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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d 강상원 Oct 17. 2024

Gold Rush? Orage Rush! 1

하루 일당이 300 ~ 400 불?

#금광(金鑛) 대신 귤광(橘鑛)


 프랑스에서 온 커플이 있었다. 남자는 줄리앙(가명), 여자는 마리(가명)였다. 그들은 나와 같은 집에서 머물렀다. 어느 날 줄리앙이 캥거루 고기를 가져왔다. (호주에서는 캥거루 고기를 흔하게 구할 수 있다. 마트에서도 쉽게 살 수 있다.) 하지만 그날 줄리앙이 가져온 고기는 마트에서 산 것이 아니었다. 그가 직접 사냥한 캥거루였다.


 호주에서는 캥거루 개체수를 조절하기 위해 캥거루 사냥이 합법이다. 라이센스만 취득하면 누구든지 사냥할 수 있다. 줄리앙이 일하던 농장 주인도 그 라이센스를 가지고 있었다. 캥거루 사냥에 관심이 있던 줄리앙은 결국 라이센스를 취득하고, 직접 캥거루를 잡아 왔다. 그가 잡은 캥거루는 농장 주인이 손질해 주었다.


 마리는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가 해주던 요리가 있다고 말했다. 레드와인과 초콜릿으로 고기를 푹 끓이는 요리였다. 마리는 줄리앙이 잡아온 캥거루 고기를 "할머니의 특별한 레시피"로 요리해 주겠다고 했다. 초콜릿과 레드와인으로 고기를 익히면 어떤 맛일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프랑스 요리라는 것만으로도 기대가 됐다. 미식의 나라라고 불리는 곳 아닌가.


 기대가 더해지면서 배고픔이 커졌다. 커진 허기와 별개로 아주 오래 기다려야 했다. 마리는 캥거루 고기를 아주 오래 끓였다. 캥거루 고기가 원래 질기고, 잡내가 심한 만큼 어쩔 수 없었다.(마트에서 파는 캥거루 고기는 먹을 만하다. 질김과 잡내가 불편한 정도는 아니다.) 마리의 고생 끝에 마침내 요리가 완성되었다. 하우스 메이트들이 긴 테이블에 앉아 마리의 요리를 나눠 받았다. 모두 함께 "본아뻬띠(Bon appétit!)"를 외치며 식사를 시작했다.


 고기는 정말 질겼다. 씹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그날 줄리앙이 사냥해 마리가 요리한 캥거루 고기는 정말 질겼다. 내가 먹어본 고기 중 가장 질긴 고기였다. 아마도 마리 할머니의 특급 레시피는 캥거루 고기에는 맞지 않았던 것 같다. 마리가 오랜 시간 고생했으니, 누구도 마리에게 뭐라 할 수 없었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캥거루 고기 특유의 잡내는 전혀 나지 않았다.


 비록 고기는 먹기 어려웠지만, 소스의 향과 맛은 인상 깊었다. 레드와인과 초콜릿 덕분에 음식의 향은 달콤하면서도 독특했다. 한국에서는 접하기 힘든 맛이었다. 다행히 그 소스는 밥과 잘 어울렸다. 결국 그 소스를 밥에 비벼 먹으며 식사를 이어 갈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친구들과 저녁을 즐기던 중 전화가 울렸다. 사촌 형이었다. 내가 호주에 왔을 때, 나 말고도 호주에 올 계획을 가진 혈육이 있었다. 바로 한 살 많은 사촌 형이었다. 당시 형은 브리즈번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나에게 전화를 건 것이다. 처음에는 서로 안부를 주고받았다. 각자의 안부를 묻던 대화는 자연스럽게 현재의 상황과 심정을 토로하게끔 이어졌다. 나는 모였던 돈이 갑작스레 두 번이나 사라지게 되어 막막한 심정을 이야기했다. 계획에 차질이 생기면서 계속 호주에 있는 것이 맞을지 고민이 듣다고 했다.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형이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그 마을은 만다린((Mandarin, 운향과 관목 또는 관목에 딸린 귤 종류를 통틀어 이르는 말)으로 유명한 곳이야. 곧 수확철이 다가와. 시간당으로 돈을 받는 게 아니고, 네가 채운 상자만큼 돈을 받는 거지. 큰 상자 하나 꽉 채우면 대충 150달러 정도 준대. 보통 남자들은 하루에 두 상자 정도 채운다는데, 잘하는 사람들은 3~4 상자씩도 한대. 나 조만간 그곳으로 갈 생각인데 너도 같이 가자"


 ‘하루에 못해도 300달러 이상을 번다고!?’


 며칠 전, '시간 낭비'라는 말에 찔린 그날 밤 친구들이 있는 단톡방을 나갔다. 너무 화가 나서 친구들을 모두 차단했다. 내 선택을 존중하고 응원해 준 친구도 있었지만, 그때는 너무 화가 났다. 이후로 친구들의 연락을 모두 무시했다. 연속적인 두 번의 큰 지출에 좌절감을 느끼고 있던 차에, 그 말은 나를 더 심리적으로 힘들게 했다. 그 후로 며칠간 나는 시체처럼 일했다.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반복하던 중, 사촌 형의 전화는 나에게 한 줄기 희망이었다.


 19세기 중반, 뉴사우스 웨일스(Newsouth Wales) 지역에서 누군가 금을 발견하면서 본격적인 골드러시가 시작되었다. 이후 빅토리아(Victoria), 퀸즐랜드(Queensland),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Western Australia) 등 호주 전역에서 금광이 발견되었다. 그 시기에 영국, 아일랜드, 중국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이민자들이 일확천금을 꿈꾸며 미지의 땅으로 몰려왔다.


 나 또한 주황빛의 금들을 캐기 위해 새로운 땅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다. 귤과 오렌지가 내는 색깔이 마치 황금빛 같았다.


 ‘이거 완전 노다지 땅이잖아. 금광이 따로 없네’


 나는 진진(Gingin)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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