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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d 강상원 Oct 22. 2023

달그림자 묻은 곳에 여명이 물들어

내가 나의 실패를 사랑할 수 있을까?

“승무원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살아온 삶이, 나라는 존재가, 나의 이상이 끊임없이 평가받아야 했다.”     


#달그림자 묻은 곳에 여명 물들어     


 하루는 현재 내 상황, 승무원이 결국 되지 못했다는 사실, 미래의 불투명성 등. 이 모든 것이 내 안을 어지럽혀 도저히 잠이 들지 않는 날이었다. 마음속 분노와 미련을 식히기 위해 책을 집었지만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억지로라도 읽어 내면의 화를 가라앉혀야겠다는 생각에 필사를 시작했다. 필사는 제법 효과가 있었다. 정확히는 필사를 하며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을 추가로써 봄이 유효했다. 실패를 향한 나의 화를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 나에 대한 내 태도를 부드럽게 만들었다. 늦은 새벽에 시작한 글쓰기는 다음날도 다 다음날도 지속됐다. 내면의 복잡함을 글로 마구 배출했다. 떠오르는 대로 두서없이 글로 적어보고 나면 조금은 내 마음이 정화되는 것 같았다. 차오르는 생각과 감정을 한 글자 한 글자 적어내며 내면의 혼돈을 차곡차곡 정리했다. 아무 말대잔치로 시작해 일기, 시, 책이나 영화에 대한 감상평 등. 적고 싶은 대로 적었다. 때로는 감정의 배설이었고, 때로는 나름의 창작이었다.

 글쓰기는 생각 이상으로 효과적이었다. 운동과 독서가 잠시나마 고통을 잊게 해주는 진통제 역할이었다면 글쓰기는 실질적인 치료제 같았다. 내 감정이 조금씩 회복되는듯했다. 당시 나는 구멍 뚫린 배 같았다. 구멍에서 솟아나는 물을 막기 급급한 것처럼 운동과 독서로 내 불안, 패배, 분노, 좌절, 혐오 등의 감정이 솟아나지 못하게 누르기 급급했다. 이런 진통제 처방에 면역이 생겨 효과가 없거나 그 유효함이 짧을 때 면 글을 쓰는 것만이 나를 치료해 주었다. 어느덧 배는 조금씩 다시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조금씩 회복을 거듭해 나가면서 나는 그간 승무원을 준비해 온 흔적들을 지웠다. 항공사 자료, 면접 예상 답변을 적어 놓은 것, 기타 서류, 컴퓨터 파일 등을 조금씩 버리고 삭재해 갔다. 그런 던 와중 우연히 한 영상을 보게 됐다. 승무원을 준비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영상이었다. 그 영상 속에서 나는 승무원이 된다면 이루고 싶은 목표가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었다.


 “승무원이 된다면 최소 10년 이상은 반드시 일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10년 동안하루도 빠짐없이 비행 일지를 기록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 목표를 바탕으로 책을 쓰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여행지에서 더 많은 추억을 쌓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데 도움이 되는 책을 쓰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들어올 후배분들이 승무원 업무에 적응해 나가는데 도움이 되는 책 또한 쓰고 싶습니다. 그렇게 제가 승무원으로서 겪어나갈 이야기가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로 진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것이 목표입니다.”     


 면접용으로 만든 대답이었지만 답변의 밑바탕이 되는 이야기는 진심이었다. 나는 책을 쓰고 싶었다. 그 영상 

속에서 나는 담담하면서도 기분 좋은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시작의 이유를 돌고 돌아 되찾았다.     


 ‘여전히 하고 싶은 것이 많잖아?’     


 과거의 내가 나에게 위로를 건네는 것 같았다. 우선은 조금씩 더 자주 그리고 더 많이 글을 써보기로 했다. 책을 쓰고 싶은 마음이야 있었지만 고작 영상 하나로 ‘이제 나는 작가가 될 거야’라는 다짐은 우습게 느껴졌다. 책을 쓴다면 어떤 장르로쓸 것이고, 주제는 무엇이며, 내용 구성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 아무것도 정한 것이 없었다. 그리고 우선은 글을 써본 경험이 많이 부족했다. 이러한 연유로 우선은 책을 쓰기보다는 꾸준히 그리고 묵묵하게 글을 써보기로 했다. 

 하고 싶은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도 모른 채로 무조건 “내 꿈은 무엇이야!”라고 했던 과거와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마음속 이야기를 들어보지도 않은 채로 무조건 영화감독이 될 거라며 호주로 떠났던 때와는 달랐다.

 무엇보다 글을 쓰면서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을 고스란히 느껴보고 싶었다. 내가 쓴 글을 혼자 다시 읽고 감상하는 것보다 쓰는 과정 자체를 조용히 음미하고 싶었다. 승무원이라는 목표가 좌절된 상황에서 조금씩 일어서는 과정 자체를 누리고 싶었다. 상실의 아픔을 빠르게 치유하고 싶지 않았다. 천천히 회복의 서사를 밟고 싶었다. 지름길보다 더 느리고, 더 돌아가는 길을 가고 싶었다. 그 길 속에서 마주할지 모르는 (당시에는 명확하지 않았던) 무언가를 기대했던 것 같다.

 그렇게 글쓰기를 통해 내 감정을 이해하고, 내가 실패한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나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승무원에 도전하며 겪은 실패의 서사와 감정을 고스란히 적어가며 나의 여정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다. 글쓰기는 제법 즐거웠다.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용기가 필요했다. 나는 용기를 내어 나의 실패를 받아들이려 하지는 않았다.  나의 실패를 바라볼 용기가 없었다. 그저 실패라는 사실을 외면하고, 패배감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독서와 운동에 집착을 했다. 그럴수록 다시 예전처럼 자기혐오가 짙어질 것 같았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던 어느 새벽. 글로 내 감정을 배출했다. 다만 글로 적어낸 내 감정은 말처럼 금세 휘발되지 않았다. 종이 위에 온전히 남아 있었다. 나는 연필 끝에서 쏟아진 내 감정을 그대로 응시할 수 있었다. 이것이 나 자신과 온전한 만남, 온전한 대화로 이루어지는 첫걸음이 되었다. 그러고 나서 조금 더 용기를 내어 내 지난 승무원 도전기를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이전에도 면접에서 떨어지고 나면 나를 돌아보고는 했다. 하지만 이는 내면에 있는 자아와의 대화라기보다는 승무원이 되기 위해 나를 객관적으로 분석해 보는 과정이었다. 일종의 바둑 대국을 한 뒤 복기를 하는 과정과 비슷했다. 

 글쓰기는 그것과 비슷하면서도 제법 달랐다. 실패한 경험의 객관적 분석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경험에서 얻은 내 생각과 감정을 바라보는 시각에 객관성을 더해주었다. 글쓰기는 내가 나의 실패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해 주었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조금씩 직시하며 나는 비워내고, 내려놓아야 했다. 그렇게 내 패배감을 직시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괴롭지 않았다. 오히려 치유의 감정이 더 차올랐다.          


#타자화(他者化)


 승무원을 준비하면서 그동안 내 모든 것이 평가받아야 했다. 키, 외모, 외국어 능력, 학벌, 서 있는 자세, 말투, 발음, 억양, 표정, 미소, 헤어, 메이크업, 넥타이 색과 무늬, 구두 높이, 셔츠, 입술 색, 몸무게, 몸 선, 면도 상태, 손톱 길이, 면접을 준비하는 자세, 앞으로의 포부, 이 직업을 가지고 싶은 이유, 가족관계, 아르바이트 경험, 기타 과거의 에피소드 등. 

 세포 하나하나가 유기적으로 활동하며 하나의 생명체를 움직이듯 나의 구성요소 하나하나가 연결되어 나라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결국은 ‘그래서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느냐’가 중요했다. 승무원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살아온 삶이, 나라는 존재가, 나의 이상이 끊임없이 평가받아야 했다.

 면접은 비즈니스거래이므로 응당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회사 입장에서도 직원 한 명을 잘 못 뽑게 될 경우 입게 될 피해를 생각한다면 신중하게 평가, 고려, 판단해야 한다. 그 사람들은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 했고, 그 결과 나는 높이평가받지 못했을 뿐이다. 게다가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라면 끊임없는 객관적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누군가 나의 부족한 점을 객관적으로 꼬집어 준다면 이는 성장, 성취, 성공의 발판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에 부끄러움 혹은 수치스러움을 무릅쓰고, 자신의 부족한 점을 개선해 나가는 것이 원하는 일을 이루는 방법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때로 피로를 느끼고, 상처를 입는다. 우리가 입은 상처를 보듬지 못하기도 한다. 상처 입은 자아를 돌보기보다는 개선시키고, 발전시켜야 할 평가 대상으로 바라보게 된다. 스스로를 사물화(事物化)하고, 타자화(他者化) 한다. 그 과정이 아무렇지 않을 수 없다. 그 타자화 속에서 상처를 입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승무원의 모습에 맞추어 나를 타자 화하고 있었다.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이 승무원이 되기 위한 나의 성장을 도모하기도 했지만 반대로 자기 연민이 부족해지는 이유가 됐다. 자기 연민이 부재한 곳에는 자기혐오가 자라난다.

 글쓰기 모임을 나가 서로 글을 공유하며 나 자신을 타자화함으로써 입은 상처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 피로와 상처가 포근히 안기는 느낌이었다. 내 글은 한없이 부족했지만 그 만족과 부족의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의 평가, 타인의 평가, 세상의 평가에서 해방됨을 느꼈다. 내 보잘것없는 글이 칭찬받는다는 것이 위안과 힘이 되었다. 글쓰기 모임에서 느낀 그 따뜻함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조금 더 글을 많이 그리고 잘 쓰고 싶어졌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이런 위로가 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어졌다. 상실에 아파하고, 평가를 의식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내 경험과 글로 힘이 되고 싶어졌다.

 하루하루 집중하는 삶이 실패를 향한 집착으로부터 조금씩 나를 벗어나게 해 주었다. 깨끗하게 회복됐다는 느낌은 당시에 조금 덜 했지만 그럴수록 운동, 독서, 글쓰기에 충실했다. 운동과 독서는 더 이상 회피의 도구가 아니었다. 회복의 도구였다. 아물지 않은 딱지를 억지로 떼어 낸 것이 아닌 이제는 충분히 회복됨을 확인해 부분, 부분 밴드를 떼는 샘이었다. 고통으로부터 회피하기 위한 방안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었다. 실패를 인정하고, 아픔을 받아들이고, 욕심을 내려놓고, 실패로부터 나를 치유하며 하루하루 집중하는 삶의 가치를 느껴 나갔다.

 나는 이제 승무원을 떠나보낼 준비가 된 듯했다. 글쓰기 모임이 기다려졌다. 새로운 목표로 다시 살아갈 수 있었다. 그렇게 또 다른 모험을 찾았다.

 하루는 출근하던 와중 예전에 같이 승무원을 준비했던 동생으로부터 카톡이 왔다. 동생은 얼른 이메일을 확인해 보라 했다.


 Qatar Airways Cabin Crew Recruitment Event in Busan

 카타르항공 승무원 채용,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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