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청춘 나의 고양이

서점고양이

by 인생서점 북씨

아주 오래전 미아역 4번출구 앞 혜림문고에 스물 한 살된 고양이가 살았다

2000년초 봄비가 며칠째 봄을 재촉하고 있을 때 쯤이었다.

출근해서 샤시를 들어올리는 순간 주먹만한 노란 털뭉치가 그곳에

웅크리고 있었다. 기운이 없는지 안아올려도 가만히 있었다. 집사로 선택된 순간이었다.

나는 옆 슈퍼로 달려갔다. 아기냥이가 먹을수 있는 사람아기 분유를 사와 물에 타서

숟가락으로 떠 먹였다 아기 고양이 에게는 예삐 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집에는 강아지가 새끼를 낳아 집으로 데리고 갈 수는 없었다.

아기냥이가 서점에 들어온지 사흘쯤 되었을 때 한 손님이 말했다

“며칠전까지만 해도 가게 앞 가판대 밑에서 비바람을 피하고 있었어요“

퇴근시간이 되면 혼자 있을 아기고양이가 걱정이 됐다. 혹시 혼자 무섭진 않을까? 별일은 없겠지,

어느새 내 마음은 온통 고양이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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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양이를 혼자 둘 수 없어, 쉬는 날 없이 서점 문을 열었다.

예삐는 서점에서 먹고 자며 학생들의 마스코트가 되어

사랑을 독차지했다.

옛말에 고양이가 들어오면 집안에 복이 들어온다는 속설이 있다.

과학적 근거는 없으나 예삐덕분인지 서점은 학생들의 손님으로 나날이 발전하고 있었다.

그중 단골손님인 학원 선생님 한분은 고양이를 유독 싫어했다

올 때마다 아기티를 막 벗어나고 있는 개구쟁이 같은 예삐를 보면 무섭다고 소리 질렀다

장난치는걸로 알았을까?

그럴 때 마다 고양이는 일부러 접근해 놀래키는 걸 즐기는 듯했다.

나는 선생님께 죄송했다. 하지만 장난꾸러기 같은 예삐의 모습도 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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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수 없이 계절이 바뀌고, 예삐와 나는 서로의 일상이 되어 있었다.

처음엔 내가 예삐를 돌보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고양이가 서점을 지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나를 기다려 주는 곳이 있다는 것,

그렇게 예삐도 나와 함께 나이 들고 늙어가고 있었다.

세상이 디지털화 되면서 서점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전환점이 필요한 시기이기도 했다

책방문을 닫는다고 하자 단골손님들이 많이 아쉬워했다

무엇보다 예삐의 나이듦과 내 청춘을 꾹꾹 눌러 담은

37년 서점은 나에겐 세상에서 가장

익숙한 공간이었다. ”다른 곳에서 오픈하면 꼭 연락드릴게요”

라는 메모를 에 붙어두고 그곳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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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생 책은 천직이라 믿고 살아왔다. 그래서 양주로 이사하면서도 자연스레

새로운 책 관련 일을 준비했다. 하지만 밤이 되면 마음 한켠이 허전했다.

돌아갈 곳이 없다는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37년을 함께한 서점의 시간과 예삐가 지냈던 익숙한 공간이 한순간에 사라진 자리엔,

마치 섬에 홀로 남은 사람처럼 고립감만 남았다.

사람들 사이에 있어도 마음은 늘 외로웠다.

다만 그때까지 살아 있어준 예삐 덕분에 그나마 위로가 되주었다.

서점을 정리하고

집으로 들어올 당시 예삐의 나이는 21살이었다.

집에는 다른 많은 고양이들이 있었지만

늙은 예삐는 혼자 있는 걸 좋아했다.

그러다 2년을 더 살고 23살이 되던 해에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그무렵은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지쳐 있던 때였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많은 상처를 받았고,

믿음이 무너졌다 마음의 여유가 없어 예삐에게

더 잘해주지 못했다. 떠나보내면서 나는 오래도록 마음속으로 울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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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림 문고는 딸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그 시절 대부분의 가게는 큰아이 이름으로 간판을

만들어었다. 나는 서점을 언젠가 딸에게 물려줄수 있을거라 믿었다.

하지만 세상은 내 생각처럼 흘러가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우리부부는 둘다 세상을 너무 만만하게 본건 아니었을까,

책만 팔면 먹고 사는데 아무 문제가 없을거라는 단순함으로

세상을 살았다. 그래서였을까

우리는 한번도 노후나 미래라는 단어를 진지하게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돌이켜보면 그 믿음이 얼마나 순진했는지,

그 순진함이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게 했는지,

인생의 쓴맛을 겪고 나서야 뒤늦게 깨닫고 후회했다.

예삐가 함께했던 시절이었다.


예삐가 떠난 소식을 한 장의 책갈피처럼 머무를수 있기를 바라며 블로그에 올렸다.

책방 이름도 바뀌고 블로그 개설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예전에 고양이를 보러 왔던 학생들의 댓글이 달려있었다.

너무 고마웠다. 예삐가 떠날 때 소리 내어 울지 못했던

울음이 한꺼번에 터져나와 참았던 눈물을 와르르 쏟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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