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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d 강상원 Oct 22. 2023

어둠이 조금씩 걷히면

에어 마카오(Air Macau), 에어 아시아(Air Asia)

#어둠이 조금씩 걷히면     


 호주에서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과 한데 어울려 지냈다. 자국의 전통요리를 만들어 서로 나눠 먹은 홈파티. 여타 유럽의 축구팀처럼 8개 이상의 국적이 모인 축구팀 결성, 농장 오토바이로 야생 캥거루를 함께 쫓은 경험 등. 해외 친구들과 나누었던 추억이 소중했던 나에게는 외항사가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외국 항공사의 승무원이 된다면 일터에서 만나게 될 다국적 동료들과 만들어 갈 이야기가 설렘과 흥분으로 다가왔다. 내 심장을 뛰게 했다. 어느덧 호주에서의 기억을 미움의 시선만으로 바라보지 않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국내 항공사에 비해 나이에 관대함. 영어 소통에 있어서 내 강점을 두각 시킬 수 있음. 내 이미지 또한 국내항공사보다는 외국 항공사에 더 어울린다는 조언을 들음. 여러 요소를 종합해 외국 항공사를 목표로 설정했다. 그리고 이왕이면 세계 최고 항공사를 목표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카타르 항공(Qatar Airways)’을 목표로 삼았다. 카타르 항공과 더불어 중동 3대 항공사라 불리는 ‘에미레이트 항공(Emirates Airlien)’과 ‘에티하드 항공(Etihad Airways)’ 또한 간절한 내 목표였다. 사실 합격만 시켜준다면 어디든 큰 상관은 없었지만 카타르 항공이 마음속 1순위였다.

 이후 승무원 준비를 해가며 기분 좋은 리듬이 내면을 조금씩 채워 나갔다.


 ‘무언가에 도전하는 일이 이렇게 설레고 재밌었던 적이 언제였을까?’


 대학원 연구실에 있을 때는 느낄 수 없는 감정이었다. 그저 주변 상황에 맞춰 살아가는 것이 아닌, 내가 주도하는 삶이 주는 충만함과 만족감 덕에‘승무원에 도전하길 잘했다’라고 생각했다. 도전의 가치와 삶의 주체성이 주는 기분 좋은 리듬으로 내 심장은 두근댔다.     

 경험해보지 못한 분야에 발을 들이면서 얻는 설렘과 호기심뿐만 아니라 면접 질문을 통해 나를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면접 질문은 의외로 간단했다.  ‘자기소개해보세요.’, ‘장/단 점이 뭔가요?’, ‘왜 승무원이 되고 싶으세요?’, ‘왜 우리 회사에서 일하고 싶으세요?’, ‘본인은 어떤 아들인가요?’ 등의 단순한 질문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 간단한 질문이 내게 던지는 파장은 강렬했다. 자기소개질문을 고민하는 시간은 나란 사람이 누구인가를 자문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장점 단점을 물어보는 질문 덕에 내가 나를 어떤 시각으로 봐 왔는지 알 수 있었다.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묻는 질문은 내 삶에 감사하는 태도를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혹은 가장 슬펐던 기억이 물어보는 질문 덕에 힘든 순간에도 내가 나를 완전히 놓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취미 혹은 인생 목표를 묻는 질문을 통해 내 인생의 마인드맵을 그려 보았다. 예상 면접 질문 답변을 작성하는 일은 나에게 내 인생의 커다란 청사진을 그리고, 나의 행적을 회고하며 현재 나란 사람은 누구인가를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과거를 돌이켜 볼 때마다 생겨났던 원망, 후회, 자책 등의 감정을 조금 덜어 낼 수 있었다. 부정적 감정을 덜어내고, 지난 일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나를 향한 반성을 시작했다.

 반성(反: 돌이킬 반, 省: 살필 성)은 나를 꾸짖고, 질타하는 행위가 아니었다. 돌이켜 보며 나를 살피는 행위였다. 그렇게 면접 질문을 작성해 가며, 내 경험을 되돌아보고, 지난날을 회고하고, 나 자신을 헤아려 보았다. 살피고 살피다 보니 어느새 성찰(省: 살필 성, 察: 살필 찰)의 단초에 조금씩 이르렀다. 성찰이 반드시 버드나무아래 수양하는 부처의 마음일 필요는 없었다. 십자가를 짊어지며 온갖 핍박을 견디는 거룩함이 수반될 필요는 없었다. 그저 내면의 소리를 외면하지 않을 조금의 용기. 나를 보살피려 하는 온정. 나를 향한 연민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려는 노력. 즉,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성찰의 단초가 되더라.

 그렇게 지하실 깊은 곳의 나에게 손을 내밀기 시작했다. 어둠이 조금씩 걷히고 있었다.     


 우리는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자기 식대로 인생을 살아가다 일이 잘못돼 고통을 당할 수 도 있다. 그러나 설령 그런 결과를 맞이하더라도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가게 되면 다른 사람이 좋다고 생각하는 길로 억지로 끌려가는 것보다 궁극적으로는 더 많은 것을 얻게 된다. 인간은 바로 그런 존재이다.

- 『자유론』,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


#에어 마카오(Air Macau), 에어 아시아(Air Asia)


 ‘에어마카오(Air Macau)’와 ‘에어아시아(Air Asia)’ 채용 면접이었다. 에어 마카오 면접은 국내에서 진행될 예정이었고, 에어 아시아는 일본인 채용을 위해 오사카에서 오픈 면접(공식적으로 ‘OpenDay’라고 한다)이 계획 돼 있었다.

 몇몇 외국 항공사의 경우 다국적 승무원을 뽑기 때문에 오픈 면접이 열리는 나라의 국적이 아닌 사람도 채용하곤 한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 열리는 오픈 면접에서 한국인이 채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외국 항공사 지망생들은 종종 해외로 나가 면접을 본다. 나는 국내에서 진행되는 에어마카오에만 지원할 생각이었다. 비싼 비행기 값까지 들여 외국으로 면접 보러 가는 것이 아직은 사치로 여겨졌던 시기였다. 승무원 준비를 시작한 지겨운 2달 남짓 했을 때였고, 스스로도 아직 준비가 많이 안 된 상태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00번의 면접 연습보다 1번의 실전 면접이 더욱 큰 도움이 된다는 말에 에어아시아 항공에도 지원하기로 했다. 탈락할 것이 뻔하다고 생각했지만 이 또한 경험이 될 테고, 경험은 가장 훌륭한 스승 아닌가.

 에어마카오 면접이 점점 다가왔다. 여전히 미숙한 점이 많았지만 유독한 가지가 나를 더 불안하게 했다. 눈썹이었다. 승무원에 도전하기 전에는 사람의 인상에 눈썹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지 못했다. 눈썹 그리는 연습을 매일 했지만 전혀 늘지 않았다. 짱구 눈썹부터 갈매기 눈썹까지 별의별 눈썹을 다 그려본 것 같다. 하지만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하루는 다른 스터디원이 눈썹을 그려줄 테니 눈썹을 ‘어느 선’까지 다듬고 오라 했다. 나는 그 ‘어느 선’이란 말을 오해했다. 눈썹 양 끝부분을 내 나름대로 ‘적당한 선’까지 밀고 나니 눈썹의 절반이 없어져 있었다. 매우 이상했지만 나는 그 스터디원의 명령을 잘 수행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다음 날 그 스터디원은 나를 보자마자 당황했다. 그나마 나와 똑같은 실수를 한 또 다른 스터디원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화장의 세계는 어려웠고, 눈썹은 그 시련이 높았다.     

 그리고 에어 마카오 면접날이 다가왔다. 내 첫 승무원 면접이었다. 면접은 순식간에 진행됐다. 면접관들은 편한 미소로 지원자들을 맞이해주었지만 내 긴장감은 가라앉지 않았다.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면접이 끝났다. 1 ~ 2분 남짓한 시간 동안미소와 올바른 자세를 유지하며 편안하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일이 이렇게 힘든지 몰랐다. 적당히 주먹 쥔 손, 목 뒤로 흐르는 땀, 꼿꼿한 허리. 승무원이란 직업은 그 자세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것 같았다. 막상 면접이 끝나니 아쉬웠지만 값진 경험을 했다고 여겼다. 그리고 곧 다가올'에어 아시아(Air Asia)' 면접에 주력하기로 했다.

 출국을 2 ~ 3일 앞두었을 때쯤 에어마카오 1차 면접을 통과했다는 문자를 받았다. 호기롭게 도전을 결심했지만 내가 전혀 불가능한 일에 시간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완전히 떨쳐내지는 못했었다. 그런 나에게 에어 마카오 1차 면접 합격은 불안을 씻겨 주었다. 더욱더 용기를 가지고 도전을 이어갈 수 있는 힘을 주었다. 그렇게 조금은 상기된 기분을 안고 오사카로 향했다.

 탈락했다. 그 자리에서 바로 탈락했다. 말 그대로 빛의 속도로 탈락했다. 흔히들 얘기하는 광탈을 경험하고 나니 제법 허무했다. 면접을 직접 경험해 본다는 자세로 도전했지만 그 실전은 1분도 되지 않았다. 출국 전 3명 전부 1차에서 바로 떨어지면 관광이나 하고 오자라는 우스갯소리를 했다. 우스갯소리만 현실이 됐다. 하지만 우울하거나 의기소침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제법 재밌고, 추억에 많이 남을 만한 여행을 하고 왔다. 

 오사카 길거리는 그 정취가 여전했다.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그 도시가 여전히 그 정체성을 잃지 않고, 그대로 있어준 것이 고마웠다. 날씨는 마치 오사카에 면접이 아닌 관광을 위해온 것이 아닌가란 생각이 들게 할 정도로 기분 좋은 화창함과 선선함을 선사했다. 

 오사카의 도톤보리가 주는 분위기를 배경 삼아산책하던 중이었다. 산책하던 중 우연히 호젠지 신사를 발견했다. 나와 같이 갔던 동생 2명은 신사 앞에서 소원을 빌었다. 나는 소원 대신 다짐을 했다. 눈을 감고, 합장한 채로 내 안의 간절함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반드시 승무원이 되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카타르 항공’ 면접을 위해 마카오로 향했다. 본 게임은 이제 시작이었다. (오사카에서 귀국 후 한국에서 본 ‘마카오 항공’ 면접은 2차에서 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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