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치안대 (1945년 8월 ~ 1946년)
해방후 이계민은 한도회 동기들과 영광군의 치안을 위한 의용경찰단을 조직 활동을 하며
학업에 열심이었다.
혼돈의 시작
1945년 8월 17일, 영광읍.
해방의 환호가 채 가시기도 전에, 새로운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일본인들이 버리고 간 재산, 돌아오지 않는 치안, 권력의 공백...
광복은 왔지만, 혼란도 함께 왔다.
열여덟살 이계민은 그 혼란의 한가운데 서 있었다.
무너진 질서
"도둑이야!"
새벽 2시, 비명 소리에 이계민은 잠에서 깼다.
"뭐야?"
그는 벌떡 일어나 밖으로 뛰쳐나갔다.
골목 저편에서 세 명의 사내가 무언가를 짊어지고 달아나고 있었다.
"서!"
이계민이 외쳤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젠장!'
이계민은 달렸다. 한도회에서 단련된 다리는 빨랐다.
"잡았다!"
앞서가던 사내 하나를 붙잡았다.
"이놈아!"
사내가 주먹을 휘둘렀다. 이계민이 막았다.
"으악!"
격투가 벌어졌다. 하지만 이계민 혼자서는 세 명을 당할 수 없었다.
"계민아!"
그때 산돌이 달려왔다.
"아제!"
두 사람은 함께 도둑들과 싸웠다. 골목에 먼지가 일었다.
결국 도둑 한 명을 제압했다. 나머지는 도망갔다.
"이놈, 뭘 훔친 거야?"
산돌이 사내의 멱살을 잡았다.
"일본놈들이 버리고 간 쌀이요... 어차피 주인 없는 거..."
"주인 없는 게 아니야. 그건 우리 조선 사람들 거야!"
"하지만 누가 가져가는 건 마찬가지잖아요!"
이계민이 한숨을 쉬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일본인들이 버리고 간 재산은 엄청났다. 집, 가게, 창고, 논밭...
하지만 그것을 관리할 사람이 없었다. 경찰도, 관리도, 아무도 없었다.
"놓아줘요, 아제."
"하지만..."
"이번만이에요. 다음에 또 잡히면 용서 안 해요."
사내는 황급히 도망갔다.
산돌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계민 형님, 이래서야... 마을이 무법천지가 될 겁니다."
"알아요. 뭔가 해야 해요."
두 사람은 집으로 돌아왔다.
사랑방에는 이산갑이 아직 깨어 있었다.
"아버지, 아직 안 주무세요?"
"잠이 안 오는구나. 너희도 밖에 다녀왔구나."
"네, 도둑을 잡았어요. 하지만 놓아줬어요."
이산갑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다. 지금은 그럴 수밖에 없지."
"하지만 이대로는 안 돼요, 아버지. 매일 밤 도둑질이 일어나고, 싸움이 벌어지고... 누군가 나서야 해요."
"알고 있다. 나도 생각하고 있었다."
이산갑이 담뱃대를 물었다.
"한도회를 다시 소집해야겠구나."
다음 날 아침, 한도회 회원들이 이산갑의 집에 모였다.
김만석, 박서방, 최진사... 그리고 이계민, 산돌을 비롯한 젊은 회원들까지.
"동지 여러분, 우리가 광복은 맞았지만, 새로운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이산갑이 입을 열었다.
"치안이 무너졌습니다. 도둑질, 강도, 폭행... 매일 밤 사건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제도 우리 마을에서..."
한 회원이 보고했다.
"일본 경찰은 다 떠났고, 조선 경찰도 아직 조직이 안 됐습니다."
김만석이 말했다.
"미군정이 들어온다고는 하는데, 언제 올지 모릅니다."
"그때까지 우리가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이산갑이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가 직접 치안을 지켜야 합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의용경찰단을 만들겠습니다. 자발적으로 마을을 지키는 조직을요."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하지만 우리가 경찰 노릇을 해도 되는 겁니까?"
"공식적인 권한이 없는데..."
"권한은 마을 사람들이 주는 겁니다."
이산갑이 말했다.
"우리가 일제시대에 한도회를 만들어 마을을 지킨 것처럼, 이번에도 마을을 지킬 겁니다."
"찬성합니다!"
이계민이 일어났다.
"저도 의용경찰단에 참여하겠습니다."
"나도!"
산돌이 손을 들었다.
"우리 젊은이들이 앞장서겠습니다!"
한도회 청년 회원들이 하나둘 일어났다.
"좋아. 그럼 의용경찰단을 조직하자."
김만석이 물었다.
"단장은 누가 맡습니까?"
"젊은 사람이 맡아야지."
이산갑이 아들을 봤다.
"계민아, 네가 맡아라."
"저요? 아버지, 저는 너무 어려요."
"아니다. 너는 한도회에서 충분히 증명했다. 법성포 조창 작전도 네가 했고, 징용 피신도 네가 이끌었다."
"하지만..."
그때 이산갑의 친구 김영식이 나섰다.
"계민아, 네 아버지 말이 맞다. 너는 이제 어린애가 아니다."
이산갑의 아내 강지윤이 거들었다.
"우리가 도울게. 네가 단장을 맡아라."
산돌도 나섰다.
"조카님 제가 옆에서 돕겠습니다. 단장 하세요."
이계민은 주위를 둘러봤다. 모두가 자신을 믿는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맡겠습니다."
"좋아!"
"의용경찰단 만세!"
이렇게 영광군 의용경찰단이 탄생했다.
조직의 탄생
의용경찰단 조직은 빠르게 진행됐다.
이계민을 단장으로, 산돌이 부단장을 맡았다.
한도회 청년 회원 50명이 단원으로 참여했다.
"조카님 우리 완장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산돌이 제안했다.
"좋은 생각이에요. 완장이 있어야 권위가 서죠."
"어떻게 만들까요?"
"흰 천에 '의용경찰'이라고 써요. 그리고 태극 마크도 넣고요."
강지윤과 백합회 회원들이 완장을 만들어줬다.
"계민아, 이거 차고 다녀라."
"고맙습니다, 어머니."
이계민은 완장을 팔에 찼다. 가슴이 뿌듯했다.
"멋있는데요, 조카님."
산돌이 웃었다.
"아제도 차세요."
"네."
두 사람은 완장을 차고 거울을 봤다.
열일곱 살과 스무 살. 아직 어렸지만, 그들의 눈빛은 진지했다.
의용경찰단의 첫 회의가 열렸다.
"단원 여러분, 우리의 임무는 세 가지입니다."
이계민이 칠판에 적었다.
"첫째, 야간 순찰로 도둑과 강도를 막는다."
"둘째, 일본인 재산을 관리하고 보호한다."
"셋째, 마을의 분쟁을 조정한다."
"질문 있습니까?"
한 단원이 손을 들었다.
"단장님, 우리가 범죄자를 잡으면 어디다 가둡니까?"
"읍사무소 지하실을 임시 유치장으로 쓰기로 했습니다."
"재판은요?"
"마을 유지들이 모여서 간이재판을 합니다. 심각한 범죄는 나중에 정식 법원에 넘기고요."
"알겠습니다!"
순찰 조를 편성했다.
1조는 이계민과 산돌이 이끌고, 2조는 다른 청년이 맡았다. 3조, 4조, 5조...
총 5개 조로 나눠서 매일 밤 교대로 순찰하기로 했다.
"오늘 밤부터 시작합니다. 여러분, 준비됐습니까?"
"네!"
"좋습니다. 영광군 의용경찰단, 출동!"
그날 밤, 이계민과 산돌은 읍내를 순찰했다.
완장을 차고, 곤봉을 들고, 호루라기를 목에 걸고.
"형님, 떨리네요."
"저도요, 아제."
두 사람은 긴장하며 걸었다.
골목을 돌자, 수상한 그림자가 보였다.
"저기!"
"누구냐!"
사내 둘이 어느 집 담장을 넘고 있었다.
"의용경찰이다! 거기 서!"
이계민이 호루라기를 불었다.
"삐익!"
사내들이 놀라 달아났다.
"잡아요!"
이계민과 산돌이 뛰었다.
골목을 누비며 추격전이 벌어졌다.
"저리 가!"
산돌이 한 명을 태클로 넘어뜨렸다.
"으악!"
"잡았다!"
이계민도 다른 한 명을 붙잡았다.
"이놈들, 뭐 하려던 거야?"
"그냥... 빈 집에 뭐가 있나 보려고..."
"빈 집이 아니야. 주인이 피난 갔다 올 집이지."
"하지만 일본놈 집인데..."
"일본인 집도 함부로 못 건드려. 이제 우리나라 재산이야."
두 도둑을 읍사무소 지하실에 가뒀다.
"내일 아침에 재판받을 거야."
"제발 풀어주세요..."
"안 돼. 규칙은 규칙이야."
첫날 순찰은 성공이었다.
다음 날 아침, 간이재판이 열렸다.
김만석, 최진사, 박서방 등 마을 유지 다섯 명이 배심원이 됐다.
"피고인은 절도미수죄로 기소됐다. 할 말 있나?"
"죄송합니다... 다시는 안 하겠습니다..."
"이번이 처음이냐?"
"네, 맹세합니다!"
배심원들이 협의했다.
"초범이니 경고로 끝내고, 마을 봉사 일주일 선고한다."
"감사합니다!"
도둑들은 일주일간 마을 청소와 농사일을 도와야 했다.
소문이 퍼졌다.
"의용경찰단이 생겼대!"
"이산갑네 아들이 단장이래!"
"밤에 순찰 돈대!"
며칠 사이 야간 범죄가 확 줄었다.
사람들은 안심하고 잠을 잘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