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재판
정오, 영광 장터에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인민군과 빨치산이 강제로 동원한 것이었다. 참석하지 않으면 반동으로 몰릴 수 있었다.
단상이 세워져 있었다. 그 위에 이산갑 일가 열네 명이 끌려 나왔다.
손이 뒤로 묶여 있었고, 무릎을 꿇게 되었다.
이산갑, 그의 부인, 두 아들 이계민과 이의호, 동생 이산호와 이선호, 조카 이은주, 그리고 집안의 다른 친족들.
교장 강지윤도 함께 있었다. 이산갑과 함께 영산학원을 운영했다는 이유였다.
조순호가 마이크를 잡았다.
"인민 동무들! 오늘 우리는 반동 분자들을 심판할 것입니다!"
군중이 웅성거렸다. 대부분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이산갑 일가를 동정하는 눈빛이었지만, 감히 말하지 못했다.
"이산갑! 이 자는 대지주이자 부르주아입니다! 인민의 피를 빨아먹은 착취자입니다!"
조순호가 서류를 들어 올렸다.
"이 자는 수백 마지기의 땅을 소유하고, 수십 명의 머슴을 부렸습니다! 양반 계급의 특권을 누리며 인민을 억압했습니다!"
군중 중 일부가 야유했다. 인민위원회가 미리 심어둔 사람들이었다.
"반동을 처단하라!"
"인민의 적!"
하지만 대부분의 군중은 조용했다. 영광 사람들은 이산갑을 알고 있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한 노인이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이산갑 도련님이... 반동이라니..."
하지만 옆 사람이 그를 제지했다.
"쉿! 조용히 해. 우리도 끌려갈라."
조순호가 이계민을 가리켰다.
"이계민! 이 자는 의용경찰로 위장하여 우리를 감시했습니다! 반동의 스파이입니다!"
이계민이 소리쳤다.
"거짓말입니다! 나는 조국을 위해..."
병사가 그를 쳤다. 총개머리로 등을 내리쳤다.
이계민이 앞으로 쓰러졌다. 피가 입에서 흘렀다.
"계민아!" 이산갑이 외쳤다.
"아버지... 괜찮습니다..."
이계민이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묶인 손 때문에 균형을 잡을 수 없었다.
그때였다.
혼란의 순간, 이계민이 몸을 굴렸다. 단상 뒤쪽으로.
"저놈이 도망친다!"
"쏴라!"
총성이 울렸다.
탕!
이계민의 발뒷꿈치에 총알이 박혔다. 그는 비명을 지르며 단상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군중이 혼란에 빠졌다. 사람들이 이리저리 흩어졌다.
그 틈을 타서 강지윤이 움직였다. 그는 막내 이의호의 손을 잡았다.
"도련님! 지금입니다!"
강지윤이 이의호의 손을 재빨리 풀었다. 미리 품에 숨겨둔 작은 칼로.
"도망치십시오!"
"하지만 선생님..."
"빨리!"
강지윤이 이의호를 밀었다. 열여덟 살 소년은 군중 속으로 사라졌다.
병사들이 총을 쐈다. 하지만 군중이 너무 많아 맞추기 어려웠다.
"저놈들을 잡아라!"
"도망자를 잡아라!"
혼란이 계속되었다.
이계민은 피를 흘리며 기어갔다. 발이 아팠다. 너무 아팠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군중 틈으로, 골목으로, 집 사이로.
총알이 날아왔다. 담벼락에 박혔다.
이계민은 계속 기어갔다. 기어가고 또 기어갔다.
마을 끝에 작은 산이 있었다. 그곳으로 향했다.
발에서 피가 계속 흘렀다. 흔적을 남겼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산으로 올라갔다. 바위 사이로, 나무 사이로.
동굴이 보였다. 작은 동굴. 겨우 사람 한 명 들어갈 만한.
이계민은 그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어둠이었다. 차가웠다.
그는 발을 움켜쥐었다. 피가 계속 흘렀다.
'아버지... 어머니...'
눈물이 흘렀다.
'죄송합니다... 제가...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는 동굴 바닥에 쓰러졌다. 의식이 흐려졌다.
불갑산 암자
한편, 이의호와 강지윤은 영광을 빠져나갔다.
밤을 틈타 북쪽으로 달렸다. 불갑산 방향으로.
"선생님... 아버지는... 형님은..."
"말하지 마십시오. 지금은 살아남는 것이 중요합니다."
강지윤이 이의호를 끌었다. 열여덟 살 소년은 울고 있었다.
"제가... 제가 혼자만..."
"도련님! 정신 차리십시오! 이산갑 선생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도련님이 살아남는 것입니다!"
강지윤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도 울고 있었다.
새벽녘, 그들은 불갑산에 도착했다.
연실봉 부근에 작은 암자가 있었다. 폐사였다. 스님도 없었다.
"여기서 숨겠습니다."
두 사람은 암자 안으로 들어갔다.
먼지투성이였다. 오래 사람이 살지 않은 곳이었다.
이의호는 구석에 주저앉아 울었다.
"아버지... 어머니... 형님..."
강지윤도 벽에 기대 앉았다. 그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선생님... 괜찮으십니까?"
"...괜찮다. 너는?"
"저도... 괜찮습니다..."
두 사람은 거짓말을 했다. 둘 다 괜찮지 않았다.
밖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멀리서. 영광에서.
이의호가 벌떡 일어났다.
"저게..."
"앉아 있으십시오."
강지윤이 그를 붙잡았다.
"우리가 돌아가면... 함께 죽을 뿐입니다..."
이의호는 다시 주저앉았다.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강지윤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영광 방향으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선생님... 도련님들...'
그는 눈을 감았다.
학살
장터로 돌아가자.
혼란은 진압되었다. 병사들이 군중을 다시 통제했다.
단상에는 이제 열두 명만 남아 있었다.
이계민과 이의호, 강지윤이 없었다.
조순호가 분노했다.
"도망자를 찾아라! 반드시 찾아내라!"
병사들이 마을을 뒤졌다. 하지만 찾지 못했다.
조순호는 이산갑을 바라보았다.
"네 아들들이 도망쳤다."
이산갑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안도가 스쳤다.
'살았구나... 계민이와 의호가...'
조순호가 그것을 알아챘다.
"기뻐하는 거냐? 하지만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반드시 찾아낼 것이다!"
이산갑은 조용히 말했다.
"그들은... 아무 잘못도 없습니다. 제발... 그들만은..."
"닥쳐!"
조순호가 그를 발로 찼다.
이산갑이 쓰러졌다. 부인이 비명을 질렀다.
"여보!"
조순호가 마이크를 다시 잡았다.
"인민 동무들! 이것이 반동의 최후입니다! 이제 판결을 내리겠습니다!"
그는 군중을 바라보았다.
"이산갑 일가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침묵이 흘렀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조순호가 다시 외쳤다.
"대답하십시오! 이 반동들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여전히 침묵.
그러자 미리 준비된 사람들이 외쳤다.
"사형!"
"총살!"
"인민의 적을 처단하라!"
조순호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인민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이산갑 일가에게 사형을 선고합니다!"
이산갑의 부인이 울부짖었다.
"안 됩니다! 우리는... 우리는 아무 잘못도..."
병사가 그녀를 쳤다.
백호신은 단상 옆에 서 있었다.
조순호가 그를 불렀다.
"백호신 동무! 증언하십시오!"
백호신이 단상으로 올라갔다.
군중이 그를 바라보았다.
이산갑도 그를 올려다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이산갑은 여전히 백호신을 알아보지 못했다.
백호신은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이산갑은... 대지주입니다. 양반 계급의... 상징입니다..."
거짓말이었다. 백호신은 알고 있었다. 이산갑이 어떤 사람인지.
하지만 계속 말했다.
"그는... 인민을 착취했습니다... 부르주아의... 특권을..."
말이 막혔다.
이산갑이 조용히 말했다.
"당신은... 누구요?"
백호신은 대답하지 않았다.
"당신의 눈을...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백호신은 고개를 돌렸다. 마주보지 못했다.
조순호가 재촉했다.
"계속하십시오!"
백호신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말했다.
"사형... 사형이... 마땅합니다..."
조순호가 선언했다.
"즉각 집행한다! 여기서!"
"뭐라고요?" 백호신이 놀라 물었다.
"여기서 집행합니다! 인민들이 보는 앞에서!"
병사들이 이산갑 일가를 단상 앞에 세웠다.
열두 명.
이산갑, 그의 부인, 동생들, 조카, 친족들.
조순호가 명령했다.
"총살 집행조! 준비!"
병사들이 총을 들었다.
이산갑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우리는... 조선을 사랑했습니다... 그것만은... 진실입니다..."
그의 부인이 울었다.
"여보... 미안해요... 제가... 당신을..."
"괜찮소... 당신 잘못이 아니오..."
이산호가 형을 바라보았다.
"형님... 죄송합니다... 제가... 지키지 못했습니다..."
"아니다... 너는... 잘했다..."
이선호도 눈물을 흘렸다.
"형님들... 먼저 갑니다..."
조순호가 손을 들었다.
"사격!"
손이 내려오려는 순간.
군중 속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안 됩니다!"
한 노인이 뛰쳐나왔다.
"이산갑 도련님은... 좋은 분이십니다! 우리를... 도왔습니다!"
병사들이 그를 붙잡았다.
"이놈도 반동이다!"
"같이 죽여라!"
노인을 끌고 가려 할 때, 다른 사람들도 나섰다.
"그 말이 맞습니다!"
"이산갑 선생님은... 독립운동을 도왔습니다!"
"영산학원을... 우리 아이들을..."
군중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조순호가 당황했다.
"조용히 해! 모두 조용히!"
하지만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이산갑 선생님을 살려주십시오!"
조순호가 분노했다.
"모두 반동이다! 모두 체포하라!"
병사들이 총을 군중에게 겨눴다.
군중이 멈췄다. 두려움에.
조순호가 다시 명령했다.
"사격!"
총성이 울렸다.
하지만 총알이 아니었다.
군중이 던진 돌이었다.
"반동은 너희들이다!"
"인민의 적!"
돌이 단상으로 날아왔다.
조순호가 맞았다. 이마에서 피가 흘렀다.
"이놈들이...! 발포하라! 군중에게 발포하라!"
병사들이 총을 쐈다.
탕! 탕! 탕!
군중이 쓰러졌다. 비명이 터졌다.
혼란이 극에 달했다.
사람들이 도망쳤다. 서로를 밀쳤다. 넘어졌다. 밟혔다.
조순호가 소리쳤다.
"이산갑 일가를 죽여라! 지금 당장!"
병사들이 총을 이산갑 일가에게 겨눴다.
하지만 조순호가 멈췄다.
"아니다. 총알은 아깝다."
그는 병사들에게 다른 명령을 내렸다.
"군중에게 죽창을 나눠줘라."
"...네?"
"이놈들을 직접 죽이게 하는 거다. 그래야 인민재판이지."
병사들이 군중에게 죽창을 나눠줬다. 대나무 창이었다.
"이 반동들을 죽여라! 인민의 이름으로!"
하지만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조순호가 분노했다.
"누구든 먼저 찌르는 자에게 쌀 한 가마를 주겠다!"
잠시 침묵.
그리고 한 사내가 나섰다. 굶주린 얼굴이었다.
그는 죽창을 들고 이산갑에게 다가갔다.
이산갑은 그를 바라보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소... 당신도... 살아야 하니까..."
사내가 울었다. 하지만 죽창을 찔렀다.
이산갑의 배에.
피가 흘렀다.
이산갑이 무릎을 꿇었다.
"여보!"
부인이 비명을 질렀다.
또 다른 사람이 나섰다. 죽창을 들고.
한 명, 두 명, 세 명.
굶주림이 양심을 이겼다.
죽창이 찔렸다. 열두 명에게.
이산갑, 부인, 동생들, 조카들.
비명. 피. 죽음.
백호신은 그 광경을 보았다.
움직일 수 없었다. 말할 수 없었다. 숨도 쉴 수 없었다.
'내가... 무엇을... 한 것인가...'
이산갑이 쓰러졌다. 피 웅덩이 속에서.
그의 눈은 아직 떠 있었다.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백호신과 눈이 마주쳤다.
이산갑의 입이 움직였다.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백호신은 읽을 수 있었다.
"용서... 하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이산갑, 죽었다.
학살의 끝
열두 구의 시신이 단상 앞에 널려 있었다.
피가 바닥에 흘렀다. 붉은 피가.
군중은 침묵했다. 충격에 빠져 있었다.
죽창을 든 사람들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손에 피가 묻어 있었다.
한 사람이 죽창을 떨어뜨렸다. 바닥에 철컥 소리를 내며.
"내가... 무슨 짓을..."
다른 사람도 죽창을 던졌다.
"하느님... 용서하소서..."
조순호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좋다! 이것이 인민재판이다! 인민이 직접 정의를 실현한 것이다!"
하지만 군중은 환호하지 않았다.
그들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죄책감에, 수치심에.
조순호가 명령했다.
"시신을 처리하라. 공동묘지에 묻어라. 이름도 비석도 없이."
병사들이 시신을 수레에 실었다.
백호신은 여전히 단상 옆에 서 있었다.
이산갑의 피가 그의 발밑까지 흘러왔다.
그는 그것을 보았다.
붉은 피.
혁명의 색이라고 했던.
하지만 이제는 그저... 피였다.
사람의 피.
백호신은 무릎을 꿇었다.
토할 것 같았다. 온몸이 떨렸다.
'내가... 죽였다... 내가... 이 사람들을...'
조순호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잘했습니다, 백호신 동무. 당신은 진정한 혁명가입니다."
백호신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바닥을 바라보았다.
피가 흐르고 있었다.
계속 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