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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도회

by seungbum lee

이산갑은 방으로 돌아와서 한참을 생각에 잠겨있다가 자신의 가방에 넣어둔 서영의 편지가 생각이 났다.

꼼꼼하고 예쁜 펜글씨로 써진 그녀의 편지는 마치 벗꽃 숲을 함께 걸으며 환담을 나누던 시절 모습이 피어 오르는 듯했다.


내용은 이랬다


사랑하는 산갑 씨에게

오늘도 실험실의 차가운 기계들을 뒤로하고 제 작은 방으로 돌아왔어요. 창밖으로 스며드는 이 도시의 어스름 속에서, 저는 가만히 당신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제 입술을 스쳐 나온 그 이름 석 자는 제 마음속 깊이 숨겨두었던 그리움을 한순간에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하는 주문 같아요.

이곳 일본의 공기는 늘 낯선 약품 냄새와 섞여 있지만, 신기하게도 그 속에서 저는 당신의 향기를 느낍니다. 아마도 제 마음이 당신에게로 향해 있기 때문이겠지요. 당신과의 짧았던 만남, 그 속에서 피어난 따뜻한 대화와 시선들은 이곳의 차가운 공기마저도 녹여버릴 듯한 온기를 제게 안겨줍니다.

저는 여전히 허약하고, 낯선 환경과 고된 학업 탓에 자주 피곤함을 느껴요. 밤늦도록 책상에 앉아 펜을 쥐고 있으면 이따금씩 찾아오는 기침에 마음이 저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저는 더 열심히 공부에 매진합니다. 산갑 씨, 당신이 제게 가르쳐 주셨던 그 말을 저는 단 한 순간도 잊지 않았어요. '약한 사람일수록 더 강한 믿음이 필요하다'는 그 말씀이 이곳에서의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제 유일한 힘이 됩니다. 당신의 그 깊은 눈빛과 진실된 목소리가 제 귓가에 맴돌아, 저는 오늘도 포기하지 않고 붓을 잡습니다.

저는 매일 밤 하늘의 별을 보며 기도합니다. 언젠가 이 새로운 학문의 길을 모두 마치고, 사랑하는 조선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의 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요. 당신이 꿈꾸는, 조선의 백성 모두가 평안하고 스스로 설 수 있는 그 세상에, 저 또한 한 줄기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어요. 비록 미약한 몸이지만, 제가 배운 지식이 당신의 큰 뜻에 보탬이 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당신과 함께 그 길을 걷고 싶습니다.

그날이 오기 전까지, 저는 이곳 도시의 쓸쓸한 새벽 안개 속에서도 오직 당신을 향한 그리움과 희망 하나로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부디 그곳에서도 강녕하시고, 제 마음이 당신께 닿기를 바라며...

늘 당신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서영 올림


추신 : 편지를 전해주는 서호진 선배는 당신에게 힘아되어줄 분입니다


그후 이산갑은 서호진과 광주에서 가끔 만나 우의를 다지며

산감으로 일하면서 산갑이는 뜻하지 않게 한도회(韓道會)라는 비밀 결사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표면적으로는 조선의 전통문화 연구 모임이었지만, 실제로는 은밀한 독립운동 조직이었다.

"이 산갑이라는 사람, 믿을 만한가?" 한도회 간부들이 논의했다."산감직에 있지만, 아버지가 이충헌이니 혈통은 의심할 바 없습니다 . "산갑이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고, 은밀히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표면적으로는 일제의 관리였지만, 실제로는 저항 활동에 참여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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