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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d 강상원 Oct 22. 2023

폭풍 속에서도 배가 멈추지 않는다면

나는 왜 승무원이 되고 싶을까?

 "그런데 나는 누구일까? 나는 왜 승무원이 되고 싶지?"


#카타르(Qatar)


 카타르항공 홈페이지에 마카오(Macao)에서 오픈 면접이 열린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그 당시 카타르 항공은 중국어를 할 수 있는 지원자를 많이 찾고 있었다. 중국어와 영어에 능통하고, 다국적 사람들이 있는 마카오는 카타르항공 입장에서 매력적인 장소였다. 마카오는 한국에서 가깝고, 노선도 많이 존재했다. 그 때문에 카타르항공 승무원을 꿈꾸는 한국 지원자들에게도 기회의 장소였다. 나에게도 그랬다. 생각보다 빨리 기회가 찾아왔다.

 면접이 이루어지는 호텔은 아침부터 북적였다. 나는 면접이 이루어지는 호텔에서 도보로 5분 거리의 호텔에 묵었다. 면접은 보통 선착순으로 이루어지고, 이른 시간에 면접을 보는 것이 유리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지원자들은 면접 시작하기 몇 시간 전부터 면접장에 도착해 있다. 나는 제법 일찍 나왔다 생각했지만 면접장에 있는 인파를 보니 다른 지원자들은 잠도안 자고 나온 것 같았다. 백화점 오픈런은 들어봤어도 들어보지도 못한 면접 오픈런을 내가 하게 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카타르 항공 인사 담당자 즉 면접관들이 면접장에 도착했고, 오늘 면접이 어떤 절차로 진행될지를 설명했다. 경청에 있어서 사랑, 배려, 공감의 감정보다 절박함이 훨씬 효과적인 촉매제임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이후 곧 면접이 시작되었고, 나는 내 차례를 기다리며 답변 연습으로 초조함을 달랬다. 구비해 간 서류는 구김이 없는지, 빠뜨린 것은 없는지, 머리는 깔끔하게 정돈됐는지, 화장 상태는 양호한 지, 입술 색이 빠져 다시 발라야 하는 것은 아닌지, 준비해 온 답변을 잊은 것은 아닌지, 편안하게 웃을 수 있는지 등 체크리스트를 끊임없이 체크했다. 그리고 면접에 집중하기 위해 속으로 계속 되뇌었다.


‘나는 승무원이다. 나는 승무원이다. 나는 승무원이다.’     


 조금씩 줄이 줄어들면서 어느덧 내 차례가 됐다. 당시 면접 대기실과 면접장은 같은 방에 칸막이 하나만 설치된 상태로 구분돼 있었고, 어느덧 나는 칸막이 제일 끝에 서있었다. 이 모퉁이만 돌면 카타르 항공사 면접관이 있었다. 그 끝자락에 서서 내 앞 지원자가 면접관과 대화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확히 무슨 말을 주고받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들의 대화가 건물 내벽에 부딪히면 내 귓전을 울렸다. 면접관이 내뱉은 모든 단어가 마치 공중에 형상화되는 것 같았다. 그 형상화된 언어들은 공기를 타고 벽에 부딪히며 몸집을 더 키우더니 이내 곧 내 귓가에 다다랐다. 더욱더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심호흡을 했다. 내 심경과 달리 면접은 착실히 진행 됐다. 면접 진행을 도와주는 호텔 직원은 나를 쳐다보며 ‘이제 네 차례야’라는 손짓을 했다.

 최대한 밝은 미소를 유지하고, 눈을 마주하며 자연스럽게 걸어 들어 가려했다. 최악의 경우 걸어 들어오는 모습만 보고 면접관이 나가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일단은 면접 실 안에서 면접관 앞까지 무사히 걸어 아는 것부터가 중요했다. 다행히 무사히 도착했고, 준비해 온 서류를 내려놓으며 가볍게 인사했다. 면접관은 내 이력서를 훑어보고는 질문을 던졌다.


“Can you introduce yourself?”     


 가장 기본이면서도 중요한 질문. 수없이 연습하고, 스터디원들의 피드백을 받아가며 수정보완해 온 자기소개. 나는 그 질문에 가로막혔다. 말도 못 하고 나온 것은 아니었다. 그간의 연습 덕에 준비해 온 자기소개는 있는 그대로 얘기할 수 있었다. 다만 대답을 하면서 이 자기소개가 나와는 정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잘 굴러가는 듯 하지만 어딘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자동차 같았다. 겉으로 봐서 열심히 회전하는 엔진이 있다 했을 때보이는 것만큼 동력을 뿜어내지 못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내 자기소개는 순식간에 끝났다. 면접관은 이후 내 이력서와 나를 번갈아 보더니, 연락한다는 말로 면접을 끝냈다. 오픈 면접 1차에서 면접관의 연락한다는 말은 탈락이라는 뜻이었다.(간혹 정말 연락이 오는 경우가 있다.) 1차 면접을 통과한 사람에게는‘Invitation(지원자들끼리는 줄여서 ‘인비’라고 부른다)’이라는 종이쪽지를 준다. 내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았다.

 긴장 탓이었을까, 여전히 연습이 부족해서였을까, 아니면 그저 모든 것이 부족했을까. 나와 달리같이 간스터디원 대부분은 그 인비를 받았다. 인비를 받은 스터디원들은 이후 있을 2차 면접 그리고 영어 테스트를 위해 면접장에 남았다. 나는 내가 묵는 호텔로 돌아왔다. 침대에 누워 천장만 하염없이 바라봤다. 방으로 돌아와서 편한 옷으로 갈아입지 않았다. 화장도 지우지 않았다. 나의 면접이 끝났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았다. 아니 실감하기 싫었다. 그렇게 옷과 화장에 첫 카타르항공 면접의 미련을 묻어둔 체 누워 있었다. 그리고 혼잣말로 준비했던 자기소개 답변을 천장에 내뱉었다. 내가 내뱉은 언어는 천장에 부딪히며 초라하게 흩어졌다.


#카타르 어게인(Qatar Again)


 이후 국내의 ‘진에어(Jin Air)’ 면접과 싱가포르의 ‘실크에어’ 면접을 연달아 봤다(실크에어 면접을 같이 보러 간스터디원 1 명은최종 합격을 했다.). 나는 두 면접 모두 1차에서 탈락했다. 여전히 승무원으로서 자질이 많이 부족했다. 특히 1차 면접에서 바로 탈락한다는 것은 이미지 혹은 인상이라 불리는 그 외적인 모습이 모자람을 뜻했다. 외적인 자존감이 떨어졌고, 점점 내가 가는 길에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실패가 거듭되면 이상은 현실에 맞춰 그 키를 낮춘다. 내 목표는 점차소박 해졌다. 연속된 1차 탈락으로 자신감이 조금 떨어져 있었다. 목표는 최종 합격이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1차 통과만 했으면 소원이 없을 것 같았다. 그 인비라는 것을 구경이라도 해보고 싶었다. 인비를 받는다면 승무원으로서 기본 소양은 갖추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인비라는 종이가 손에 쥐어지기만 한다면 ‘일단 이미지는 통과야’라는 말로 다가올 것 같았다. 그 상징에 위로를 받아 도전을 이어 나가고 싶었다. 조금씩 승무원이 되어 살고 싶은 삶을 꿈꾸기보다는 승무원이라는 직책 혹은 그 타이틀을 얻고 싶다는 열망이 강해졌다. 타인의 잣대와 상관없이 나 스스로 만족하는 삶보다 승무원이라는 세계에서 나라는 존재가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가 높아졌다.

 4개월 뒤면 33살이었다. 국내 항공사는 당연히 불가능할 뿐 아니라 외국 항공사 또한 합격할 가능성이 점점 희박해졌다. 애초에 1년만 도전할 생각이었다. 당시 나는 학원 강사로 일을 하고 있었다. 강사로서 충실한 삶을 살든 혹은 다른 일을 시작하 든 조금은 현실적으로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시기라고 판단했다. 돈도모 아야 했고, 부모님의 늙어가는 모습이 점점 더 뚜렷해졌다. 벌써 결혼해 아이를 낳고,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친구들과 내가 비교됐다. 비교하지 않으려 했지만 현실적으로 나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꿈을 꾸는데 나이는 상관없다고 하지만, 무언가가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을 수학적으로 환산한다면 나이는 큰 변수임에 틀림없다. 그럴듯한 각오와 달리 탈락의 연속은 나를 순식간에 나약하게 만들었다. 나약해질수록 불안과 혼돈은 높아갔다.

 운이 좋게도 내가 외국 항공사에 도전하던 시기는 말 그대로 면접 풍년이었다. 마카오에서 처음 카타르 항공 오픈 면접을 보고 두 달 후 또다시 카타르항공의 오픈 면접이 열렸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계절. 나는 한국보다 더욱 찌는 듯한 공기를 머금고 있는 마카오로 향했다. 카타르 항공 승무원이 될 수 있는 두 번째 기회였다.

 승무원이 되기로 마음먹은 3 ~ 4개월 전과는 확실히 달랐다. 모든 면접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할 준비가 됐었다. 헤어, 메이크업, 의상 등 이제는 순조롭게 준비 가능했다. 숙소를 나서기 전 ‘이번에는 반드시 카타르 승무원이 되겠다’는 결의와 ‘제발 인비만 받았으면 좋겠다’라는 현실적 타협안 사이의 균형을 맞추며 마음을 다잡았다. 인비만 받아도 성공이다라는 생각으로 부담을 내려놓으려 했고, 반드시 승무원이 된다는 생각으로 적당히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면접장에 도착하니 익숙한 듯 생소한 풍경이 펼쳐졌다. 곧이어 면접이 시작됐고, 내 차례가 금방 다가왔다.

 

“Why do you want to be cabin crew? And Why our company?


 탈락했다. 이번에도 인비를 받지 못했다. 두 달 전과는 달리 침착한 태도로 면접 질문에 답을 했다(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하지만 여전히 면접관의 답변은 “오늘 밤에 연락할게”였다.


 예상 면접 질문에 대한 답변은 대부분 준비가 된 상태였다. 다만 답변 내용보다는 그 내용을 전달할 때의 지원자가 보여주는 느낌, 이미지, 인상, 어투, 제스처, 자세, 분위기 등이 당락의 중요 여부다. 이점을 고려해 나는 여전히 승무원으로서의 자세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누구일까?’

 ‘나는 왜 승무원이 되고 싶지?’

 ‘나는 왜 여행을 많이 다니고 싶지?’

 ‘내 꿈은 무엇일까?’          


#비행일지


 승무원을 준비하며 나는 나만의 승무원 노트를 제작하였다. 당시 근무하던 수학학원의 제본기를 활용해 만든 A4용지 약 50장 분량의 나만의 승무원 노트였다. 1순위가 카타르 항공이었기 때문에 카타르 항공을 중심으로 노트를 만들었다. 그 노트는 카타르 항공사 기본정보(역사, 수상경력, 최근 뉴스, 카타르 항공 CEO 인사말 등), 합격생들의 합격 수기, 예상 면접 질문과 답변 예시, 내 답변 작성을 위한 공란 등으로 이루어졌다.  

 어느덧 노트는 내가 공부한 흔적과 작성한 답변. 그 답변을 위해 그린마인드맵(Mind-map)으로 가득했다. 이어서 그 노트의 빈칸들을 채워 나갔을 때의 감정이 떠올랐다. 설렘과 흥분 재미로 가득한 기억이었다. 예상 답변을 작성하는 일은 재밌었다. 특히 마인드맵을 그린 흔적을 보니 내가 얼마나 즐거운 마음으로 이를 작성했는지가 상기 됐다. 그 고조된 감정과 함께 (만약 승무원이 된다면) 비행일지를 쓰며 비행하고 싶은 소망이 생겼다. 그 비행일지를 바탕으로 언젠가 승무원의 경력이 제법 쌓였을 때 책을 쓰겠다는 목표 또한 세웠다. 승무원으로서 오간 다양한 나라. 함께 일하며 생활한 다국적 사람들과의 소통과 이야기. 승무원으로서의 삶을 내 안에 차곡차곡 쌓아 책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수필이든 소설이든 구체적인 장르는 정하지 못했지만, 일단은 승무원으로서 내 안에 많은 스토리를 쌓아가고 싶었다. 그 이야기가 쌓일 미래가 설렘으로 다가왔다. 반드시 승무원이 되겠다는 다짐을 했다.

 물론 이러한 이유로 내 면접 답변을 수정하지 않았다. 면접은 엄연한 비즈니스거래이고, 전략이므로. 다만 내 대답에 스스로 찾은 심리적 확신이 생겼다. 면접 질문에 며칠 전과 똑같은 대답을 하여도 그 단단함이 강해졌다. 뿌리가 조금 깊어진 느낌이었다.

 그 시기에 눈썹 문신을 했는데 예쁘게 잘 나왔다. 그 덕에 외모에 대한 자신감도 높은 상태였다. 외적으로 그리고 내적으로 제법 자신감이 오른 상태에서 ‘실크 항공(Silk Air)’ 면접과 ‘에미레이트 항공(Emirates)’ 면접을 보기 위해 싱가포르로 향했다.


#단점 장점     


 “지원자의 장점이 무엇인가요?”

 “지원자의 단점이 무엇인가요?”     


  비단 승무원 면접 질문뿐만 아니라 어느 회사이든 단골 질문이라 할 수 있다. 아마 이 질문은 시대가 바뀌어도 없어지지 않을 것 같다. 

 승무원 스터디를 하며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었다. 사람들이 말하는 장점과 단점들이 사실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장점이 곧 단점이었고, 단점이 곧 장점이었다. 

 예를 들어 우유부단한 사람은 선택에 있어 충분한 조사와 숙고를 하는 성실함이 있었다. 성격이 급한 사람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선택에 용기를 품고 있었다. 기억력이 좋지 않은 사람은 대신 타인의 이야기에 최선을 다해 경청하더라. 강박이 심한 사람은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포기하지 않는 근성이 있었다. 식욕을 잘 조절하지 못한다던 사람은 가족과 먹는 식사가 주는 즐거움을 알고 있었다. 계산적이라는 사람은 숫자에 영민함이 있었다. 소심하다는 사람은 타인의 상처를 잘 돌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비교하는 습관이 있는 사람은 향상심에 비롯된 열정이 있었다. 후회가 잦은 사람은 더 나은 내일을 살고자 애쓰는 사람이었다.

 확실히 면접 준비는 재밌었다. 면접 질문을 통해 하나씩 작은 깨달음을 얻고, 나를 돌아보게 되는 즐거움이 있었다. 어느덧 나를 향한 어둠을 조금씩 걷어내고, 나를 더 알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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