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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d 강상원 Oct 22. 2023

자아의 파수꾼

하나의 모험이 끝나고

“괴로움을 토대로 쌓아온 철학은 자아의 파수꾼이 된다.”          


#연장전     


 늦은 밤 부산에 도착했다. 부산에 오기 전까지 많은 고민이 필요했다. 이미 승무원이 될 마음을 접었는데 괜한 짓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막상 떨어진다면 크게 씁쓸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것이 재밌었다. 승무원은 어느덧 내 마음속에 차지하고 있던 많은 공간을 내주었다.

 이튿날 면접장으로 향하면서 자연스럽게 지난 면접 날이 떠올랐다. 면접장에 도착하니 낯선 듯 익숙한 공기가 나를 맞이했다. 각자의 최선이 방을 가득 메웠다. 제법 마음을 비워서인지 예전보다 대기실의 분위기는 내게 편안했다. 물론 약간의 긴장이 일어, 책을 읽으며 긴장감을 달랬다. 어느덧 나를 비롯한 몇몇 지원자들은 면접 진행요원의 안내에 따라 면접 실 앞의 대기 열에 합류했다. 줄이 조금씩 줄어감에 따라 면접관들과 지원자들의 대화가 벽에 부딪혀 들려왔다. 무슨 대화인지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의 볼륨은 아니었지만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제 내 차례였다.

 그간 수많은 CV Drop 연습을 했지만, 매번 면접장에서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다만 이번만큼은 생각보다 떨리지 않았다. 면접 실의 분위기도 면접관도 그저 모든 게 편하게 다가왔다. 누적된 연습의 결과 일지, 아니면 이제는 조금 미련을 내려놓은 상태여서일지 나는 산뜻한 새벽 냄새를 맡으며 즐기는 산책처럼 면접관에게 다가갔다. 

 면접관의 질문에 답변한 후 나는 제법 자신 있고, 편안하게 이야기했다고 생각했다. 이후 면접관은 내 CV를 보면서 몇몇 이력을 더 질문했다. 왠지 이번에는 인비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들어맞았다. 사진으로 보거나 다른 지원자들의 것만 봐 왔던 그 익숙한 모양의 종이를 면접관이 꺼냈다. 119번이라는 번호와 함께 인비 위에 내 영문 이름 Ted가 적히는 모습을 보니 '드디어 카타르 인비를 구경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받아본 인비에 뿌듯함을 느끼는 것도 잠시 내일 있을 2차 면접을 준비해야 했다. 

 면접이 끝나자 허기짐이 몰려왔다. 나는 인비를 받은 지인 한 명과 부산역 근처 밀면집으로 향했다. 그 집 밀면은 맛있었다. 인비를 받아서인지 그저 정말 배고팠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기분 좋은 식사를 했다. 면접의 피로를 녹여줌과 동시에 뜨거운 부산의 무더위를 식혀주었다.


 이튿날이 밝았고, 면접장에 도착하니 어제와 비슷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이내 면접관이 들어와 오늘의 면접 절차를 브리핑했고, 바로 영어 테스트가 이어졌다. 통과했다. 곧이어 오늘 면접의 핵심인 Small talk 면접이 이어졌다. 곧이어 내 차례가 되었다.

 편안했다. 그리고 즐거웠다. 내가 감지하지 못한 긴장과 떨림 혹은 어색함을 면접관들은 느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나는 편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그간 면접을 볼 때마다 연습해 왔던 질문을 최대한 승무원답게 얘기하려고 노력했다. 반면에 그날의 면접은 내가 왜 승무원이 되고 싶고, 그간 어떤 노력을 했는지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떨어진다면 아쉽겠지만 그것이 더 이상 큰 상처가 되지 않을 것임을 면접관들과 이야기하면서 알 수 있었다. 애써 웃으려 하지 않았고, 애써 잘 보이려 노력하지 않았다. 타인에게 비치는 나의 모습보다 나 스스로를 바라보는 모습에 더 집중하게 됐다. 면접관들과의 대화였고, 나 자신과의 대화였다. 물 흐르듯 유려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담담하게 건네는 내 생각과 감정으로부터 위안을 느꼈다. 그런 내 태도가 면접에 어떤 영향(긍정 일지 부정 일지)을 미쳤을지 모르지만, 후회와 미련은 더 이상 남지 않을 듯했다. 

 이후 대기실에서 약 1~2시간이 지났을 무렵 모든 지원자가 스몰토크 면접을 마쳤고, 약간의 시간이 더 지나 면접관이 결과를 발표했다. 속속들이 최종 면접 진출자가 나왔고, 면접 대기실은 환희와 아쉬움의 기운이 짙게 깔려 나갔다. 내 번호 119번에 점점 가까워짐에 따라 설렘과 긴장이 공존했다.     

 “Number 114, number 117, number 122, number…”     

 아쉽게도 면접관은 내 번호를 건너뛰었다. 숱한 탈락의 고배를 마셨지만, 이번만큼은 그리 쓴맛의 술은 아니었다. 아쉬움은 남았지만, 미련은 더 없었다. 말 그대로 시원섭섭했다.

         

#죽고 싶지만 밀면은 먹고 싶어     


 탈락 직후 생각보다 아쉬움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 낯설었다. 그보다 배가 고팠다. 어떤 감정일지 모르는 상태다 보니 일단은 주린 배를 채워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면접은 결국 떨어졌지만, 심리적 갈증보다 물리적 허기짐이 더 크게 다가왔다. 나는 어제 먹은 밀면집으로 향했다.

 내 탈락의 아쉬움과 달리 몸은 정직했다. 지난 1년간의 여정이 주마등처럼 스쳐 갈 것 같았지만 내 몸은 주린 배를 채우기에 급급했다. 나는 밀면과 함께 시킨 만두를 허겁지겁 해치웠다. 면접에 탈락하면 씁쓸한 기분에 입맛이 떨어지기 마련이지만 그날 먹은 밀면은 인생 최고의 식사 중 하나였다. 당장 최종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 와도 이 식사만큼은 마치고 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고, 애인과 헤어져도 때가 되면 배고픈가 보다.

 한 끼의 식사가 주는 만족감이 큰 위로가 되는 경우가 있다. 나에게는 그날 먹은 밀면이 그랬다. 하지만 그 식사가 주는 맛보다는 그 식사를 온전히 즐기고 있는 나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승무원을 향한 꿈의 배고픔보다 육신의 배고픔이 앞서는 내 모습을 보니 더 미련은 없는 듯했다. 예전 면접에 떨어졌을 때마다 입맛이 없고, 위축되고, 주눅 들어  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만큼 간절했다는 듯 일 수 있겠지만 왠지 궁상맞아 보였다. 면접 탈락의 씁쓸함을 달래기보다는 당장 배고픔을 진정시키는 내 모습이 제법 위로가 됐다.

 식사를 마친 후 옷을 갈아입었다. 양복과 넥타이를 정성스럽게 접어 캐리어에 담았다. 캐리어에 놓여있는 면접 복과 예전보다 조금은 해져있는 넥타이가 보였다     

 ‘이제 너를 입을 일은 없을 거 같다. 그동안 수고했어.’     

 이후 기차를 기다리며 인비를 꺼내 보았다.     


#만회 골     


 그동안 카타르 항공을 목표로 연습하고, 오픈 면접에 참여하면서 카타르 항공으로부터 인비를 받으면 어떤 기분일지 수 없이 상상했다. 인비를 받은 다른 지원자들을 부러워했다. 인비 여부와 관계없이 승무원이 되지 못했다는 사실은 지난날의 도전과 다르지 않았다. 결국 윙을 달지 못했다. 인비를 받았던 면접이든 그렇지 못했던 면접이든 나는 결국 승무원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손에 쥐어져 있는 인비를 보니 생각보다 큰 위로가 되었다. 타 항공사에서 인비를 받아본 경험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최우선 목표였던 카타르 항공 면접에서 받은 첫 인비는 조금 더 특별했다.

 그간의 면접이 한 골도 넣지 못하고 진 완패였다면 이번에는 적어도 만회 골은 넣은 느낌이었다. 인비가 이번만큼은 완패는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졌지만 잘 싸웠다는 말을 내게 건네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매번 해외에서 면접을 보고 인천공항에 도착할 때마다 씁쓸함을 느꼈다. 아쉬움과 패배감이 몰려왔고, 그럴 때면 ‘그래도 수고했다’는 말을 내게 건넸다. 하지만 큰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진심이 아니었다. 속으로는 나 스스로 수고했다는 말을 들을 자격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과정 혹은 노력의 여부와 관계없이 결과만을 보고 내게 고생했다는 말을 건네는 것이 사치나 어리광으로 여겨졌다. 내면의 무의식은 스스로를 향한 토닥임을 죄악시한 듯했다.

 이번만큼은 그동안 수고했다는 말을 스스로에게 건넴에 거부감이 일지 않았다. 나에게 위로의 태도로 다가가도 될 것 같았다. 그리고 고생해 온 내 과거가 고마웠고, 고생했다는 말을 스스로에게 건넬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목표 성취에 상관없이 뿌듯함을 느낄 수 있겠구나라고 느꼈다. 졌어도, 패배했어도 나에게 건네는 안부와 위로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게 홀가분한 기분과 함께 나는 인비를 만지작거리며 기차에 몸을 실었다.


#초대장(Invitaition)     


 기차가 달리고 멈춤을 반복함에 따라 창밖의 풍경은 흐리고 선명해짐을 반복했다. 나는 그에 맞추어 내 흐린 기억을 붙잡아 선명하게 만들고, 어느 정도 선명해졌으면 또 다른 흐린 기억을 더듬었다. 그렇게 기차를 타고 집으로 올라오는 동안 지난 1년 반을 회상했다. 우연한 기회로 승무원을 결심하고, 인연과 우연의 조화로 좋은 스터디원을 만나고, 그들과 동고동락하며 승무원을 도전했던 나날이 필름처럼 내 안에 펼쳐졌다. 조금씩 회상을 거슬러 올라갔다. 그날 본 부산 카타르 항공 면접부터 가까운 과거로. 과거를 조금씩 거슬러 올라가 내가 처음 승무원을 도전하기로 결심했던 날까지 자연스레 되돌아봤다. 회상이 조금씩 시작에 다다를 무렵 왜 승무원에 도전했는지를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계속 나에게 ‘왜?’라는 질문을 던졌다.     


 ‘왜 승무원이 되고 싶었어?’

 “왜 여행을 많이 다니고 싶었어?’

 ‘왜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하고 싶었어?’

 ‘왜 여러 이야기 등을 직간접적으로 접하고 싶었어?’     


 기차 창밖의 풍경을 배경 삼아 자문하며 내 승무원 탐험의 시작점으로 거슬러 갔다.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여행을 많이 다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여행하며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었다. 세계 각국을 다니면서 다국적 동료들과 소통하고 일하는 것이 나의 성향에 부합할 것으로 생각했다. 단순히 여권에 많은 도장을 찍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세계 각지의 랜드 마크 앞에서 얻은 인증 숏을 원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세상을 알고 싶고,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하고, 다양한 세계를 경험하고 싶었다. 내가 모르는 세상을 활자나 미디어로만 접할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직접 느껴 보고 싶었다.

 세상의 반이 왜 굶주리는지 두 눈으로 보고 싶었다. 동경하는 운동선수의 플레이를 직접 보고 싶었다. 냉정과 열정을 간직한 채 서로를 그리워한 두 남녀가 그려진 도시에서 직접 낭만을 만끽해 보고 싶었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역사를 가진 국민과 슬픔을 공유하고 싶었다. 위대한 과학자가 종교 앞에 무릎 꿇어야만 했던 곳에서 그를 추모하고 싶었다. 세계의 지붕이라는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 봉우리에 올라 만년설을 마주하고 싶었다. 아고라에서 숱하게 사람들을 귀찮게 했던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그려보고 싶었다. 빛나는 오로라와 쏟아지는 별을 올려보며 경이와 겸손이 내 안에 조화되는 감정을 느끼고 싶었다.

 그렇게 다양한 스토리를 접하고 싶었다. 많은 스토리를 만나면서 내 안에 좋은 서사를 쌓고 싶었다. 이야기 수집가(story collector)이자 이야기꾼(story teller)이 되고 싶었다. 이런저런 세상사를 내 안에 쌓아가 나름대로 소화하는 과정에서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이 좋았다. 작은 깨달음에서부터 삶의 진리 혹은 우리 인생사에 중요한 가치관이라 여겨지는 무언가를 확인하는 순간이 좋았다. 그리고 이를 타인과 공유하는 행위가 나를 행복하게 했다.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이야기, 공감 가는 이야기, 정보가 담긴 이야기, 인간이라면 응당 알아야 하는 이야기 등. 이런저런 내 나름대로 ‘좋은’ 이야기를 경험하고, 내 안에 쌓고, 알리고 싶었다. 어렸을 적 내가 왜 영화감독이 하고 싶었는지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모두가 그렇듯 나 또한 내 삶이 가치 있기를 바랐다. 만인에게 박수와 존경받을 만한 대단한 일이 아니라 내 나름의 영역에서 보람을 느끼며 살아가고 싶었다. 그리고 스토리 텔러로서의 삶이 내 이런 소망을 충족시켜 준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름의 이유를 찾게 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입가에 절로 미소가 퍼지는 감정이 차올랐다. 시작이 어디였는지 알고 나니 하나의 탐험이 끝나 있었다. 내 승무원 탐험이 끝나는 순간이었고, 내 꿈을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꿈을 ‘찾았다’라고 말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꿈은 발명의 대상이 아닌 발견의 대상임을 체감했다. 손 안의 인비는 승무원이라는 역까지 갈 수 있는 티켓은 되지 못했지만, 또 다른 모험의 초대장이었다.

 어느덧 창밖의 풍경이 흐리지도 선명하지도 않았다. 제법 캄캄했다. 하늘에는 공평하게 밤이 내려앉아 있었다. 오늘도 고생한 모두에게 내리는 안온한 어둠이었다. 캄캄함이 주는 공포가 아닌 평화로운 적막이었다. 무언가 차분히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아늑하고 고요하고 그윽했다. 조금씩 침잠함과 동시에 새로운 고동이 보이기 시작했다. 기차는 거의 도착지에 다다랐다. 이제는 다음 목적지를 기다리는 설렘이었다. 새로운 목적지를 향해 달릴 준비를 하는 두근거림이었다.


#자아의 파수꾼


 무성한 나뭇잎이 작열하는 태양 빛을 다 막아내지 못하던 그 화창한 여름. 나의 마지막 승무원 면접이 끝났다. 그러고 나니 나의 꿈은 직업적 대상(승무원)이 아닌 삶의 형태(Storyteller)로 진화해 있었다. 꿈이 삶의 형태로 바뀌니 하고 싶은 것이 더욱 많아졌다. 아니 어쩌면 어떤 직업을 선택하든 그 속에서 나만의 가치를 실현하고 내 꿈을 이루어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렇게 나의 꿈을 찾았다.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종종 겨울이 찾아올 테지만 천천히 자신에게 다시 ‘왜?’, ‘어떻게?’라는 물음표를 던지면서 겨울을 나면 될 것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그렇게 계절의 순환을 받아들이고, 인생이라는 여행을 즐겨 나가면 될 것이다. 결국은 모두 내 삶의 일부이므로. 내 삶에서 승무원이라는 탐험은 끝났지만 내 인생의 여정은 아직 많이 남아있다. 그렇게 과정을 탐구하고 탐험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종종 찾아올 겨울 또한 삶이라는 내 여행의 일부이기에. 가끔은 애쓰고, 가끔은 게으르고, 가끔은 열정적으로, 가끔은 담담하게 삶의 순환을 견디며 성숙해 나갈 것이다.

 승무원을 도전하기로 한 결심은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다. 승무원이 되지 못한 경험은 인생 최고의 실패였다. 창작을 동경했던 나로서는 언젠가는 글을 쓰게 됐을 것 같지만 승무원을 도전했던 경험과 그 실패는 글 씀에 있어서 큰 원동력이 됐다. 더 이상 지난 실패로 후회만 하지 않았다. 후회로 나의 과거를 점철시키며 자기혐오를 스스로 키우지 않았다. 남들의 성취와 성공과 비교하지 않고, 홀로 자유로울 수 있었다. 나의 실패를 사랑할 수 있었다. 더 이상 나 자신을 미운 서른 새끼로 보지 않았다.

 우리 삶에서 반복되는 실패로 인해 내 삶이 초라하게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내 삶이 초라한들 그것이 내가 내 삶에 긍지를 갖지 못할 이유는 아니다. 오히려 초라해 보이는 실패 했다면 이는 내 삶에 긍지를 가져다주는 경험이 된다. 숱한 실패의 경험과 이를 바탕으로 한 성찰, 성숙, 성장이 이어질 때 지난날의 실패는 내 자아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 괴로움을 토대로 쌓아온 철학은 자아의 파수꾼이 된다.

 그날 내 안의 파수꾼은 손에 쥐어져 있던 인비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연필을 쥐었다. 쓰고 싶은 책의 첫마디가 떠올랐다.


 ‘나는 결국 승무원이 되지 못했다’

 기차는 특유의 소리와 함께 나아가고 있었다.

     

‘우리의 탐험이 끝나는 때는 시작이 어딘지를 알아내는 순간이다.’ - T.S Elliot -



참고 도서 및 차용한 표현 출처

『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 (Michael Sandel)

우리의 인생이 겨울을 지날 때』 캐서린 메이 (Katherine M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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