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과의 씨름
2076년 12월 31일, 밤 11시.
선우민준은 혼자 평창 새벽터에 있었다.
85세. 한 해의 마지막 밤.
가족들은 모두 서울 본가에서 새해 파티를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민준은 혼자 이곳에 오고 싶었다.
"올해를 이곳에서 마무리하고 싶어요." 레이코에게 말했었다.
"혼자요?"
"네. 하느님과 단둘이 있고 싶어요."
차가운 겨울밤. 눈이 내리고 있었다.
민준은 두꺼운 코트를 입고 바위 앞에 섰다.
"하느님, 저는 왔습니다."
50년 전, 처음 이곳에 왔을 때가 떠올랐다.
35세의 젊은이. 형에게 밀려 일본으로 떠나기 전.
"그때부터 50년이 흘렀네요."
민준은 바위를 쓰다듬었다.
"저는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 두 아내, 일곱 자녀, 엄청난 재산, 성공..."
하지만 마음 한편이 공허했다.
"그런데 왜일까요? 왜 저는 여전히... 불완전하다고 느낄까요?"
바람이 불었다.
"하느님, 제게 아직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민준은 무릎을 꿇었다.
"제 삶을 돌아봅니다. 저는 야곱처럼 살았습니다."
"형을 속이지는 않았지만, 경쟁했습니다."
"라반의 집에서처럼 타국에서 일했습니다."
"정직하게 재산을 모았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형과 화해했습니다."
"하지만 야곱의 이야기에는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민준은 성경 구절을 떠올렸다.
야곱이 얍복 강가에서 혼자 남았을 때.
어떤 이가 나타나 동이 틀 때까지 씨름했다.
"저도... 씨름해야 합니까? 하느님과?"
자정이 되었다.
2077년 1월 1일.
민준은 여전히 새벽터에 있었다.
갑자기 바람이 거세졌다. 눈보라가 몰아쳤다.
민준은 바위에 등을 기댔다.
"하느님, 저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제가 무엇을 더 해야 합니까?"
"제가 무엇이 부족합니까?"
침묵.
"대답해주십시오!"
여전히 침묵.
민준은 일어섰다. 분노가 치밀었다.
"50년간 당신을 따랐습니다! 정직하게 살았습니다! 십일조도 드렸습니다! 아니, 절반을 드렸습니다!"
바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당신은 침묵하십니까?"
민준은 바위를 밀었다. 당연히 바위는 움직이지 않았다.
"왜입니까? 제가 무엇을 더 원하십니까?"
그때,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민준의 마음속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자신의 목소리 같으면서도, 다른 목소리.
"민준아,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이냐?"
"저는... 평화를 원합니다."
"거짓말이다. 네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이냐?"
민준은 숨을 멈췄다.
자신의 마음 깊은 곳을 들여다봤다.
"저는... 인정받고 싶습니다."
"누구에게?"
"당신께."
"왜?"
"제가...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서요."
"그래서?"
"그래서 평생 열심히 살았습니다. 성공했습니다. 돈도 벌었습니다. 선행도 했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민준아, 너는 여전히 야곱이다."
"무슨 말씀입니까?"
"'발꿈치를 잡은 자.' 경쟁자. 남보다 앞서려는 자."
민준의 가슴이 찔렸다.
"너는 성공으로 네 가치를 증명하려 했다. 하지만 그것은 끝이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와 씨름해라."
민준은 바위 앞에서 씨름을 시작했다.
물리적인 씨름이 아니었다.
영적인 씨름이었다.
자신과의, 하느님과의.
"하느님, 저는 인정받고 싶습니다!"
'왜 인정이 필요하냐?'
"제가 가치 있다는 것을 알고 싶어서요!"
'너는 이미 가치 있다.'
"아니요! 제가 뭔가를 해야 가치 있습니다!"
'그것이 네 문제다.'
민준은 무릎을 꿇었다. 울기 시작했다.
"저는... 평생 증명하려고 했습니다."
"아버지께, 형님께, 세상에게, 그리고 당신께."
"'나는 가치 있다. 나는 필요한 사람이다. 나는 중요하다.'"
'하지만 네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너는 가치 있다.'
"믿을 수 없습니다!"
'왜?'
"제가... 제가 아무것도 안 하면, 저는 쓸모없어요!"
'그것이 네 상처다.'
민준은 바닥에 엎드렸다.
50년간 숨겨온 상처가 터져 나왔다.
"저는... 어릴 때부터 '맏아들'인 형과 비교됐어요."
"'민준이는 둘째라서...'"
"'민준이는 형만 못해...'"
"'민준이는 열심히 해야 인정받아...'"
"그래서 저는 미친 듯이 노력했어요!"
"공부도, 일도, 사업도!"
"하지만...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껴요!"
'민준아.'
"예..."
'네 이름이 무엇이냐?'
"선우민준입니다."
'아니다. 네 진짜 이름은 무엇이냐?'
민준은 잠시 생각했다.
"저는... '증명해야 하는 자'입니다."
'그것이 네 옛 이름이다. 이제 새 이름을 주겠다.'
"무엇입니까?"
'너는 이제 더 이상 '증명해야 하는 자'가 아니다.'
'너는 '사랑받는 자'다.'
민준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하지만... 저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그래서 더 귀한 것이다. 너는 네 성과 때문에 사랑받는 것이 아니다. 네가 너이기 때문에 사랑받는다.'
"믿을 수 없어요..."
'믿어야 한다. 그것이 진리다.'
민준은 바위를 붙잡았다.
"그럼... 제가 지금까지 한 모든 것은 무의미합니까?"
'아니다. 그것들은 선했다. 하지만 그것이 네 가치를 만든 것은 아니다.'
"그럼?"
'너의 가치는 내가 너를 창조했다는 사실에서 온다.'
민준은 씨름을 계속했다.
밤새도록.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관과, 믿음과.
새벽 5시.
동이 트기 시작했다.
민준은 지쳐 있었다. 하지만 놓지 않았다.
"당신께서 저를 축복하지 않으시면, 놓아드리지 않겠습니다!"
'무슨 축복을 원하느냐?'
"제가... 있는 그대로 가치 있다는 것을 믿게 해주십시오!"
그 순간, 민준은 무언가를 느꼈다.
자신의 '엉덩이뼈'가 어긋나는 느낌.
아니, 물리적이 아니었다.
영적인 부분이었다.
자신의 '자기 의존성'이 부러지는 느낌.
'나는 혼자 할 수 있어.'
'나는 증명해야 해.'
'나는 성과로 가치를 만들어.'
그 모든 것이 부러졌다.
새벽 6시.
해가 떠올랐다.
민준은 바위 앞에 쓰러져 있었다.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하지만... 평화로웠다.
그는 천천히 일어섰다.
다리를 절었다.
물리적으로 다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뭔가 달라져 있었다.
예전처럼 '성큼성큼' 자신 있게 걷지 못했다.
이제는 '절뚝절뚝' 조심스럽게 걸었다.
겸손하게.
의존적으로.
"하느님... 감사합니다."
민준은 바위에 손을 얹었다.
"저는 오늘 밤, 당신과 씨름했습니다."
"그리고 졌습니다."
"아니, 이겼습니다."
"제 옛 정체성을 이겼습니다."
그는 배낭에서 조그만 망치와 정을 꺼냈다.
바위 옆 작은 돌에 새기기 시작했다.
"프니엘
2077.1.1
내가 하느님과 대면하고도 살았다
선우민준"
그리고 그 옆에 작은 글씨로:
"옛 이름: 증명해야 하는 자
새 이름: 사랑받는 자"
오전 8시, 민준은 절뚝거리며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차에 올라 거울을 봤다.
같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눈빛이 달랐다.
평화가 있었다.
그는 서울로 차를 몰았다.
절뚝거리며.
천천히.
본가 도착.
가족들이 놀라 달려왔다.
"아버지! 왜 다리를 절뚝거리세요?"
"괜찮아. 다친 건 아니야."
"그럼 왜?"
민준은 미소 지었다.
"하느님과 씨름했거든."
가족들이 어리둥절해했다.
레이코가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어요?"
"이야기하마. 길지만."
그날, 민준은 가족들에게 밤새 겪은 일을 이야기했다.
영적 씨름을.
자신의 상처를.
새로운 정체성을.
일곱 자녀가 아버지를 새롭게 봤다.
"아버지... 달라지셨어요."
"응. 나는 이제 더 이상 '증명해야 하는 자'가 아니야."
"그럼?"
"나는 '사랑받는 자'야. 있는 그대로."
그날부터 민준의 삶이 바뀌었다.
예전처럼 '성과'를 강박적으로 추구하지 않았다.
예전처럼 '인정'을 갈구하지 않았다.
여전히 일했다. 하지만 평화롭게.
여전히 기부했다. 하지만 자랑하지 않게.
여전히 가르쳤다. 하지만 겸손하게.
사람들이 물었다.
"선우 회장님, 왜 다리를 절뚝거리세요?"
"하느님과 씨름한 흔적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제 자만심이 부러진 흔적이죠."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민준은 개의치 않았다.
그는 이제 증명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사랑받는 자였다.
있는 그대로.
민준의 일기, 2077년 1월 1일:
"오늘 밤, 제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저는 하느님과 씨름했습니다.
밤새도록.
그리고 졌습니다.
제 옛 정체성에게.
'증명해야 하는 자'가 부러졌습니다.
이제 저는 '사랑받는 자'입니다.
제 다리가 절뚝거립니다.
물리적이 아니라 영적으로.
이제 저는 자신만만하게 걷지 못합니다.
절뚝거리며 겸손하게 걷습니다.
그것이 제 새로운 정체성의 표시입니다.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었듯이,
저도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느님.
제 옛 이름을 빼앗아 가시고
새 이름을 주셔서.
이제 저는 자유입니다.
증명의 굴레에서.
성과의 강박에서.
인정의 갈증에서.
저는 사랑받습니다.
있는 그대로.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아멘."
—끝—
에필로그
민준은 그 후 15년을 더 살았다.
100세까지.
죽는 날까지 다리를 절뚝거렸다.
사람들이 물어도, 그는 늘 같은 대답을 했다.
"하느님과 씨름한 흔적입니다."
그의 장례식에서, 손자 하나가 물었다.
"할아버지는 왜 평생 다리를 절뚝거리셨어요?"
르우벤이 대답했다.
"할아버지께서 하느님과 씨름하셨기 때문이란다."
"이기셨어요?"
"응. 옛 자아를 이기셨지."
평창 새벽터에 마지막 돌이 놓였다.
열두 번째 돌.
"씨름의 돌 - 프니엘"
거기에는 이렇게 새겨졌다:
"하느님과의 씨름
2077.1.1
나는 평생 증명하려 했다.
내가 가치 있다고.
하지만 하느님께서
씨름을 걸어오셨다.
밤새도록 싸웠다.
나의 정체성과.
그리고 졌다.
옛 자아에게.
'증명해야 하는 자'가 부러졌다.
'사랑받는 자'가 태어났다.
나는 이제 절뚝거린다.
겸손의 표시로.
너도 씨름하라.
하느님과.
네 자아와.
그리고 지라.
옛 정체성에게.
그러면 자유가 온다.
선우민준
'사랑받는 자'"
그 돌은 오늘도
성과로 자신을 증명하려는 모든 이에게
조용히 말을 건넨다.
"씨름하십시오.
하느님과.
그리고 지십시오.
옛 자아에게.
그러면 자유입니다."
새벽터를 찾는 사람들은
이제 프니엘 돌을 만지며 기도한다.
"저도 씨름하게 해주세요.
제 옛 정체성과.
그리고 지게 해주세요.
새로운 사람이 되도록."
그리고 많은 이들이
그곳에서 절뚝거리며 내려온다.
겸손하게.
평화롭게.
자유롭게.
사랑받는 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