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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염색

by 아무



요가를 마치고 매트에 남겨진 몇가닥의 머리카락


뿌리는 검정색, 끝으로 갈수록 노랗게 탈색되어 있다.


그러고보니 뿌리염색 안한지가 꽤 되었네,

머리가 길어나는 건 매일매일 조금씩 길어나는 거라서 잘 못 느끼고 있었는데

뿌리가 자라나 어느새 손가락 한마디 정도의 길이가 되었다니.

새삼 시간의 흐름이 느껴진다.


검정 머리가 싫어서, 뭔가 안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괜히 어두운 사람으로 보이는 것 같아 마음에 들지 않아서

밝은 머리가 좋아서, 라는 여러가지 이유로 계속 밝은 머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밝은 머리를 하다보면 뿌리가 자라나는 것이 너무나 눈에 잘 보여서

매달 지겨운 뿌리염색을 계속 이어가고 있었지.

미용실에서 뿌리염색하기엔 비용도 시간도 만만치 않아서 집에서 셀프로 염색을 햇지.

그것도 한 2달전이 마지막이네.


회사에 병가를 내면서 뿌리염색도 그만 두었다.

그전 부터 자라났던 뿌리지만 그냥 염색도 다 귀찮았다. 별로 보여지는 것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자라라 뿌리야, 자라라 흰머리야.


오늘 보게된 나의 머리카락.

시간의 흐름이 보이네. 뿌리가 자란 만큼 나의 시간도 흘렀지.

그리고 그 시간동안 다양한 일이 있었지. 괜히 머리카락 한올한올 색깔의 변화에

그동안의 많은 감정들이 담긴것 같다.


탈색되어진 상한 머리카락, 그리고 끊임 없이 자라나는 새까만 검정 머리카락.

괜히 의미 부여를 해본다. 탈색된 머리카락은 이전의 나, 새로 자라나는 건강한 검정 머리카락은

새로운 도전을 위한 한발을 내딛는, 용기의 마음을 가진 나.


긴머리를 싹둑 잘랐다. 에서 느껴지는 심경의 변화, 그리고 새로운 결심

왠지 비슷한 것 같다.



2024년 연말을 지나고 있는 이 시간.

작년과 달라진건 숫자뿐인데, 왜이렇게 다른 느낌이 들까.

23년의 이 시기, 24년의 이 시간 너무나도 다른 나의 마음.

근데 별로 어색하지 않다? 지금의 이 마음이, 오히려 원래부터 내 것 같은 느낌이다.


탈색되어 버린 색이 바래버린 머리카락, 상해버린 머리카락을 잘라내듯

이전의 일을 훌훌 털어내고, 새로 자라는 머리카락 같은 마음으로 앞으로의 삶을 잘 꾸려나가보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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