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갑의 선택
이산갑의 선택
새벽 4시, 학당.
이산갑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젯밤 읍내 쪽에서 총소리와 불빛이 보였다. 거사가 시작된 것이었다.
'무사하길... 부디 무사하길...'
이산갑은 손을 모아 기도했다. 평생 붓을 잡고 살아온 선비였지만, 이 밤만큼은 칼을 든 동지들을 위해 기도했다.
동이 트기 시작했다. 회색빛 새벽이 밝아왔다.
"아버지!"
이계민이 다급히 달려왔다.
"읍내에서 큰일이 났답니다! 헌병대가 습격당했다고!"
"그래..."
이산갑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야마자키 헌병대장이 죽었답니다! 그리고 건물이 불탔다고!"
이계민의 목소리에는 흥분이 섞여 있었다. 젊은 피는 억압자의 죽음에 환호하고 싶었다.
"하지만 헌병들이 미쳐 날뛰고 있답니다. 범인을 찾는다며 집집마다 수색하고 있어요."
이산갑의 얼굴이 굳었다.
"계민아."
"예, 아버지."
"너는 지금 당장 산호 삼촌 집으로 가거라. 그리고 당분간 읍내를 떠나 있어라."
"왜요?"
"묻지 말고 가거라. 어서!"
이산갑의 단호한 목소리에 이계민은 더 묻지 못했다.
"알겠습니다, 아버지."
이계민이 떠난 후, 이산갑은 학당 마루에 앉아 기다렸다. 무엇을 기다리는가? 정혁진을. 신우혁을. 그리고 살아 돌아온 동지들을.
오전 8시쯤, 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형님..."
정혁진이었다. 어깨에 붕대를 감고, 피를 흘리며 서 있었다. 뒤에는 신우혁과 산돌이가 있었다.
"들어오게."
이산갑이 그들을 안으로 들였다. 문을 닫고 물을 떠왔다.
"마시게."
세 사람은 물을 마셨다. 목숨을 건 도주 끝에 마시는 물은 꿀보다 달았다.
"성공했나?"
이산갑이 물었다.
"예, 형님."
정혁진이 대답했다.
"야마자키는 죽었습니다. 서류도 모두 태웠습니다."
"다친 사람은?"
"정혁진 형과 제가 총상을 입었습니다."
신우혁이 대답했다.
"하지만 다른 팀은 모두 무사히 철수했습니다."
이산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잘했네. 정말 잘했어."
하지만 기쁨도 잠시, 밖에서 고함소리가 들렸다.
"집집마다 수색한다!"
"조선인들을 모두 조사하라!"
헌병들이었다.
"숨어야 합니다."
이산갑이 빠르게 말했다.
"학당 뒤 창고에 숨겨둔 공간이 있네. 어서!"
이산갑은 그들을 창고로 데려갔다. 창고 바닥의 판자를 들어올리자 지하 공간이 나타났다.
"여기는?"
"의병 시절 아버지께서 만드신 은신처일세. 어서 들어가게."
세 사람이 지하로 내려갔다. 이산갑이 판자를 덮고 그 위에 곡식 가마니를 올렸다.
바로 그때, 학당 문이 거칠게 열렸다.
"이산갑!"
헌병 다섯 명이 들어왔다. 그 앞에는 통역을 맡은 조선인 순사가 있었다.
"어젯밤 헌병대 습격 사건에 대해 조사하겠다."
이산갑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네."
"한도회 회원 명단을 내놓아라."
"한도회는 학문 모임일 뿐이네. 무슨 명단 말인가?"
헌병 하나가 이산갑의 뺨을 후려쳤다.
"거짓말 하지 마!"
이산갑이 바닥에 쓰러졌다. 입에서 피가 흘렀다.
"이 집을 뒤져라!"
헌병들이 학당을 마구 뒤지기 시작했다. 책을 집어던지고, 가구를 부쉈다. 이산갑의 식물도감도 찢어졌다.
"선생님!"
밖에서 학당 학생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헌병들은 창고까지 들어갔다. 곡식 가마니를 치우고 바닥을 두드렸다.
"텅텅..."
소리가 울렸다. 밑이 비어 있다는 소리.
"여기다!"
헌병이 외쳤다. 판자를 들어올리려 했다.
"기다리게!"
이산갑이 일어나 소리쳤다.
"거기는 조상의 제사 물품을 보관하는 곳일세! 함부로 들추면 조상님께 죄를 짓는 것이네!"
헌병이 망설였다. 조선인의 미신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제사 물품?"
"그렇네. 신성한 곳이니 손대지 말아주게."
헌병들이 서로 눈치를 보았다. 그때 순사가 말했다.
"괜찮습니다. 조선인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곳입니다. 아무것도 없을 겁니다."
헌병들이 판자를 다시 덮었다.
지하에 숨은 세 사람은 숨을 죽였다. 조금만 더 조사했다면 발각되었을 것이다.
"다른 곳을 뒤져라!"
헌병들이 창고를 나갔다.
한 시간쯤 수색한 끝에 헌병들은 아무것도 찾지 못하고 떠났다.
"놓치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잡아낼 것이다!"
헌병들이 떠난 후에도 이산갑은 한동안 기다렸다. 완전히 안전해진 후에야 판자를 열었다.
"이제 괜찮네."
세 사람이 기어 나왔다. 모두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형님, 감사합니다."
정혁진이 고개를 숙였다.
"이제 어찌 할 것인가?"
이산갑이 물었다.
"숨어야 합니다."
신우혁이 대답했다.
"당분간 산속에 숨어 지내다가, 상황을 보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이산갑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식량과 약을 구해주겠네. 그리고 다른 회원들 소식도 전하겠네."
"형님..."
정혁진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형님께서 위험해지십니다. 우리 때문에..."
"자네들이 위험한 일을 했는데, 나라고 편하게 있을 수 있겠는가."
이산갑이 정혁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우리는 형제일세. 한 배를 탄 형제. 끝까지 함께 가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