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일당이 300 ~ 400불!?: 쪽박 농장
#쪽박 농장
작은 마을이었지만 스포츠 센터 시설이 제법 좋았다. 선진국답게 국민들의 생활 스포츠 시설이 잘 갖춰져 있었다. 특히 스포츠 센터에 실내 농구장이 잘 갖춰져 있었다. 호주에서는 여자들이 주로 즐기는 운동 중 하나가 있다. ‘넷볼(Netball)’ 하여 농구와 유사한 스포츠다. 아마 그 스포츠 센터 또한 요일별로 넷볼, 농구 등의 운동을 할 수 있게 운영되는 것 같았다.
매주 수요일 밤마다 그곳에서 농구를 할 수 있었다. 처음 농구장에 도착했을 때 남녀노소가 다 모여 있었다. 처음에는 팀원의 다양성이 ‘농구의 재미를 반감하는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한국에선 늘 또래와 축구, 농구를 즐겼기 때문에 스포츠는 항상 비슷한 연령대의 남자들끼리 하는 취미였다. 하지만 그곳은 나이와 성별 관계없이 함께 즐기는 것이 중요했다. 나도 어느새 다양한 구성원들과 함께 땀 흘리는 것 자체에 재미를 느꼈다. 반면에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재밌던 포인트가 있었다. 농구하러 온 호주 사람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본인들 하고 싶은 대로 플레이했다. 말도 안 되는 패스, 드리블, 슛이 난무했다. 아니 패스는 난무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그렇게 농구했다가는 처음 본 사람들도 욕했을 플레이들이었다. 한 번이라도 그런 플레이를 보이면 코트에 있는 누구도 그 사람과 편을 하지 않을 플레이 었다. 남자든 여자든 나이 든 사람이든 젊은 사람이든 다들 중2병 걸린 듯한 기가 막힌 폼을 취하며 농구를 했다. 재밌는 점은 각자가 하고 싶은 대로 슛을 던지든 드리블을 하든 아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다. 눈치를 주는 사람도 없었다. 한 사람의 이기적인 플레이로 공격이 무산돼도 불평하거나 잔소리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저 같이 땀 흘리고 각자 즐기는 것 자체가 중요했다. 나도 길바닥에서 배운 근본 없는 플레이를 하는 사람이었지만 이곳은 차원이 달랐다. 하지만 그 덕분에 호주라는 곳이 한국보다 자유, 관용, 친절이 더 풍부한 나라임을 느낄 수 있었다. 나도 어느새 녹아들어 재밌게 즐겼다. 하지만 개인 보다 집단이 중요한 사회에서 자라온 나는 여전히 팀 플레이에 대한 갈증이 정말 사라질 수는 없었다. 결국 개인을 더 우선시하는 정서와 집단을 더 우선시하는 정서를 적절히 오가며 게임을 즐겼다.
그런 와중 내게 먼저 말 걸어 준 호주 아저씨가 있었다. 그날 이후 농구장에서 만날 때마다 서로 반갑게 인사하곤 했다. 한 번은 일요일에 오로지 마을 사람들만 체육관을 이용할 수 있는 날이었다. 그 아저씨와 친해진 덕분에 그날 나도 체육관을 쓸 수 있었다.
Gingin 못지않게 이 작은 마을에서도 잘 적응해 나갈 자신이 있었다. 어느덧 호주에 온 지도 1년이 넘었으니 생활적인 측면은 모르는 부분도 없었다. 이제 농장에서 연락만 오면 될 일이었다.
아쉽게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계속 농장 문을 두드렸지만 결국 연락이 온 곳은 하나도 없었다. 마을에는 점점 한국인들이 많아지고 있었다. 이들도 귤빛 금광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듣고 온 나 같은 이방인들이었다. 결국 에이전시로 다시 향했다. 에이전시에서는 지난번에 추천해줬던 한 농장을 다시 추천해 줬다. 그 농장은 우리가 알고 있는 대박 농장의 목록에 속해 있지 않았다. 농장의 부지 자체가 작아서 딸 수 있는 과일의 수가 적었기 때문이었다. 하는 수 없이 나와 사촌 형은 그곳에서 일하기로 했다. 일단 다른 곳에서 연락이 올 때까지 한 푼이라도 벌고 있어야 했다.
농장에 도착하니 만다린 나무들이 줄을 맞춰 서 있었다. 마치 가로수길 같았다. 영국 근위대처럼 사열을 마친 듯한 나무들 사이로 트랙터 한 대가 여유롭게 지나갈 공간이 있었다. 농장주는 그 자리에 성인 남성 10명 정도가 들어갈 크기의 상자를 놓아두었고, 우리는 그 상자를 만다린으로 가득 채워야 했다. 채운 상자 수에 따라 그날의 임금이 결정되었다.
형과 내가 임시로 일하기로 한 농장은 대박 농장이 아니었다. 우리도 이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소위 쪽박 농장일 줄은 몰랐다. 에이전시에 워홀러들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음에도 이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왜 없는지 알 수 있었다. 농장의 상태는 생각 보다 더 안 좋았다. 단순히 농장의 부지가 작아서만은 아니었다. 농장의 부지가 작은 것보다 나무에 열린 과일 자체가 적었다. 보통 2~3시간에 상자 하나를 채운다고 들었다. 하지만 이곳은 형과 내가 하루 종일 일해도 상자 2개를 겨우 채웠다. 처음에는 형과 내가 일을 잘 못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지만 그 농장에서 우리가 제일 상자를 빠르게 채웠다. 그렇게 상자를 가득 채워도 받는 임금 자체도 다른 농장에 비해 적었다. 보통 못해도 150불, 많이 주는 곳은 상자 하나당 200불씩 줬다. 하지만 그곳은 한 상자에 100불이었다.
만다린을 따기 위한 장비는 3가지가 필요했다. 장갑, 니퍼, 캥거루 백. 캥거루 백은 큰 주머니가 달린 앞치마였다. 이를 두르고 사다리에 오른 뒤 니퍼로 만다린의 꼭지를 잘라냈다. 그렇게 딴 과일을 캥거루 백 주머니에 가득 채웠다. 가득 채운 만다린을 다시 상자에 옮겼다. 이를 몇 번이고 반복해 상자가 가득 차면 농장주가 다시 빈 상자를 갔다 주었다.
노동 강도는 닭농장 보다 훨씬 고단했다. 만다린은 하나하나가 성인 남성의 주먹보다 컸고, 무게도 묵직했다. 캥거루백의 주머니에 과일이 어느 정도 차면 그 무게가 목을 강하게 당겼다. 아무리 돈을 많이 줘도 잠깐만 해야 할 것 같았다. 이 일을 오래 하다간 허리랑 목이 다 망가질 것이 분명했다. 하루 종일 니퍼를 움직이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하루의 노동이 끝날 때쯤이면 엄지 손가락과 주변 근육이 욱신 거렸다.
육체적인 피로와 별개로 위험한 요소도 있었다. 만다린 나무는 그 높이가 제법 높았다. 나무 위쪽의 과육을 따기 위해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일해야 했다. 사다리를 타는 것이야 어려울 것은 없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나무 위에서 가끔씩 독사가 발견되곤 했다. 다행히 먼저 사람을 공격하는 류의 독사는 아니었다. 하지만 사다리 위에서 뱀을 눈앞에서 발견하면 누구나 놀라기 마련 아닌가. 농장주도 뱀에 물리는 일은 그동안 없었지만 뱀에 놀라 사다리에서 떨어진 사람은 있었다고 했다. 독사보다 낙상사를 더 조심해야 했다.
하는 수 없이 그곳에서 계속 일하면서 시간 날 때마다 대박 농장의 문을 두드렸다. 어느덧 며칠이 흘렀고, 농장에 있는 오렌지를 전부 수확했다. 더 이상 농장에 딸 오렌지가 없었다. 농장주는 내일부터 레몬을 딸 거라 했다. 레몬을 수확하는 일도 오렌지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급여였다. 레몬은 그 크기가 만다린의 절반 내지 3분의 1 크기였다. 그 작은 과일로 같은 규모의 상자를 가득 채우려니 시간이 더 많이 걸렸다. 게다가 그 농장주는 농사에 정말 열을 기울지 않았는지 만다린에 이어 레몬도 그 수가 적었다. 더 최악은 줄어든 임금이었다. 열심히 상자 하나를 채워도 80불이었다. 레몬이 단가가 더 낮았다. 할당량을 채우기 위한 난이도는 더 높은데 임금은 더 낮았다. 결국 그날 이후 그 농장을 관뒀다. 그 시간에 다른 농장의 문이라도 한 번 더 두드리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그 농장에서 일하면서 유일하게 좋았던 점이 있다. 만다린을 실컷 먹을 수 있었다.(사실 호주 어느 농장에서 일해도 해당 작물을 실컷 취득할 수 있다) 농장주는 일하면서 먹고 싶으면 마음껏 먹으라고 했다. 할 수 있으면 이 농장에 있는 열매를 다 먹어도 된다 했다. 하나를 먹고 나니 왜 ‘다 먹어도 된다’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만다린은 1~2개만 먹어도 배가 부를 정도로 크고 과즙이 풍부했다. 더 이상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던 귤과는 맛이 조금 달랐다. 몇 배는 더 맛있었다. 귤처럼 신맛 나는 과일을 좋아하지 않던 내가 ‘이렇게 맛있는 신 맛도 존재하는구나’라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