가지 않았습니다. 돈을 많이 벌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죠."
"대신 구로공단에 작은 사무실을 열었습니다. '위로 법률사무소'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무료로 변론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교우가 말했다.
"그럼 어떻게 먹고살았어요?"
"좋은 질문입니다."
신부가 대답했다.
"노아는 형들과 누나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평생 동생을 뒷바라지했던 형제들이, 이번에는 동생의 꿈을 지원한 겁니다."
"왜였을까요?"
신부는 잠시 멈췄다.
"그것이 바로 가족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가족이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한 사람이 고생하면 다른 이들이 돕습니다. 한 사람이 넘어지면 다른 이들이 일으켜 세웁니다. 그렇게 서로 위로하는 것. 그것이 가족입니다."
신부는 노트를 펼쳤다.
"제가 노아를 처음 만난 것은 1995년이었습니다. 그는 공장 노동자들을 변론하고 있었죠."




"'신부님, 이 사람들이 억울하게 해고당했어요. 도와주세요.'"
"우리는 함께 싸웠습니다. 노아는 법정에서, 저는 기도로."
"그리고 이겼습니다."
신부는 눈물을 닦았다.
"그날 노동자들이 노아에게 말했습니다. '변호사님이 우리를 위로해 주셨어요.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게 해 주셨어요.'"
"바로 그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라멕 씨의 기도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위로의 씨앗
"2010년, 라멕 씨가 돌아가셨습니다."
신부의 목소리가 잠겼다.
"여든다섯세. 평생을 가난과 싸우며 사신 분이었죠."
"장례 미사를 제가 집전했습니다. 그때 노아가 조사를 낭독했습니다."
신부는 종이를 꺼냈다.
"제가 그때 받아 적은 겁니다. 함께 들어보시겠습니까?"
교우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 아버지는 저에게 이름을 주셨습니다. 노아. 위로하는 자.'"
"'그리고 말씀하셨죠. 이 저주받은 땅에서 고생하는 우리를 위로해 달라고.'"
"'아버지, 저는 평생 그 이름대로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변론하고, 억울한 이들을 도왔습니다.'"
"'하지만 깨달았습니다. 제가 위로한 것이 아니라, 제가 위로받았다는 것을.'"
신부는 목소리를 높였다.
"'아버지가 저를 믿어주셨을 때, 형들과 누나들이 저를 위해 희생했을 때, 그것이 저에게 위로였습니다.'"
"'그 위로가 저를 변호사로 만들었고, 다른 이들을 돕게 했습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에게 이름을 주셔서. 그리고 그 이름대로 살 기회를 주셔서.'"
신부는 종이를 내려놓았다.
"형제자매 여러분."
그는 교우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라멕은 칠십칠 년을 살았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의 라멕 씨는 팔십오 년을 사셨죠."
"가난했습니다. 고생했습니다. 그래서 이 땅이 저주받았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낳았습니다. 노아를."





신부는 십자가상을 가리켰다.
"여러분,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 때로는 저주받은 것처럼 보입니다. 불의가 횡행하고, 가난이 대물림되고, 약자가 억압받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절망합니다. '하느님은 어디 계신가? 왜 우리를 버리셨는가?'"
"하지만 여러분."
신부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하느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선물을 주셨습니다."
"노아라는 선물을. 위로라는 선물을."
"그 위로는 여러 형태로 옵니다."
신부는 손가락을 꼽았다.
"때로는 가족으로 옵니다. 서로를 돕고 희생하는 가족."
"때로는 이웃으로 옵니다. 어려울 때 손을 내미는 이웃."
"때로는 낯선 이로 옵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오는 도움."
"그리고 때로는..."
신부가 미소 지었다.
"우리 자신이 됩니다. 우리가 다른 이들에게 노아가 되는 것입니다."
한 교우가 물었다.
"신부님,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좋은 질문입니다."
신부가 강론대에서 내려왔다.
"첫째, 희망을 잃지 마십시오."
"라멕은 팔십오 년을 가난 속에 살았지만, 희망을 놓지 않았습니다. 이 아이가 다를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지금은 어렵지만, 내일은 다를 것이라고 믿는 것."
"둘째, 서로를 돕십시오."
"노아의 형제들은 자기를 희생하며 동생을 도왔습니다. 그것이 결국 모두를 살렸습니다."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내가 받은 위로를 다른 이에게 나누는 것."
"셋째, 이름대로 사십시오."
신부는 한 교우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우리는 모두 세례명을 받았습니다. 그 이름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베드로라면 반석처럼, 마리아라면 겸손하게, 요셉이라면 의롭게."
"우리의 이름대로 살 때, 우리는 다른 이들에게 위로가 됩니다."
신부는 다시 강론대로 돌아왔다.
"노아는 지금 쉰다섯 살입니다."
"세 아들을 두었습니다. 셈, 함, 야벳."
"성경의 노아처럼 말이죠."
교우들이 웃었다.




"그 아들들도 아버지의 길을 따르고 있습니다. 셈은 의사가 되어 무료 진료소를 운영하고, 함은 교사가 되어 빈민촌 아이들을 가르치고, 야벳은 신학생이 되어 사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신부가 물었다.
"아버지가 그들에게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위로하는 삶을."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물려준 이름, '노아'를."
"그 이름이 지금 세 아들을 통해 계속되고 있습니다."
신부는 성경을 다시 펼쳤다.
"'노아의 나이 오백 세 되었을 때, 노아는 셈과 함과 야펫을 낳았다.'"
"이것은 단순히 나이와 자녀의 기록이 아닙니다."
"이것은 희망의 계승입니다. 위로의 대물림입니다."
"한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는 것. 재산이 아니라 사명을."
신부는 성경을 덮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모두 라멕입니다."
"저주받은 것처럼 보이는 이 땅에서 고생하며 사는."
"하지만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노아가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 자녀로, 때로는 우리 이웃으로, 때로는 우리 자신으로."
"위로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신부는 팔을 벌렸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가장 큰 노아가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야말로 진정한 위로자이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통해 다른 이들을 위로하십니다."
신부는 십자가 성호를 그었다.
"그러니 형제자매 여러분, 희망을 잃지 마십시오."
"이 땅은 저주받지 않았습니다. 축복받은 땅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서로를 위로하고, 서로를 일으켜 세우니까요."
"라멕의 기도를 우리 기도로 삼읍시다."
"'이 아이가, 이 사람이, 나 자신이, 주님께서 저주하신 것처럼 보이는 이 땅에서 고생하는 우리를 위로해 주기를.'"
"그리고 그 기도대로 삽시다."
"위로하는 자로."
"아멘."
"아멘."
교우들이 화답했다.




미사가 끝나고, 한 교우가 신부에게 다가왔다.
"신부님, 오늘 강론 감동적이었어요. 그 노아라는 변호사, 실제 인물인가요?"
신부가 미소 지었다.
"예, 지금도 구로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만나볼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다음 주 토요일에 그분이 성당에서 강연하십니다. '위로하는 삶'이라는 주제로요."
"꼭 올게요!"
신부는 제의실로 돌아가 제의를 벗으며 기도했다.
"주님, 감사합니다."
"라멕 씨와 노아를 통해 당신의 섭리를 보여주셨으니."
"저주받은 것처럼 보이는 땅에서도, 당신은 희망의 씨앗을 심으시는구나."
"그 씨앗이 자라 위로의 나무가 되고, 그 나무 아래서 많은 이들이 쉬게 하시는구나."
"우리 모두를 노아로 만들어 주소서."
"서로를 위로하는 자들로."
"아멘."
*"이 아이가 주님께서 저주하신 땅 때문에 수고하고 고생하는 우리를 위로해 줄 것이다." - 창세기 5:29*
신부님의 강론은 계속된다.
매주일,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며.
우리 모두가 노아가 되기를, 위로하는 자가 되기를 기도하며.
이 땅은 저주받지 않았다.
우리가 서로를 위로하는 한.
아멘.

월, 화, 수,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