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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d 강상원 Oct 22. 2023

낭만적 이상과 하찮은 현실

나는 결국 승무원이 됐을까?

       

“실크항공에서 최종 합격 메일만 온다면 나도 저 사람들처럼 유니폼을 입고, 가슴에 날개를 달고, 캐리어를 한 손에 쥔 채로 공항을 거닐 것이라 생각했다.”          


#실크에어(Silk Air), 에미레이트(Emirates)     


 실크 항공사의 면접은 두 번째 도전이었기에 면접 절차가 익숙했다. 면접관은 내 이력서와 나를 번갈아 보며 자기소개와 왜 실크 항공승무원이 되고 싶은지를 물어봤다. 약간의 떨림이 없지 않았지만 예전에 비해 훨씬 편하게 말할 수 있었다. 책을 쓰겠다는 또 다른 목표가 생긴 후 더욱 단단한 자세로 면접에 임할 수 있었다.

 1차 면접이 끝난 후 나와 같이 면접을 본 지원자들은 복도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면접관이 호명한 번호에 내 번호가 있었다. 1차 합격이었다. 기쁘긴 했으나 곧이어 있을 2차 면접을 위해 스스로를 다독이며 마음을 다잡았다. 곧이어 면접관이 전해 준 서류를 작성한 뒤 2차 면접을 봤다.

 2차 면접은 1:1 면접이었다. 약 15 ~ 20분 동안 치러졌다. 2차 면접을 보는 동안 그간 준비해 온 노력이 빛을 발하듯 순조롭게 진행됐다. 무엇보다 면접을 보는 과정이 편안했다. 2차 면접 또한 합격이었다. 

 나는 최종 면접 실로 향했다. 곧이어 면접관들과 처음 보는 남자 한 명이 들어왔다. 실크 항공의 임원급 인사로 보였다. 지원자들은 차례차례 앞으로 나가 4명의 면접관 앞에 서서 대화를 주고받았다. 3차 면접까지 마치고, 짐을 챙겨 나왔다. 최종 결과는 며칠 뒤에 이메일로 통보될 예정이었다.


 이후 숙소에서 짐을 챙겨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이틀 뒤에 있을 에미레이트 항공 면접을 보기 위해 쿠알라룸프행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는 어느덧 말레이시아국경선에 도착했다.

 공항이 아닌 곳에서 입국 도장을 받는 것이 생소했다. 여권을 비롯해 몇몇 귀중품을 챙겨 입국심사장으로 향했다. 알아본 바로는 입국 심사가 늦어질 경우 버스가 탑승객을 기다리지 않고 출발하는 경우도 있었다. 혹시 모를 불상사를 대비하기 위해 짐을 짊어진 채로 최대한 서둘렀지만 예상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낡은 입국장에서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군집해 있는 사람들을 보니 마치 피난길의 한 장면 같았다. 마치 전장이내 테러로 인한 난민 체험을 간접적으로 해보는 것 같았다. 여권에 입국 도장을 받은 뒤 버스가 있던 곳으로 향했다. 다행히 버스는 제자리에 있었다. 이후 늦은 새벽 쿠알라 룸프에 도착해 체크인을 했다. 에미레이트 면접까지 약 30시간이 남아 있었다.

 에미레이트 항공의 1차 면접날이었다. 에미레이트 면접장에는 많은 지원자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다행히 제법 이른 시각에 면접을 볼 수 있었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중동 3대 항공사 중 한 곳에서 1차 합격을 했다는 사실이 조금 믿기지 않았다. 카타르 항공 면접에서 2번 연속 탈락했으니 좋으면서도 얼떨떨했던 것이다. 그렇게 1차 합격을 확인한 후 숙소로 향해 휴식을 취했다. 2차 면접은 이튿날에 치러졌다.

 2차 면접은 지원자들끼리 대화를 주고받는 자리였다. 면접관이 제시한 주제를 바탕으로 3명의 지원자가 한 조가 되어 대화를 나누면 이를 면접관이 관찰했다. 5 ~ 10여분의 시간이 지나 내가 속한 조의 2차 면접이 끝났다. 호텔 로비에서 2차를 기다렸다. 기다리던 와중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2차 면접의 결과가 나왔음을 알 수 있었다. 밀집해 있는 군집 사이를 비집고 가며 주변에서 환호와 아쉬움의 탄성이 들렸다.      

 “197번, 203번, 208번….”

 결과는 탈락이었다. 미련을 달래기 위해 몇 번이나 2차 면접통과자 명단을 보러 갔다. 혹시 내가 내 번호를 착각한 것은 아닌지, 숫자를 잘 못 읽은 것은 아닌지 생각하며 희망과 낙담을 오갔다. 실크 항공으로부터 최종 합격연락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더욱 간절해졌다.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해가 화창한 아침이었다. 공항에서 일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 몇몇이 출근하고 있었다. 그리고 비행을 위해 지나가는 승무원들이 보였다. 실크 항공에서 최종 합격메일만 온다면 나도 저 사람들처럼 유니폼을 입고, 가슴에 날개를 달고, 캐리어를 한 손에 쥔 채로 공항을 거닐 것이라 생각했다. 마치 해리포터 세계관에서 마법사들을 선망하는 머글이 된 느낌이었다. 승무원 유니폼은 그린핀도르교복 같았고, 캐리어는 파이어 볼트빗자루 같았고, 가슴에 달린 날개배지는 마법사의 손길에 빛을 발산하며 변신하는 지팡이 일 것 같았다. 어느덧 승무원을 많이 동경하고 있는 나였다.

       

#신기루

 

 나는 비행기 환승을 위해 경유 공항에 있었다.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 시간까지 제법 남아 공항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이 나라 공항 근처의 풍경은 어떠할지 궁금해 밖으로 향했다. 공항 밖은 사막이었다. 다양한 높낮이를 가진 사구로 가득했고, 그 사구들은 바람에 따라 모래를 뿌리고 있었다. 그런 사막 한가운데 큰 호텔 건물이 하나 있었다. 그 호텔은 마치 소설‘어린 왕자’ 에나 오는 어린 왕자고향별의 장미 같았다. 외로이 별을 지키는 장미처럼 사막을 지키는 듯한 호텔의 모습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호텔 입구에서부터 줄이 길게 늘어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혹시 호텔에서 무슨 이벤트를 하나 싶어 사람들이 줄 서 있는 곳으로 향했다. 점점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이 모두 정장 차림을 하고 있음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승무원 면접장 같았다. 나는 꼬리처럼 늘어진 줄 속에 있는 누군가에게 말을 건넸다.     

 

“여기 무슨 행사 같은 것이 진행 중인가요?”

 “지금 승무원 면접이 진행되고 있어요.”

 “승무원 면접이요? 어느 항공사죠?”

 “카타르 항공이요.”     


 당황스러운 것도 잠시 나는 예기치 못한 기회가 왔음에 기뻤다. 가방을 확인해 보니 얘 비용이력서와 기타 서류가 있었다. 헤어, 메이크업, 의상을 위한 것들은 캐리어에 그대로 담겨 있을 터였다. 나는 서둘러 면접 볼 준비를 한 뒤 내 눈앞에 펼쳐진 긴 대열에 합류할 생각이었다.

 옷을 갈아입기 위해 공항에 있는 한 화장실로 향했다. 직전의 두 면접에서 1차 이상통과했기에 흐름도 기운도 내 편이라 생각했다.      

 ‘마침 내가 경유하는 공항에서! 그것도 공항바로 앞에 있는 호텔에서 면접이 열리다니!’     

 이 모든 것이 신기하면서 운때가 맞아 들어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약간의 기분 좋은 상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옷을 갈아입기 위해 캐리어를 열었지만 옷이 없었다. 상의는 있었는데 바지가 존재하지 않았다. 다른 가방을 다 뒤져 봤지만 정장 바지가 보이지 않았다. 공항 면세점에서 정장 바지를 팔지 않을까 했지만 그런 곳은 없었다. 할 수 없이 지원자들 몇몇에게 부탁을 했다. 면접을 보고 난 후 나에게 바지를 빌려 줄 수 있는지를 물어봤다. 염치없는 행동임을 알았지만 그만큼 상황이 절박했다. 운 좋게도 바지를 빌려주겠다는 지원자를 만났고, 나는 연신 “Thank you”를 외쳤다. 그가 면접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며 머리와 화장을 하기 위해 다시 화장실로 향했다. 그러던 와중 가방을 확인했는데 이번에는 넥타이가 사라졌었다. 조금 전까지 손잡고 놀이공원을 즐기던 아이를 어느새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최대한 침착하려 애쓰며 다른 물건들은 잘 있는지 확인했다. 확인 결과 다른 물건들 또한 멀쩡한 것이 없었다. 서류는 물에 젖어 있었고, 찢어지거나 구겨진 서류까지 존재했다. 누군가 나에게 일부러 해코지를 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남은 멀쩡한 물건들을 잘 챙기고, 하나씩 차근차근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제 물건 하나 간수하지 못하는 내가 승무원으로서 자격이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소지품을 하나씩 다시 챙기며 캐리어를 정리하면서 나를 향한 짜증과 분노가 밀려왔다. 어느덧 면접은 끝나 있었고, 나는 눈앞에 펼쳐진 기회를 허무하게 날려버렸다. 나 자신을 향한 한심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눈을 뜨니 출근할 시간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꿈이었다. 인천 공항 도착 후 출근 전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 집에 들러 짧은 단잠을 청했다(나는 수학 강사로 일했고, 출근시간이 오후였다). 그 단잠을 청하는 동안 꾼 꿈이었다.

 잠깐의 낮잠에서 얻은 꿈자리가 뒤숭숭했지만 꿈과 현실은 반대라며 연신 불안감을 달랬다. 회사 건물에 다다를 때쯤 이메일 알람이 울렸다. 실크항공으로부터 온 메일이었다. 이상했다. 면접관 말에 의하면 1주일 정도는 기다려야 했다. 심장이 급격하게 요동쳤다. 오로지 쿵쾅거리는 소리만이 내 주변을 둘러쌌다. 천천히 핸드폰을 눌렀다.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Unfortunately we regret to tell you….’

 (유감스럽게도….)     


 나는 며칠 뒤 ‘비엣젯 항공’ 면접을 보기 위해 베트남으로 향했다.          


#The End


 내가 베트남으로 향하기 몇 주 전 스터디원 몇 명이최종 합격을 했다. 한 명은 국내 항공사에 최종 합격을 했고, 다른 멤버들은 외국 항공사에 최종 합격을 했다. 이제 스터디 그룹 내에서 아직 최종 합격을 못한 사람은 나뿐이었다. 스터디를 처음 시작할 때 모두가 카타르 항공을 목표로 도전했다. 카타르 항공에 입사한 사람은 한 명뿐이었지만 결국 모두 승무원이 됐다. 한 해가 얼마 남지 않았었다. 한국 나이로는 33, 만 나이로도 31살이 되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나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몇 달 전 친구와 여행 삼아 갔던 호찌민으로 향했다. 내가 처음 승무원의 꿈을 결심하게 된 그곳으로.

 1차에서 탈락했다. 1차 합격은 어느 정도자신 있었는데 허무하게 기회가 날아갔다. 내 승무원 도전은 이제 끝이 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아쉬운 마음으로 비엣젯 항공의 채용 일정을 확인했는데 새로운 공지가 올라와 있었다. 1주일 뒤 하노이에서 오픈 면접이 또다시 열리는 것이었다.

 며칠 뒤 나는 하노이로 향했고, 1차 면접을 통과했다. 그 친구의 말 덕분이었는지 1차는 통화했다. 그 친구에게 말을 걸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비엣젯 항공이 당시 대대적인 채용을 하고 있어서 승무원이 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오픈 면접 일정이 거의 매월마다 있었다. 문제는 내 나이였다. 비엣젯 항공 규정상 만 30세 이하가 기본 자격요건이었다. 나는 얼마 안 있으면만 31살이었다. 내 생일이 다가오는 것이 반갑지 않았다. 이번 하노이 면접으로 비엣젯 항공에 지원할 수 있는 것도 마지막이었다. 그렇게 내 모든 외항사 면접이 끝나갔다.

 그리고 비엣젯 2차 면접에서 탈락했다.

 이제는 승무원을 포기할 때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매일 승무원 채용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승무원오픈 면접 일정이 올라오는 홈페이지, 승무원 커뮤니티, 해당 항공사의 채용 일정공지 등을 확인했다. 그런 와중 비엣젯 항공의 또 다른 오픈 면접이다음 주 오사카에서 열리는 것을 발견했다. 

 베트남에서 이 미두 번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1차 면접은 떨리지 않았다. 면접의 프로세스에 이미 익숙했고, 면접관도 자주 보니처음에 비해 긴장감은 줄어 있었다. 면접관 또한 나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주었다. 1차는 우선 통과였다. 1차는 통과할 자신이 있었다. 문제는 여전히 2차였다. 비엣젯 항공의 2차 면접은 장기자랑이었다. 면접관뿐만 아니라 모든 지원자들이 보는 대서 진행된다. 대부분 노래와 춤을 준비하는데 나는 음치, 몸치다. 무대 체질은 더더욱 아니다. 비엣젯 항공사도 끼가 있는 친구를 보려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떨지 않고, 침착한 모습을 보이는 지원자를 선별하려는 의도다. 이를 알고 있었지만 나는 그 벽을 넘지 못했다. 나는 2차 면접에서 탈락했다. 2차 면접 탈락 직후 바로 숙소로 가고 싶었지만 다른 지원자들의 면접을 다 지켜보았다. 면접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지속됐다. 그렇게 그들을 부러워하며 내 승무원 도전을 마무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늦은 밤 익숙한 오사카 길거리를 걸었다. 걷던 와중 낯익은 신사가 눈에 띄었다. 호젠지 신사였다. 몇 개월 전 에어아시아 면접을 보기 위해 오사카에 왔을 때가 생각났다. 신사 앞에 서서 눈을 감고 기도했다. 하지만 빌고 싶은 소원이 없었다. 승무원이 되고 싶다는 소원을 왠지 모를 이유로 빌 수 없었다. 몇 개월 전 같이 소원을 빌었던 친구들은 모두 승무원이 되었다. 나 홀로 다시 이 신사를 찾았다. 승무원이 아닌 승무원 지망생으로. 이제는 이마저도 보내야 할 때처럼 느껴졌다. 처음 승무원을 도전하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그동안 연습해 온 과정과 치러온 면접 장면 등이 머리를 스쳐갔다. 기도 아니 기도가 조금 길었는지 뒤에서 일본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내 어깨를 툭툭 쳤다. 나는 죄송하다는 뜻의 목례를 하고 자리를 떠났다.


 해외 오픈 면접을 보기 위해 매번 지출해야 하는 금액도 적지 않았다. 일하면서 번 돈을 해외오픈 면접 때문에 다 날릴 수도 없었다. 외국 항공사를 목표로 하는 승무원 준비생 사이에서 흔히 하는 말이 있다. ‘면접풍년’ 일 때 합격해야 한다는 것이다. 꼭 그렇지는 않지만 많은 외국 항공사들이 대대적인 채용을 몰아서 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 흐름에 합류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면접 풍년이라는 것이 끝나가고 있었다. 항공사는 그 회사가 취항하는 노선에 따라 특정 국가의 인원을 채용한다. 당시 한국인 남자는 채용이 점점 힘들어지는 추세였다. 이미 뽑힐 사람은 거의 뽑혀가고 있었다.

 물론 이와 상관없이 합격하는 사람들도 있다. 항공사 입장에서 원하는 인원수만큼 한국 국적의 승무원을 채용했으면 그 이상 한국인을 채용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지원자가 회사 입장에서 놓치기 싫을 인재라면 면접 풍년이든 면접 가뭄이든 뽑히곤 한다. 국적에 상관없이 채용한다. 내 주변인 중에도 이에 해당하는 사례가 있었다. 즉, 결론은 내 부족함이었다.

 그리고 해가 바뀌어 나는 한국 나이로 33살이 되었다. 승무원 도전은 이제 말 그대로 끝이었다. 해외 오픈 면접에 돈을 쓰기도 부담스러웠고, 내가 지원 가능한(나이에 관대한) 외국 항공사의 채용 소식 또한 줄어갔다. 언제까지 수학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 수는 없었다.

 내 결정에 후회가 밀려오고, 그 기세가 더 커지고 있을 때 쯤 한 외국 항공사 채용 소식이 올라왔다. 이번오픈 면접의 장소는 해외가 아닌 국내였다. 한국에서 오픈 면접이 진행된다는 공지였다.


‘에티하드 항공(Etihad Airways)’, 3월 25일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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