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손님과 고양이

by 인생서점 북씨

혜림 문고에는 스물한 살 된 고양이가 살고 있었다.

21년 전 버스정류소 가판대 밑에 있던, 그 고양이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우유를 사서 주면 먹지 않고 숨기 바빴다고 한다. 3일이 지난 후, 배가 고팠던 아기 고양이는 바로 앞쪽에 있는 혜림 문고 문 밑으로 들어왔다. 내가 출근해서 샤시 을 올리는 순간 주먹만 한 노란 털 뭉치가 그곳에 웅크리고 있어 깜짝 놀랐다. 기운이 없었는지 안아올려도 가만히 있었다. 집사로 선택된 순간이었다. 아기 고양이 에게 예삐 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집에는 기르는 강아지가 새끼를 낳아 집으로 데리고 갈 수는 없었다. 고양이는 그날부터 서점에서 먹고 자고 마스코트가 되어 학생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나는 강아지에게서 느낄 수 없는 도도한 매력에 마음을 빼앗겼다. 나에게 고양이는 종이 다른 또 하나의 가족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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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 오신 손님 중에 유독 고양이를 싫어하시는 학원 선생님이 계셨다.

오실 때마다 고양이가 싫다며 온갖 싫은 소리를 했다. 예삐는 무섭다고 소리 지르는 선생님 앞에 일부러 접근해 놀래키는 걸 즐기는 듯했다. 나는 아기 고양이를 혼자 두고 퇴근할 때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고양이를 혼자 둘 수 없어, 쉬는 날 없이 서점 문을 열었다. 혜림 문고는 내 딸 이름을 따서 지었다. 그 시절 대부분의 가게는 큰아이 이름으로 간판을 만들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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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가장 기억에 남은 단골손님은 초등학교 3학년 어린 학생이었다. 날마다 서점에 놀러와 책 읽기를 즐기는 그 아이는 100여권의 위인전을 다 읽고 난 후 “다른 책 읽을 것 없어요”라고 물었다. 내가 세계명작을 권하자, “저는 위인전만 읽어요”라고 했다 “지금은 없으니 나중에 구해줄게”라고 했다, 그 애는 5학년이 되던 해부터 오지 않았다. 한동안보지못해 궁금했는데 그 학생의 집과 가까이 지내고 있던 친구가 그 애 누나가 교통사고로 잘못되는 바람에 가족이 전부 캐나다로 이민 갔다고 했다. 안타까웠다. 3년 가까이 매일 서점에 놀러와서 책을 읽던 아이가 말없이 떠나 섭섭했다. 몇 년이 지났다. 그 아이는 중학생이 되어 서점에 다시 나타났다. 반가움에 어떻게 지냈냐고 물었더니 캐나다에서 중학교 2학년이며, 한국에 나오자마자 가장 먼저 찾아왔다고 했다.

그때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한국에 오면 꼭 다시 찾아오겠다는 말을 했다. 20년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동네 시장에서 우연히 옛날에 알고 지내던 사람과 마주쳤다 나를 보자마자 “혹시 누구 아시죠?”라더니 그 학생의 소식을 말했다. 지금은 한국에 돌아와 울산 외무부 직원으로 일하는데, 혜림 문고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번 찾아간다고 했다는 말까지 덧붙었다. 그 어린 단골손님과 나의 책방 관계를 아는 몇몇의 사람들은나를 볼 때마다 왔다 갔는지를 물었다. 나는 그때 다른 지점에서 일했기 때문에 그때의 그 학생이 왔다 갔는지는 모른다. 어른으로 성장했을 책벌레였던 어린 단골손님을 항상 마음속에 기억하고 있다.


나는 고양이가 기다리는 서점으로 출근할 때마다 “돌아갈 곳이 있어 참 다행이야”라는 마음을 품곤 했다. 예삐가 있던 책방은 나의 청춘을 지내온 무엇보다 특별한 공간이었다.

세상이 디지털화 되면서 서점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전환점이 필요한 시기이기도 했다

변화가 필요했던 남편과 나는 우리의 청춘을 꾹꾹 눌러 37년의 세월도 서점과 함께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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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을 떠나왔을 때, 마음은 그곳에 두고, 몸만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만 이사할때까지 살아 있어준 예삐 때문에 큰 위안을 받았다. 서점문을 닫자 집으로 들어온 예삐는 당시 21살이었다. 집에는 다른 많은 고양이들이 있었지만 늙은 예삐는 혼자 있는 걸 좋아했다. 그러다 2년을 더 살고 23살이 되던 해에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그무렵이 내겐 가장 힘들었던 때라 마음의 여유가 없어 더 잘해주지 못했다. 떠나보내면서 마음으로 많이 울었다.


예삐가 떠난 소식을 블로그에 올렸다. 책방 이름도 바뀌고 블로그 개설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예전에 고양이를 보러 왔던 학생들의 댓글이 달려있었다. 너무 고마웠다. 예삐가 떠날 때 소리 내어 울지 못했던 울음이 한꺼번에 터져나와 참았던 눈물을 와르르 쏟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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