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퍼스에 도착했다. 공항 모든 상점은 닫혀 있었고, 공항 자체도 문을 닫으려 했다. 퍼스 공항은 항시 24시간 운영되지 않았다. 내가 짐을 찾고 공항을 빠져나가는 공항 내 조명이 하나 둘 꺼지기 시작했다. 공항을 나오니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픽업 차량의 운전자 분께 연락을 하려 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길가에 대기하는 차량이 한 대뿐이어서 바로 알 수 있었다. 그 분과 약간의 통성명을 하고 차에 탑승했다. 차를 타고 공항을 빠져나오는데 공항의 모든 불이 다 꺼져있었다. 오늘 영업을 마친 공항이 무척 신기했다.
이동하면서 집주인과 연락을 했다. 집주인 친구분 차량을 무사히 탑승해 지금 집으로 가고 있다고 했다. 집에 도착하니 이미 12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전화로 목소리만 듣던 아저씨(이하 라비)가 나와 나를 반겨 주었다. 라비는 키가 작고, 까무잡잡한 피부에 강렬한 눈빛을 갖고 있었다. 무서운 눈빛과 달리 라비는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고, 웃으며 내 방을 안내해 주었다. 잠자리가 바뀐 첫날이었음에도 나는 기절하듯 잠에 들었다.
이튿날 정오까지 푹 자고 일어났다. 거실에 나오니 라비가 있었다. 라비와 나는 함께 마당으로 가 대화를 시작했다. 보증금을 비롯한 집세와 관련된 이야기를 했고, 라비는 지켜줘야 할 집의 규칙 등을 알려줬다.
라비는 베테랑 호스터였다. 이미 라비의 집을 거쳐간 워홀러들이 많았다. 라비는 그들에게 일자리 소개를 비롯해 처음 호주에 온 친구들이 잘 적응하게끔 도와줬었다. 내게도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적극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와 동시에 집 주변에 워홀러들이 일할 수 있는 공장들을 알려주었다.
라비는 그동안 자신의 집에서 머물다 간 사람들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몇몇 친구들과는 사이가 돈독 해져서 그 친구들의 나라에 놀러 갔던 사진들도 보여 주었다. 핸드폰의 사진을 하나하나 넘기던 와중 아시아사람만 나오는 것에 궁금증이 생겨 물어봤다. 라비는 오로지 아시아 사람한테만 방을 내준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라비가 처음 호주에 왔을 때부터 지금의 일본인 아내를 만나 정착하게 된 이야기를 들려줬다.(라비의 아내도 일본에서 이혼 후 호주에 오게 됐다고 했다)
라비는 20년 전에 호주에 왔다. 그때 수중에 들고 온 현금이 고작 100불도 안 됐다. 물가를 감안하더라도 턱없이 적은 돈이었다. 라비는 호주에 왔던 초창기에 길거리에서 자면서 쓰레기를 뒤져가며 끼니를 해결했다. 그때 호주는 키와 덩치가 작은 동양인에게 친절하지 않은 나라였다. 라비는 길을 가다가 이유 없이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겨우 일자리를 구해도 임금도 제대로 안주는 경우도 있었다. 일자리에서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해야 했다.
라비는 자신이 그간 고생했던 이야기를 하면서 손가락을 보여줬다. 라비는 자신의 손가락 중 몇 개는 감각이 없다고 했다. 라비의 손을 자세히 보니 관절 몇 개가 뒤틀려 있는 것 같았다. 물론 친절한 백인들도 있었지만 인종차별 트라우마 때문에 아시아 세입자만 받는다고 했다. 유럽 출신 세입자도 한 번 받아본 적이 있었는데 별로 좋은 기억은 아닌 것처럼 말했다. 그리고 아시아에서 온 젊은 친구들이 예의도 바르다는 등의 말을 했다. 특히 한국, 일본, 대만, 홍콩 등에서 온 친구들이 어른을 공경할 줄 안다며 칭찬했다. 말레이시아 아저씨가 한국 아저씨 같은 말을 하는 점이 재밌고, 신기했다.
라비의 사연을 듣고 나니 왜 라비의 눈 빛이 그렇게 매서웠는지 알 수 있었다. 다행히 지금의 아내를 만나 행복하게 사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나는 라비의 이야기를 들으며 궁금한 점을 물어봤다. 대화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라비가 곧 룸메이트가 생길 것이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