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를 내리다
1958년, 뿌리를 내리다
봄의 새 보금자리
1958년 1월.
이계민은 새벽부터 일어나 장부를 들여다봤다.
지난 한 해 주유소 수입을 정리했다.
숫자를 더하고, 빼고, 다시 더했다.
'됐어.'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 정도면... 집을 살 수 있어.'
민화가 부엌에서 아침을 준비하는 소리가 들렸다. 하경이 울음소리도 들렸다.
범현이가 뛰어다니는 소리도.
이계민은 장부를 덮고 일어났다.
마당으로 나갔다.차가운 겨울 공기가 뺨을 때렸다.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올해는... 우리 집이 생긴다.'
그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처가살이를 시작한 지 얼마나 됐던가.
전쟁이 끝나고, 집도 재산도 다 잃고 처가에 들어온 것이.
처가에서 남천리에 가게를 내기 전 계민은 집을 마련하게 된것이다 그동안 장인어른께 얼마나 많은 신세를 졌던가. '이제 정말 떠날 때가 됐어.'
아침 식사 자리에서 계민이 말을 꺼냈다.
"장인어른,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무슨 일인가?"
"이제 독립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집을 구했나?"
"아직 구하진 못했지만, 볼 곳이 있습니다."
김학두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오래 기다렸구먼."
"죄송합니다. 너무 오래 신세를 졌습니다."
"미안할 것 없어."
장인이 손을 저었다.
"하지만 계민이, 집 살 때 내가 서류 봐줄게."
"장인어른..."
"사법서사가 집안에 있는데 왜 안 써먹어."
김학두가 웃었다.
"감사합니다."
민화가 눈물을 닦았다.
장모 윤씨가 며느리의 등을 두드렸다.
"울긴 왜 울어. 좋은 일인데."
"어머니...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별말을. 네가 있어서 우리 집이 더 따뜻했어."
의호도 조용히 앉아 있었다.
"의호야, 너도 같이 가야지."
이계민이 말했다.
"형이랑 같이 가도 돼요?"
"당연하지."
"...고마워요, 형."
집을 구하다
2월 들어, 이계민은 읍내를 돌아다니며 집을 봤다.
주유소에서 가까운 곳이었으면 했다.
그곳이 영광읍내 도동리였고 아이들 학교와도 멀지 않은 곳.마을 사람들과 가까운 곳.
여러 군데를 봤다.
"여기는 어때요?"
부동산을 아는 마을 어른이 집을 소개했다.
기와집이었다.가지런한 돌담사이로 집중앙에 대문이 있었고 마당이이 넓고 약간 높이에 넓은 터밭이 있었다. 집에서 바라봤을때 왼편에 장독대가 있었고 중앙에 사과나무가 있었으며 터밭 둘레로 각종 유실수가 심어져있었다. 안채와 행랑채로 두채의 집이 있었고 행랑채 옆으론 곳간과 가축우리 그리고 변소가 있었다. 본채는 안방 대청마루 정개방 과 창고 그리고 큰부엌엔 엄청큰 식수항아리가 뭍여있었다. 당시는 물지게를 지고 물을 길어 파는 사람들이 즉 물장수가 있었다. 넓은 마루 옆으로 세로형의 긴 윗방이 있었고 그 윗방에는 부엌이 또 따로 있었으며 댓돌올라 대청마루 벼락치기 문이 걸게에 걸려 있었고 긴마루가 펼쳐있었으며 안방 벽장은 충분히 큰 규모였었다. 매우 쨤지고 실용적인 집구조였다. 방이 세 칸이었다.
"얼마입니까?"
"십오만 환입니다."이계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집 안을 살폈다.
구조가 좋았다.
아이들이 뛰어놀기에 충분했다.
'좋아.'
민화도 함께 봤다.
"어때요?"
"괜찮아요."
민화가 부엌을 살폈다.
"부엌이 커서 좋아요.."
"...네, 좋아요."
민화가 마당에 서서 하늘을 봤다.
"여기서 살 수 있겠어요."
"그래요?"
"네. 느낌이 좋아요."
계민도 마당에 섰다.
겨울 햇살이 마당에 가득 들었다.
'여기가 우리 집이 되는 거야.'
장인 김학두가 서류를 확인했다.
"등기는 깨끗해. 문제없어."
"그럼 계약해도 되겠습니까?"
"그래. 내가 계약서 작성해줄게."
며칠 후, 계약이 완료됐다.
이계민의 이름으로 집이 등기됐다.
이계민은 계약서를 손에 들고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내 집이야.'
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아버지... 어머니...'
'제 집이 다시 생겼습니다.'
3월 이사날.
계민과 민화는 새벽 일찍 일어났다.
짐은 많지 않았다.
옷가지, 이불, 그릇 몇 벌, 책들.
처가에서 살면서 크게 장만한 것이 없었다.
쓰리쿼터 트럭을 빌려 짐을 실었다.
"다 됐어요?"
"네."
처가 식구들이 배웅을 나왔다.
장모가 민화의 손을 꼭 쥐었다.
"잘 살아라."
"네, 어머니."
" 승국이와 범현이, 하경이 잘 키우고."
승국이가 국민학교에 가야해서 부모가 집에서 키우기로 결정했고 김학두 역시 혼쾌히 승국이를 보내주었다.
"그럴게요."
"의호도 잘 부탁해."
"네."
장인 김학두가 이계민에게 말했다.
"자네, 이제 가장이야. 진짜 가장."
"네, 장인어른."
"힘들면 언제든지 와. 가까이 있잖나."
"감사합니다."
"가봐."
계민이 절을 했다.
깊은 절이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사의 표현이었다.
처남 김영태도 나왔다.
"잘 가, 계민이."
"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뭘. 잘 살게."
"네."
김화태도 손을 흔들었다.
" 주유소 잘 되고 있으니까 걱정 마"
"고마워, 화태야."
트럭이 출발했다.
이계민이 뒤를 돌아봤다.
처가 식구들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민화가 눈물을 훔쳤다.
"왜 울어요?"
"몰라요. 그냥 눈물이 나요."
"고마운 분들이니까요."
"네..."
"잘 해드려야지요."
트럭이 읍내를 달렸다.
새 집 앞에 멈췄다.
이계민이 먼저 내렸다.
대문을 열었다.
텅 빈 마당.
"다 왔어요."
민화가 하경이를 안고 내렸다.
범현이가 뛰어 들어갔다.
"우리 집이다!"
마당을 빙글빙글 돌았다.
"범현아, 조심해!"
"네!"
이계민은 그 모습을 보며 웃었다.
의호가 짐을 들고 들어왔다.
"형, 어디 놓을까요?"
"안방에 일단 다 넣어."
짐을 풀고, 자리를 잡고...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대강 정리됐다.
민화가 부엌에서 밥을 지었다.
처음으로 자기 집 부엌에서.
"냄새 좋다."
이계민이 부엌 문에 기댔다.
"뭘 하고 있어요?"
"구경하는 거요."
"피해요, 연기 들어가요."
"예쁘니까 보는 거야."
"쑥스럽게..."
민화가 웃었다.
그날 저녁.
새 집에서 첫 밥상을 차렸다.
이계민, 민화, 승국이와 범현이, 하경이, 의호.
여섯 식구가 둘러앉았다.
"처음으로 우리 집에서 먹는 밥이네요."
민화가 말했다.
"맛있겠다!"
범현이가 숟가락을 들었다.
"잠깐."
이계민이 말했다.
"다 같이 감사 기도 드리고 먹자."
"네."
이계민이 두 손을 모았다.
"아버지, 어머니..."
"오늘 우리 집이 생겼습니다."
"가족이 모두 건강하고, 함께 밥을 먹습니다."
"지켜봐 주시는 거 압니다."
"감사합니다."
눈물이 흘렀다.
승국이와 범현이도, 의호도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민화가 손수건을 꺼냈다.
"자, 먹자."
이계민이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네!"
범현이가 신나게 밥을 먹기 시작했다
주유소의 전성기
봄이 왔다.
주유소는 바빠졌다.
작년에 쌓아둔 단골들이 다시 찾아왔다.
"사장님, 올해도 중유 많이 가져왔죠?"
"물론이죠. 준비해뒀습니다."
"다행이네요. 올해도 벼멸구가 심하다더군요."
"그래요? 그럼 더 많이 필요하겠군요."
이계민은 미리 중유 재고를 늘려놨다.
작년 경험이 있었다.
벼멸구가 심한 해일수록 중유 수요가 급증한다는 것을.
농민들 사이에서 이계민 주유소는 이미 유명했다.
"거기 가면 중유 있어."
"사장님이 방법도 잘 알려줘."
"가격도 나쁘지 않고."
아침부터 사람들이 줄을 섰다.
이계민은 쉬지 않고 일했다.
기름을 넣고, 돈을 받고, 영수증을 끊고.
땀이 흘렀지만, 기분이 좋았다.
'이게 내 일이야.'
어느 날 낯선 손님이 왔다.
차림새가 깔끔한 중년 남자였다.
"여기가 이계민씨 주유소요?"
"네, 그렇습니다."
"사장님이 이계민 씨요?"
"그렇습니다만, 누구시죠?"
"나는 나주에서 왔소. 농업은행에서 일하오."
"아, 네. 어떻게 오셨습니까?"
"주유소 사장이 벼멸구 방제에 대해 잘 안다고 소문을 들었소."
"조금 압니다."
"우리 농협에서 방제 교육을 하려고 하는데..."
남자가 명함을 건넸다.
"강의를 부탁드릴 수 있겠소?"
이계민은 명함을 봤다.
나주농업협동조합.
"강의요?"
"네. 농민들한테 중유 모래 섞는 법, 뿌리는 시기 같은 것들 설명해주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저 같은 사람이 해도 되겠습니까?"
"주유소 하시면서 경험 많이 쌓으셨다 들었소."
이계민은 잠시 생각했다.
'이런 기회가 생기는구나.'
"알겠습니다. 하겠습니다."
며칠 후, 나주 농협에서 강의를 했다.
농민 오십여 명이 모였다.
이계민은 처음엔 긴장했다.
'내가 이런 걸 하게 될 줄이야.'
하지만 말을 시작하자 자연스러워졌다.
"중유와 모래는 1대 3 비율로 섞습니다."
"뿌리는 시기는 벼멸구가 성충이 되기 전, 약충 단계가 좋습니다."
"논 바닥 가까이에 뿌려야 효과가 좋습니다."
농민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질문도 쏟아졌다.
"비가 온 다음 날 뿌려도 됩니까?"
"중유가 변질되지는 않습니까?"
"다른 해충에도 효과가 있습니까?"
이계민은 성실하게 답했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했다.
강의가 끝나고 농민들이 몰려왔다.
"덕분에 많이 배웠소."
"고맙습니다, 사장님."
"우리 마을에도 와서 가르쳐주시오!"
"거기 주유소가 어디라 했소?"
이계민이 명함을 나눠줬다.
"찾아오시면 도와드리겠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계민은 생각에 잠겼다.
'이게 아버지가 말씀하시던 거구나.'
'사람을 돕는 것이 결국 자신에게 돌아온다고.'
그 후로 강의 요청이 더 들어왔다.
영광, 함평, 장성...
인근 지역 농협에서 연락이 왔다.
"이계민 사장님이시죠?"
"그렇습니다."
"저희 쪽에도 방제 교육 좀 부탁드릴 수 있습니까?"
"물론이죠."
강의를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알게 됐다.
농협 관계자들, 마을 이장들, 농민 지도자들...
인맥이 넓어졌다.
그리고 주유소 단골도 늘었다.
"이계민 사장님 주유소에 가봐야겠어."
"거기 가면 친절하게 잘 설명해준다더군."
손님이 늘었다.
수입도 늘었다.
이계민은 착실하게 돈을 모았다.
'아버지가 땅을 남겨주신 것처럼...'
'나도 아이들한테 뭔가를 남겨줘야 해.'
이산갑의 뜻을 잇다
여름이 됐다.
무더운 여름이었다.
이계민은 주유소 일을 마치고 저녁에 한도회 회의에 참석했다.
인원은 여전히 적었다.
하지만 모인 동지들의 눈빛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이승만 정권이 강화되고 있습니다."
"조봉암 선생님 재판이 진행 중입니다."
"진보당 사건이 심상치 않아요."
이계민은 심각한 표정으로 들었다.
조봉암.
진보당을 창당하고 평화 통일을 주장했던 사람.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서 삼십 퍼센트 가까운 지지를 받았던 사람.
그가 간첩 혐의로 체포됐다.
"말도 안 됩니다."
한 동지가 분통을 터뜨렸다.
"평화 통일을 주장한 게 간첩이라니!"
"자유당이 두려운 거죠. 조봉암 선생이 너무 강하니까."
"언론은 뭐라고 합니까?"
"반반이에요. 관변 언론은 간첩이라 하고, 야당 신문은 정치 탄압이라 하고."
이계민이 입을 열었다.
"아버지, 이산갑 선생님이 살아계셨다면 뭐라 하셨을까요."
동지들이 이계민을 봤다.
"반드시 반대하셨겠죠."
이계민이 말을 이었다.
"평화 통일, 대화와 타협... 그게 아버지가 평생 추구하신 것들입니다."
"그리고 조봉암 선생님의 주장과 다르지 않아요."
"그래서 더 안타깝습니다."
"우리가 뭘 할 수 있겠습니까?"
"개인적으로 탄원서를 쓰겠습니다."
이계민이 말했다.
"한도회 이름은 뺍니다. 위험하니까."
"하지만 할 수 있는 건 해야 합니다."
"동지들도 동참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며칠 후 탄원서를 작성했다.
"정치적 반대 의견을 간첩죄로 탄압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반한다."
"재판이 공정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평화 통일론은 범죄가 아니다."
탄원서는 법원에 제출됐다.
물론 큰 영향은 없었다.
하지만 이계민은 포기하지 않았다.
'침묵하면 안 돼.'
'아버지도 그러셨을 거야.'
의호가 이계민을 찾아왔다.
"형, 조봉암 선생님 재판 어떻게 될 것 같아요?"
"...모르겠어."
"불안해요."
"나도 그래."
의호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형, 저도 탄원서 쓰면 안 될까요?"
"넌 아직 학생이야."
"그래도..."
"의호야."
이계민이 동생을 봤다.
"지금은 공부가 먼저야."
"알지만..."
"세상을 바꾸려면 실력이 있어야 해."
"......"
"책을 읽어. 법률이든, 역사든, 뭐든."
"알겠어요."
"그리고 흔들리지 마. 어떤 세상이 와도."
"형처럼요?"
"...형도 많이 흔들려."
이계민이 솔직하게 말했다.
"하지만 다시 일어서는 거야."
이승국의 여름
8월이었다.
이계민은 이승국을 데리고 강가에 갔다.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아이들이 물속에서 뛰놀았다.
범현이도 첨벙첨벙 물장구를 쳤다.
"아버지, 저도 들어가도 돼요?"
이승국이 물었다.
"어깨까지만 들어가. 더 깊이는 안 돼."
"네!"
이승국이 물속으로 들어갔다.
이계민은 강가에 앉아 아이들을 지켜봤다.
이승국.
작년 가을 옛집에서 문틈 사이로 들여다보던 그 아이.
그날 이후로 이계민은 이승국을 더 자주 챙겼다.
'저 아이가 얼마나 힘든 것들을 봤을까.'
'
이승국이 물속에서 웃고 있었다.
범현이랑 물장구를 치며 깔깔거렸다.
'그래도 웃는구나.'
'잘 크고 있어.'
저녁에 이승국을 데려다주며 이계민이 말했다.
"승국아."
"네?"
"학교 다니면서 힘든 것 없니?"
"별로 없어요."
"친구들이랑 잘 지내?"
"네."
"...그래, 잘 지내야 해."
이계민이 이승국의 어깨를 두드렸다.
"어디 가든 아버지 생각해."
"네, 아버지."
"무서운 것 있으면 말하고."
이승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를 알고 있는 눈빛이었다.
작년 가을의 그것을 아직 기억하는 것 같았다.
'아직도 기억하는구나...'
이계민은 말하지 않았다.
말해봐야 소용없었다.
그냥 그 아이 곁에 있어주는 것이 더 중요했다.
가을, 또 다른 임야
9월이었다.
"계민이, 하나 더 찾았어."
장인이 서류를 들고 왔다.
"또 임야입니까?"
"그래. 자네 아버지가 꼼꼼하게 해두셨더군."
"어디입니까?"
"읍내에서 좀 떨어진 곳이야. 잡목이 많은 야산이야."
"얼마나 됩니까?"
"한 삼천 평쯤 될 거야."
이계민은 서류를 들여다봤다.
이산갑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 이계민.
'아버지...'
'아직도 저를 챙기고 계시는군요.'
"찾아갈 수 있겠습니까?"
"내가 서류 작성해줄게."
"언제쯤 완료됩니까?"
"한 달이면 될 거야."
이계민은 장인의 손을 잡았다.
"장인어른, 정말 감사합니다."
"이게 몇 번째 감사야."
"그래도 말씀드려야 합니다."
"알았어, 알았어."
김학두가 손을 빼며 웃었다.
"자네 아버지 이산갑 선생이 내 평생 은인이야."
"그 분 아들 돌보는 게 내가 할 도리야."
이계민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 두 분이 함께 앉아 차를 마시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한 달 후, 임야 등기가 완료됐다.
이번에는 혼자 가지 않았다.
범현이를 데리고 갔다.
"아빠, 어디 가요?"
"우리 산 보러 가."
"우리 산이요?"
"응. 할아버지가 남겨주신 산이야."
"할아버지가요?"
"그래."
야산에 올랐다.
잡목이 많았다.
소나무, 참나무, 밤나무...
"아빠, 여기가 우리 거예요?"
"그래."
"와!"
범현이가 뛰어다녔다.
이계민은 나무 한 그루를 손으로 쓸었다.
거칠고 단단한 껍질.
'아버지가 남겨주신 것들을 잘 지키겠습니다.'
'그리고 범현이한테, 하경이한테 물려주겠습니다.'
"아빠!"
범현이가 달려왔다.
"왜?"
"밤나무예요! 밤이 달렸어요!"
"그래? 어디?"
"저기요!"
범현이가 손을 잡아끌었다.
이계민은 아들 손에 이끌려 걸었다.
가을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쏟아졌다.
밤송이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아빠, 따도 돼요?"
"그럼, 우리 거니까."
"신나다!"
범현이가 폴짝폴짝 뛰었다.
이계민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웃었다.
'이 아이가 이 산을 기억하겠지.'
'할아버지가 남겨준 산이라고.'
뿌리가 깊은 나무
겨울이 왔다.
1958년도 저물어가고 있었다.
이계민은 저녁마다 일기를 썼다.
"1958년."
"우리 집이 생겼다. 처음으로 내 이름으로 된 집."
"민화가 기뻐했다. 범현이가 마당을 뛰어다녔다."
"주유소가 자리를 잡았다. 벼멸구 방제로 중유가 많이 팔렸다."
"강의도 다니게 됐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즐겁다."
"임야를 또 찾았다. 아버지가 얼마나 꼼꼼하셨는지..."
이계민이 펜을 멈췄다.
그리고 다시 썼다.
"조봉암 선생님 재판이 진행 중이다. 결과가 두렵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다. 침묵할 수 없다."
"아버지가 그러셨던 것처럼."
"이승국이 잘 크고 있다. 여름에 강가에서 웃는 모습을 봤다."
"그 아이가 어른이 되면 어떤 사람이 될까."
"어떤 이야기를 할까."
방문이 열렸다.
민화였다.
"아직 써요?"
"네, 마무리하려고요."
"아이들 다 잤어요. 범현이가 오늘 별을 보고 싶다더니 그냥 잠들었어요."
"내일 보여줘야겠네."
"네."
민화가 이계민 옆에 앉았다.
"계민 씨."
"네?"
"올해... 정말 많이 달라졌어요."
"그랬죠?"
"우리 집도 생기고, 주유소도 자리 잡고..."
"아직 갈 길이 멀지요."
"하지만 뿌리를 내린 것 같아요."
이계민이 아내를 봤다.
"뿌리요?"
"네. 바람이 불어도 안 넘어지는 나무처럼요."
이계민은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
'뿌리를 내린다.'
'그래, 그게 맞는 말이야.'
"여보."
"네?"
"고마워요."
"뭘요."
"버텨줘서요. 처가살이 하면서도, 힘든 때도..."
"당연한 거죠."
민화가 웃었다.
"그리고 계민 씨."
"네?"
"내년엔... 학교 들어가야 해요."
"벌써요?"
"네. 내년에 일곱 살이잖아요."
이계민이 손을 꼽았다.
'그렇구나. 벌써 그렇게 됐어.'
"학교 준비 잘 해줘야겠네요."
"그럼요."
"의호도 이제 마지막 학년이고."
"그래요. 다음 해엔 대학 입시예요."
"잘 되어야 할 텐데."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될 거예요."
두 사람은 나란히 창밖을 봤다.
밤하늘에 별이 가득했다.
'범현이가 별을 보고 싶다 했지.'
'내일은 꼭 같이 봐야지.'
마당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그림이 그려졌다.승국이를 잘키우고
범현이의 작은 손을 잡고.
하경이를 안고.
민화와 함께.
'그것으로 충분해.'
이계민은 일기장 마지막 페이지에 썼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마르지 않는다."
"아버지가 심어두신 뿌리가 이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 뿌리를 더 깊게 내리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아이들한테, 의호한테, 이승국한테."
"그리고 이 나라에."
일기장을 덮었다.
등잔불을 껐다.
어둠 속에서 민화의 온기가 느껴졌다.
창밖으로 별빛이 들어왔다.
1958년의 마지막 밤이었다.
1959년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계민의 뿌리는 계속 깊어질 것이다.
조용히, 묵묵히, 흔들림 없이.
그것이 이산갑이 아들에게 남겨준 가장 큰 유산이었다.
땅도, 임야도, 집도 아닌.
뿌리를 내리는 법.
그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