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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d 강상원 Oct 22. 2023

취중진담

에미레이트 항공

 "결국 나는 아무것도 되지 못했구나. 나만 뒤처졌구나."


#섬휘(蟾輝)


 제일가고 싶어 했던 중동 3사 중 한 곳인 ‘에티하드(Ethihad)’ 항공이었다. 에티하드는 한국인 채용이 드문 편이었다. 유럽노선이 많은 에티하드 항공사는 유럽인을 주로 채용했기 때문에 주로 유럽에서 오픈 면접이 열리곤 했다. 그런 에티하드에서 한국인 채용을 위해 한국으로 직접 오는 것이었다.

 나이에 제법 관대한 중동 항공사지만 조금은 불안감을 지닌 채 이력서를 제출했다. 며칠 후 회신 메일이 초대장과 함께 왔다. 서류는 통과였다. 이제는 1차 면접을 준비할 차례였다. 그리고 면접날이 다가왔다.

 면접은 서울 중구에 있는 호텔에서 진행됐다. 면접장에는 사람이 많았지만 그동안 해외에서 본오픈 면접에 비하면 훨씬 적었다. 나는 해당 시간에 맞춰 호텔에 도착했지만, 예상보다 대기 시간이 길어져 늦은 밤에 면접을 봤다. 면접 실로 걸어 들어가 면접관에게 이력서를 건넨 후 조금의 스몰토크를 나눈 뒤질문지를 뽑아 이야기하는 절차였다. 나는 “승무원이 된다면 어디에 가고 싶은가요?”라는 질문을 뽑았다. 나는 이탈리아에 가고 싶다고 말한 뒤 이유를 차근차근 말했다.

     

 “호주에 몇 년간 지내면서 친해진 이탈리아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와 공유하는 추억이 많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그 친구가 결혼을 한다며 저를 결혼식에 초대했습니다. 승무원으로서 이탈리아에 방문해 그 친구와 그 친구의 아내 될 분에게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말을 직접 전해주고 싶습니다.”     


 면접관은 내 대답에 흥미를 느끼는 듯 연신 미소와 기분 좋은 리액션으로 화답해 주었다. 그리고 ‘인비’를 받았다. 1차 관문 통과였다.

 이후 1~2 시간 뒤기내 문 읽기 테스트가 진행됐다. 5명씩 들어가 주어진 기내 문을 차례로 읽었다. 면접관은 바쁘게 무언가를 적는듯했다.

 면접이 다 끝났고, 최종 면접 진출 여부는 이메일로 공지될 예정이었다. 면접이 끝나고 나니 막차를 타야 될 시간이었다. 봄비가 하루 종일 약하게 내리는 날이었다. 달 속 두꺼비가 빛을 내렸고, 습기를 머금은 기분 좋은 밤공기가 내 주변을 맴돌았다. 느낌이 좋았다. 최종 면접까지는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작년 봄에 시작한 도전이 1년에 다다를 무렵쯤 합격한다면 얼마나 달콤할지를 상상했다. 그와 반대로 혹시나 탈락한다면 이제는 미련 없이 마음을 비우자는 다짐을 되뇌었다. 그렇게 스스로 정한 1년의 유예 끝에 내가 서있음을 느끼며 늦은 시간의 이슬비 사이를 걸었다.

 승무원이 된 몇몇 사람들의 합격 수기를 읽어보면 3 ~ 4년 도전 끝에 합격하는 경우도 있었다. 해외 오픈 면접을 30회 이상 나간 끝에 붙은 사람도 있었다. 그 사람들의 공통점은 될 때까지 도전했다는 점이었다. 나 또한 될 때까지 도전하고 싶었지만 나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간절함이 집착이 되기 전에, 꿈이 아닌 낭만에 취한 바보가 되기 전에, 어영부영 30대 중후반이 되기 전에. 게다가 현실을 선택하는 일은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 상황에 맞추어 현실적인 선택을 하는 것 또한 나를 아끼고 내 삶에 충실함을 의미하기에. 최종 면접에 진출하고, 이후최종 합격까지 한다면 좋겠지만 설사 떨어지더라도 그동안의 노고에 이제는 나 자신을 토닥일 마음의 준비가 된듯했다. 누군가는 말도안 되는 망상에 젖어 현실을 내 팽개쳤다고 비난해도 상관없었다. 결과를 비웃으며 시간 낭비했다는 질타를 던져도 개의치 않을 것 같았다. 내 도전의 결과와 상관없이 그 과정 자체에서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실패가 자기혐오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 같았다.          


#취중진담


‘띵동~’     

 최종 면접 진출 여부를 알려주는 메일이 생각보다 일찍 왔다. 결과는 탈락이었다. 어느 정도마음의 준비는 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탈락하고 나니 아쉬움이 밀려왔다. 내심 최종 면접까지는 보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미 숱하게 겪어본 탈락이고, 더 이상승무원 도전은 없을 것으로 마음먹었기에 큰 흔들림은 없었다. 충분히 마음의 준비를 했고, 그 덕에 에티하드 탈락 메일을 받은 이후에도 하루하루 충실할 수 있었다. 평소처럼 운동을 하고, 학원에 출근해 아이들을 가르치며 평범한 나날을 보냈다. 그렇게 괜찮게 지냈다. 평균대 위에서 균형 잡는 일은 힘들지 않았다. 내가 밉지 않았다. 자기혐오는 과거에 비해 제법 사라진 듯했다. 예전보다는 조금 단단해진 것 같았다. 적어도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며칠 뒤 친구와 술 한 잔 후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날도 가벼운 이불처럼 비가 조금씩 내려앉는 날이었다. 선선한 봄비의 기운이 마치 에티하드 면접 당일 날 내렸던 비와 닮아있었다. 그날의 나는 어땠을지 궁금해 핸드폰 속 사진 몇 장을 들여 보았다. 에티하드 항공사의 면접 당일 입었던 의상과 면접장 그리고 화장과 헤어를 체크하기 위해 찍었던 셀카 등. 그날의 내 도전이 고스란히 기록돼 있었다. 그 이전 사진을 살펴보니 비엣젯 항공사 면접이 있었다. 중간중간 스터디원들과 함께 찍은 사진도 있었다. 예상 면접 질문에 답변하는 모습을 녹화한 동영상도틈틈이 있었다. 조금씩 더 과거의 사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럴수록 지난 1년의 승무원 도전기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을 살펴볼수록 분함, 안타까움, 유감, 아쉬움의 감정이 솟아오르려 했다. 폭발 직전의 화산 같았다. 이미 활동을 멈춘 휴화산인 줄 알았는데, 그간의 여러 원통한 감정이 누적되고, 뒤섞여 들끓고 있었다. 여러 종류의 패배감이 내 안에서 충분히 섞이고 누적됐을 때는 더 이상 내 자아가 그 압력을 견디지 못했다.     


 ‘이제 정말 끝이구나’     


 취기가 더해져 감정이 북받쳐 올라왔다.

 솟아오르는 감정이 밖으로 터져 나오기 전까지 괜찮은 줄 알았다. 내 삶에 실패로 인한 감정이 침투할 틈이 없는 줄 알았는데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 틈을 막고 있었다. 승무원 도전이 짝사랑으로 끝났음을 담담히 받아들인 줄 알았다. 내 일상에 탈락 혹은 실패로 인한 좌절이 들어올 틈이 없었다고 생각했다. 저울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좌우에 늘려간 추는 더 이상추가 놓일 공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저울은 무너져 있었다. 평균대 위에서 잘 걸어가고 있다 생각했지만 한순간에 떨어졌다.

 집 앞공원에서 혼자 울며 그간준비해 온 면접 질문을 답했다.     


 “제가 이 항공사에 입사하고 싶은 이유는…”

 “제가 승무원이 되고 싶은 이유는…”

 “제 장/단점은…”

 “제가 승무원이 된다면…”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곳에서 모두가 들어줬으면 하는 마음을 던졌다.     

 “저는 승무원이 되고 싶습니다. 저는 승무원이 되고 싶습니다. 저는 승무원이 되고 싶었습니다.”          


#구멍 난


 승무원 도전을 멈추기로 했으니 더 이상 스터디도 나가지 않는 것이 맞았지만 내 삶에서 조금씩 지워 나가야 될 것 같았다. 한 순간에 컴퓨터 버튼 누르듯 삭제할 수는 없었다. 몇 번의 승무원 스터디에 참여했지만 점차 횟수를 줄여 나갔다. 그렇게 미련을 조금씩 덜어내고, 나의 일상에 더 충실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내 노력과 별개로 실패했다는 생각이 내 하루의 틈새에서 피어올랐다. 버스를 기다릴 때, 음식을 기다릴 때, 화장실 줄을 설 때, 퇴근길에서, 샤워하는 도중, 서점에서 책을 고를 때, 친구들을 만나고 집으로 가는 길 등. 승무원 탈락이라는 결과는 내게 사고의 공백을 허용하지 않았다. 멍하니 있을 자유가 박탈됐다. 하루의 마디마디에서 끊임없이 날 괴롭혔다. ‘나는 실패한 사람인가?’라는 질문이 사고의 공백을 끊임없이 비집고 들어왔다. 그 패배감으로부터 도망쳐 운동과 독서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운동할 때만큼은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낼 수 있었다. 물론중간중간‘결국 승무원이 되지 못했구나’라는 생각이 떠올랐지만 그때마다 더 운동에 집중했다. 바벨의 중량을 늘리고, 조금 더 빠르게 달리고, 조금 더 숨 가쁘게나를 몰아쳤다. 그럴 때마다 올라오는 희열과 육체적 고통 덕분에 실패라는 감정 속에서 잠시나마 해방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 해방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땀과 함께 내 안의 패배감을 배출했다고 생각했지만 어김없이 멍하니 서있기를 반복했다.

 항상 책을 들고 다녔다. 다독을 위해서도 마음의 양식을 얻고자 함도 아니었다. 그저 책에 빠져 드는 순간만큼은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다. 닥치는 대로 읽고, 또 읽었다. 밖에 들고 나온 책을 다 읽어버리면 다시 읽었다. 책이 펼치는 세상으로 도망치고 나면 현실에서의 실패는 그곳까지 따라오지 못했다. 책에 밑줄 치고, 필기하는 것을 싫어했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책에 더 집중해야 했다. 실패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방법이었다. 아니 실패라는 감정을 회피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내 삶에 승무원이라는 언어가 마치 존재했던 적도 없었다는 듯이.

 처음에는 운동과 독서가 효과가 있는듯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는 병을 낫게 해주는 치료제가 아님을 깨달았다. 잠시 고통을 잊게 해주는 진통제에 불과했다. 그렇게 스스로 투여해 온 진통제에 내성이 생기기 시작할 때쯤 쉽게 잠들지 못하는 날이 반복됐다. 어김없이 침대에 누우면 한숨과 함께 나를 향한 분노가 밀려오곤 했다.


 ‘결국 나는 아무것도 되지 못했구나.’

 ‘나만 뒤처졌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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