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사꽃 아래

by 인생서점 북씨

나무가지마다 소름처럼 돋아 있는 꽃망울이

요이땅 하고 터지는 순간이 봄일 것이다.

펑 하는 순간 세상은 꽃들의 향연으로 가득 찬다.

복사꽃 필 때의 순간이 그랬다. 만약 봄을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아마 저 꽃잎이 바로 봄의 모습이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앞에서 펼쳐진 수많은 분홍빛의 꽃잎들이 바람결을

따라 너울거리고 있었다

그 꽃잎은 하나의 색이 아니었다.

분홍이었다가, 하양이었다가, 문득 붉은 기운으로 스며들었다.

내 마음도 그 작은 스펙트럼 안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그날, 복사꽃은 유난히 눈부셨다.

그런데 그 꽃나무 아래, 가끔 나를 보면 따라오던

선한 눈빛을 한 보더콜리 별이가 오물과 뒤섞인 채 묶여 있었다.

왜 저렇게 예쁜 꽃 아래 저 아이는 묶여 있어야 할까.

나는 한 걸음도 떼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 순간, 별이의 존재는 아이러니 그 자체였다.

울타리도 대문도 없고

앞마당이 곧바로 밭이 되는 허름한 오막살이 같은 집에는

노부부와 별이가 함께 살고 있었다.

별이 집은 마당과 밭의 경계쯤 되는 곳에 있었다.

바로 그 옆에 개복숭아 나무가 서 있었다

한 번도 그 나무에서 꽃이 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스크린샷_20-2-2026_165426_chatgpt.com.jpeg

나무는 작은 고목처럼 보였고,

가지가 잘려 나간 자리마다 옹이가 단단히 박혀 있었다.

그 곁에 선 노부부의 얼굴에도 세월의 주름이 깊게 자리하고 있었다.

나무와 사람은 그렇게 나란히 늙어가고 있는 듯했다.

그날, 강아지의 발밑으로 떨어진 꽃잎은 아름다움을

상실한 채 온통 개의 오물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나무 아래서 옛날을 추억하던 별이 할머니의

거칠고 마른 손끝에 꽃잎이 얹혀 있었다.

“봄에는 복사꽃이 제일 예쁘지“ 묻지도 않는

이야기를 불쑥 꺼내면서

한 가지를 꺾어 내 앞으로 불쑥 내밀었다,

나는 꽃이 필 때 는 복사꽃으로 불린다는 것도,

그 꽃나무가 개복숭아 나무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분홍빛이 너무 선연해서,

왠지 누군가가 결의를 다졌던 자리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무 사이를 뚫고 들어온 분홍빛 햇살에 나는 한없이 마음이 서늘해졌다

마치 분홍빛 눈이 내리는 듯했다


늘 하얀 눈을 보며

‘눈이 분홍색이라면 세상은 어떻게 달라질까?’ 궁금해하곤 했는데,

복사꽃이 바람에 흩날릴 때마다

그 답을 보는 것 같았다. 아, 분홍빛 눈이 내린다면,

아마도 온 세상이 설렘으로 물들겠구나,

몇 년 후, 노부부가 별이만 남겨두고 이사가던 날

그날, 꽃봉오리는 한꺼번에 터져 있었다.

별이는 불쑥 나를 찾아왔다

대문 밖에 서서,

나를 보자 함박웃음을 지으며 꼬리를 흔들었다.

그 웃음은 갈 곳을 잃은 별이의 마지막 희망이었을까.

아니면, 그토록 빛나던 복사꽃이

우리를 그 자리로 이끈 것이었을까.

그날의 인상이 너무 강해서

주변의 모든 것이 사라진 듯했다.

그날 나를 멈춰 세운 것은 복사꽃이었고,

나의 시선이 머문 곳은 별이었다.

image.png 별이가 아홉살 되던 2025년4월 심장사상충치료를 받는중에서 결국 그 병을 이기지 못하고 떠나갔다


작가의 이전글새벽을 이겨내는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