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속의 꽃 한 송이

by seungbum lee


안개 속의 꽃 한 송이

이른 새벽, 안개가 자욱하게 내려앉은 숲속을 걷는다. 세상이 모두 잠든 듯 고요하고, 공기는 묵직하게 가라앉아 있다. 온 세상이 흐릿한 초록빛으로 물든 그 한가운데, 문득 내 시선에 들어온 건 단 하나의 꽃이었다. 마치 안개의 결계를 뚫고 피어난 듯, 가지 끝에 외로이 매달린 작은 분홍빛 꽃 한 송이.

너무 작고 여려서, 바람이라도 세게 불면 금방 떨어져 버릴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 속엔 놀랍도록 단단한 생의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안개에 싸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순간, 그 꽃은 조용히 속삭이듯 나를 불러세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내는 중이야.”

세상이 흐릿하고, 마음이 어지럽고, 방향을 잃은 듯한 날들 속에서도 그 꽃은 말한다. 피어날 자리를 기다리지 않고, 햇살을 보장받지 못한 자리에서도 피어난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아도, 누구에게도 보여지지 않아도.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숨을 고른다. 꼭 그렇게 살아내야겠다고, 내 안의 목소리가 낮게 다짐한다. 위대하지 않아도 괜찮고, 화려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오늘 하루도 이 자리에서 피어 있겠노라고.

그 꽃 하나가 내게 가르쳐준 것은 ‘존재’의 힘이었다. 한 송이 꽃이 있어, 안개 낀 이 아침이 빛났고, 그 빛이 내 마음 한편을 따뜻하게 데워주었다. 세상 가장 조용한 위로는 그렇게 찾아왔다.

나도 누군가의 안개 속에, 그런 꽃 한 송이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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