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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d 강상원 Oct 22. 2023

나에게는 나를 파괴할 자유가 있다

Thank you for smoking

 "이게 아닌데, 이렇게 살고 싶지 않은데, 이게 아니었는데. 나 뭐 하지? 앞으로 어쪄지?"


#나에게는 나를 파괴할 자유가 있다


 날씨가 꾀나 쌀쌀해져 있었다. 차가운 공기는 벌써 한 해가 얼마 안 남았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낮아진 공기만큼이나 침잠된 내 정서가 하루하루 우울을 가속시켰다. 나의 30살은 그렇게 아무런 소득도, 특징도, 서사도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거울을 보니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서 있었다. 눈은 퀭했고, 나른해 보였다. 짙은 다크서클은 거울 속 익숙한 듯 낯선 사람을 더욱 졸리고, 피곤하고, 무기력하게 보이게 했다. 그늘진 얼굴은 꿈도 야망도 없는 사람의 얼굴을 대변하고 있었다.

 피부는 푸석푸석하며 군데군데 얼굴 위로 붉고 검은 여드름 흉터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선박 밑에 다닥다닥 붙어 기생하는 따개비가 그의 얼굴은 덮은 듯했다. 따개비는 가장 강력한 천연 접착제라는데. 그래서인지 남자의 얼굴에는 패배, 수모, 굴욕 등이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머리가 자주 가려웠는지 두피를 자주 긁은 흔적이 보였다. 머리를 긁고 나면 조금 더 휑해져 있는 것 같았다. 도리어 입술, 턱 주변이 더 시커메 보였다. 다만 그 시커먼 털들도 길이가 제각각 따로 놀고 있었다. 버려진 정원의 나무들 같았다.

 전체적으로 거칠고, 수분이 마른 듯 한 피부를 대변하듯 입술 위엔 미처 다 떨어지지 못한 각질이 있었다. 그리고 그 입술은 담배를 자주 물었다. 매캐하고 자욱한 망각의 연기가 몸을 헤집고 나면 잠깐은 거울 속의 남자를 마주하지 않아도 됐었다. 무척이나 혐오스러운 그 얼굴을 잊을 수 있었다.

 월 5만 원의 일조(日照)권을 지불하지 못했던 0.7 평의 공간에는 낮과 밤이 없었다. 어두컴컴한 공간을 밝히는 빛은 게임이나 티브이 쇼였다. 가끔은 SNS가 비춰주는 타인의 삶이 내 방을 밝혀 주었다. 게임, 술, 담배는 최고의 망각제이자 유일한 도파민이었다. 

 한 뼘 남짓의 방에서 나가서 유일하게 햇볕을 쬘 수 있었던 곳은 옥상이었다. 그곳에서 지독히도 담배를 피웠다. 담배 향을 자유와 환기의 향으로 포장하며 누런 독극물을 몸에 누적해 갔다. 나에게는 나를 파괴할 자유가 있으니까. 유일하게 맑은 공기와 밝은 햇빛을 누릴 수 있는 탁 트인 공간. 그곳은 나에게 그저 흡연실일 뿐이었다. 담배 연기는 햇빛을 가리고, 시원한 계절의 냄새를 차단하기에 충분했다. 고작 담배 한 개비로 그 가치를 잃어버린 것 따위에 역시 월 5만 원은 사치라고 생각했다.

 옥상에서 내려오면 내가 살던 방보다 한 뼘 더 큰 공간이 하나 있었다. 그곳에서 무료로 제공되는 라면, 밥, 김치를 먹었다. 라면 물을 조금 넉넉히 잡아 김치와 함께 끓였다. 면을 다 해치우고 나면 밥을 말아 국물 속 김치와 함께 먹었다. 배는 이미 찼지만 억지로라도 더 먹어 두어야 했다. 라면은 배가 금방 꺼진다. 담배만이 유일한 소화제 역할을 해주었다. 공짜 라면에는 독이 있었다. 늘 배가 아팠다. 소름 끼치는 기운이 스멀스멀 몸을 감싸는 것처럼 배가 참 기분 나쁘게 아팠다. 마치 뱀이 장속을 기어 다니며 장(腸) 벽을 핥는 것 같았다. 화장실에 있는 시간이 갈수록 많아졌다. 볼일을 마치고 나면 화장실 거울에 혹여 싫어하는 남자를 만날까 무서워 빠르게 뛰쳐나왔다. 절망은 나의 건강을 조금씩 잠식했다.          


#Thank you for smoking     


 고시원 생활에 익숙해질수록 절망의 그림자가 내 공간을 지배했다. 담배를 피우지 않아도 몸에서 담배 냄새가 났다. 오른손 왼손 할 것 없었다. 손은 담배 냄새가 유독 더 나는 신체 부위였다. 꿉꿉하고 매캐한 쉰내는 내 온몸에서 났다. 매일 돈이 없다며 라면으로 끼니를 때워 놓고, 담배를 지독히도 피워대고, 담배들 지독히도 사댔다.

 특히 밤과 함께 외로움이 찾아올 때면 옥상으로 달려갔다. 낮과 달리 밤에는 가릴 햇빛이 없어서인지 담배 연기는 그 선명함을 더했다. 연기는 입과 코에서 내뱉어지고 나면 더러운 얼룩모양을 하곤 공기 중에 흩어졌다. 불쾌한 연기의 형성과 흩어짐이 반복되면서 내 시야도 흐림과 선명함이 반복됐다.     

 즐겁게 웃고 떠드는 사람들이 보였다.

 외로움이 다시 시야를 가렸다.

 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는 빌딩들이 보였다.

 굴욕이 다시 시야를 가렸다.

 바삐 움직이는 차들이 보였다.

 수치심이 다시 시야를 가렸다.

 엄마, 아빠 손을 잡고 해맑게 미소 짓는 아이가 보였다.

 부끄러움이 다시 시야를 가렸다.

 피곤하지만, 눈빛이 살아있는 학생들이 보였다.

 혐오가 다시 시야를 가렸다.          


#말하는 대로     


 30살. 1평도 안 되는 공간에서 나는 그렇게 나를 괴롭히고, 나를 미워하고, 나를 파괴하면서 살았다. 걱정에 하루를 견디고, 불안한 잠자리에 누울 때마다 되뇌었다. 침대 위에 엎드려 이불을 뒤집어쓰고, 베개를 힘껏 움켜잡았다. 속으로 몇 번이고 외쳤다. 

 ‘이게 아닌데, 이렇게 살고 싶지 않은데, 이게 아니었는데. 나 뭐 하지? 앞으로 어쪄지? 내가 이렇게 혼자 외로워하고, 혼자 우는 와중에도 다른 애들은 앞서 나가고 있겠지. 이미 단란한 가정을 꾸려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있겠지. 나도 알아. 내가 택한 선택이니. 누구를 원망하겠어. 나를 원망해야지. 왜 호주를 갔을까? 왜 영화감독이라는 말도 안 되는 망상에 사로 잡혔었을까? 나는 왜 이리 시간을 헛되이 보냈을까? 나는 왜 이리 못났을까? 나는 왜 이렇게 한심할까? 왜 난 안되지? 난 왜 이러지?’     

 나의 무한함을 꿈꾸며 호주에 갔던 때가 얼마 전 같았는데. 고시원에 있을 때는 매일매일 나의 유한성을 강제적으로 깨달았다. 두 팔을 벌리면 가득 차는 이 좁은 공간이 나의 유한성을. 나라는 존재의 그릇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았다. 좁아진 공간만큼이나 나의 꿈도, 목표도, 희망도 모두 줄어들었다. 바라는 것을 줄어가는 만큼 포기해야 하는 것이 늘어갔다. 결혼은 꿈도 못 꾸고, 연애는 사치품이었다. 취업을 포기하지는 않았지만 목표로 하는 회사를 조금씩 낮춰가야 했다. 나의 무능력함에 맞춰가야 했다.

 모든 것이 불안했고,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빛 한 칸 들어오지 않는 그 방에서 밤새 울었다. 자주 울었다. 좁은 공간에서 육신은 고립된 체, 영혼은 표류하고 있었다. 말하는 대로,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이 하나 없는 나날이었다.


 고시원 대략 200일 차(고시원 방 빼는 날)     


 메일함에 낯선 이름이 있었다. 교수님으로부터 온 메일이었다.      

 ‘강상원 학생, 졸업 후 내 연구실로 왔으면 해요. 이번에 교내 졸업 논문 발표 대회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니 자동차에 흥미가 많아 보였어요. 자동차 동력연구실에 와서 좀 더 공부해 보는 것이 어때요? 연구생 수당이 지급될 거고, 석사 2년 과정은 전액 장학금이 지원될 예정입니다.’     

 엄마.

 제일 먼저 엄마 생각이 났다. 고시원 방을 후다닥 정리하고, 집으로 달려갔다. 전화보다 논문 발표 대회 상장을 보여드리며 직접 기쁜 소식을 전해드리고 싶었다.



위 단락은 노래 ‘말하는 대로’의 가사에 나오는 내용 일부를 차용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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