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해방의 전야
1945년 5월, 산속 생활은 더 힘들어졌다.
식량이 바닥나기 시작했다.
"나리, 쌀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산돌이 보고했다.
"알고 있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마을에서 더 가져와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위험해. 헌병들이 감시하고 있어."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이계민이 나섰다.
"너도 지난번에 들킬 뻔했잖아."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잖아요."
"...조심해라. 산돌이와 함께 가거라."
"네, 아버지."
그날 밤, 이계민과 산돌은 다시 마을로 내려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백합회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박영숙의 집에 조용히 들어갔다.
"조카님! 산돌아제!"
박영숙이 놀라며 맞았다.
"영숙 아주머니, 식량 좀 도와주실 수 있어요?"
"물론이죠. 기다리세요."
박영숙은 지하 창고에서 쌀 두 가마를 꺼냈다.
"이걸 백합회에서 모았어요. 산에 계신 분들 드리라고요."
"고맙습니다."
"그리고 이것도요."
박영숙이 편지를 건넸다.
"뭐예요?"
"전국 각지에서 온 소식이에요. 한도회 연락망을 통해서요."
이계민이 편지를 펼쳤다.
"일본이 큰 패배를 당했답니다. 오키나와가 함락됐대요."
"정말입니까?"
"네, 그리고 소련도 곧 일본과 전쟁을 시작한다고 합니다."
산돌의 눈이 빛났다.
"그럼 정말 곧 끝나는 거군요!"
"맞아요, 아제. 이제 조금만 더 버티면 돼요."
두 사람은 쌀을 지고 산으로 돌아갔다.
동굴에서 한도회 회원들이 모였다.
"동지 여러분, 좋은 소식입니다!"
이산갑이 편지를 읽었다.
"일본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광복이 머지않았습니다!"
사람들이 환호했다.
"정말입니까!"
"드디어!"
"한도회 만세!"
하지만 김만석이 조용히 말했다.
"동지 여러분, 기뻐하는 것도 좋지만... 방심하면 안 됩니다. 짐승이 죽기 직전이 가장 위험합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앞으로 몇 달이 가장 중요합니다. 끝까지 조심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지윤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처가 많이 나아졌다.
"동지 여러분, 저도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마님, 몸이 아직..."
"괜찮아요. 이 정도는..."
강지윤은 사람들을 둘러봤다.
"우리는 지금까지 잘 싸워왔습니다. 정신대를 막았고, 징용을 막았고, 공출에도 맞섰습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광복이 와도, 우리의 싸움은 계속됩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광복 후에 우리가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가... 그것이 더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숨을 죽이고 들었다.
"우리 한도회는 단순히 일본에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조선을 만들기 위해 싸우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여성도 사람 취급받는 나라, 가난한 사람도 존중받는 나라, 모두가 평등한 나라... 그런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강지윤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그러니 우리는 끝까지 싸워야 합니다. 광복이 와도, 그 후에도, 계속 싸워야 합니다!"
"한도회 만세!"
"조선 만세!"
동굴 안에 작은 함성이 울려 퍼졌다.
이계민은 어머니를 보며 가슴이 뜨거워졌다.
'어머니는... 정말 대단하신 분이시다...'
산돌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저런 분을 모시고 싸울 수 있다니...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마지막 시련
1945년 7월, 일본의 발악은 더욱 거세졌다.
"영광군 전역에 계엄령을 선포한다!"
일본인 읍장이 선언했다.
"모든 조선인은 야간 통행을 금지한다! 세 명 이상 모이는 것도 금지한다!"
마을은 공포에 질렸다.
"이제 어떻게 살라는 거야..."
하지만 한도회는 더욱 활발하게 움직였다.
계엄령으로 마을이 통제되자, 오히려 한도회의 비밀 활동이 더 필요했다.
"산돌아, 오늘 밤에 서쪽 마을로 가야 해."
"알겠습니다, 나리."
"계민아, 너는 동쪽으로."
"네, 아버지."
"절대 들키지 마라. 계엄령 중이라 들키면 바로 총살이야."
"알고 있습니다."
밤마다 이계민과 산돌은 마을을 돌며 한도회 연락망을 유지했다.
어느 날 밤, 산돌이 전갈을 전하러 갔다가 헌병들과 마주쳤다.
"거기 서!"
"젠장!"
산돌은 달렸다.
"빵! 빵!"
총성이 울렸다.
"억!"
산돌의 어깨에 총알이 스쳤다.
하지만 그는 달렸다. 이를 악물고 달렸다.
'여기서 죽을 수는 없어... 아직 할 일이 많아...'
산돌은 헌병들을 따돌리고 산으로 돌아왔다.
동굴에 도착했을 때, 그는 쓰러졌다.
"산돌아!"
이계민이 달려왔다.
"괜찮아요... 도령님..."
"아제, 피가!"
"이 정도는... 괜찮습니다..."
하지만 상처는 깊었다.
강지윤이 달려왔다.
"산돌아, 어서 눕거라!"
"마님... 죄송합니다... 제가 조심하지 못해서..."
"무슨 소리야. 네가 무사히 돌아온 게 얼마나 다행인지..."
강지윤은 다나카가 준 약으로 상처를 치료했다.
"많이 아프지?"
"괜찮습니다... 마님께서 받으신 고문에 비하면..."
"이 녀석아..."
강지윤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이계민도 옆에 앉았다.
"아제, 제가 대신 갈걸 그랬어요..."
"아닙니다, 도령님. 이런 일은 제가 하는 게 맞습니다."
"무슨 소리예요. 우리 한도회 동지잖아요."
산돌이 이계민을 봤다.
"조카님... 제가 비록 하인 출신이지만..."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하인도 양반도 없어요. 우리는 모두 조선 사람이고, 한도회 회원이에요."
이계민이 산돌의 손을 잡았다.
"아제는 제 형 같은 사람이에요. 아니, 진짜 형이에요."
산돌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조카님..."
"광복되면, 우리 정말로 형제처럼 살아요."
"네... 조카님..."
이산갑이 두 청년을 보며 미소 지었다.
'이 아이들이... 새로운 조선을 만들 것이다...'
8월 15일
1945년 8월 초, 산속에 묘한 긴장감이 돌았다.
"나리, 마을에서 이상한 소문이 들립니다."
산돌이 보고했다.
"무슨 소문?"
"일본이 항복할 거래요. 곧."
"정말인가?"
"확실하지는 않지만... 일본인들이 급하게 짐을 싸고 있답니다."
"그렇다면..."
이산갑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8월 15일 낮.
산돌이 마을에서 돌아왔다. 그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나리! 나리!"
"왜 그러나?"
"일본이... 일본이 항복했습니다!"
"뭐라고!"
"방금 라디오에서 발표했답니다! 전쟁이 끝났습니다! 광복입니다!"
동굴 안이 순간 정적에 휩싸였다.
그리고...
"와아아!"
사람들이 환호했다.
"광복이다!"
"드디어!"
"만세!"
이산갑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눈물이 흘렀다.
"드디어... 드디어..."
강지윤도 울고 있었다.
"여보... 우리가 해냈어요..."
"그렇소... 우리가 해냈소..."
김만석이 큰 소리로 외쳤다.
"대한독립 만세!"
"만세!"
"만세!"
"만세!"
동굴 안에서, 백암산에서, 만세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계민은 산돌을 껴안았다.
"아제! 우리가 이겼어요!"
"그렇습니다, 조카님! 우리가 이겼습니다!"
두 청년은 울고 웃으며 서로를 껴안았다.
하인과 주인이 아니었다. 동지였다. 형제였다.
"어서 마을로 내려가자!"
"한도회 깃발을 꺼내라!"
사람들은 급히 짐을 챙겼다.
그리고 백암산을 내려갔다.
마을에는 이미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있었다.
"만세!"
"독립 만세!"
"대한독립 만세!"
한도회 회원들도 거리로 나왔다.
"한도회 만세!"
"이산갑 선생 만세!"
"강지윤 여사 만세!"
사람들이 환호했다.
읍사무소 앞에는 일장기가 내려지고 있었다.
일본인들은 황급히 짐을 싸서 떠나고 있었다.
"빨리 가자!"
"조선인들이 복수할지 몰라!"
하지만 한도회 회원들은 그들을 막아섰다.
"잠깐!"
이산갑이 나섰다.
"너희들을 그냥 보낼 수는 없다!"
일본인들이 겁에 질렸다.
"제발... 살려주세요..."
그때 다나카가 앞으로 나왔다.
"이산갑 선생님..."
"다나카..."
"저는... 저는 이 사람들과 달랐습니다. 저는 조선 사람들을 도왔습니다..."
이산갑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네, 다나카. 자네는 다르지."
"감사합니다..."
"하지만 다른 일본인들은..."
이산갑이 일본인들을 노려봤다.
일본인들이 떨었다.
그때 강지윤이 나섰다.
"여보."
"부인..."
"보내주세요."
"뭐라고?"
"우리가 원한 건 복수가 아니라 광복이었어요. 광복은 이뤘어요. 이제 복수할 필요 없어요."
이산갑은 아내를 봤다.
그녀의 등에는 아직 채찍 자국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는 원한이 아니라 평화가 담겨 있었다.
"...알겠소."
이산갑이 손을 내렸다.
"가거라. 하지만 두 번 다시 조선 땅을 밟지 마라."
일본인들은 황급히 떠났다.
다나카만 남아서 깊이 절했다.
"감사합니다, 이산갑 선생님. 강지윤 여사님."
"다나카, 자네는 좋은 사람이었네. 일본으로 돌아가서도 건강하게."
"선생님도... 새로운 조선을 잘 만드십시오..."
다나카도 눈물을 흘리며 떠났다.
광장에서는 사람들이 계속 만세를 불렀다.
"대한독립 만세!"
"만세!"
"만세!"
이산갑은 단상에 올랐다.
"동포 여러분!"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오늘, 우리는 광복을 맞았습니다!"
"만세!"
"하지만 이것은 끝이 아닙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모두가 평등한 나라, 여성도 존중받는 나라, 가난한 사람도 행복한 나라를!"
"만세!"
강지윤도 단상에 올랐다.
"여성 동포 여러분!"
백합회 회원들이 환호했다.
"우리는 일제에 맞서 싸웠습니다! 이제 우리도 목소리를 낼 때입니다!"
"그렇습니다!"
"새로운 조선에서 여성도 투표하고, 공부하고, 일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세!"
이계민과 산돌도 단상에 올랐다.
"젊은이 여러분!"
청년들이 환호했다.
"우리가 새로운 조선을 만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신분도 없고, 차별도 없고, 모두가 형제인 나라를!"
"만세!"
해가 저물었다.
하지만 마을에는 여전히 만세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산갑과 강지윤은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여보, 우리 해냈어요."
"그렇소. 우리가 해냈소."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야지. 한도회의 이상을 실현해야지."
"그렇네요. 할 일이 많네요."
"많지. 하지만 우리에게는 동지들이 있소. 한도회가 있소."
두 사람은 별이 빛나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긴 어둠이 끝나고, 새로운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에필로그
1945년 8월 16일 아침.
이계민은 일찍 일어나 마을을 걸었다.
거리에는 태극기가 걸려 있었다. 사람들이 숨겨뒀던 태극기를.
"도령님!"
산돌이 다가왔다.
"아제, 일찍 일어났네요."
"잠이 안 오더군요. 너무 기뻐서."
"저도요."
두 청년은 나란히 걸었다.
"아제, 앞으로 뭐 하고 싶어요?"
"글쎄요... 저는 배운 게 없어서..."
"공부하세요. 저도 공부할 거예요."
"제가... 공부를요?"
"왜요? 못 할 것 없잖아요. 이제는 누구나 공부할 수 있어요."
산돌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정말... 그런 세상이 올까요?"
"올 거예요. 아니, 우리가 만들 거예요."
이계민이 산돌의 어깨를 두드렸다.
"아제, 우리 함께 해요. 새로운 조선을."
"네... 조카님. 아니, 이제 조카님이 아니라 계민 아우라고 불러야겠네요."
"좋아요. 저도 산돌 형이라고 부를게요."
두 청년은 웃으며 악수했다.
해가 떠올랐다.
광복의 아침이었다.
한도회의 싸움은 끝났다.
하지만 새로운 나라를 만드는 싸움은 이제 시작이었다.
(끝)
후기:
1943년부터 1945년까지, 영광 지역에서 한도회(韓道會)는 일제에 맞서 끝까지 싸웠습니다.
이산갑과 강지윤 부부, 그들의 아들 이계민, 하인 출신 청년 산돌, 그리고 수많은 한도회 회원들...
그들은 정신대를 막았고, 징용을 피했고, 공출에 맞섰습니다.
때로는 희생을 치렀지만, 끝내 광복을 맞았습니다.
한도회의 정신은 해방 이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평등과 자유, 그리고 인간의 존엄을 위한 싸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기억합니다.
한도회 만세!
대한독립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