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함의 그림자
투표함의 그림자
2004년 4월의 봄은 유난히 따뜻했다.
나는 지방의 작은 도시 선거관리위원회 말단 직원이었다. 서른두 살, 공무원 5년차. 결혼한 지 2년 된 아내는 첫아이를 임신 중이었고, 우리는 전세금을 모으기 위해 허름한 반지하 월세방에서 살고 있었다.
"김대리, 잠깐 올라와 보시게."
선거를 한 달 앞둔 어느 금요일 오후, 관리과장의 호출을 받았다. 평소와 다른 낮은 목소리였다. 나는 손에 든 서류를 책상에 내려놓고 3층 과장실로 향했다.
과장실 문을 열자 담배 연기가 자욱했다. 김 과장은 창문을 등지고 서 있었고, 그의 옆엔 처음 보는 중년 남자가 앉아 있었다. 값비싼 양복에 금테 안경을 쓴, 어딘가 위압적인 인상의 사람이었다.
"소개하지. 박 의원 비서실장이신 분이야. 중요한 얘기가 있다고 하시네."
박 의원. 우리 지역구 3선 국회의원이었다. 나는 어색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앉게."
비서실장의 목소리는 명령조였다. 나는 말없이 소파에 앉았다.
"김대리, 자네 집안 사정이 어렵다고 들었네."
갑자기 사생활을 언급하는 말에 당황했다.
"...그냥 보통입니다."
"보통? 반지하 월세에 임신한 부인, 빚까지 있다는데?"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들은 나를 조사했다. 왜? 무엇 때문에?
"다음 달 선거, 자네 투표소 관리 담당이지?"
"...예. 제3투표소입니다."
비서실장은 서류가방에서 두툼한 봉투를 꺼냈다. 책상 위에 내려놓는 소리가 묵직했다.
"3천만 원일세. 자네 빚 갚고도 남을 거야."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무슨... 무슨 말씀이신지..."
"어려운 일 아니네. 투표함 몇 개만 바꿔치기하면 돼. 우리 쪽 사람들이 다 준비해 놨어. 자네는 그냥 눈 감고 있으면 돼."
머릿속이 하얘졌다. 이건 명백한 선거 부정이었다. 공직선거법 위반이고, 발각되면 최소 징역 5년이었다.
"저, 저는... 못합니다."
목소리가 떨렸다. 비서실장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못해? 자네 와이프 다니던 병원 산부인과, 폐업했다며? 새로 옮긴 데는 비용이 두 배라던데. 자네 월급으로 출산비용 감당되나?"
그는 모든 걸 알고 있었다. 아내의 병원이 갑자기 문을 닫아 급히 옮긴 것까지.
"그리고 말이야..."
비서실장은 또 다른 서류를 꺼냈다.
"자네 장인어른 회사, 다음 달 부도 위기라던데. 박 의원님이 좀 도와드릴 수도 있지. 물론 자네가 협조한다면 말이야."
온몸이 얼어붙었다. 협박이었다. 노골적인.
"생각해 보게. 월요일까지 답 주면 돼."
나는 비틀거리며 과장실을 나왔다. 복도는 여전히 평온했고, 동료들은 웃으며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 마치 다른 세상 같았다.
그날 밤, 나는 아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여보, 왜 그래? 어디 아파?"
식탁에 앉아 저녁도 먹지 않고 멍하니 있는 나를 아내가 걱정스럽게 쳐다봤다. 볼록한 배를 쓰다듬으며 미소 짓는 아내의 얼굴을 보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니야. 그냥 일 때문에 좀..."
"과장님이 또 뭐라고 했어? 힘들면 말해. 우리 같이 해결하자."
같이. 그 말이 가슴을 찔렀다. 어떻게 말하지? 3천만 원에 영혼을 팔라는 제안을 받았다고? 그것도 선거 부정에 가담하라고?
주말 내내 잠을 이루지 못했다. 창밖을 내다보며 셀 수 없이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3천만 원이면 빚을 다 갚을 수 있었다. 아내의 출산 비용도 넉넉하게 댈 수 있었다. 장인의 회사도 살릴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의 모든 문제가 한 번에 해결되는 돈이었다.
하지만 그건 범죄였다.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위였다. 대학 시절 민주화 시위에 참여했던 나였다. 투표의 신성함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냥... 한 번만..."
악마의 속삭임이 귓가를 맴돌았다.
'아무도 모를 거야. 그들이 다 준비했다잖아. 넌 그냥 눈 감고 있으면 돼. 가족을 위한 거야. 아내를 위한 거야. 태어날 아이를 위한 거야.'
일요일 저녁, 나는 반지하 방 계단에 앉아 담배를 피웠다. 10년 전에 끊었던 담배였다.
"여보..."
뒤에서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놀라서 돌아보니 아내가 계단 위에 서 있었다.
"담배 다시 피워? 무슨 일 있어?"
"...아무 일도 없어."
"거짓말. 3일째 밥도 안 먹고, 밤새 뒤척이고. 나한테 말 못할 일이야?"
아내가 내 옆에 앉았다. 배가 불러 힘겹게 계단에 앉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무너졌다.
"미안해."
"왜 미안해? 무슨 일인데?"
나는 결국 모든 걸 털어놨다. 비서실장의 제안, 3천만 원, 투표함 바꿔치기, 모든 것을.
아내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하든, 난 지지할 거야."
"...뭐?"
"3천만 원이면... 우리 문제가 다 해결되잖아. 솔직히 유혹되지 않아? 나도 유혹돼."
아내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하지만 당신이 그 선택 때문에 평생 괴로워할 거라는 것도 알아.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내가 제일 잘 아니까."
"우린... 너무 힘들잖아..."
"응, 힘들어. 근데 당신, 대학 때 나한테 했던 말 기억해? 가난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부정한 부는 부끄러운 거라고."
그 말이 마지막 한 방이었다.
월요일 아침, 나는 결정했다.
과장실로 올라가 문을 열었다. 김 과장과 비서실장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결정했나?"
비서실장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있었다. 당연히 승낙할 거라는.
"죄송합니다만..."
내 목소리는 떨렸지만 단호했다.
"못하겠습니다."
순간 실내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뭐?"
"저는 그 일에 가담할 수 없습니다. 공무원으로서, 아니 사람으로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비서실장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했다.
"자네 지금 무슨 짓을 하는지 알아? 자네 가족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양심을 팔 순 없습니다."
"양심? 양심으로 밥 먹고 사나? 임신한 마누라 병원비는 양심으로 내나?"
비서실장이 책상을 쾅 내리쳤다.
"마지막으로 묻겠네. 정말 안 하겠다는 건가?"
"예. 절대 못합니다."
"좋아. 후회하게 될 거야."
비서실장은 서류가방을 집어 들고 나갔다. 문이 쾅 닫히는 소리가 천둥처럼 울렸다.
김 과장이 한숨을 쉬었다.
"자네... 큰일 났어. 진짜 큰일 났다고."
나도 알았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었다. 아니, 돌이키고 싶지 않았다.
그날 오후, 나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익명으로 제보 전화를 했다. 투표함 바꿔치기 음모가 있다고. 증거는 없지만 철저히 감시해 달라고.
그리고 그날 저녁.
퇴근길에 낯선 남자 둘이 나를 골목으로 끌고 갔다. 주먹이 날아왔고, 발길질이 이어졌다.
"입 다물고 있어. 알았지?"
"네 와이프도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갈비뼈가 부러지는 듯한 통증 속에서도, 나는 이를 악물었다. 신고하지 않았다. 더 큰 보복이 두려웠다.
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깜짝 놀라 달려왔다.
"여보! 왜 이래? 무슨 일이야?"
"괜찮아... 넘어졌어..."
"거짓말! 병원 가야 돼!"
"괜찮다니까!"
나는 소리를 질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내에게 고함을 친 순간이었다. 아내는 눈물을 글썽이며 물러섰다.
밤새 화장실에서 피를 토했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은 형편없었다. 멍투성이에 입술이 찢어져 있었다.
'내가... 잘한 걸까?'
처음으로 의심이 들었다.
선거일까지 3주. 그 기간 동안 나는 지옥을 경험했다.
직장에서 왕따가 시작됐다. 김 과장은 나를 아예 투명인간 취급했다. 동료들도 거리를 뒀다. 소문이 돈 것이다. '박 의원 편을 거절한 미친놈'이라고.
더 끔찍한 건 그다음이었다.
아내가 다니던 새 병원에서 갑자기 진료를 거부했다. 이유는 불분명했다. 다른 병원을 알아봤지만 모두 '자리가 없다'며 거절했다.
장인의 회사는 예정대로 부도가 났다. 장인은 하루아침에 모든 걸 잃었고, 장모는 충격으로 쓰러졌다.
"다 네 탓이야!"
장인은 내게 호통을 쳤다.
"박 의원이 좀만 도와줬으면 살 수 있었어! 근데 네가 거절했다며? 네가 우리 가족을 망쳤어!"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사실이었으니까.
아내는 나를 원망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눈빛에서 고통을 읽을 수 있었다. 병원도 못 가고, 아버지 회사도 망하고, 남편은 맞아서 돌아오고.
"미안해... 정말 미안해..."
밤마다 아내를 안고 울었다. 아내도 조용히 울었다.
'차라리 그때 돈을 받았더라면...'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선거 당일.
나는 제3투표소 관리 책임자로서 아침 일찍 투표소에 도착했다. 중앙선관위에서 특별 감시요원이 파견되어 있었다. 내 제보 때문이었다.
투표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어떤 부정도 일어나지 않았다. 감시가 철저했기 때문이었다.
저녁 8시, 개표가 시작됐다.
박 의원은 근소한 차이로 낙선했다. 우리 투표소에서도 야당 후보가 이겼다. 만약 투표함이 바뀌었다면 결과가 달랐을 것이다.
개표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투표소 앞에 잠시 멈춰 섰다. 간판에 적힌 '공정한 선거, 깨끗한 민주주의'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옳은 일을 한 거야.'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하지만 가슴은 무겁기만 했다.
집에 들어서니 아내가 배를 움켜쥐고 쓰러져 있었다.
"여보!"
119를 불렀다. 응급실로 실려 갔다. 조산 기미였다.
"임신부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럴 수 있습니다. 최근에 무슨 일 있으셨나요?"
의사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다행히 아내와 아이는 무사했다. 하지만 1주일 입원이 필요했다. 입원비는...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결국 악성 대출을 받았다. 이자만 월 100만 원이 넘었다.
다음날, 사직서를 냈다.
"잘 생각했어."
김 과장은 냉소적으로 웃으며 사직서를 받았다.
"원래 자네 인사발령 나올 예정이었어. 좌천이지. 하지만 이렇게 알아서 나가주니 고맙네."
선거관리위원회를 나오며, 나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5월의 하늘은 너무나 파랗고 맑았다. 비웃는 것처럼.
에필로그 - 20년 후
2024년 5월.
나는 쉰두 살이 되었다.
선관위를 그만둔 후 여러 일을 전전했다. 택시 운전, 경비, 배달. 못 해본 일이 없었다. 빚은 10년이 넘어서야 다 갚았다.
아내는 나를 떠나지 않았다. 함께 고생하며 아이를 키웠다. 아들은 올해 대학생이 됐다. 법학과에 다닌다. 정의로운 검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아빠, 그때 왜 그 돈을 거절했어?"
어느 날 아들이 물었다. 나는 아들에게 2004년의 이야기를 들려줬었다.
"후회하지 않아?"
"..."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거짓말이었다. 수없이 후회했다. 밤마다 '그때 그 돈만 받았더라면' 하고 생각했다. 아내가 고생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아들이 남루한 옷을 입고 학교 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장인이 세상을 떠날 때마다.
'내가 잘못했나?'
'양심이 뭐가 그리 중요했나?'
'가족이 먼저 아닌가?'
하지만 동시에 알았다.
만약 그 돈을 받았다면, 나는 평생 그 돈에 묶여 살았을 것이다. 더 큰 부정에 가담했을 것이다. 박 의원의 꼭두각시로 살았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두려운 것은, 내 아들에게 어떤 아버지로 기억됐을까 하는 것이었다.
"아빠는 말이야..."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때 최선을 다했어. 그 순간에,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지."
"후회는?"
"많이 했어. 지금도 가끔 해.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고."
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빠, 한 가지는 확실해."
나는 아들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아빠는 네가 부끄러워할 아버지는 아니야. 가난하고 무능할지 몰라도, 적어도 부정직하지는 않았어."
아들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자랑스러워, 아빠."
그 말 한마디에 20년의 고통이 조금 녹아내렸다.
2024년 5월 15일.
나는 신문에서 작은 기사를 발견했다.
'前 박모 의원, 2004년 선거부정 혐의로 기소'
20년이 지나서야 진실이 밝혀진 것이다. 여러 지역에서 투표함 바꿿치기가 있었고, 결국 특검 수사로 드러났다. 박 전 의원은 구속됐다.
기사를 보며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때 내가 동조했다면, 나도 저 기사에 나왔겠구나.'
떨리는 손으로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신문 봤어?"
"응, 방금 봤어."
"나... 잘한 거지?"
한참의 침묵 후 아내가 대답했다.
"당신은 처음부터 잘하고 있었어. 20년 전에도, 지금도."
전화를 끊고 나는 오랜만에 깊은 숨을 쉬었다.
후회는 여전히 있었다. 가족을 고생시킨 것, 더 잘 살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친 것. 그 무게는 평생 짊어지고 갈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과거는 바꿀 수 없다. 하지만 과거를 바라보는 시선은 바꿀 수 있다.
2004년의 나는, 그 순간 최선을 다했다. 두려움 속에서도, 가난 속에서도, 유혹 속에서도, 나는 내 양심을 지켰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어."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처음으로, 진심으로.
저녁 무렵,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왔다.
"아빠, 오늘 교수님이 그러시는데, 법보다 중요한 게 양심이래."
나는 미소를 지었다.
"맞아.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거든. 진짜 중요한 건 네 안의 목소리야."
"아빠처럼?"
"응, 아빠처럼."
아들이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나도 아빠처럼 살고 싶어."
그 말이 20년의 고통을 보상하고도 남았다.
창밖으로 석양이 지고 있었다. 오렌지빛 하늘 아래, 나는 비로소 평화를 느꼈다.
과거를 바꿀 순 없다.
하지만 과거가 나를 규정하게 내버려 둘 필요도 없다.
나는 2004년에 최선을 다했다.
그걸로 충분했다.
그걸로 충분하다.
끝
"후회는 현재의 눈으로 과거를 재단할 때 생긴다. 하지만 과거의 나는, 그 순간 가진 정보와 용기로 최선을 다했다. 그것을 인정할 때, 비로소 자유로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