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일당이 300 ~ 400불?: Orange Rush
#Orange Rush
퀸즈랜드(Queensland) 주에 있는 분다버그(Bundaberg)라는 도시로 향했다. 퍼스에서 브리즈번을 경유해 분다버그 공항에 도착했다. 브리즈번과 분다버그를 오가는 비행기에 손님이 거의 없었다. 탑승객 수와 승무원 수가 비슷했다. 그러다 보니 마치 내가 비행기를 전세한 것 같았다. 분다버그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창 밖을 바라보니 구름이 조각난 채로 하늘을 메우고 있었다. 작은 파편처럼 흩어진 구름들이 하늘을 메꿨고 구름과 구름 사이에 광활한 땅이 펼쳐져 있었다. 사선으로 떨어지는 햇빛을 따라가 보니 창공에서 황금빛 가루를 뿌려대고 있었고, 이 가루들이 구름의 파편 사이에서 튕겨지고 있었다.
호주에서 만끽하는 자연의 아름다움은 항상 경이로웠다. 봐도 봐도 질리지 않았다. 말 그대로 대자연이 숨 쉬는 곳이었다. 조각 난 구름 위를 미끄러지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비행을 즐겼다. 그리고 승무원에게 맥주 한 잔과 견과류를 부탁해 풍류에 맛을 더했다. 구름과 대지가 황금빛으로 물든 모습을 보며 마음속에 경이와 열정이 솟아올랐다.
‘그래. 할 수 있어. 내가 그 동네 있는 오랜지랑 귤 다 따야지’
공항에 도착하니 사촌형이 여자친구와 함께 마중 나와 있었다. 분다버그에서 차로 2 ~ 3시간을 이동했다. 이동하는 중간에 진진(Gingin)이라는 지역이 있어서 반가웠다. 바로 어제 서호주의 진진에 있었는데 이제 퀸즈랜드의 진진을 지나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형은 이미 그곳에 집 하나를 통째로 렌트해 지내고 있었다. 나는 그 집에서 머물기로 했다. 도착 한 당일 형과 고기에 술 한잔 하며 앞으로의 계획과 포부를 서로 다졌다.
마치 골드러시가 한창이던 시절 금광으로 뛰어든 이민자들이 그랬을까? 새로 도착한 지역은 내게 소위 대박을 칠 수 있는 새로운 기회의 땅이었다. 앞으로 수확이 한창일 2 ~ 3개월 간 크게 한 몫 당길 수 있을 거란 생각에 기대가 부풀었다.
내가 도착하고 일주일도 안 돼서 한국 사람 3명이 더 우리 집으로 들어왔다. 정확히는 한국인(여) 제일교포 4세(남) 커플과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이가 있는 한국인이었다. 그렇게 한국인 6명(나, 사촌 형, 사촌형 여자친구, 커플, 아기 아빠)이 함께 살게 됐다.
만약 1년 전이었다면 한국인과 같이 살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 했을 거였다. 영어를 생활화하고 싶은 마음이 당시에 무척 컸기 때문이었다. 물론 영어 실력을 더 늘리고 싶은 마음은 여전했다. 하지만 이미 우선순위에서 돈이 강력하게 자리 잡은 뒤였다. 그래서 한국인과의 동거는 더 이상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같이 산다고 해도 농번기인 2~3개월 정도일 뿐이었다. 그 뒤 계획은 아직 없었지만 일단 당장은 눈앞의 황금을 캐는 일이 더 중요했다.
마을에는 각각의 농장에 일자리를 연결해 주는 에이전시가 하나 있었다. 아침부터 그 에이전시는 문전성시를 이뤘다. 에이전시에 처음 간 날 이미 한국인을 비롯한 외국인들이 문 앞에서 줄을 서고 있었다. 우리는 그 농장에 연락처를 남겼다. 그리고 몇몇 농장 정보를 얻은 뒤 직접 방문하기로 했다.
농장으로 향하는 길 목에서 만다린 나무가 즐비한 것을 봤다. 이미 수확이 한창인 농장들도 많았다. 길 위에서 농장을 바라보니 많은 사람들이 이미 사다리에 올라타 귤과 오렌지를 따고 있었다. 나무 사이사이에 성인 남자 10명은 채울 만한 큰 상자에 황금빛 과일이 가득했다.
우리는 농장을 돌며 농장 주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연락처와 이력서를 남기고 갔다. 소위 대박 농장이라는 곳만 돌아다니며 접촉했다. 이제 그 대박 농장이라는 곳에서 연락만 오면 될 일이었다. 그렇게 만다린 농장을 돌아다니던 와중 의아한 점이 있었다.
‘근데 농장 주변에 저 텐트들은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