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가을 영광
1951년 가을 영광
이산갑 댁
김민화는 영광의 이산갑 댁에서 지내고 있었다.
학살의 현장이었던 그 집.
하지만 이제는 민화의 집이었다.
국군이 다시 영광을 되찾은 후, 남진국과 한선단이 집을 수리했다.
"도련님 댁을 그냥 둘 수 없습니다."
피로 얼룩진 마루를 닦았다. 부서진 문을 고쳤다. 깨진 유리창을 바꿨다.
그리고 민화와 의호를 모셨다.
"형수님, 여기서 지내십시오. 도련님 댁입니다."
민화는 처음에 망설였다.
"하지만... 여기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래서입니다."
남진국이 말했다.
"이 집에 다시 생명이 깃들어야 합니다. 웃음이 울려야 합니다. 그것이 이산갑 선생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민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영광은 비교적 평화로웠다.
전선이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영광은 후방이 되었다. 전쟁의 직접적인 영향은 적었다.
물론 완전히 평화로운 것은 아니었다. 징집이 있었고, 물자 부족이 있었고, 전사자 소식이 들려왔다.
하지만 총성은 들리지 않았다. 폭격도 없었다.
민화는 이산갑 댁의 안채에서 지냈다.
넓고, 따뜻하고, 안전했다.
의호는 사랑채에서 지냈다.
"형수님, 불편한 거 없으세요?"
"없어. 고마워, 의호야."
배는 점점 불러왔다. 일곱 달, 여덟 달.
마을 사람들이 도왔다.
"도련님 댁 며느리시니 우리가 돌봐야지."
"아기 낳으실 때 산파를 불러드릴게요."
"밥은 제대로 드세요. 애기 위해서라도."
민화는 감사했다.
'시아버님께서 이 마을에 얼마나 좋은 분이셨는지...'
정원에는 동백나무가 있었다. 이산갑이 심었던.
민화는 자주 그 나무 아래 앉았다.
배를 쓰다듬으며.
"아가야, 할아버지가 심으신 나무야. 네가 태어나면 이 나무 아래서 놀 수 있을 거야."
1951년 9월 17일 추석이 지난 이틀후
진통이 시작되었다.
새벽 세 시였다.
"으윽..."
민화가 신음했다.
의호가 깨어났다.
"형수님!"
"의호야... 아기가... 나올 것 같아..."
"지금요? 제가 산파를..."
"응... 빨리..."
의호가 뛰어나갔다.
마을의 산파 박 할머니를 데려왔다.
"벌써 진통이 왔구먼."
박 할머니는 영광에서 수십 년 산파 일을 해온 노련한 분이었다.
"많이 아프지?"
"예... 할머니..."
"참아. 첫애는 원래 오래 걸려."
남진국의 아내도 왔다. 한선단 대원의 부인들도 왔다.
"우리가 돕겠습니다."
이산갑 댁 안채는 여인들로 가득 찼다.
뜨거운 물을 끓이고, 수건을 준비하고, 민화를 돌봤다.
진통은 여섯 시간 계속되었다.
민화는 땀으로 흠뻑 젖었다. 비명을 지르고, 울고, 이를 악물었다.
"으아아악!"
"힘줘! 머리가 나왔어!"
오전 아홉 시.
아기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응애! 응애!"
이산갑 댁에 울려 퍼지는 새 생명의 소리.
"아들이야! 건강한 아들!"
박 할머니가 아기를 안았다.
밖에서 기다리던 의호가 환호했다.
"형님! 형님이 아버지 되셨어요!"
남진국도 눈물을 닦았다.
"도련님... 대를 이으셨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축하합니다!"
"이산갑 선생님 댁에 경사네!"
"아드님이라니!"
민화는 기진맥진했지만 미소 지었다.
아기가 그녀의 품에 안겼다.
"계민 씨... 우리 아들이에요..."
아기는 건강했다. 크게 울었다.
이산갑 댁에 일 년 만에 웃음이 돌아왔다.
이름
일주일 후, 민화는 이계민에게 편지를 보냈다.
"계민 씨, 아들을 낳았어요! 9월 15일, 건강한 아들입니다.
시아버님 댁에서 무사히 출산했어요. 마을 분들이 많이 도와주셨어요.
아기는 정말 건강해요. 크게 울고, 잘 먹고, 잘 자요.
이름을 지어주세요. 아버지가 지어주셔야 해요.
보고 싶어요. 빨리 와서 우리 아들을 안아주세요."
이계민은 대구 TMO에서 그 편지를 받았다.
손이 떨렸다.
"아들... 내 아들... 아버지 댁에서..."
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아버지 이산갑이 학살당한 그 집에서, 새 생명이 태어났다.
'아버지... 이것이... 아버지께서 원하시던 것이겠죠...'
그는 며칠 밤을 고민했다.
'무슨 이름을 지어야 할까...'
아버지가 떠올랐다. 아버지는 이름에 의미를 담는 분이었다.
'나라를 위한 이름... 승리의 이름... 희망의 이름...'
그는 답장을 썼다.
"민화, 축하합니다. 우리 아들을 낳아줘서 고맙습니다.
아버지 댁에서 낳았다니...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것 같습니다.
이름은 승국(承國)이라고 짓고 싶습니다.
나라를 이어받는다는 뜻입니다. 할아버지께서 조국을 위해 돌아가셨으니, 이 아이는 그 뜻을 이어받아야 합니다.
아버지 댁에서 태어난 첫 손자. 이산갑 가문의 대를 잇는 아이.
빨리 보고 싶습니다. 우리 승국이를.
사랑합니다."
민화는 편지를 읽고 울었다.
"승국이... 이승국... 좋은 이름이야..."
그녀는 아기를 안았다.
"승국아, 네 이름이야. 할아버지의 뜻을 이어받는 아이. 이 집을, 이 가문을 이어갈 아이."
아기는 방긋 웃는 것 같았다.
남진국이 찾아왔다.
"이름을 지으셨습니까?"
"예. 승국이래요. 이승국."
남진국은 그 이름을 되뇌었다.
"승국... 나라를 이어받는다... 도련님다운 이름입니다."
그는 아기를 보며 절했다.
"도련님, 잘 자라십시오. 이산갑 선생님의 뜻을 이어받으시길."
이계민의 과로
1951년 가을, 전황은 교착 상태였다.
38선 근처에서 전선이 고착되었다. 휴전 협상이 시작되었지만 진전이 없었다.
TMO의 업무는 계속 늘었다.
물자 수송, 병력 이동, 보급품 관리.
이계민은 쉴 틈이 없었다.
아침 여섯 시부터 밤 열두 시까지 일했다.
"이 중사, 좀 쉬어야 합니다."
"괜찮습니다."
"사흘째 제대로 못 주무셨습니다."
"일이 밀려 있습니다."
동료들은 걱정했다.
"아들이 태어났다면서요? 가보셔야죠."
"지금은 갈 수 없습니다. 전쟁이..."
"전쟁은 끝이 없습니다. 이러다 쓰러지십니다."
하지만 이계민은 멈추지 않았다.
아들이 태어났다는 기쁨보다 책임감이 더 컸다.
'먹여 살려야 한다. 지켜야 한다. 아버지 댁을 다시 일으켜야 한다.'
그는 더 열심히 일했다.
밤에는 편지를 썼다.
"승국아, 아빠야. 아직 못 봤지만... 보고 싶구나.
민화, 고생이 많지? 아버지 댁에서 아이를 키운다니... 고맙고 미안해.
의호야, 형수님과 조카 잘 부탁한다."
하지만 몸은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11월, 쓰러지다
11월 초, 이계민은 업무 중 쓰러졌다.
"중사님!"
동료들이 달려왔다.
"의무실로!"
그는 의식을 잃었다.
군 병원으로 옮겨졌다.
의사가 진찰했다.
"과로입니다. 극심한. 그리고..."
의사가 차트를 보았다.
"영양실조도 있습니다. 제대로 먹지 않으셨군요."
"환자가 깨어나면 최소 한 달은 입원해야 합니다."
이계민은 이틀 후 깨어났다.
"여기는..."
"군 병원입니다. 과로로 쓰러지셨습니다."
간호사가 설명했다.
"한 달 입원하셔야 합니다."
"안 됩니다. 일이..."
"명령입니다."
이계민은 절망했다.
'한 달... 그 시간에 영광에 갈 수도 있었는데...'
여의사 한선화
다음 날, 담당 의사가 바뀌었다.
여의사였다.
서른 살쯤 되어 보였다. 단정하고, 지적인 인상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한선화 대위입니다. 앞으로 제가 담당하겠습니다."
"이계민 중사입니다."
한선화는 차트를 보았다.
"과로, 영양실조, 수면 부족. 심각하군요."
"괜찮습니다. 곧 나을 겁니다."
"아닙니다.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만성이 됩니다."
한선화가 그를 바라보았다.
"왜 이렇게까지 일하셨습니까?"
"..."
"가족이 있습니까?"
이계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내와... 아들이... 영광에..."
"영광이요? 피난 안 가셨습니까?"
"영광은... 비교적 안전합니다. 아내가 시댁에서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렇군요."
한선화가 미소 지었다.
"그렇다면 더욱 건강해야죠. 가족을 위해서."
한선화의 목소리는 단호하지만 따뜻했다.
"제대로 먹고, 자고, 쉬셔야 합니다. 그래야 오래 살아서 가족을 지킬 수 있습니다."
이계민은 할 말이 없었다.
한선화가 처방전을 썼다.
"영양제, 수면제, 그리고 완전한 휴식."
"감사합니다, 대위님."
"천만에요. 환자를 돌보는 게 제 일이니까요."
그녀가 나가려 할 때, 이계민이 물었다.
"대위님은... 군의관이 되신 지 오래 되셨습니까?"
"이 년 됐습니다. 전쟁 시작하고 곧바로 입대했죠."
"왜... 군의관이 되셨습니까?"
한선화가 잠시 멈췄다.
"가족을 잃었습니다. 전쟁에서.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지키고 싶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이제는 익숙해졌어요."
하지만 그녀의 눈에는 슬픔이 어려 있었다.
대화
일주일 후, 이계민은 많이 회복되었다.
제대로 먹고, 자고, 쉰 덕분이었다.
한선화는 매일 회진을 왔다.
"상태가 많이 나아졌네요."
"대위님 덕분입니다."
"아닙니다. 환자분이 잘 따라주신 덕분이죠."
어느 날, 한선화가 물었다.
"아드님 이름이 뭡니까?"
"승국입니다. 이승국."
"좋은 이름이네요. 나라를 이어받는다..."
"아버지가... 나라를 위해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이계민의 목소리가 떨렸다.
한선화는 알아챘다.
"혹시... 학살당하셨습니까?"
"...예. 인민재판에서. 영광에서."
한선화가 숨을 들이켰다.
"영광... 이산갑 선생님 사건 말씀이십니까?"
이계민이 놀라 그녀를 보았다.
"아십니까?"
"예. 신문에 났었습니다. 독립운동가 이산갑 선생과 그 가족 열두 분이... 인민재판으로..."
한선화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렇다면 환자분은..."
"이산갑의 장남입니다. 이계민."
한선화는 깊이 절했다.
"죄송합니다. 몰라뵙고..."
"아닙니다. 일어나십시오."
"이산갑 선생님은... 위대한 분이셨습니다. 제 아버지도 선생님을 존경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두 사람은 침묵했다.
공통의 아픔이 있었다.
"저도... 비슷합니다." 한선화가 말했다.
"제 오빠가... 의용군에 끌려갔습니다. 그리고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우리 세대는... 모두 상처가 있죠."
한선화가 창밖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살아야죠. 살아서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을. 그리고..."
그녀가 이계민을 바라보았다.
"다음 세대를 위해. 승국이 같은 아이들을 위해."
이계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래서 제가... 일을 너무 무리하게 한 것 같습니다."
"이해합니다. 하지만 방법이 잘못됐어요."
한선화가 미소 지었다.
"마라톤이에요, 이 중사님. 전쟁도, 인생도. 단거리가 아니라 마라톤입니다."
"...그렇군요."
"천천히, 꾸준히 가야 합니다. 그래야 끝까지 갈 수 있어요. 승국이가 자라는 걸 보려면, 아버님의 뜻을 이어가려면."
이계민은 그 말을 새겼다.
퇴원
한 달 후, 이계민은 퇴원했다.
한선화가 마지막 검진을 했다.
"완전히 회복되셨습니다. 하지만..."
"예?"
"무리하지 마세요. 약속하세요."
"약속합니다."
이계민이 손을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대위님. 목숨을 구해주셨습니다."
한선화가 악수했다.
"천만에요. 부디 건강하세요. 그리고 가족을 만나세요."
"그러겠습니다."
이계민이 문을 나서려 할 때, 한선화가 불렀다
.
"이 중사님."
"예?"
"승국이에게... 좋은 아버지 되세요. 그리고 이산갑 선생님의 뜻을... 잘 이어가세요."
이계민은 깊이 절했다.
"명심하겠습니다. 대위님도 건강하십시오."
한선화가 미소 지었다.
"행운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