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돌다리 문화마을

분단의 끝에서 예술을 꿈꾸다

by 이 범

경계의 마을로

"파주 가본 적 있어?"

10월의 어느 주말, 민수가 물었다.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는 계절이었다.

"파주? 출판단지?"

지혜가 대답했다.


"거기도 있고. 근데 돌다리 문화마을이라고 있대. 임진강 근처."

"임진강?"

"응. DMZ 가까운 곳. 원래는 민통선 안쪽 마을이었는데, 지금은 예술가들이 모여 사는 문화마을이 됐대."

서연이가 관심을 보였다.


"민통선 마을이 예술촌으로?"

"그래. 1990년대 후반부터 예술가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대. 싼 임대료, 조용한 환경 때문에."

준우가 지도를 펼쳤다.


"여기 진짜 북쪽이네. 서울에서 한 시간?"

"응. 가깝지만 완전 다른 세계래."

"가보고 싶다. 우리가 다녔던 곳 중에 DMZ 근처는 처음이잖아."

다음 주 토요일, 네 식구는 차를 타고 파주로 향했다.

자유로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갔다.


"임진강이다!"

창밖으로 넓은 강이 보였다.

"저 건너가 북한이야?"

"아직은 아니야. 저기 더 가야 해."

통일대교를 건너 계속 북쪽으로 올라갔다. 점점 민가가 줄어들었다.


"사람 사는 곳이 별로 없네."

군부대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철책, 초소.

"여기부터 접경 지역이구나."


예술이 꽃피운 경계의 마을

네비게이션이 안내했다.

"목적지 근처입니다."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낡은 농가들 사이로 독특한 건물들이 보였다.

"여기가 돌다리 문화마을이네."

주차를 하고 마을로 들어갔다.


첫인상은 조용했다. 시골 마을 같았다.

"사람이 별로 없네."

하지만 자세히 보니 달랐다. 곳곳에 예술 작품들이 있었다.

낡은 집 벽에 그려진 벽화, 마당에 세워진 조각품, 갤러리로 개조된 창고.

"완전 예술마을이다."

한 갤러리 간판이 보였다.


'돌다리예술창작촌'.

"들어가볼까?"

갤러리로 들어가니 작은 전시 공간이었다.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안녕하세요."

30대로 보이는 남자가 인사했다.


"구경하러 왔어요."

"천천히 보세요."

전시된 그림들을 봤다. 대부분 풍경화였다. 임진강, 들판, 하늘.

"그림이 고요하네."

"이 마을 풍경을 그린 거예요."

남자가 설명했다.



"작가님이세요?"

"네. 여기서 10년째 살고 있어요."

"왜 이곳에 오셨어요?"

"조용해서요. 서울은 너무 시끄러웠어요. 작업하기 힘들었고. 근데 여기는 고요해요."

"민통선 근처라 불편하지 않으세요?"

"처음엔 불편했죠. 통행증도 필요했고. 근데 지금은 괜찮아요. 오히려 이 고립감이 좋아요."

갤러리를 나와 마을을 걸었다.


곳곳에 작업실들이 있었다. 화가, 도예가, 조각가.

한 도예 작업실 앞을 지나가는데 도자기들이 마당에 놓여 있었다.

"예쁘다."

안으로 들어가니 50대 여성이 물레를 돌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구경하세요."

작업실 안에는 도자기들이 가득했다. 그릇, 찻잔, 화병.

"여기서 오래 하셨어요?"

"15년 됐어요."

"왜 돌다리 마을에?"

"흙이 좋아서요. 임진강 흙으로 도자기 만들면 색깔이 독특해요."

"서울에 계시다가 오신 거예요?"

"네. 서울에서 학원 강사 했었어요. 근데 제 작업을 하고 싶어서 여기 왔죠."

"가족들은요?"

"처음엔 반대했어요. '왜 그런 외진 곳에 가냐'고. 근데 지금은 이해해요. 제가 행복하니까."


분단과 예술이 공존하는 풍경

마을 끝까지 걸어갔다. 임진강이 가까웠다.

"저기 강이다!"

강변으로 나갔다. 넓은 강이 유유히 흘렀다.

"임진강이구나."

강 건너편을 봤다. 안개가 자욱했다.


"저 건너가 북한이야?"

"아직은 아니야. 근데 가까워."

강변에 작은 카페가 있었다. '임진강 다방'.

들어가니 통유리창으로 강이 보였다.

"전망 좋다."

"커피 네 잔이요."

주인은 40대 남자였다.


"여기 언제 오픈하셨어요?"

"5년 됐어요."

"왜 여기에?"

주인은 창밖 임진강을 가리켰다.

"저 강 때문이요. 매일 봐도 질리지 않아요."

"원래 예술가세요?"


"아니요. 서울에서 회사 다녔어요. 근데 번아웃 와서 그만뒀죠. 그리고 여기 왔어요."

"가족들은요?"

"아내랑 딸이 있어요. 처음엔 힘들어했는데, 지금은 좋아해요. 서울보다 여기가 살기 좋대요."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봤다. 임진강 너머로 산들이 보였다.


"저 산 너머가 북한인가요?"

"저기까지는 아니고, 더 가야 해요. 근데 가깝긴 해요."

"분단이 실감 나시겠어요."

"그렇죠. 여기 살면 분단을 매일 느껴요. 군부대도 많고, 철책도 있고."

"불편하지 않으세요?"

"처음엔 불편했어요. 근데 익숙해지니까 괜찮아요. 오히려 이게 우리 현실이구나 싶어요."

카페를 나와 마을로 돌아왔다.


한 벽화 앞에서 멈췄다. 철새들이 임진강을 날아가는 그림이었다.

아래에 글이 적혀 있었다.

"철새는 국경을 모른다. 자유롭게 날아간다."

"의미심장하다."

마을 회관 앞에 안내판이 있었다.


"돌다리 마을의 역사."

읽어봤다.

"1950년대 한국전쟁 후 형성된 민통선 내 마을. 1990년대 후반 민통선 해제 후 예술가들이 입주하기 시작. 현재 30여 명의 예술가가 거주."

"30명밖에 안 되네."

"작은 마을이야."


경계에서 꿈꾸는 평화

마을 안쪽으로 더 들어갔다. 작은 공원이 있었다.

"평화공원?"

공원에는 조각품들이 있었다. 평화를 주제로 한 작품들.

한 조각품 앞에 설명이 있었다.



"분단된 땅에서 예술로 평화를 꿈꾸다."

벤치에 앉아 마을을 바라봤다.

"특별한 곳이네."

"응. 다른 곳들이랑 완전 달라."

"을지로, 해방촌, 창신동은 역사가 쌓인 곳이었잖아. 청담동은 화려한 소비 문화. 근데 여기는..."

"경계?"

"응. 분단의 경계. 그리고 그 경계에서 예술을 하는 사람들."

서연이가 노트를 펼쳤다.


"이 마을 사람들은 왜 여기 왔을까?"

"조용해서, 싸서, 자연이 좋아서."

"근데 그것만은 아닐 것 같아. 뭔가 더 있을 것 같아."

"뭐?"

"자유? 여기는 경계지만, 역설적으로 자유로운 곳인 것 같아. 서울의 경쟁에서 벗어나서."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석양이 임진강을 비췄다.


"석양 보고 가자."

강변으로 다시 나갔다. 임진강이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아름답다."

준우가 조용히 말했다.

"저 강 건너에도 사람들이 살겠지?"

"그럼."

"똑같이 석양 보면서."

"그렇겠지."

한참을 그렇게 석양을 봤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자유로를 따라 내려왔다.

"오늘 인상 깊었어."

"나도. 분단이 이렇게 가까운 줄 몰랐어."

"그리고 그 분단의 땅에서 예술을 한다는 게..."

집에 도착해서 민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제목은 '파주 돌다리 문화마을, 분단의 끝에서 예술을 꿈꾸다'.

"돌다리 문화마을은 임진강 근처에 있다. 서울에서 한 시간이지만, 완전히 다른 세계다. 민통선이 있었던 곳. 분단의 경계."

"1990년대 후반, 예술가들이 이곳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서울은 너무 비싸고, 시끄럽고, 경쟁적이었다. 이곳은 조용하고, 싸고, 고립되어 있었다."

"10년째 사는 화가가 말했다. '고립감이 좋아요.' 15년째 사는 도예가가 말했다. '제가 행복하니까.' 5년 된 카페 주인이 말했다. '분단을 매일 느껴요.'"

"이것이 돌다리 마을이다. 분단의 땅에서 예술을 한다.


철책 옆에서 그림을 그리고, 군부대 소리를 들으며 도자기를 빚는다."

"벽화에 쓰여 있었다. '철새는 국경을 모른다. 자유롭게 날아간다.' 예술가들도 그렇게 살고 싶은 것일까. 경계를 넘어, 자유롭게."

"임진강 석양을 봤다. 강 건너에도 사람들이 산다.



똑같이 석양을 보며. 언젠가 그들과 만날 수 있을까? 예술로, 평화로."

글을 다 쓰고 블로그에 올렸다.

댓글들이 달렸다.

"돌다리 마을 몰랐어요. 가보고 싶네요."

"분단의 현장에서 예술을 한다니 의미 깊어요."

"평화를 생각하게 되는 글이에요."

일주일 후, 파주시청에서 연락이 왔다.



"파주 DMZ 평화 문화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돌다리 마을도 포함되는데, 자문해주실 수 있나요?"

민수는 수락했다.

3개월 동안 돌다리 마을을 여러 번 방문했다.

30명의 예술가들을 모두 만났다. 각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서울을 떠난 이유, 이곳을 선택한 이유, 앞으로의 꿈.

그리고 『돌다리 문화마을: 경계에서 꽃피운 예술』이라는 책자를 만들었다.

출판 기념회가 마을에서 열렸다.

30명의 예술가들이 모두 모였다.


"고맙습니다. 우리 이야기를 기록해주셔서."

10년째 사는 화가가 말했다.

"우리는 조용히 살고 싶었을 뿐인데, 이렇게 의미를 부여해주시니 감사해요."

행사가 끝나고 민수 가족은 임진강을 다시 찾았다.

석양이 지고 있었다.


"1년 동안 참 많이 다녔네."

"응. 서울부터 파주까지."

"다음은 어디 갈까?"

"천천히 생각하자. 급할 거 없어."

석양을 보며 서연이가 말했다.

"아빠, 올해 우리가 다닌 곳들 정리해볼까?"


"좋은 생각이다."

"산업유산, 전쟁 상처, 달동네, 역사 유적, 농촌, 소비 문화, 그리고 분단. 다 봤네."

"우리가 본 건 서울의 단면들이야. 그리고 서울 근교까지."

"내년엔 뭘 볼까?"

"더 깊이 들어가볼까? 지역별로 시리즈를?"

"좋아."

돌다리 마을은 조용히 밤을 맞는다.


30명의 예술가들이 각자의 작업실에서 일한다.

분단의 땅에서, 평화를 꿈꾸며.

그리고 한 가족의 아카이빙도 계속된다.


기록하며, 기억하며, 미래를 향해.

임진강처럼 흘러가며.

철새처럼 자유롭게.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