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일당이 300 ~ 400불? Good bye Gingin
#Good bye Gingin
닭농장에 언제까지 일할지 알렸다. 그리고 진진(Gingin)이라는 지역을 떠날 준비를 했다. 막상 떠날 때가 되니 그동안 닭농장에서 겪었던 일들이 다 추억처럼 느껴졌다.(물론 바퀴벌레가 바글바글 했던 경험은 추억처럼 안 느껴졌다) 일하는 도중 함께 일했던 친구들과 사진도 몇 장 찍었다. 그때쯤 일하다 발견한 블루 텅 도마뱀도 귀여워 보였다.
내가 마지막으로 출근한 날, 닭농장에서는 작은 송별회를 열어주었다. 원래 닭농장에서 한 달에 한 번 점심 회식을 했는데, 그날은 회식과 내 송별회를 겸한 자리였다. 나는 음식을 준비해 준 커스티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커스티는 케이크를 정말 잘 만들었다. 케이크 같은 디저트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커스티가 만든 케이크는 예외였다. 그녀가 케이크를 만들어 올 때마다 나는 농담으로 "지금이라도 닭농장 일을 그만두고 케이크 가게를 차려야겠다"라고 말하곤 했다. 그날 송별회에서도 커스티는 맛있는 케이크를 만들어 왔다. 나는 진지하게 "케이크 가게를 차려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동안의 고마움과 아쉬움을 담은 작별 인사였다.
떠나기 하루나 이틀 전쯤 집에서 나를 위한 송별회(Farewell Party)가 열렸다. 1부는 축구였다. 평소 축구할 때마다 인원이 부족해 늘 아쉬웠지만, 그날만큼은 축구를 좋아하지 않았던 대만 친구들까지 참여해 주었다. 경기가 한창일 때 나와 같은 팀 친구들이 계속 앞으로 나가라고 했다. 수비하지 말고 골대 앞에만 있으라는 것이었다. 마지막인 만큼 내가 골을 넣을 수 있게 배려해 준 것이다. 마치 군대에서 경험했던 '병장 축구'를 다시 하는 기분이었다. 한국 특유의 서열문화를 모르는 서양 친구들이 먼저 이런 배려를 해주었다는 것이 고마우면서도 재미있었다.(이후 한국의 병장축구에 대해 알려줬다)
경기가 한창 진행되던 중 해가 지기 시작했고, 우리는 골든 골(Golden goal)로 경기를 끝내기로 했다. 이탈리아 친구들이 뛰어난 실력으로 공을 몰고 오더니 골대 앞에 있던 나에게 공을 연결해 줬다. 내가 찬 공이 홍콩 친구의 발에 맞아 살짝 굴절되더니 골대 오른쪽으로 천천히 굴러 들어갔다. 축구 실력이 형편없는 나에게 평생 잊지 못할 득점이었다. 축구와 관련된 기억 중 가장 선물 같은 추억이 됐다.
2부는 밤새 술을 마시며 파티를 했다. 2부가 시작되기 전에 나는 삭발을 했다.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결의를 다지기 위한 행동이었다. 그리고 파티의 주인공답게 파격적인 모습을 하고 싶었다. 머리 한쪽에 두 줄 스크래치도 넣었다.
파티는 밤새 진행됐다. 그동안 친해진 모든 친구들과 하나씩 인사를 나눴다. 사진도 찍고, 건배도 하며 잘 지내라는 말을 주고받았다. 1년 전만 해도 서양식 파티가 어색했지만, 어느덧 그 문화에도 익숙해져 있었다.
내 룸메이트였던 대만 친구 숀, 나의 첫 레즈비언 친구 케이, 새해 불꽃놀이를 함께 본 이탈리아 커플, 늘 아재 개그를 던지던 독일 형, 욕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늘 책을 읽던 프랑스 친구, 기타를 항상 들고 다녔던 일본인 마사, 나에게 늘 "You are the best"라고 말해주던 프랑스 커플, 한국에서 온 귀여운 동생 커플, 나와 동갑이었던 이탈리아 출신의 알베르토, 알렉산드로, 마띠에... (몇 년 뒤 알베르토는 내게 결혼 소식을 알렸다. 곧 결혼한다며 나를 이탈리아로 초대했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아쉽게도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그리고 나의 호주 삼촌 그레이엄까지.
호주에 온 뒤로 많은 고민과 걱정 속에서 지냈다. 물론 즐겁고 행복한 날도 있었지만, 마음 한편에는 늘 작은 불안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그날만큼은 모든 근심을 덜어내고 순간을 즐길 수 있었다. 진진에서 사귄 모든 친구들과 건배를 하고,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만들었다.
시간이 제법 지나 피곤해서 내 방으로 가고 싶었지만, 친구들이 놔주지 않았다. 결국 더 이상 졸음을 참지 못하고 친구들 몰래 방으로 들어갔다. 10분 후, 친구들이 전부 내 방으로 몰려왔다. 단체로 침대 위로 뛰어들며 "Ted!"를 외쳤다. 나는 너무 피곤했지만, 그 상황이 웃겨서 눈을 감은 채로 계속 웃었다. 친구들은 "잘 자"라는 말과 "잘 가"라는 말을 하며 방을 떠났다.
‘Gingin에 오게 돼서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