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학당(永山學堂)
영산학당(永山學堂), 1935년 여름
새로 지어진 학당 건물 앞에 '영산학당'이라는 간판이 걸렸다. **윤서영의 '영(永)'**자와 **이산갑의 '산(山)'**자를 따서 만든 이름이었다.
이산갑은 간판을 올려다보며 조용히 손을 모았다.
이산갑: (속으로) '서영아... 네 이름을 이곳에 남긴다. 잊지 않겠다.'
강지윤이 그의 옆에 섰다.
강지윤: "좋은 이름이에요. 서영 언니도 기뻐하실 거예요."
이산갑: (고개를 끄덕이며) "우리... 다시 시작합시다."
하지만 두 사람은 알고 있었다. 앞으로의 길이 쉽지 않으리라는 것을.
1935년, 조선의 암울한 현실
1931년 만주사변 이후, 일제의 억압통치는 더욱 심해졌다.
헌병경찰의 즉결처분권 - 재판 없이 조선인을 처벌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었다. 거리에서, 집에서, 일터에서... 언제 어디서든 일본 헌병이 조선인을 잡아갈 수 있었다.
105인 사건 조작 -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하기 위해 허위 사건을 조작했다. 무고한 조선인들이 고문당하고 처형당했다.
민족 자본 억제 - 조선인의 사업을 억압하고, 일본 자본만 성장시켰다. 조선인은 자국에서도 가난할 수밖에 없었다.
역사 왜곡 - 임시역사교재용 도서조사위원회를 설치해 국사 교과서를 조사하고 수정했다. 조선의 역사를 왜곡하고, 일제의 지배를 정당화했다.
그리고 가장 잔혹한...
무차별 징용 - 조선의 젊은이들을 강제로 끌고 가 일본의 공장, 탄광, 전쟁터로 보냈다.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 부지기수였다.
백성들의 삶은 지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