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일이 끊겼을 때,
나는 오히려 기뻤다.
입대 이후 단 한 번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하루’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
늦잠도 자고,
낮에는 햇살을 보며 커피도 마시고,
밤엔 가족과 함께 영화도 보고.
“이게 진짜 사는 거구나.” 라고 느꼈다.
하지만 그 여유는 오래가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자 머릿속을 맴도는 건 오직 하나였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라는 말이 한밤중 갑자기 목을 조여왔다.
휴식은 곧 현실의 공백이 되었고,
편안함은 어느새 불안의 그림자로 바뀌었다.
나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력서를 썼고, 20곳이 넘는 회사에 지원서를 냈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좌절도 했다.
내가 해온 다양한 경험들이
때로는 “이도 저도 아닌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는 현실에 마음이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나는 누군가의 아버지였고, 누군가의 아들이었으며,
무엇보다 내 인생의 책임자였기 때문이다.
이 시기를 버틸 수 있었던 건
결국 ‘가족’이었다.
아내와 딸에게는 듬직한 남편, 아빠로.
부모님에게는 책임감 있는 아들로.
그리고 나 자신에게는
“넌 다시 일어날 수 있어”라는
지속적인 주문을 걸었다.
나는 그때
내 마음을 매일 다독였다.
“지금은 잠시 멈춤일 뿐이야.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어.
다만, 포기하지 말자.”
그 시간들을 지나며
나는 조금 더 단단해졌다.
조금 더 조용해졌고,
조금 더 내 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무기력함이 나를 덮칠 때마다 나는 되뇌었다.
그리고 그렇게 믿었다.
진짜 중요한 건
남들의 속도가 아니라,
나의 방향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