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평화 [9]
" 어르신 지금 오십니까? " 머슴 정혁수가 이산갑의 보따리를 받아 들다가 이산갑의 물 맞은 모습과 검은 재가 묻은 몸꼴을 보고 화들짝 놀라며 걱정되는 얼굴로 이산갑에게 물었다. "아니 어쩌다가? 무슨 일 있으셨는지요"
정혁수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이산갑의 몸꼴을 살폈다.
정혁수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이산갑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얼굴은 흙먼지와 땀으로 얼룩져 있었고, 옷은 여기저기 찢겨 검은 재가 묻어 있었다. 눈빛은 몹시 지쳐 있었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꺾이지 않는 강인함이 남아 있었다.
"괜찮네, 정혁수. 잠시 불길 속에 있었을 뿐이야."
이산갑은 애써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지만, 그의 목소리는 심하게 잠겨 있었다. 정혁수는 그의 말에 더욱 안타까움을 느끼며, 조심스럽게 그의 짐을 받아 들었다.
"어르신, 어찌 이리..."
정혁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이산갑의 상태를 살폈다. 그의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고, 얼굴에는 고통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마을은... 괜찮은가?"
이산갑은 힘겹게 물었다. 그의 시선은 마을 쪽으로 향해 있었고, 그의 마음은 이미 그곳에 가 있었다. 정혁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다행히 큰 피해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정혁수는 말을 멈추고 잠시 망설였다. 그의 얼굴에는 무거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하지만... 무슨 일인가?"
이산갑은 정혁수의 표정을 보고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음을 직감했다. 그는 불안한 마음으로 정혁수에게 다그치듯 물었다.
" 그래, 말해봐 마을에. 특히 학당에 불이 왜? 났는지 말일세!"
정혁수는 " 그.. 그게..." 하며 말을 잘 잇지 못했다.
뭔가를 작감한듯 이산갑은 손사래를 저의며
"아닐세! 그저 학당이 불이 나서 불 끄고 온 걸세 놀라지 말고 안사람에게 멱간에 물이나 데워노라 이르게" 하며 안채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