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한 학기가 끝이 났다. 마지막 시험을 끝내고 나면 굉장히 개운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뭐 그렇지도 않고. 하루 이틀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실감이 나지 않는다. 월요일이 되면 좀 실감이 날까? 저번 학기와 그전 학기에는 끝나는 순간 뭔지 모를 해방감 같은 걸 느꼈는데. 이런 걸 보니 나도 이제 대학 생활에 완벽 적응한 것인가? 그런 우스운 생각이 들기도 하다.
이번에도 어려움이 많았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공황에, 울고, 난리 치고, 스스로를 해치고…. 평탄한 일주일은 없었다. 껍데기만 학교를 다닌 기분이 들기도 하다. 배우기보다는 그냥 해치우거나 지나치기에 바빴던 것 같다. 오늘은 이렇게 버티고, 내일은 저렇게 버티고... 그냥 뭘 해도 공허해서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내내 있었달까. 그냥 쉽게 말해서 뇌를 집에 놔두고 학교에 다닌 것 같다.
... 그래도 기특한 점을 이야기해볼까? 일단 이번 학기에는 입원을 하지 않았다. 오, 이것만으로도 나름 괜찮은 성과 같은데. 몇 년 만에 실기시험을 봤고, 드디어 1학년 1학기 이후로 전공실기 학점이 제대로 나온다. 실기시험 시즌이 되면서 불안감도 심해지고, 응급실도 갔다 왔다. 수액도 맞으러 다니고. 이번에도 못 볼까 걱정이 많았는데, 보고 나오니 생각보다 그리 덜덜 떨 일은 아니었다. 학점이 나오면 또 내가 무슨 소리를 할지 모르겠지만! 어떤 결과가 나오든 일단 잘 버텼다. 그래, 참 잘했다.
아직까지 고민하고 있긴 한데, 지금 하고 있는 전공이 나에게 맞는가? 의문이다. 궁극적으로 나는 노래를 하고 싶은 게 아닌가, 생각해보기도 하고. 지휘 전공으로 살아가는 게 보통 일이 아닌 것 같다. 학교만 다녀도 할 일이 아~주 아주 많은데. 당장 졸업하는 것도 죽느냐 사느냐 이야기가 나오는데, 졸업 후엔 내가 어떻게 살지도 벌써부터 괜한 걱정이 들었다. 진짜 편입이라도 봐야 하나? 하면서 다른 학교 편입요강을 찾아보기도 했다. 챗지피티에게 이건 어때? 저건 어때? 많이 물어서, 아마 챗지피티가 사람이었다면 나에게 그만 좀 하라고 잔뜩 성질을 냈을 것 같다.
나 진짜 어떻게 살지? 이런 쓸데없는 고민을 하루에 몇 십 번씩 하면서 제대로 된 결론이 난 적이 없다. 자퇴를 그렇게 외쳐대면서, 막상 자퇴서 쓸 용기는 나지 않는다. 도대체 바이올린을 그만둘 땐 어떻게 그만둔 거야? 그땐 살짝 더 미쳐있었던 건가? 그때의 용기를 가지고 올 수 있담 좋을 텐데. 그럼 자퇴든 편입이든 뭔갈 해서 이 지옥에서 약간은 벗어날 수 있을 거 아냐!
여러 가지 시도를 하면서 알게 됐다. 생각보다 죽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고, 그냥 어쩔 수 없이 살아야 한다는 것을. 당장 내일도 별로 안 살고 싶은데 졸업은 웬 말? 취직은 웬 말? 내가 감히 미래를 꿈꿔도 될까? 아오. 머리가 복잡하다. 예전에 찾아갔던 신점 보는 곳에서 들은 말이 있다. '너는 아무리 죽으려고 애써도 결국은 살아! 식물인간이 되어도!'라고 하셨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차마 외치지 못한 말이 있다.... '시 X'! 태어난 것도 맘대로 안돼, 죽는 것도 맘대로 안돼.. 신은 나를 왜 만든 걸까? 꿈에 나와서 얘기라도 해봐라. 빨리.
얼렁뚱땅 끝냈지만 이번학기 잘 보냈어~라고 글을 마치고 싶었는데 이게 뭐람. 일단은 그래... 수고했어. 수고했다... 작년 가을 이후로 쭉 뭘 해도 공허한데. 뭘 해도 채워지지 않는 이 마음으로 계속 살아가도 되려나, 싶은... 내가 잘 살 수 있을까요? 살다 보면 진짜 좋은 날이 오는 건가? 이렇게 하늘에 외쳐보고 싶다. 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