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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d 강상원 Oct 22. 2023

못생겨도 승무원이 될 수 있을까?

20초의 용기

 "이미 마음속에 결론 내렸잖아? 너 이거하고 싶잖아."


#승무원 연습생: ”상원아 승무원이 하고 싶어?”     


 승무원에 본격적으로 도전하기로 결심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를 어설픈 노력의 핑계로 삼지 않으려 했다. 즉, 1달 뒤 승무원 도전을 이어가든, 포기하든 스스로 정한 시간 동안은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승무원 준비를 시작하지 안 됐을 무렵 모의 면접을 봤다. 강남의 모 승무원 학원에서 무료로 진행하는 모의면접이 있었다. 면접관은 전직 카타르 항공 승무원을 비롯해 그 밖의 외국 항공사 승무원 출신들로 구성 됐다.

 모의면접날을 잡고, 진짜 면접이라는 생각으로 준비했다. 면접 당일 아침부터 머리에 힘을 주고, 화장을 하고, 정장을 차려입은 뒤 강남의 모 승무원 학원으로 향했다. 최대한 승무원처럼 보이려고 나름대로 한껏 꾸몄다. 

 모의 면접이었지만 현장 분위기는 마치 실전 같았다.(물론 당시에 실전을 경험해 본 적은 없었지만) 삽시간에 면접이 끝나고 피드백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면접관은 인상을 찌푸리며 피드백을 해 주었다.     


 “칙칙해요”

 “어두워요”

 “졸려 보여요”

 “부담스러워요”

 “깔끔한 인상을 주기에는 무리입니다”

“스타일이 지저분해요”

“승무원 이미지는 아닙니다.”     


 외모에 대한지적 아닌 지적은 내 생각보다 파괴력이 상당했다. ‘넌 왜 이리 못 됐니!’라는 말보다 ‘넌 왜 이리 못생겼니!’라는 말이 훨씬 더 파괴적임을 깨달았다. 국내외 굴지의 항공사에서 경력을 쌓은 분들의 의견이었기에 더 피부로 와 닿았다. 면접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지금이라도 승무원 준비를 관둘까?’라는 생각을 했다. 역시 승무원은 외적으로 뛰어난 사람들만이 기회조차도 얻을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기회의 균등 혹은 시작의 정의가 성립되지 않는 세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기소침해진 채로 하루를 보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인스타그램 속 잘생기고, 깔끔한 이미지의 남자 승무원 피드를 봤다.

 자신감이 순식간에 떨어지긴 했지만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스스로 정한 승무원 연습생 기간만큼은 최선을 다하기로 결심했으니까. 무슨 말을 듣든, 반드시 승무원이 되겠다는 각오를 적어도 한 달만큼은 유지하기로 했으니까. 주눅 들어 있을 시간 따위는 없었다.

 내 외모를 지적하는 이야기에 물론 의기소침했지만 이를 내가 개선해야 할 점으로 여겼다. 그들의 얼평(얼굴 평가)은 내가 발전시켜야 하는 부분이지 나라는 사람 자체를 정의한다 생각하지 않았다. 어두운 피부 톤을 지적받으면 화장품과 화장기술을 찾아봤다. 그래도 부족하다 느끼면 누구보다 밝은 미소를 보여주겠다고 다짐하며 미소 연습을 했다. 때로는 애써 웃으려 하는 내가 때로는 안쓰러워 보이기도 했다. 그럴수록 더 밝은 이미지를 얻고자 카메라와 거울 앞에서 매일매일 웃는 나를 마주했다. 가만히 웃는 연습, 웃으며 말하는 연습, 입을 다물고 웃는 연습, 차아를 드러내며 웃는 연습, 걸으며 웃는 연습, 손동작을 취하며 웃는 연습, 스피치를 하며 웃는 연습, (수학) 강의하며 웃는 연습 등. 어떤 상황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승무원 이미지를 머릿속에 계속 그렸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짬이 나면 스스로 웃는 모습을 촬영했다. 특히 셀카를 많이 찍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카페 또는 식당에서, 약속 장소에서 친구를 기다리면서 셀카를 찍었다. 처음에는 무척이나 어색했다. 이렇게 웃어보고 저렇게 웃어보면서 내게 제일 잘 어울리는 표정을 찾으려 했다. 내미소, 얼굴 생김새, 근육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밤마다 내가 어떻게 웃을 때 제일 자연스러운지 수십 장의 자화상을 관찰했다. 핸드폰에는 익숙한 듯 낯선 사람의 웃는 사진이 가득했다. 보기 싫어 외면하고, 도망쳤던 그 익숙한 듯 낯선 사람을 매일 마주했다. 러닝머신 위에서 펜을 물고 달렸다. 펜을 물고 웃으면서 “제가 승무원이 되고 싶은 이유는~”, “제가 이 항공사에 입사하고 싶은 이유는~”등을 영어와 한글로 내뱉었다. 때로는 미소 교정기를 찬 상태로 러닝머신 위를 달렸다. 주변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타인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을 수 있는 원대한 목표가 있었다. 미소 교정기를 끼우며 안면 근육이 아파 떨릴 때까지 버텼다. 웨이트 운동으로 근육을 단련하듯 미소 근육을 단련했다.     

 ‘나는 반드시 승무원이 된다. 나는 반드시 승무원이 된다. 나는 반드시 승무원이 된다’          


#20     


 한 달여의 시간이 다다를 무렵이었다. 나는 여전히 결론을 내리지 못한 상태였다. 스스로 정한 데드라인이 다가오는데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면 나와이 길은 인연이 없거나 도전할 각오가 서지 않은 것이라 생각했다. 설사 도전하기로 결심한다 하여도 어설픈 각오로는 죽도 밥도 안될 것 같았다.

    

 ‘그래서 승무원도전할 거 야안 할 거야?’     


 선택의 갈림길에서 이성과 감성이 씨름하던 와중 친한 후배로부터 연락이 왔다.     

 후배로부터 연락이 온 날로부터 1년 하고도 조금 전쯤이었다. 당시 후배는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둔 시점에서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가는 것이 맞는지 고민이었다. 후배는 지금 해보지 않으면 평생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하는 반면 막상 떠나기에는 졸업, 취업 등의 현실적 문제가 도전을 망설이게 한다고 했다. 나는 후배의 고민을 들으며 나름의 생각을 전했다.     


 “이미 마음속에 결론 내렸잖아. 너 가고 싶잖아. 다녀와. 너는 다녀와서 졸업해도 아직 30이 안되잖아. 나처럼 30이 넘어서 대학을 졸업하게 되면 말릴 텐데 다녀와도 돼. 가면 재밌어. 한국에서는 경험 못해볼 일도 경험할 거야. 물론 선택과 그 결과에 따른 책임도 전부 네 몫이란 거 잊지 말고.”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영화에서 나온 말인데…”     


 돌이켜보면 그 당시에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온 일을 무척이나 후회하고, 그로 인해 자기혐오가 짙던 시기였는데 어떻게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동생 앞에서 허세는 부리고 싶어서였을까? 아니면 나를 향한 위로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후배는 고민 끝에 결국 호주로 떠났다. 

 그러고 나서 약 1년 후 그 후배가 귀국해서 연락이 왔다. 우리는 홍대 근처의 한 술집에서 만났다. 술 한 잔 기울이며 그 후배의 호주 여행기를 들었다. 나도 오랜만에 호주 이야기를 실컷 했다. 후회로 점철된 2년간의 해외생활이 조금은 보상받은 것 같았다. 그렇게 그 후배의 고생과 추억을 들으며 술자리는 무르익었다. 무르익던 술자리 속에서 후배는 문득 내게 고맙다고 했다.     


 “형이 그랬잖아요. 가끔은 미친척하고 딱 20초만 용기를 내면 진짜 멋진 일이 생길지 모른다고.”     


 그 후배가 대학 졸업과 워킹홀리데이를 고민하던 시기에 내가 좋아하는 영화 속대사를 이야기해 준 적이 있었다. 후배 말로는 그 말에 용기를 얻어 호주로 떠날 수 있었고,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고 왔다고 했다. 그래서 내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날, 그 과거에서, 그 후배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기 위해 건네었던 말이 나에게 되돌아온 순간이었다. 누군가의 도전에 용기와 격려를 보내주었던 말이 돌고 돌아 나를 응원해 주고, 격려해 주었다. 덕분에 ‘승무원이 될 수 있을까?’라는 현실과 씨름하던 중 ‘일단 해보자’라는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스스로를 향한 응원 속에서 두 번째 현실을 맞닥뜨려 보기로 했다. 이(異) 상(像)은 제쳐두고, 이상(理想)을 현실로 만들어 보기로 했다.


 ‘이미 마음속에 결론 내렸잖아? 너 이거하고 싶잖아.’     


 이후 나는 대학원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승무원 도전을 결정하기까지 수십 번의 고민을 거듭했지만 결정은 한순간이었다. 내가 앞으로 할 도전은 20초 안에 끝날 일은 아니었지만 망설임은 없었다. 다가올 수백만 초 혹은 수천만 초의 미친 짓이내 인생을 어떻게 변화시키 든 멋진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믿음으로 도전을 결심했다. 여행을 떠나기 위해선 용기가 필요한 법이었다. 


“You know, sometimes all you need is twenty seconds of insaine courage, Just literally twenty seconds of just embarrassing bavery. And I promise you, something great will come of it”

- We bought a zoo(우리는 동물원을 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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