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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d 강상원 Oct 16. 2024

흩어진 노력, 흐려진 목표: 워홀은 시간 낭비일까? 1

흩어진 노력, 흐려진 꿈

#흩어진 노력, 흐려진 꿈


 이후로 돈을 더 악착같이 모았다. 최소한의 생활비를 제외하곤 전부 저축했다. 식비도 건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최소한으로 줄였다. 가끔 친구들이 시내에 놀러 나갈 때도 집에 머물렀다. 물론 가끔씩 열리는 홈파티를 즐기긴 했다. 살기 위한 지출 이외에 유일한 지출이었다. 그 덕에 돈이 다시 쌓이기 시작했다. 통장의 잔고를 보면서 내 목표를 상기했다. 그와 동시에 만약 적금을 깨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면 현재 원금과 매달 붙는 4%의 이자가 얼마일지 계산하곤 했다. 쌓여가는 돈을 보며 뿌듯함을 느꼈지만 동시에 아쉬움도 일었다. 한동안은 머릿속에서 ‘만약 그랬다면’이라는 문구가 떠나질 않았다. Common Wealth 은행 계좌는 조금은 아픈 손가락이 돼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모교(숭실대학교)로부터 메일이 왔다. 학교 행정처에서 보낸 메일이었다. 더 이상 휴학이 연장되지 않아 재적 처리 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정확하게는 ‘등록금을 지불하지 않은 채’로 더 이상 휴학을 연장이 안된다고 쓰여 있었다. 약 3 ~ 4년 전 군휴학을 신청할 때 다음학기 등록을 하지 않고 휴학을 했다. (물론 다음학기를 등록할 돈도 없었다) 이 사실을 어느덧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날의 메일 한 통이 나의 망각을 일깨워 줬다.


 ‘등록금 내고 나면 다시 개털이잖아. 그럼 결국 유학도 물거너 가는 거 아니야? 근데 영화감독이 하고 싶은 거야? 아니면 미국 영화학교에 가고 싶은 거야? 꼭 해외의 영화학교일 필요가 있는 거야? 한국에서 해도 되는 거 아니야? 그리고 진짜 영화감독이 되고 싶으면 그냥 한국에서 천천히 시작해도 되잖아? 요즘 기술도 좋은데 핸드폰으로 혼자 찍어서 출품해도 되는 거 아니야? 너 정말 영화감독이 되고 싶은 건 맞아? 만약 아니라면 내 꿈은 뭐지? 나 여태 뭐 했지? 나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일단 등록금은 내야지. 유학 준비 잘 안되면 복학하면 되잖아. 계획은 언제든 틀어질 수 있잖아. 최소한의 안정장치는 해 놔야지. 근데 이것 때문에 내 열정과 동기부여가 떨어지면 어떡하지? ‘언제든 복학하면 된다’는 생각에 게을러지지는 않을까? 차라리 이참에 학교를 그만둘까? 배수의 진을 친다는 생각으로 자퇴신청서를 낼까? 어차피 전공이 적성에 맞지도 않았잖아. 뭐가 맞는 길이지? 나 어떡하지?’


 그렇게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에 괴로워하고, 자퇴와 등록 사이에서 며칠을 고민했다. 어떤 선택을 내려도 아쉬움과 후회가 밀려올 것 같았다. 그 선택의 갈림길에서 대학 동기 한 명이 떠올랐다. 나와 성향이 정 반대인 친구였다. 지극히 현실주의적이며 성실하고, 착실하게 사는 사람. 소위 말하면 ‘쓸데없는 짓’을 안 하는 사람. 더욱이 그 친구는 누군가의 고민을 잘 들어줬다. 그 친구와의 대화로 뾰족한 수가 나올지. 조금의 타협이 섞인 절충안이 나올지. 아니면 그냥 답답한 마음을 풀고 싶었을지. 갖가지 감정이 섞인 복잡한 마음으로 동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냥 보험이라 생각해. 우리가 암 걸리니까 보험 가입하는 거 아니잖아. 혹시 걸릴지도 모르니까 가입해 놓는 거지”


 결국 등록금을 내기로 했다. 그리고 추후에 미국에 가게 되는 날이 확정 됐을 때. 바로 그때 지금 이 돈을 환불받으면 될 거라 생각했다.


 호주 통장에서 학교 계좌로 바로 송금을 하면 수수료가 제법 나왔다. 때 마침 부모님도 시드니에서 있는 동생에게 생활비를 보내야 했다. 결국 집에서 내 등록금을 내줬고, 나는 그 금액만큼의 돈을 동생한테 보냈다. 통장의 잔고는 몇 달 전처럼 상당량이 사라져 있었다. 노트북 모니터에 뜬 은행 창(window)을 내리고, 학교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휴학 연장이 불가능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띄우던 페이지는 매끄럽게 휴학 연장을 진행해 줬다. 휴학 연장 절차를 마무리하고, 다시 동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00아 나 결국 학교 등록했다”

 “잘했어”

 “개털이야. 와서 돈 하나도 못 모았어”

 “뭘 못 모아. 모아서 등록금 냈잖아”

 “그래 그렇네. 애들은 요즘 어때? 다들 취업 준비 잘 돼 가?”

 “되긴 뭐가 돼. 다들 서탈 중이야. 면접이라도 보고 떨어지면 덜 억울한데 이건 뭐 아무것도 못해보니 더 답답해”

 “잘 될 거야. 다 잘 돼야지”

 “그래. 잘 됐으면 좋겠다”

 “…..”

 “…..”


 친구와 나는 서로를 향한 응원이자 스스로를 향안 위안을 건넨 후 잠시 침묵했다. 각자의 위치에서 답답한 현 상황이 우리를 짓눌러 말을 이어나가기 힘들었다. 열심히 벽돌을 쌓아 올린 줄 알았는데, 무너지기 쉬운 모래성이었다. 노력 같은 것은 참으로 흩어지기 쉬운 모래알이었다. 휏불같은 열정도 현실의 벽이라는 바람 앞에서는 그저 촛불이었다. 내뱉은 말이 공중으로 순식간에 흩어지듯 내 안의 강력했던 동기가 순식간에 휘발된 것 같았다. 무언가 뜨거웠던 것이 순식간에 증발됐다. 그 무기력한 공기 속에서 친구가 다시 말했다.


 “근데 왜 이렇게 뭐가 자꾸 안 되냐”

 “그러게. 뭐가 자꾸 안 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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