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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d 강상원 Oct 22. 2023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몰아내고

이상(以上)과 이상(理想)

“한 달. 딱 한 달만 승무원을 목표로 살아보자.”


#공학석사와 수학강사


 32살이 되던 겨울 나는 다니던 대학원을 그만두고 싶었다. 약 1년여의 연구생으로 있으면서 내 재능의 한계를 느꼈다. 자동차는 나름 관심 있는 분야였다. 그래서 조금은 적성에 맞을 거라 생각했다. 이러한 믿음은 오히려 ‘나는 기계공학 엔지니어는 못해먹겠다’는 확신을 주었다.

 연구실에서 나오는 급여만으로는 생활비가 부족했다. 그래서 연구실에 들어감과 거의 동시에 수학학원 강사 일을 시작했다. 

 대학원생으로서, 실험, 운전, 출장, 논문, 보고서, 미팅, 공부, 수업, 학술대회 준비 등을 해야 했다. 수학강사로서는 강의, 수학공부, 입시제도 공부, 학부모 상담, 문제집 풀이, 시험 특강, 방학 특강, 학생 진로 상담, 입시 상담 등을 해야 했다. 

 1년 전 고시원 방에서 혼자 외롭게 보낸 날과는 달랐다. 슬퍼하거나 괴로울 틈도 없었다. 나보다 잘 나가는 친구들이나 대학동기들이 신경이 안 쓰인 것은 아니었지만 내 생활이 바쁘니 그 정도가 확실히 덜했다.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하니 나를 탓하거나 지난 일을 후회하는 시간이 줄었다. 몸은 피곤했지만 덕분에 정신은 더 건강해진 것 같았다.

 

 ‘진작 이랬어야 했어. 뒤쳐진 만큼 남들보다 배로 열심히 살아야지. 네가 지금 하는 노력은 아무것도 아니야. 시간을 허투루 보낸 만큼 더 노력해야 해. 그런데, 나는 지금 행복한가? 열심히 노력해서 졸업 후 대기업에 가면 정말 행복할까?, 나중에 돈을 많이 벌어도 지금처럼 살아야 하면 행복한 삶인가?’     

 ‘나는 기계공학 엔지니어가 되고 싶은가?’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불안은 늘 나와 공존했다. 예상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만이 아니었다. 당시에는 알 수 없었던 묘한 불안이 내면에서 조금씩 꿈틀댔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어느새 나를 미워하는 일은 많이 줄어 있었다. 공격적이고, 날카로웠던 자기혐오의 칼날을 더 이상 들이밀지 않음은 분명했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불안이 멈추었음을 뜻하지 않았다. 완전한 자기 회복에 이르렀음을 의미하지 않았다. 

 나를 향한 미움을 어느 정도 멈추었으면 내면을 들여다봐야 했다. 내 마음속 자아가 무슨 말을 건네고 있는지 귀 기울여야 했다. 당시 나는 그러지 못했다. 마음속 자아가 불안을 주제로 말을 걸어올 때면 바쁘다는 핑계로 못 들은 척했다. 불안감이 커질수록 나를 더 채찍질하며 열심히 살려했다. 흘리는 땀이 많을수록, 수면 시간이 적을수록, 피로가 쌓일수록 잘 살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성실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에 중독 돼 가며 불안이라는 신호에는 점점 무뎌졌다. 부족한 시간은 불안을 없앤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외면한 불안은 어느새 커질 대로 커져갔다.

   

 ‘나는 행복할 수 있을까?’

     

#유레카


 시간 날 때마다 내가 좋아하는 일, 어떨 때 행복하고 어떨 때 스트레스를 받는지, 어렸을 때 꿈꿔왔던 일 등을 적었다. 그리고 계속 나에게 ‘왜?’라는 질문을 던졌다. 왜 여행을 좋아하는지, 왜 영화감독을 꿈꾸었는지, 영화감독은 정말 내 꿈이 맞았는지, 왜 기계공학 엔지니어로서의 삶에서 답답함을 느끼는지, 그러면서도 왜 수학에 흥미를 느끼고 수학을 좋아하는지. 조금씩 나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결국 답은 찾지 못했지만 나의 시선을 유독 사로잡는 대상이 있었다. 여행이 좋았고, 여행이 고팠고, 여행이 그리웠다.


 ‘내가 원하는 여행은 무엇일까? 나는 왜 여행이 좋을까?’

 ‘나는 그 속에서 행복할 수 있을까?’

 ‘나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 여행 그 자체일까 아니면 일상으로부터의 회피 일까?’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마음을 여행이라는 낭만적인 말로 포장하는 것은 아닐까?’

 ‘나에게 여행이란 어떤 의미일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런 고민을 하던 와중 친구와 베트남으로 여행을 가게 됐다. 작은 계기가 인생의 큰 변화를 만들기도 하듯 나 또한 베트남 여행을 통해서 어떠한 계기가 마련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던 것 같다. 고작 여행 한 번이 우리 인생의 답을 내려 줄 수는 없지만, 삶의 유레카는 오히려 잠시 고민을 내려놓을 때찾아오곤한다. 며칠간 씨름하던 문제의 해답이나 새로운 관점이 샤워 도중 떠오르곤 하는 것처럼 당시 나에게는 고민을 잠시 내려놓게 해주는 샤워가 필요했다.

 3박 4일의 달콤한 휴식을 마치고 귀국 편비행기에 몸을 실었을 때였다. 원하는 해답은 얻지 못했지만 즐거운 여행이었다. 여행의 아쉬움을 수다로 달래며 탑승해 자리에 앉았다. 멀리서 잘생긴 남자 승무원이 눈에 띄었다. 이미지가 무척이나 깔끔하면서도 인상 깊었다. 그 승무원 분을 보며 친구에게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 내뱉었다.  

   

 “나도 승무원이나 해볼까?”

 “한 번 지원해 봐. 공채 뜨면 넣어봐.”

 ‘내가 왜 이 생각을 못했지!?’     

 일순간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심장이 급격하게 요동쳤다. 머릿속에서 쿵쾅거리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가장 오래 알고 지내온 친구사이다 보니 그 친구와 같이 있을 때면 실없는 소리를 자주 주고받는다. ‘수지랑 아이유가 동시에 너한테 사귀자고 하면 어떡할 거야?’, ‘다음 주에 메시랑 호날두 불러서 축구나 하자’, ‘(유)재석이 형한테 새해 인사 했어?’

 그 친구와 있을 때면 대화의 반은 헛소리고, 나머지 반은 상황 극이다. 그런 실없는  이야기, 군소리, 가벼운 너스레차원에서 내뱉은 말이었다. 그리고 그 너스레가 이후 내 삶을 바꿔 놨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승무원이란 직업을 알아보기로 결심했다.


#첫 번째 현실이상(以上)과 이상(理想)


 여행에서 돌아온 뒤 승무원이란 직업을 알아보았다. 나는 두 가지 현실을 마주했다. 첫 째는 ‘승무원의 현실’이었다. 모든 직업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상상 이상(以上)으로 뿌듯함과 보람을 주기도 하지만 이상(理想)과는 정 반대로 비참하고, 남루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승무원이라는 직업은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 뒤에 더 많은 그림자가 있었다.

 승무원이 겪는 고충을 알아볼수록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소위 진상 승객 경험담을 읽어 볼 때면 경악을 금치 못하는 사례들도 있었다. 반말과 욕설은 기본에 성희롱과 손찌검을 하는 손님. 인신공격, 서비스 직종을 하대하는 태도 등. 하지만 그럼에도 해 보고 싶었다. 업무 스트레스의 가장 큰 요인은 사람이지만 동시에 보람을 느끼는 요인 또한 사람이었다. 그런 역설적인 부분이 매력적이었다. 마치 여행지에서 겪는 불편함으로 피로가 쌓이지만 반대로 그러한 불편함이 여행을 더 특별하게 만들기 도하는 것처럼.

  만약 승무원이 된다면 마주해야 할 무게. 그 삶이 갖는 현실의 무게는 충분히 짊어질 자신이 있다는 확신과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행을 많이 다닐 수 있다는 사실 하나가 나를 강력하게 매혹했다. ‘승무원의 직업적 현실’은 내가 진로를 결정하는 데었어서 망설임의 요소는 아니었다.


#두 번째 현실이상(理想)과 이(()


 문제는 두 번째 현실이었다. 베트남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내가 현실적으로 승무원이 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가능성에 대한 현실이 내 도전을 망설이게 했다. 외모, 나이, 경력 등 나의 모든 구성 요소가 승무원이 되는데 장애물이 될 것 같았다. 무엇보다 외적으로 자신이 없었다. 승무원은 잘생기고, 예쁜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닌가?

 승무원 커뮤니티를 통해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의 글을 읽어보고, 승무원 학원에서 면담을 하며 현실적인 조언을 해 달라고 부탁했다. 승무원 학원에서는 잘 꾸미면 될 것 같다고 했지만 믿음이안 갔다. 그저 학원생 포섭을 위해 듣기 좋은 말을 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자료조사와 학원 면담을 통해 내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 당시 내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승무원에게 있어서 외모는 제법 중요하지 않다. 정말 제법 아주 많이 중요하다. 다만 이것이 객관적 잘생김과 아름다움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승무원은 남들이 봤을 때 외적으로 소위 잘생기거나 예쁜 사람들이 하는 일로 여겨진다. 빼어난 외모가 유리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깔끔한 인상과 그 사람이 풍기는 이미지가 중요하다. 깔끔하고, 선하며 신뢰감 가는 이미지.

 더욱이 항공사 별로 원하는 상(像)이 존재하고, 그 기업이 추구하는 비전에 어울리는 이미지가 있기 마련이다. 반드시 연예인처럼 빼어난 미모일 필요는 없다. 어떤 항공사는 단아하고, 차분한 이미지를 원한다. 어떤 항공사는 카리스마적이고, 프로페셔널한 이미지를 원한다. 어떤 항공사는 건강미 넘치며 활기찬 이미지를 원한다. 즉 승무원에게 다른 의미로 외모는 중요하다.'


 나는 어느 것도 아니었다. 잘생긴 외모는 아니었고, 깔끔한 인상과는 더더욱 거리가 멀었다. 신뢰감 주는 인상이 무엇인지 당시 감이안 왔지만 일단 나는 확실히 아니었다. 더욱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외모가 마음에 안 들어 거울 보기가 싫고, 두렵기까지 했던 나였다.

 승무원이란 직업을 지속해서 탐구하며 두 현실을 저울질했다. 하나는 원하는 것을 이루었을 때 마주하게 될 현실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한 현실이었다.‘해낼 수 있을까?’의 질문은 ‘할 수 있다’는자신 있는 대답을 내릴 수 있었지만, ‘될 수 있을까?’의 질문에는 대답을 못한 채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계속 고민만 하고 있을 수 없어 스스로 데드라인을 정했다.     


 ‘한 달. 딱 한 달만 승무원을 목표로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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