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쟁

by seungbum lee

화단 앞 벤치에 앉은 노인은 한숨을 쉬었다. 여름의 끝자락, 따가운 햇살은 여전했지만, 그보다는 노인의 마음을 짓누르는 답답함이 더 뜨거웠다. 시들어가는 나팔꽃 잎사귀 위로 작은 벌레들이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한 녀석이 다른 녀석을 밀어내고, 또 다른 녀석은 그 틈을 타 먹이를 낚아채려는 듯 바쁘게 움직였다. 노인의 눈에는 그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아니, 너무나 익숙하고 지겨운 풍경이었다.
젊은 시절, 노인에게 세상은 넓고 희망찬 곳이었다. 불의에 맞서고, 정의를 외치면 세상이 바뀔 것이라 굳게 믿었다. 그러나 시간은 잔인하게도 그 믿음을 조금씩 갉아먹었다. 선량하게 살고자 노력할수록 돌아오는 것은 모략과 시기였다. 등 뒤에서 날아오는 비난의 화살, 이유 없는 질투의 시선들이 노인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 ‘내가 무엇을 그리 잘못했단 말인가?’ 수없이 되뇌었지만, 답은 없었다. 그저 끊임없이 밀려드는 파도처럼 고통은 반복될 뿐이었다.
특히 최근에는 더욱 심했다. 자신과는 아무 상관없는 일에 이름이 오르내리고, 하지 않은 말이 한 것처럼 둔갑되어 퍼져나갔다. 언론은 물론 가까운 지인들의 입을 통해서도 왜곡된 사실이 전달되며 노인의 명예를 훼손하고 마음을 멍들게 했다. 선량한 이웃이라 생각했던 이들의 얼굴에 가면이 씌워지고, 그 가면 뒤에는 음험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노인은 밤잠을 설치며 괴로워했다. 억울함에 치를 떨기도 하고, 때로는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기도 했다. 인간에 대한 믿음이 바스러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화단 앞 벌레들의 싸움은 더욱 격렬해졌다. 작은 몸집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향해 덤벼드는 모습은 흡사 거대한 인간 세상의 정쟁(政爭) 같았다. 저 작은 생명들도 저리 아귀다툼을 하는데, 하물며 이 거대한 세상 속 인간들은 오죽할까. 노인은 쓴웃음을 지었다.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부를 쌓기 위해, 혹은 그저 남보다 우위에 서기 위해 서로를 헐뜯고 비방하며 모략하는 인간 군상들. 그들의 탐욕과 시기는 끝없이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순수하고 선량한 마음들이 상처받고 짓밟혔다.
노인은 문득 자신이 저 화단 속 벌레들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 역시 알게 모르게 누군가의 모략과 시기의 대상이 되었고, 또 누군가는 노인 자신을 이용하려 들었을 것이다. 이 지긋지긋한 정쟁의 굴레에서 과연 벗어날 수 있을까. 어디에도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끝없는 진흙탕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느낌이었다.
"쯧… 저것들 보게."
노인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벌레들의 싸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승자와 패자는 계속해서 바뀌고, 영원한 승자는 없었다. 인간 세상도 마찬가지였다. 한때는 권력을 움켜쥐고 세상을 호령했던 이들도 결국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새로운 얼굴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며 똑같은 정쟁을 반복했다.
노인은 지친 듯 눈을 감았다. 따가운 햇살 아래, 화단은 침묵했지만 벌레들의 소리 없는 정쟁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정쟁은 노인의 마음속에도 깊숙이 스며들어 또 다른 한숨을 토해내게 했다. 이 모든 부조리한 세태 속에서, 노인은 그저 작은 화단 앞 벤치에 앉아 한탄할 수밖에 없었다. 언제쯤 이 지긋지긋한 정쟁은 끝이 날까. 아니, 과연 끝이 날 수는 있을까. 노인의 한숨은 깊어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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