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 (336)

전쟁터에서의 새 출발 (1950년 12월)

by 이 범

전쟁터에서의 새 출발 (1950년 12월)
대전 TMO
이계민은 대전 TMO(Transportation Movement Office, 수송관리소)에 배치되었다.


군 입대 후 그의 경력과 교육 수준을 인정받아 헌병으로 선발되었고, 영어 능력까지 뛰어나 미군과의 연락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발의 부상 때문에 전투병은 될 수 없었지만, 이 일은 그에게 잘 맞았다.


TMO는 군수물자와 병력 수송을 관리하는 중요한 곳이었다. 특히 전황이 급변하는 지금, 그 역할은 더욱 중요했다.
이계민은 헌병 제복을 말끔하게 차려입고 근무했다. 키가 크고 자세가 바른 그는 제복이 잘 어울렸다.


"이 중사님, 미군 대령님이 찾으십니다."
"알겠습니다."
이계민은 유창한 영어로 미군 장교들과 대화했다. 아버지 이산갑이 가르쳐준 영어였다.
"Your English is excellent, Sergeant Lee."
"Thank you, sir."
미군 장교들은 그를 신뢰했다. 정확하고, 예의 바르고, 효율적이었다.


하지만 이계민의 마음속에는 항상 불안이 있었다.
민화.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
임신 소식
결혼 두 달 후, 김민화는 편지를 보냈다.
"계민 씨, 좋은 소식이 있어요. 저... 임신했어요."
이계민은 편지를 읽고 얼어붙었다.
기쁨과 두려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아이... 내 아이...'
기쁨이었다. 새로운 생명. 새로운 가족.
하지만 동시에 두려웠다.
'전쟁 중인데... 내가 지킬 수 있을까...'
그는 즉시 답장을 썼다.


"민화, 축하합니다. 아니, 우리를 축하합니다. 하지만 걱정도 됩니다. 지금 전황이 좋지 않습니다. 부디 몸조리 잘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십시오. 사랑합니다."
하지만 그 편지가 민화에게 도착하기 전에 상황은 급변했다.
중공군의 개입


1950년 10월 하순,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중공군 개입!"
"수십만 명이 압록강을 넘어왔다!"
TMO는 혼란에 빠졌다.
"북진하던 부대들을 철수시켜야 합니다!"
"물자를 후방으로 이동!"
이계민도 쉴 틈이 없었다. 하루에 몇 시간씩만 자고 일했다.


수송 계획을 짜고, 미군과 조율하고, 철수 명령을 전달했다.
11월, 전선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국군 2군단 궤멸!"
"미 해병 1사단 포위!"
뉴스는 매일 악화되었다.
이계민은 지도를 보며 절망했다.


'이러다가... 다시 서울을 잃는 것 아닌가...'
민화는 서울 근처에 있었다. 이의호와 함께.
'민화... 의호...'
12월의 절망
12월이 되자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중공군의 제2차 공세가 시작되었다.


"평양 함락!"
"38선 돌파!"
국군과 유엔군은 전면 후퇴했다.
흥남에서는 대규모 철수 작전이 진행되었다. 10만 명이 넘는 병력과 피난민이 배에 실렸다.
TMO는 그 병력과 물자를 남쪽으로 수송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이계민은 밤낮없이 일했다. 수송 열차 스케줄을 짜고, 물자를 분류하고, 피난민을 태웠다.
"이 중사님, 좀 쉬셔야 합니다. 사흘째 안 주무셨습니다."
"괜찮습니다. 일이 급합니다."
하지만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어지러웠다.

눈앞이 흐려졌다.
"중사님!"
동료가 그를 붙잡았다.
"쓰러지시겠습니다!"
"아니... 괜찮... 습니다..."
이계민은 결국 쓰러졌다.
야전병원
눈을 떴을 때 야전병원이었다.


"깨어나셨습니까?"
군의관이 그를 내려다보았다.
"과로입니다. 며칠은 쉬셔야 합니다."
"안 됩니다. 일이..."
"명령입니다. 일주일 휴가."
이계민은 항의하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군의관이 말했다.


"가족이 있습니까?"
"예... 아내가...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그렇다면 더욱 쉬셔야 합니다. 당신이 쓰러지면 그들은 어떻게 합니까?"
이계민은 할 말이 없었다.


"지금 어디 계십니까?"
"서울 근처... 아마..."
의관의 얼굴이 굳었다.
"서울은... 곧 위험해질 겁니다. 피난시키셔야 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이계민은 천장을 바라보았다.


'민화... 어떻게 해야 하지...'
민화의 편지
이틀 후, 편지가 도착했다.
민화의 편지였다.
"계민 씨,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괜찮아요. 아기도 건강해요. 배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어요. 신기해요.
의호가 잘 돌봐주고 있어요. 용님 언니도 자주 와서 도와줘요.


하지만 요즘 소식이 좋지 않아요. 사람들이 다시 피난 준비를 하고 있어요. 중공군이 내려온다고...
계민 씨,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남쪽으로 가야 할까요?
당신이 옆에 있었으면 좋겠어요. 무섭지는 않지만... 외로워요.
부디 건강하세요. 우리 아기 아빠."
이계민은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손이 떨렸다.
'피난... 그래, 피난을 가야 한다...'
그는 즉시 답장을 썼다.
"민화, 즉시 남쪽으로 피난 가십시오. 의호와 함께. 부산으로 가십시오. 거기가 가장 안전합니다.
돈은 제 월급에서 보낼 테니 걱정 마십시오.

용님에게도 연락하십시오.
무엇보다 당신과 아기의 안전이 중요합니다. 제발, 지체하지 마십시오.
저도 곧 휴가를 얻어 갈 수 있을지 노력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우리 아기 엄마."
하지만 그 편지가 도착하기 전에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혹한의 겨울
12월 중순, 기온이 급강하했다.
영하 30도를 넘나드는 혹한이었다.
대전 TMO에도 난방이 제대로 안 되었다. 병사들은 떨며 근무했다.


"추워 죽겠습니다..."
"참아라. 전선의 동료들은 더 춥다."
실제로 전선에서는 동상 환자가 속출했다. 손가락, 발가락이 얼어 잘려나갔다.
피난민들의 상황은 더 참혹했다.


기차역마다 피난민이 넘쳐났다. 노인, 여자, 아이들.
"부산 가는 기차 언제 와요?"
"모릅니다. 군용 물자가 우선입니다."
"제발... 우리 아이가... 얼어 죽겠어요..."
이계민은 그들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
'민화도... 저 사람들처럼 되는 건 아닐까...'
그는 상관에게 청원했다.


"대위님, 제 아내를 피난시켜야 합니다. 임신 중입니다."
"이 중사, 지금 네 아내만 문제가 아니야. 수만 명이 피난 가야 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규정대로 해. 민간인 피난 열차에 태워."
"언제 출발합니까?"
"모르겠어. 군용 수송이 우선이야."
이계민은 절망했다.


크리스마스 전야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하지만 축제 분위기는 전혀 없었다.
서울은 다시 함락 위기였다. 정부는 부산으로 완전히 옮겼다.
TMO에는 긴급 명령이 내려왔다.


"1월 3일까지 모든 중요 물자를 부산으로 이동!"
"대전도 곧 철수할 수 있다!"
이계민은 더욱 바빠졌다.
하지만 그날 저녁, 기적이 일어났다.
문이 열리고 한 여성이 들어왔다.
김민화였다.
이계민은 믿을 수 없었다.
"민화?!"
"계민 씨!"
두 사람이 껴안았다.


민화의 배가 불러 있었다. 다섯 달.
"어떻게... 여기까지..."
"편지를 받았어요. 당장 피난 가라고... 그래서 왔어요. 당신을 보러."
"미쳤어! 지금 전쟁터야!"
"알아요. 하지만 당신을 봐야 했어요. 혼자 피난 갈 수 없어요."
민화가 울었다.


"무서워요... 당신 없이..."
이계민은 그녀를 꼭 안았다.
"미안해... 내가... 지켜주지 못해서..."
"아니에요. 당신은 나라를 지키고 있어요."
민화가 그의 얼굴을 만졌다.


"많이 야위셨어요."
"당신도."
두 사람은 웃고 울었다.
주변 동료들이 훔쳐보며 미소 지었다.
"저 둘 신혼부부래."
"부인이 임신 중이고."
"참 안됐다..."
이계민의 상관이 다가왔다.


"이 중사."
"예, 대위님."
"오늘밤은 쉬어. 내일 아침 부산행 열차가 있어. 부인을 태워."
"감사합니다!"
이계민은 깊이 절했다.
마지막 밤


TMO 구석의 작은 방이 두 사람에게 주어졌다.
난로 하나. 담요 두 장.
하지만 두 사람에게는 충분했다.
이계민이 민화의 배를 만졌다.
"아기가... 여기 있구나..."
"느껴져요? 가끔 움직여요."
"정말?"
순간, 배 안에서 무언가 움직였다.
이계민의 눈이 커졌다.


"지금... 지금 움직였어!"
"그죠? 우리 아기예요."
두 사람은 웃었다. 눈물을 흘리며.
"민화, 미안해. 이런 때에 아이를..."
"아니에요. 축복이에요."
민화가 그의 손을 꼭 쥐었다.


"이 아이는 희망이에요. 새로운 시작. 전쟁이 끝나면... 우리 셋이서 행복하게 살 거예요."
"그래... 그렇게 될 거야..."
이계민이 그녀를 안았다.
"사랑해, 민화."
"저도 사랑해요, 계민 씨."
밖에서 눈이 내렸다.
하얀 눈이 세상을 덮었다.


포성도, 비명도 잠시 멈춘 것 같았다.
그저 고요했다.
두 사람은 서로를 꼭 안고 있었다.
내일이면 헤어져야 했다.
언제 다시 만날지 몰랐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함께였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아침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아침.
부산행 열차가 준비되었다.
피난민들이 플랫폼에 가득했다. 수백 명.
이계민은 민화와 의호를 열차에 태웠다.
의호가 형의 손을 잡았다.


"형님, 조심하세요."
"너도. 형수님 잘 모셔드려라."
"물론이죠."
민화는 울지 않으려 애썼다. 하지만 눈물이 흘렀다.
"계민 씨... 꼭... 꼭 살아서..."
"약속했잖아. 돌아간다고."
이계민이 그녀의 배를 마지막으로 만졌다.


"우리 아기, 잘 키워. 아빠가 곧 갈게."
"빨리 와요..."
기적이 울렸다.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계민은 손을 흔들었다.
민화도 창밖으로 손을 흔들었다.
열차가 점점 멀어졌다.
작아졌다.
사라졌다.


이계민은 오래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눈이 계속 내렸다.
차가운 눈.
하지만 그의 가슴은 따뜻했다.
민화와 아기가 있었다.


살아야 할 이유가.
돌아가야 할 곳이.
"이 중사! 업무 복귀!"
"예!"
이계민은 돌아섰다.
다시 TMO로.
다시 전쟁으로.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그에게는 지켜야 할 것이 있었다.
가족.
미래.
희망.
1951년 1월 3일
서울이 다시 함락되었다.



1·4 후퇴.
대전도 위험해졌다.
"대전 철수 준비!"
TMO도 남쪽으로 이동해야 했다.
이계민은 마지막 물자를 싣고 있었다.
"중사님, 편지 왔습니다!"
민화의 편지였다.



"계민 씨, 부산에 무사히 도착했어요. 의호와 함께 작은 방을 얻었어요. 춥지만 괜찮아요.
아기는 건강해요. 매일 자라고 있어요.
당신이 보고 싶어요. 빨리 전쟁이 끝나기를...
사랑해요. 꼭 살아서 돌아와요."
이계민은 편지를 가슴에 품었다.


"그래... 살아야지... 반드시..."
포성이 들렸다.
가까워지고 있었다.
"출발합니다!"
이계민은 마지막 트럭에 올랐다.
대전을 떠났다.
남쪽으로.
부산으로.
민화가 있는 곳으로.
하지만 아직은 갈 수 없었다.
전쟁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이계민도 계속 싸워야 했다.
가족을 위해.
나라를 위해.
미래를 위해.
눈은 계속 내렸다.
혹독한 겨울이었다.
하지만 봄은 올 것이었다.
반드시.

월, 화, 수,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