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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d 강상원 Oct 22. 2023

고시원 표류기

30살 대학생이고, 고시원에 삽니다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데. 나의 빈곤함은 참 부끄럽구나. 돈이 없으면 부끄러운 것이 맞구나,"


#30살 대학생이고고시원에 삽니다


고시원 생활 D - 60     


 ‘방학 동안 아르바이트 해서 다음 학기 생활비 벌어 놔야지. 나이가 30인데 집에 손 벌릴 수는 없지. 대학생 생활비 대출도 조금 받아서 한 학기 고시원 생활비도 마련해야지. 두 달 동안 아르바이트 한 돈과 대출금을 합치면 어떻게든 한 학기는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정 급하면 호주에서 벌어 온 꺼내 써야지. 그 돈은 등록금용이지만 급하면 별 수 있겠어. 조금 빠듯하겠지만, 내 주제에 아껴야지! 어떤 고시원은 밥, 김치, 라면이 무한 제공이라는데 그러면 식비는 안 들겠지.’     


고시원 생활 D - 7     


 ‘학교 앞에 고시원이 이렇게나 많았구나. 월 15만 원짜리 방이 제일 저렴한데 그곳으로 가야겠지. 근데 가구나 침대가 낡아도 너무 낡았던데. 방도 지하에다가 벽에 곰팡이도 제법 있었고. 수입도 없는 주제에 따지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어떡하지?’     


고시원 1일 차


 ‘그래 이 정도면 만족하고 살 수 있어. 창문이 있으면 좋겠지만, 한 달에 5만 원씩이나 더 내야 하니 이 정도가 딱 좋아. 게다가 고시원 출입구 앞이라는 이유로 3만 원 더 저렴하게 들어왔잖아.’


고시원 34일 차


 ‘이런 젠장! 자느라 수업을 놓치다니.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핸드폰 알람은 왜 안 울린 거지? 아니 알람이 안 울려도 이렇게 하루 종일 자냐!? 어제 늦게 잔 것도 아닌데. 창문이 없으니 밖이 낮인지 밤인지 알 방법이 없네. 하루빨리 졸업하고 취업해야 한다는 놈이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 창문 없는 게 이런 문제를 발생시킬 줄이야. 그런데 고시원 방이 유독 졸리단 말이지. 환기가 안 돼서 그런가?’

 ‘아니야. 창문이 문제가 아니야. 문제는 썩어빠진 내 정신상태야. 근데… 좀 배고프다.’


 고시원 생활 45일 차


“혹시 주변에 소개해 줄 만한 괜찮은 남자 없어? 같이 일하는 동료 분 소개팅 해주고 싶은데 내 주변에 마땅히 소개해 줄 만한 사람이 없네. 내 남자친구 주변은 다 유부남이고.”

“소개팅? 한 번 알아볼게.”     

 ‘내 친구들도 대부분 연애 중이거나 이미 결혼했는데. 아직 솔로인 친구가 누가 있지? 나도 외로운데. 그 소개팅 내가 하면 안 되나? 안될 거야. 아직 직장도 안 다니는데 무슨 연애는 연애야.’     

 고시원 생활 46일 차     

 “그 소개팅 내가 해도 돼?”

 “너!?”

 “…….”

 “너 근데 무슨 일 해?”

 “나 아직 학생인데.”

 “야 미쳤냐? 직장인한테 학생을 어떻게 소개해줘. 우리 나이가 있는데. 아니 근데 너 아직도 학교 다녀?ㅋㅋㅋㅋㅋㅋ”

 ‘그래 나 아직도 학교 다닌다. 나 학교 다니는데 뭐 보태준 거 있냐?’

 당장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래. 솔직히 그 친구 말이 맞지. 우리 나이에 취업은 아직 힘들 수 있어도 여태 학교도 졸업 못한 것은 말이 안 되지. 그리고 그 친구 입장에서도 어떻게 학생을 소개해주겠어. 내가 그 입장이었어도 마찬가지였을 거야. 백수와 직장인은 급이 다르긴 하지. 취업 전까지 연애는 포기해야지. 애초에 나는 연애할 자격도 없는 놈 아닌가!’ 

 ‘근데 포기가 맞나? 선택할 수 있는 상황에서 내려놔야 포기지. 처음부터 선택권이 주어진 적이 없는데 무슨 포기야. 맞아, 내 주제에 무슨 연애는 연애냐. 근데 외롭다. 나도 언젠가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할 수 있을까?’


고시원 60일 차


 ‘건우(가명) 결혼하는구나. 벌써 신혼집도 구했네. 우와 24평? 대기업이어서 대출도 잘 나오나? 아니면 집에서 해줬나? 그게 뭐가 중요하겠어. 건우처럼 잘 나가면 내가 부모님이라도 얼마든지 해주고 싶지. 아니 건우라면 자기 능력으로 신혼집 마련했을 거야. 예전부터 나랑 달리 성실하고, 능력 있는 친구였으니까. 옛날에는 건우랑 많이 친했는데. 건우가 결혼식 초대 하면 가도 될까? 가고 싶은데. 축의금이 걱정이네. 친구 결혼하는데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구나.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데. 나의 빈곤함은 참 부끄럽구나. 돈이 없으면 부끄러운 것이 맞구나. 축하 메시지라도 보낼까? 메시지는 돈이 안 드니까.’ 

 ‘그런데 건우 제네시스 뽑았네.’


 고시원 67일 차


 “건우야 결혼한다며? 축하해! 청첩장? 아니야 나한테는 그냥 모바일로 보내. 뭘 만나서 번거롭게 줘. 결혼 준비로 안 그래도 바쁠 거 아냐. 당연히 그래도 되지. 그래 결혼 전에 밥 한 번 먹자. 다음 주? 다음 주 잘 모르겠네. 내가 확인해 보고 다시 연락 줄게. 그래 그래. 야, 우리 건우가 결혼한다니. 다시 한번 축하해.”     

 ‘다음 주 아무것도 없잖아. 그냥 만나 병신아. 학생새끼가 뭐가 바쁘다고. 친구 결혼한다는데 만나서 축하도 안 해주냐. 밥도 심지어 건우가 산다잖아. 그냥 나가서 오랜만에 친구 만나고와.’


 고시원 74일 차(건우 만나기로 한 날)


 카톡: 건우야 미안하다. 내가 예전에 잡은 선약을 깜빡했네. 어떻게든 조정해 보려 했는데, 안 될 것 같네. 미안하다. 청첩장은 카톡으로 보내. 나도 너무 아쉽다. 다시 한번 결혼 진짜 축하해. 잘 살아.     

 ‘나 참 찌질하다. 나 왜 이렇게 못났지? 친구야 미안하다. 네 결혼 하나 순수한 마음으로 축하해주지 못해서.’

 30살부터는 축하를 표현함에 있어서도 자격이 있어야 했다. 곧이어 핸드폰이 울렸다.     

(카톡)

 모바일 청첩장 

신랑 김건우 ♥ 신부 신아영(가명)

2016.06.26 (일) 13:00

00 웨딩 홀     


 고시원 98일 차


 ‘배고프지만 조금만 참자. 조금만 있으면 3시니까 다음 수업까지만 참고, 고시원 가서 라면 먹어야지. 늦은 점심으로 한 끼를 때워야 저녁까지 배가 안 고프니까. 지금 먹으면 저녁 때 돼서 또 배고파져서 안 돼. 물은 넉넉히 잡아야지. 그래야 김치를 넣어 국물맛을 더 우려낼 수 있으니. 면을 다 먹고 밥까지 말아먹으려면 국물은 넉넉하게 잡아야 해.     

 ‘배가 터질 것 같다. 한 수저 남았는데. 있다가 밤에 배고파서 또 배달음식의 유혹에 넘어가면 안 되니 억지로라도 다 먹어야지. 다 먹고, 담배를 소화제 삼으면 되니까. 그런데 라면만 먹어서 그런가? 배가 자주 아프네.’     

고시원 118일 차


 ‘요즘 들어 배가 더 자주 그리고 더 많이 아픈 것 같다. 단순히 배가 아픈 것을 떠나 불쾌감이 배속부터 몰려와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 난다. 기분 나쁜 기운이 마치 뱀처럼 배속을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기분이다.

 먹는 게 부실해서 그런지 탈모도 심해지고, 피부도 엉망진창이다. 콩알만 한 여드름이 얼굴을 덮었다. 세수할 때마다 아프다. 샤워는 매일 하고, 머리도 매일 감는데 왜 몸이 자주 가렵지? 특히 머리와 얼굴이 많이 가렵다. 어제는 머리를 긁다가 피까지 났는데. 점점 거울 보기가 싫어진다. 거울을 볼 때마다 너무 못생기고 못난 남자가 보여서 거울 앞에 서기 싫어진다.’


고시원 140일 차


 ‘행복이 별거 있나? 맛있는 거 먹는 게 행복이지.’

 늦은 밤이면 그래도 잠깐은 웃을 수 있었다.

 ‘오늘은 시원한 맥주를 마실까? 달콤 씁쓸한 소주를 마실까? 일단 안주부터 시켜야겠다. 치킨, 피자, 햄버거, 탕수육, 짬뽕 무엇을 먹을까? 치킨 시켜 먹을까? 맥주엔 치킨인데. 아니야, 오늘은 자장면과 소주를 먹자. 자장 탕수육 1인 세트로 시키고, 짬뽕국물 서비스로 달라고 해야지. 근데 무슨 돈으로 시켜 먹지? 핸드폰 결제 해야겠다. 다날(Danal) 서비스는 참 편리하단 말이지. 다음 달 핸드폰 결제일이 언제였지? 모르겠다. 일단 시키고 보자. 먹다 죽은 귀신 때깔도 곱다는데.’     

 책상 위에 음식 하나, 술병 하나 겨우 올려놓고 나면 컴퓨터가 놓일 공간이 딱 하나 남았다. 봉지를 뜯자 매콤하고, 진한 짬뽕 냄새가 나의 공간을 바로 잠식했다. 노트북과 책상 곳곳에 지난주 먹다 튀긴 빨간 국물 자국이 아직 붙어있었다. 다 먹고 나서 꼭 닦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술병을 돌렸다. 알싸한 소독 향을 품은 물이 입을 적시고 나면 기름기 가득한 음식이 입속으로 들어왔다. 고개를 앞으로 쭉 내민 체 모니터만 쳐다보는 나는 지금이 술을 들이켤 차례인지, 안주를 씹을 차례인지 헷갈렸다. 상관없었다. 어느새 키보드 옆에 반점인지 얼룩인지 모를 것이 늘어 가고 있었다.

 모니터 속의 잘생기고 예쁜 사람들의 웃고 떠드는 장면이 끝나갔다. 안주를 하나 더 집어넣었다. 갑자기 맛이 이상했다. 분명 육즙과 단짠이 조화된 맛이 좔좔 흘렀어야 했다. 방을 맛있고도 찝찝한 향으로 채우기에 충분했는데. 이제는 찝찝한 맛만 나는 것 같았다. 배고프다며 징징대던 것이 오늘 낮이면서 간사하게도 그새 배가 불렀나 보다. 안주는 어느덧 그 기능을 잃었다. 매캐하고 기분 나쁘며 몸을 무겁게 짓누르는 것 같은 꺼림칙 한 맛이 머리를 강타했다. 그럴 때는 술을 더 마시면 됐다. 나는 술을 더 들이켰지만, 이번에는 술이 문제였다. 더 이상 술에서 아무 맛도 안 났다. 특유의 소독향도 사라져 있었다. 어느새 모니터 속 반반한 남녀의 웃음소리도 사라졌다. 모니터를 보고 웃고 있던 나도 더 이상 웃지 못했다.     

 ‘분명 소주 한잔 마시고, 짜장면 한입 후루룩 먹었을 때는 행복했던 것 같은데. 그러고 나서 짬뽕 국물을 쭉 들이켜면 기가 막혔는데. 세상 모든 근심, 걱정이 다 날아가는 것 같았는데. 빛 한 톨 들지 않고, 퀴퀴한 냄새만 누적되는 공간을 분명 행복으로 채워주는 것 같았는데. 술이 분명 나의 구원이었는데.’     

 뭐가 문제인지 궁금했다. 이내 원인을 찾아냈다.      

 ‘그래! 담배 필 시간이구나.’     

 나는 옥상으로 향했다.


 고시원 152일 차


 ‘마지막으로 집에 간 게 언제였지? 한 달 전인가? 두 달 전인가? 30살 대학생 아들 얼굴 보여줘 봤자 답답하고 한숨만 나오실 텐데. 내가 집에 자주 안 가는 게 효도겠지. 금의환향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사람자격은 갖추고 부모님을 봐야 하지 않겠어. 조금 있으면 생일인데 엄마가 끓여준 미역국 먹고 싶다. 이번 주만 집에 다녀올까? 아니야 가지 말자. 그나저나 통신사에서 계속 전화 오네. 밀린 핸드폰 요금 다음 주까지 안내면 핸드폰도 끊길 텐데 어떡하지. 돈도 없는 놈이 왜 그렇게 술과 야식을 처먹어 댔을까? 아오, 한심한 놈. 나는 안 될 놈인 것 같다. 미역국은 무슨 미역국이냐.’

   

 고시원 156일 차


 “아들, 곧 생일인데 집에 안 와? 엄마 아빠 얼굴은 보고 밥이라도 먹어야지.”

 “과제랑 시험이 계속 있어서 힘들 것 같아요.”

 “밥 잘 챙겨 먹고 있는 거지?”

 “학교 식당이 싸고 푸짐하게 잘 나와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돈은? 밥 사 먹을 돈은 있어?”

 “응. 나 호주에서 돈 많이 벌어왔어. 걱정 마.” 

 “아들 생일인데 엄마가 미역국도 못해주고, 미안해.”


 ‘아니야 엄마. 내가 미안해. 내가 아직 대학생이어서 너무 미안해. 미안해 엄마.’


고시원 165일 차, 생일날


 지난밤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일 아침 학교 앞으로 갈 테니 전화하면 나오라고 하셨다. 나는 아침 일찍 수업이 있다는 핑계로 오지 말라고 했다. 아버지는 아들 생일이라며 엄마가 반찬 몇 가지를 했으니 잠깐만 나오라고 하셨다.

 다음날이 됐고, 이른 아침 밖에서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뒤 저 멀리서 익숙한 트럭 한 대가 오고 있었다. 우리 집 생계를 책임지는 500만원짜리 흰 트럭이 터벅터벅 학교 앞 언덕을 올랐다. 트럭 뒤에는 아버지의 노고를 대변하듯 각종 장비와 쓰레기가 가득 실려 있었다. 마땅히 정차할 곳이 없는 데다가 아버지 또한 일하러 가시는 길이었기에 대화를 나눌 여유는 없었다. 정성스레 싸주신 반찬 몇 가지를 받아 들고, 아버지께 인사하려는 찰나 아버지는 흰 봉투를 건네셨다. 반쯤 접힌 흰 봉투에는 떼가 제법 묻어 있었다.


 “아빠 나 돈 있어. 안 주셔도 돼요. 나이가 서른인데 무슨 용돈을 받아.”

 “아빠가 주는 생일 선물이니까 받아.”


 아버지는 그렇게 꼬깃꼬깃한 돈뭉치를 주시고, 다시 트럭에 올라섰다. 트럭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어느덧 쌀쌀해진 공기를 계속 맞았다. 아버지 덕에 핸드폰 요금을 낼 수 있었다. 어머니 덕에 몸을 망가뜨리는 짓을 잠시 멈출 수 있었다. 어머니의 반찬은 라면, 술, 야식으로 망가진 내 위와 장을 치료해 주는 것 같았다.     

 두 분 덕에 조금은 기운을 차려 졸업 논문에 힘을 쏟을 수 있었다. 며칠 뒤 졸업 논문을 검수해 주신 교수님께서 한 가지 제안을 하셨다. 교내 졸업논문 발표 대회에 출전해 보는 것을 권유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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