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수분

나를 쓰게 하는 힘

by 인생서점 북씨

코로나 팬데믹이 오기 바로 전,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양주에서 제법 높은 호명산 자락 아래로 이사를 했다

크지 않은 적당한 집에 손바닥 만한 마당이 있는 집이었다.

잔디를 깔고 화훼시장을 찾았다

꽃이 지면 매실을 달고 있는 매화나무를 심고,

눈부신 목련과 눈밭에서 꽃이 핀다는 설매화도 들였다

붉은 연산홍도 울타리 가장자리로 죽 늘어 심었다

나무들이 꽉 들어차는 바람에 마당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해졌다

그럼에도 칼바람이 마당을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봄이 오면 새들이 바람을 실어 날랐다

마당은 초록으로 다시 번졌다

산 위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늘 소나무를 향기를 실어 왔다

야외 테이블에 앉아 산 쪽을 바라보고 있으면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고

마치 펜션에 놀러 온 사람처럼 부르주아 기분을 내며 일상을 즐겼다

나는 바람에 취해, 모래성 같은 건물을 짓고,

그 건물이 화수분이 될 거라 의심 없이 믿었다.

계절이 8번이나 바뀌고 소소한 날들이 지나간 뒤,

운명의 수레바퀴에 치이고 마음에는 커다란 구멍이 났다.

모래성은 작은 파도에 소리 없이 사라졌다

그 와중에도 나는 사회적기업 지정을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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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설립한 회사 사정이 좋지 않아 통장 잔고는 늘 비어 있었다.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다시 뛸 힘이 없었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대책 없이 아무 글이나 끄적거렸다.

그 무렵 나는 『이 책은 돈버는 법에 관한 이야기』를 붙잡고 있었다.

나는 책에 밑줄을 긋는 것을 싫어했다.

“어이쿠, 아까워.”

책이 망가질까 봐, 빈 여백 하나도 낭비하는 것 같았다.

처음으로 선 긋던 날, 나는 책에 개입 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책마다 밑줄을 하고 메모를 했다.

나는 앞장 빈 페이지에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말을 거의 주문처럼 반복해 적었다

”내가 책을 썼으면 10권도 더 썼어.”

백마고지 전투에서 전사한 형을 둔 장남, 시아버지의 말이었다.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었던 그 이야기는 결국 한권의 책을 내면서 멎었다


나 또한 말하지 못한 것들이 문장으로 튀어 나왔다

밤마다 A4용지에 빼곡이 채워졌다.

”겨울에는 봄의 길들을 떠올릴수 없고, 봄에는 겨울의 길들이 믿어지지 않는다“

마음을 흔드는 문장들이 넘쳐나는 김훈의 자전거 여행중에 나오는 대목이다.


과거를 돌아보는 일은 인간이 살아온 삶의 궤적을 구성하는

복잡한 연결망을 가닥가닥 풀어내는 일이다

잘못 얽힌 실타래를 한올한올 풀듯, 문장 하나 하나를 풀어갔다

쓰기를 시작하면서 부터 읽으며 만난 문장들이

지우고 다시 쓰는 사이 방향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나는 내가 쌓은 모래성을 쳐다만 봐도 화수분이라 착각했었다.

몇 해 전 돌아가신 엄마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그것만 쳐다보면 밥이 생기냐? 돈이 생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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