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지마다 소름처럼 돋아 있는 꽃망울이
요이땅 하고 터지는 순간이 봄일 것이다.
펑 하는 순간 세상은 꽃들의 향연으로 가득 찬다.
복사꽃 필 때의 순간이 그랬다. 만약 봄을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아마 저 꽃잎이 바로 봄의 모습이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앞에서 펼쳐진 수많은 분홍빛의 꽃잎들이 바람결을
따라 너울거리고 있었다
그 꽃잎은 하나의 색이 아니었다.
분홍이었다가, 하양이었다가, 문득 붉은 기운으로 스며들었다.
내 마음도 그 작은 스펙트럼 안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그날, 복사꽃은 유난히 눈부셨다.
그런데 그 꽃나무 아래, 가끔 나를 보면 따라오던
선한 눈빛을 한 보더콜리 별이가 오물과 뒤섞인 채 묶여 있었다.
왜 저렇게 예쁜 꽃 아래 저 아이는 묶여 있어야 할까.
나는 한 걸음도 떼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 순간, 별이의 존재는 아이러니 그 자체였다.
울타리도 대문도 없고
앞마당이 곧바로 밭이 되는 허름한 오막살이 같은 집에는
노부부와 별이가 함께 살고 있었다.
별이 집은 마당과 밭의 경계쯤 되는 곳에 있었다.
바로 그 옆에 개복숭아 나무가 서 있었다
한 번도 그 나무에서 꽃이 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나무는 작은 고목처럼 보였고,
가지가 잘려 나간 자리마다 옹이가 단단히 박혀 있었다.
그 곁에 선 노부부의 얼굴에도 세월의 주름이 깊게 자리하고 있었다.
나무와 사람은 그렇게 나란히 늙어가고 있는 듯했다.
그날, 강아지의 발밑으로 떨어진 꽃잎은 아름다움을
상실한 채 온통 개의 오물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나무 아래서 옛날을 추억하던 별이 할머니의
거칠고 마른 손끝에 꽃잎이 얹혀 있었다.
“봄에는 복사꽃이 제일 예쁘지“ 묻지도 않는
이야기를 불쑥 꺼내면서
한 가지를 꺾어 내 앞으로 불쑥 내밀었다,
나는 꽃이 필 때 는 복사꽃으로 불린다는 것도,
그 꽃나무가 개복숭아 나무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분홍빛이 너무 선연해서,
왠지 누군가가 결의를 다졌던 자리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무 사이를 뚫고 들어온 분홍빛 햇살에 나는 한없이 마음이 서늘해졌다
마치 분홍빛 눈이 내리는 듯했다
늘 하얀 눈을 보며
‘눈이 분홍색이라면 세상은 어떻게 달라질까?’ 궁금해하곤 했는데,
복사꽃이 바람에 흩날릴 때마다
그 답을 보는 것 같았다. 아, 분홍빛 눈이 내린다면,
아마도 온 세상이 설렘으로 물들겠구나,
몇 년 후, 노부부가 별이만 남겨두고 이사가던 날
그날, 꽃봉오리는 한꺼번에 터져 있었다.
별이는 불쑥 나를 찾아왔다
대문 밖에 서서,
나를 보자 함박웃음을 지으며 꼬리를 흔들었다.
그 웃음은 갈 곳을 잃은 별이의 마지막 희망이었을까.
아니면, 그토록 빛나던 복사꽃이
우리를 그 자리로 이끈 것이었을까.
그날의 인상이 너무 강해서
주변의 모든 것이 사라진 듯했다.
그날 나를 멈춰 세운 것은 복사꽃이었고,
나의 시선이 머문 곳은 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