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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날 사직서 쓰는 상여자 어떤데

by 아무




오늘은 나의 생일이다.


생일, 왁자지껄 생일 파티를 했던 적이 언제더라....

벌써 10년도 더 넘은 것 같다. 세월이 흐르는 게 무섭다.


생일, 어릴 적엔 무조건 생파! 해야 해!! 생일 파티에 목숨 걸던 나

지금은 그냥.. 365일 중 하나? 누가 축하해 주면 감사합니다.

모르고 넘어가도 개이치 않는 그런 보통의 날이 되어버린 듯하다.


엄마가 미역국을 끓여 준다고 해도 "괜찮아요~ 안 챙겨도 됩니다!!"라고 넘길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근데, 오늘 만 33의 생일은 조금 다를 듯하다.

영원히 기억할 만큼 큰 사건도 아니지만, 인생의 큰 사건으로 남기고 싶지도 않지만

"생일과 사직서"라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네.


사직서를 썼다.

회사에 퇴사 의사도 밝혔다. 이제 진짜 돌이킬 수 없다.

한번 굴러가기 시작한 수레바퀴, 레일을 달리기 시작한 기차는 속력을 줄일 수가 없다.

이제 목적지로 냅다 질주하는 거다. 그날이 왔다. 어쩌면 취뽀! 에 기뻐하던 그 순간조차

마음속 한 구석에 있던. 퇴사하는 날. 그날이 정말 오고야 말았다.


이렇게 가는 건 예상치 못 했지만, 잘살아라~~~ 나는 탈출이다!! 하고

공중에 수십의 돈을 뿌리는 대 부호처럼 훨훨 가고 싶었는데,

적어도 이렇게 급작스럽게 가는 그림은 없었는데..


두 달 전의 병가의 시작부터 이미 나의 회사생활의 결론은 정해져 있던 걸지도 모른다.


시원 섭섭한 마음이 꽤 들었다. 이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도 신기하다.


그래도 거지 같은 추억만 있던 곳은 아니니깐.

좋은 사람들도 있었고, 일에 보람 있고 성취감을 느꼈을 시기도 있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떠올리면 서글프지만, 회사를 떠올리면 머릿속의 슬픈 음악이 바로 멈추는 마법의 회사

끝을 향해 달려가는 생지옥의 열차에서 나는 이제 뛰어내리려고 합니다.


앞으로의 삶, 어떻게 될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미지의 삶이지만, 그래도 후회하진 않을 것 같아요.

내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 곳에서 고통스러워할 거냐. 미래를 알 수 없는 미지의 삶을 걸어갈 것 이냐.

적어도 아무리 미래를 그려보려고 해도 그려지지 않는 곳에서 고통받는 것보다는 안 가본 길이라 불안하지만 그릴 수 있는 무언가라도 있는 삶을 선택할래.


100세 인생, n잡인생, 이제 겨우 첫 번째 회사의 사직서다.

나를 위해, 나는 떠납니다.


어쩌면 오늘 평생의 가장 큰 좋은 생일 선물을 받은 걸 지도 모른다.


나는 할 수 있다. 남은 기간 얼른 각종 서류 처리해 버리고 자유가 되자.

회사가 아닌 "나"에게 집중하는 삶. 내 마음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자.

평생 "나"를 데리고 살 칭구는 "나"밖에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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