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승무원에게 외모가 중요한데 본인의 생각은?

기준 앞에 의연해 질 때

by Ted 강상원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기준 앞에 의연 해 질 때



"이미 외모가 중요해진 게임판에서 내면의 아름다움이 더 중요하다는 말은 헛소리처럼 들리곤 한다. 어쩌면 헛소리에 영혼을 팔고 자기 위로를 하는 것일까?"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거울은 왕비에게 왕비님이 제일 예쁘다고 한다. 단, 백설 공주만 없다면. 즉, 세상에서 왕비보다 예쁜 사람은 백설 공주 한 명뿐이다. 왕비는 세계 2위라는 뛰어난 미모를 가졌지만, 질투심과 시기에 눈이 멀어 의붓딸을 죽이려 한다. 변장까지 하는 성실함을 보이며 독살이라는 잔인한 방법으로. 외모에 대한 집착이 부른 비극이다.



#승무원의 도전 조건


외모는 승무원에게 매우 중요하다. 단순히 예쁘고 잘생김을 의미함이 아니다. 편안하고, 밝은 미소를 보이며 깔끔한 인상을 주는 게 중요하다. 대부분의 승무원 준비생(이하 승준생)이 이를 알고 있다. 그래서 매일같이 웃는 연습, 예쁜 마음 갖기, 피부관리, 운동 등을 하며 자신의 외적인 모양, 즉 외모를 가꾼다. 그리고 승무원처럼 보이는 이미지를 갖춘 채로 거울 앞에서 끊임없이 연습한다. “제 장점은~”, “제가 승무원이 된다면~”, “제가 이 항공사에 입사한다면~”등의 예상 면접 질문에 대한 답변을 반복한다. ‘나는 승무원이다’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라고 되묻는다.


전직 승무원으로부터 모의 면접을 받은 적이 있다. 승무원 준비를 시작한 지 1달 도 채 되지 않았을 시기였다. 아침부터 머리에 힘을 주고, 정장을 차려 입고 강남의 모 승무원 학원으로 향했다. 최대한 승무원처럼 보이려고 나름대로 한껏 꾸몄다. 당시 스스로 부족함을 느끼고 있었지만 면접 후 받은 피드백은 생각보다 충격적이었다. 모의 면접 후 “칙칙해요”, “어두워요”, “졸려 보여요”, “부담스러워요”, “깔끔한 인상을 주기에는 무리입니다”, “스타일이 지저분해요”, “승무원 이미지는 아닙니다.” 등의 피드백을 받았다. 국내외 굴지의 항공사에서 경력을 쌓은 분들의 의견이었기에 더 피부로 와닿았다. 면접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지금이라도 승무원 준비를 관둘까?’라는 생각을 했다. 역시 승무원은 외적으로 뛰어난 사람들만이 기회조차도 얻을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기회의 균등 혹은 시작의 정의가 성립되지 않는 세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기소침해진 것이 사실이었지만 현실적으로 내가 발을 들이밀어 볼 수 있는 시장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었다.


꿈꾸는 것은 자유라고 하지만 70살 노인이 NBA 선수가 될 수는 없다. 꿈에 도전하기 위해 무한한 가능성을 펼쳐보고, 부딪히고, 넘어져 보는 것과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바꾸려 하는 것은 다르다. 하늘을 날기 위한 꿈을 위해 비행기 발명을 목표로 할 수는 있다. 이는 높은 곳에서 하늘을 날 수 있다는 믿음만 가진 채 커다란 우산 하나만 들고뛰어내리는 것과는 다르다.


비행기에서 밝은 미소를 짓고 인사하는 승무원을 떠올리면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부족해 보였다. 하지만 이왕 칼을 뽑았으니 무라도 썰어보자는 심정으로 도전을 이어 나갔다. 내 외모가 남들보다 뛰어나지 않음은 충분히 인지했다. 32살의 적지 않은 나이도 도전을 망설이게 했지만 속으로 ‘그래서 뭐?’를 왜 쳤다. 나를 구성하는 요소가 승무원이 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였지만 ‘끝까지 가보지 않으면 모른다’라는 생각으로 도전을 이어나갔다.



#셀프 성형수술


내 외모를 지적하는 이야기에 물론 의기소침 해진 때도 있었지만 이를 내가 개선해야 할 점으로 여겼다. 그들의 얼평(얼굴 평가)은 내가 발전시켜야 하는 부분이지 나라는 사람 자체를 정의한다 생각하지는 않았다. 어두운 피부톤을 지적받으면 화장품과 화장기술을 찾아봤다. 그래도 부족하다 느끼면 누구보다 밝은 미소를 보여주겠다고 다짐하며 미소 연습을 했다. 때로는 애써 웃으려 하는 내가 때로는 안쓰러워 보이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더 밝은 이미지를 얻고자 카메라와 거울 앞에서 매일매일 웃는 나를 마주했다. 가만히 웃는 연습, 웃으며 말하는 연습, 입을 다물고 웃는 연습, 차아를 드러내며 웃는 연습, 걸으며 웃는 연습, 손동작을 취하며 웃는 연습, 스피치를 하며 웃는 연습, 강의하며 웃는 연습 등 어떤 상황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승무원 이미지를 머릿속에 계속 그렸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짬이 나면 스스로 웃는 모습을 촬영했다. 특히 셀카를 많이 찍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카페 또는 식당에서, 약속 장소에서 친구를 기다리면서 셀카를 찍었다. 이렇게 웃어보고 저렇게 웃어보면서 내가 제일 잘 어울리는 표정을 찾았다. 내미소, 얼굴 생김새, 근육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밤마다 내가 어떻게 웃을 때 제일 자연스러운지 수십 장의 자화상을 관찰했다. 핸드폰에는 익숙한 듯 낯선 사람의 웃는 사진이 가득했다. 매일 헬스장 러닝 머신 위에서 펜을 물고 달렸다. 펜을 물고 웃으면서 “제가 승무원이 되고 싶은 이유는~”, “제가 이 항공사에 입사하고 싶은 이유는~”등을 영어와 한글로 내뱉었다. 때로는 미소 교정기를 찬 상태로 러닝 머신 위를 달렸다. 주변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타인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을 수 있는 원대한 목표가 있었다. 미소 교정기를 끼우며 안면 근육이 아파 떨릴 때까지 버텼다. 웨이트 운동으로 근육을 단련하듯 미소 근육을 단련했다.


그렇게 연습을 하고, 어느덧 웃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주변으로부터 인상이 좋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같이 스터디하는 사람들로부터 미소가 많이 자연스러워졌다는 말도 들었다. 사진을 찍을 때 자신감 있게 웃을 수 있었다. 여전히 미소가 아름다운 사람은 넘쳤지만 그와 상관없이 자신감이 조금씩 생겨 나갔다. 그리고 웃는 내 모습이 좋았다. 그렇게 스스로 생각할 무렵 싱가포르에 있는 모 항공사 면접에서 최종 단계까지 갔다. 눈썹 문신의 영향도 제법 크게 작용한 것 같다. 탈락에 대한 좌절감과 아쉬움이 있었지만 반면에 해볼 만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3~4개월 전 전직 승무원에게 외모 피드백을 받을 때 한숨과 쓴소리를 들었던 것을 생각하면 일취월장한 샘이라 생각했다. 반드시 승무원이 되고 말겠다는 다짐을 다졌다. 거울 앞에 서서 미소를 유지한 채 면접 예상 질문을 답하고, 나 스스로에게 ‘할 수 있다’, ‘꼭 승무원이 되겠다’ 등의 응원과 다짐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내면의 깊은 지하실로 내려가면 굳게 잠겨있는 문이 있는 줄을. 나는 그 지하실 안쪽 방에서 거울을 마주하며 또 다른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가면(假面)


승무원의 외모는 단순한 얼굴 생김새를 떠나 전체적으로 풍기는 친절한 이미지라 한다. 그리고 예쁜 얼굴보다는 예쁜 미소가 더 중요한 법이다. 편안한 마음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미소는 누가 봐도 좋아 보인다. 외모와 상관없이 환한 미소와 밝은 인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우리 주변에 익히 있다. 누구나 ‘저 사람 인상 참 좋다’라며 속삭인 경험이 있다. 편안하고, 밝은 미소는 신뢰감과 안정감을 주기 마련이다.


첫인상이 당락의 99%를 결정한다 해도 과언이 아닌 승무원 면접이었기에 외모나 이미지에 관한 피드백은 스터디에서 필수다. 다만 가끔은 피드백이 아닌 얼평으로 다가오는 이야기에 주눅이 들고, 상처를 받기도 했다. 연속되는 면접 1단계에서의 탈락이 외모 자존감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승무원을 준비하는 스터디 내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는 나왔다. ‘솔직히 어떻게 승무원을 하겠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어요.’ ‘처음 보고 승무원 준비생 아닐 거라고 생각했어요.’ 등 가끔은 이 모든 말이 “너는 결정적으로 승무원을 하기에는 못생겼어. 직접적으로 하면 상처받을까 봐 돌려서 얘기해주는 거야. 이 정도 했으면 눈치껏 스스로 그만두는 게 좋을 거야. 다 너를 위한 얘기야.” 로 들렸다.


거듭되는 탈락 혹은 스터디에서 받은 외모 피드백은 내 다짐과 상관없이 외모에 대한 자존감을 조금씩 낮추고 있었다. 견고하게 다져왔다 여긴 벽에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특히 외모에 대한 지적 아닌 지적은 내 생각보다 파괴력이 상당했다. ‘넌 왜 이리 못 됐니!’라는 말보다 ‘넌 왜 이리 못생겼니!’라는 말이 훨씬 더 파괴적임을 깨달았다.


승무원 준비 이후에 소위 뛰어난 외모의 준비생 혹은 합격생을 봐도 그들의 외모를 질투하거나 나와 비교하지 않으려 했다. 그들은 그들일 뿐이고, 나는 나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주변의 합격생들을 보면 하나같이 다 잘생기고 예뻐 보였다. 그렇게 뛰어난 외모는 아니라는 합격자의 소식을 종종 듣지만, 전혀 위로가 안 됐다. 혹여 실제로 그런 합격자들을 우연히 보게 될 때면 여전히 나보다 예쁜 구석 투성이었다. 나보다 눈도 크고, 코도 오뚝하고, 턱도 갸름했다. 피부는 타고난 피부 같았다. 키도 크고 날씬했다. 합격한 사람들은 보다 내 외모가 많이 부족하 생각이 들었다. 조금씩 상대적 박탈감에 빠졌다. 타인의 평가는 상관없다던 절대적 잣대는 힘을 잃어갔다. 여전히 나는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를 묻고 있었다.


운동으로 체형을 관리하고, 올바른 자세로 서있기와 걷기를 연습했다. 미소는 점점 익숙해지며 더 이상 어색하지 않았다. 비싼 돈을 들인 피부관리도 톡톡히 효과를 봤다. 주변에서 인물이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고, 내가 봐도 제법 봐줄 만해졌다. 다만 그럴수록 외모에 대한 집착이 높아지고, 주변의 시선 혹은 평가에 민감해졌다. 도리어 승무원을 준비하기 이전, 즉 나의 외형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을 시절이 외모 자존감이 더욱 높았던 것 같았다. 남들이 보는 내 얼굴의 객관적 평가로부터 더 이상 독립적이지 못했다. 나를 표현하는 얼굴은 없어지고, 타인이 표현해주는 얼굴만 존재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나는 점점 가면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면이 칭찬을 받는 날이면 뿌듯해했다.


승무원을 준비한다는 사실을 주변에 알리지 않았다. 보통 승무원이라 하면 아무래도 예쁘고, 단정한 이미지 또는 잘생기고, 예쁜 사람이란 생각을 한다. 실제로 그러한 경우가 다분하다. 승무원 준비를 하고 있다 말하면 주변으로부터 돌아올 말이 조금 두려웠다. “그런 건 잘생기고, 예쁜 사람들만 하는 거야”라는 말을 들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말은 “너는 승무원을 하기에 부족한 외모야”라는 말과 같다. 그 말이 듣기 싫어 주변에 알리지 않았다. (결국 승무원이 되지 못했으니 아예 틀린 말도 아닌 듯하다). 시간이 더 흘러 더 이상 승무원을 준비하지 않기로 했을 때 주변에 알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다행으로 여겼다. 실패한 사실이 노출된다면 견뎌야 했을 시선이 두려웠다. 내게 멍청하고, 비현실적인 도전을 했다며 나의 선택을 비하하고 조롱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내 외적인 부분을 들먹이며 내 도전이 우습게 여길 것이 두려웠다. 승무원을 도전했던 과거는 판도라의 상자에 꼭 숨겨져 있어야 했다. 오로지 거울만이 내 승무원 도전기를 알고 있음이 참으로 다행으로 여겨졌다. 비판, 비난, 힐난, 조롱, 비하, 원성, 야유, 우롱의 원천을 애초에 차단했음이 묘수라 생각했다. 그렇게 나를 숨겼다. 가면은 방패가 되었다.



#내면의 아름다움이 더 중요하다는 말은 헛소리다


항공사 별로 원하는 상(像)이 존재하고, 그 기업이 추구하는 비전에 어울리는 이미지가 있기 마련이다. 반드시 연예인처럼 빼어난 미모일 필요는 없다. 가끔은 지나치게 화려한 이목구비가 독이 되는 케이스도 있다. 어떤 항공사는 단아하고, 차분한 이미지를 원한다. 어떤 항공사는 카리스마적이고, 프로페셔널한 이미지를 원한다. 어떤 항공사는 건강미 넘치며 활기찬 이미지를 원한다. 하지만 여전히 남들이 봤을 때 뛰어난 외모를 소유한 사람이 승무원 면접에서 유리하다.


소위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이 그저 웃는 것만으로도 깔끔한 인상을 준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익히 알고 있다. 면접장에서 예쁘고, 잘생긴 지원자에게 관심과 질문이 집중되곤 한다. 비단 승무원 면접에서만 적용되는 사례가 아니다. ‘외모도 경쟁력이다’라는 말은 어느덧 ‘외모가 경쟁력이다’로 변모했다.


겉모습이 전부가 아니다고 하지만 외모가 마치 전부인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 현실이다. 길을 가다 보면 광고판에 빛나는 연예인의 모습에 자연스레 눈길이 간다. 새로 나온 화장품과 피부관리 제품은 불경기가 없는 듯하다. 최악의 경제 위기에 처한 베네수엘라에서도 뷰티산업은 성황이다. 성형수술은 더 이상 외모지상주의가 낳은 괴물이 아닌 독서, 운동, 다이어트, 외국어 공부, 토론 활동, 경제 신문 읽기, 시사 상식 쌓기, 봉사활동 등과 같은 일종의 자기 관리를 위한 ‘To do list’ 중 하나로 여겨진다. 업그레이드시켜야 할 스펙 목록 되었다.


깔끔한 옷차림과 일정 수준 이상의 외모관리는 기본 매너이고, 예절이라 하지만 어디까지가 외모 관리이고, 어디서부터 외모에 대한 집착인지 경계선 또한 불분명하다. 매스 미디어에서는 마치 이 제품을 사용하면 이런 (연예인 같은) 외모를 가질 수 있을 것처럼 말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강조한다. 가끔 드라마에서 외모 콤플렉스로 괴로워하는 캐릭터가 등장하지만 여전히 이를 연기하는 배우들은 잘생기고, 예쁘다. 시청자 눈에는 그저 자기기만으로 보인다.


마음속 생채기는 숨기며 살 수 있지만 얼굴에 드러난 흉터는 숨기며 살 수 없다. 앞머리를 과하게 기르고, 고개를 숙이며 다니고, 사람을 피 한다한들 이는 흉터를 가리는 것이 아닌 나를 숨기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못생겨도 인상 좋은 사람이 있고, 잘생겨도 인상이 별로인 사람이 있다지만 가끔은 ‘정말 그런가?’ 싶다. 잘생김과 인상의 좋음이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잘생기면 인상도 좋아 보이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다. (영화에서 잘생긴 배우들이 악역을 맡아 험악하고 잔인한 행동을 해도 대중으로부터 섹시함이 하사된다. 반대로 섹시하다는 표현보다 ‘찰떡’이라는 표현으로 수식되는 연기가 있다.)


66 입으면 이상한 사람, 피부에 트러블이 많으면 게으른 사람, 뚱뚱하면 자기 관리를 못하는 사람, 헤어 스타일링을 못하면 자신에게 관심 없는 사람, 넥타이 하나 못 메는 남자, 화장 하나 못하는 여자, 수염을 기르는 지저분한(강조) 사람. 지저분해 ‘보이는’이 아닌 지저분’한’ 사람. 겉모습이 깔끔해 보이지 않으면 청결성까지 의심받는다. 성설 성, 성격, 경제적 능력, 지적 수준, 매너, 교양, 예의, 학벌, 집안, 재산, 직업, 성 정체성, 신체 능력까지 외모로 판단되곤 한다. 인간이라면 저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성이 외모 지상주의 앞에 철저히 파괴된다. 고유함, 독창성, 개성, 자아는 사라지고 획일화된 가면이 얼굴을 덮는다. 가면에 부합하는 얼굴이 아니면 낙오된다. 넌 왜 이리 못됐니 보다 넌 왜 이리 못생겼니가 더 큰 상처를 준다.


인간 내면의 고결함, 숭고함, 정신적 가치, 영혼 등이 무의미하다는 것이 아니다. 여전히 나는 인간 내면의 가치를 더 신뢰하고,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미 외모가 중요해진 게임판에서 내면의 아름다움이 더 중요하다는 말은 헛소리처럼 들리곤 한다. 어쩌면 헛소리에 영혼을 팔고 자기 위로를 하는 것일까?



#나의 선택


그렇다면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외모가 지닌 파급력이 상당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저 순응하며 살아야 할까? 외모에 따라 주어진 등급을 현대 사회에 내게 주어진 신분으로 여기며 살아야 할까? 자유는 인간의 가장 근원적 본능이라는데 이와 180도 대척점에 있는 외모 신분제도를 인정하며 살아야 할까? 보이지 않는 손이 지배하는 듯한 외모 시장에 내 몸을 맡긴 채로 살아야 할까?


이탈리아의 철학자이자 ‘군주론’을 쓴 마키아벨리는 말했다. ‘인간은 대체로 내용보다는 외모를 통해서 사람을 평가한다. 누구나 다 눈을 가지고 있지만 통찰력을 가진 사람은 드물다.’


현시대를 살아가면서 외모 스트레스를 받지 않은 채로 살 수는 없다. 개개인이 외모로만 평가받는 일은 결코 일어나서도 안되고, 불합리하며 부당한 일이다. 하지만 외모로 평가받는 일이 내 삶에 종종 발생할 때마다 화를 내봤자 나만 손해다.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외적인 꾸밈을 통해서든 성형을 했든 정말 예뻐지고, 잘생겨졌다 한들 조금이라도 나의 외모를 지적, 비하하는 사람은 항상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 우리는 거세게 몰아치는 파도를 억지로 잠재우려 하기보다는 그 파도를 유연하게 넘기는 법을 깨우쳐야 한다. 가끔은 파도가 너무 거세 유연하게 넘기지 못하더라도 그 파도로부터 내가 심하게 다치지 않게 나를 지키는 법을 알아야 한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바꾸거나 통제할 수 있는것은 아무 것도 없다. 우리가 유일하게 바꿀 수 있는 것은 나와 타인과 세상을 향한 태도 뿐이다. 세상이 정한 범주가 내게 폭력으로 다가오지 않기 위한 나만의 기준이 필요한 법이다.


나는 첫째로 외면을 가꾸는 일이 나를 위한 행동이라는 점을 인지했다. 우리는 주변을 인식하며 살아가기에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기는 힘들다.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외적인 부분을 신경 쓰는 일은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하지만 본질은 결국 나를 위한 행동이다. 아니 나를 위한 행동이어야 한다. 애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오랜만의 동창회 모임에서, 어른들을 찾아뵙는 자리에서 등 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한 자리가 의미 없다는 것이 아니다. 결국 본질은 나 스스로 아름다워지는 것을 택했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해주는 선택을 한 것이니 그에 걸맞게 자신에게 ‘예쁘다’는 말을 건넴에 망설일 이유가 없다. 타인의 평가는 중요하지 않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닌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조금 더 예뻐지고 사랑스러워지는 과정이 나를 위한 행동임을 인지하자. 그리고 이를 더욱 소중히 여기자. 화장, 헤어, 패션 등을 고민하는 시간이 단순히 외형을 가꾸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아껴주고 즐겁게 해주는 시간으로 생각하자. 누군가가 예쁜 옷을 입은 나를 칭찬해 주는 일도 기쁘지만, 그 보다 내가 예쁜 옷 혹은 멋있는 옷을 입고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거니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중요한 것은 SNS에 올린 셀카에 눌린 좋아요 수보다 사진 속에서 당당하고, 환하게 웃고 있는 내 모습이다. 나 스스로를 아름다운 사람으로 정의하려는 시도나 노력은 그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다.


이성으로부터 호감을 얻는 모습, 직장에서 당당하게 프레젠테이션 하는 모습, SNS에서 받는 좋아요 등. 이러한 것들이 기분 좋은 일이지만 이를 떠나서 내가 나를 아껴준 다는 사실과 과정을 만끽하자. 혹여 성형 수술을 받는다 하여도 이 또한 나 자신을 위한 행동이어야 한다. 어디까지나 ‘나’라는 우주의 중심은 말 그대로 ‘나’이다. 나를 향한 친절한 태도가 내면을 다지고 외적인 모습 또한 더 아름답게 하는 법이다. 화장과 깔끔한 옷차림만이 나를 가꾸는 방법이 아니다. 나 스스로에게 ‘예쁘다’라는 말을 건네는 것 또한 나를 가꾸는 방법이다.


두 번째로는 스스로 떳떳한가를 생각 해 봐야 했다. 나 또한 타인의 외모를 그 사람의 유일한 구성요소로 여기지는 않았는지. 즉, 나도 얼평의 가해자는 아닌지를 되돌아보고 반성해야 한다.


외모를 가꾸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타인의 외모나 그 꾸밈 방식에도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더 관심이 가는 법이다. 학창 시절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누군가 이야기하고 있을 때 궁금한 마음이 새기듯, 취준생 때 공체 채용 소식에 자동으로 귀가 기울어지듯, 내가 투자한 주식 종목의 기사가 어디서 흘러나오면 관심이 가듯, 결혼 후 아이가 태어날 때면 육아 관련 서적과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말에 자동으로 집중하게 돼 듯. 어떤 대상을 향한 우리의 태도는 우리의 관심을 바탕으로 결정된다.


나 또한 승무원을 준비하며 나 자신의 외모에 많이 신경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화장품이나 다른 남성들이 어떻게 스스로를 꾸미고 다니는 지를 관찰하게 됐다. 문제는 여기서 평가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부끄러운 행동이었고, 전형적인 내로남불의 태도였다. 남들이 나에게 해준 얼평에 상처를 입고, 이를 부당하게 여겼으면서도 나 또한 같은 행동을 했었다. 적어도 그들은 승무원 스터디에서 반드시 필요한 피드백이었지 나에게는 어떤 명분도 없었다. 어느 순간 이를 깨닫고 나니 참으로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 후 나는 무의식적으로라도 누군가의 외모에 대한 의견을 속으로 하고 있으면 의식적으로 이를 멈추고, 그 즉시 반성하려 노력했다. 누군가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도 첫인상이 그 사람과 나와의 서사에 주인공이 되지 않게 하려 했다. 좋은 첫인상이 의미 없고, 초두효과의 영향력을 무시하려 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첫 만남에서 받은 느낌이 전부가 아님을 조금 더 의식적으로 자각하려 했다. 그리고 더 이상 아무리 친한 사이라 한들 외모 비하를 바탕으로 한 농담은 하지 않았다. 남자들끼리 하는 흔하고, 무의미한 장난이긴 하지만 이것이 당연히 해도 되는 행동은 아니었다. (예외적으로 몇몇 지인과 친구들에게 눈썹 문신을 적극 추천하기는 했다.)


얼평을 했던 내 행동의 반성은 타인의 내면에 집중할 수 있는 태도를 갖추게 해 주는데 도움이 됐다. 그리고 나 스스로를 향한 외모의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누군가를 외모로만 평가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나 스스로를 외모로만 평가하지 않게 해 주었다. 스스로 더 예뻐지기 위해서, 더 잘생겨지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과 스스로를 외모로만 평가하는 것은 그 궤를 같이할 필요가 없었다.



#높은 자존감? 단단한 자존감!


사실 외모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는 언제든 우리 자존감을 깎아내리려는 요소들이 존재한다. 여기에 무너지지 않기 위해 우리는 우리 내면을 단단히 다져야 한다.


승무원을 준비하면서 외모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외모 자존감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자존감이란 누군가의 평가와 상관없이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마음이다. 즉 타인이 나의 외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그 사람의 의견일 뿐이므로 나의 자존감과는 상관이 없다.


외모, 돈, 명예, 직업, 사회적 위치, 타고 다니는 차, 입고 다니는 옷 등은 우리의 자신감을 높여줄 수는 있어도 자존감을 높여줄 수는 있다. 높아진 자신감을 높아진 자존감으로 착각해서는 안된다. 이러한 요소들은 우리 사회에서 우리를 평가하는 수많은 요소중 하나다. 그리고 이 평가는 외부의 평가다. 타인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 중 하나일 뿐이다. 이러한 평가 요소들은 우리의 자존감을 구성할 수 없다. 구성한다 하여도 이는 자존감이라는 허울로 씌워진 가짜다. 언제든 금방 무너지고, 타인의 시선에 금세 좌우되는 것이라면 이는 나를 존중하는 마음이 아니다. 복권에 당첨되어 갑작스럽게 큰 부를 손에 쥐게 된다면 나의 자존감이 올라갈까? 업체 측의 실수로 복권번호 발표가 번복되어 당첨이 취소되면 나의 자존감은 하락하는 것일까? 회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면 나라는 사람은 가치 있는 사람이고, 그렇지 않다면 나는 쓸모없는 사람일까? 누군가가 나의 존재를 부정하면 내 존재는 그렇게 단정 될까? 우리의 자존감은 상한가와 하한가를 왔다 갔다 하는 주식 같은 것이 아니다. 이러한 것이 우리의 자존감을 결정하고, 구성한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타인의 시선에 살고 있다는 뜻이다.


취미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 누구나 어설픈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그 서툶 속에서도 우리는 재미를 느끼고, 오히려 서툶으로 말미암아 자기 효능감을 느끼기도 한다. 축구를 못해도, 내가 공을 차는 게 즐겁다. 노래를 못해도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을 마음껏 즐기는 자신이 좋다. 주방은 난리가 났지만 우여곡절 끝에 만든 내 요리에 흐뭇함을 느낀다. 자존감은 외부의 시선, 타인의 평가와 상관없이 나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는 마음이다. 즉 우리의 자존감이 단단해지기 위해서는 무언가에 뛰어날 필요가 없다. ‘잘생겼다’, ‘멋지다’, ‘대단하다’가 아니다. 대단하지 않아도 좋다. 보잘것없는 나여도 괜찮다. 어설퍼도 나쁘지 않다. 부족하다 보니 더 배우는 점도 있고, 더 좋은 점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자존감이라는 대상에 있어서 높고 낮음을 따지는 것 보다 얼마나 단단한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 더 적절하고, 긍정적인 접근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다진 나의 내면은 비단 아름답기만 할 뿐만 아니라 단단하고, 우화 하며, 우직하고, 유연하다. 견고한 삶의 뿌리가 된다. 세상의 평가에 휘둘리지 않고 단단한 태도. 우리는 이를 의연하다고 한다.


그리고 단단한 자존감은 나를 알려는 노력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사랑할 수 있는 순간이 언제인지. 이를 좀 더 적확하고 정확하게 알려하는 것. 내면의 서사에 구체성을 부여하려는 노력. 예를 들어 나를 돋보이게 해주는 ‘향수’를 찾는다기 보다는 나를 기쁘게 해주는 ‘향’을 찾으려 하는 자세다. 전자가 외부 세계가 추구하는 방향성에 나를 일정 부분 맞추는 것이라면 후자는 나 스스로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고 선택하는 것이다. 내면과 서사를 쌓는 일이다. 내 피부톤에 어울리는 색조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만큼 나를 기분 좋게 하는 언어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나의 자신감을 올려주는 옷을 고르는데 에너지를 쏟을 수 있지만 어떤 경험이 나를 성장시킬지 고민하는 시간에 더 큰 에너지가 쏟아져야 된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어떨 때 행복하고, 어떨 때 기운이 나는지를 끝없이 탐구해 나가며 자신을 조금씩 알아가는 것이 내면을 단단하게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단단해진 자존감 앞에서 타인의 시선은 계란에 불과하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승무원을 준비했단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내 과거를 바탕으로 누군가가 내 외모를 평가하지 않을 거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도리어 내가 승무원이 되려 했던 과거를 들었기 때문에 내 외모를 평가하지 않던 사람도 무의식적으로 내 외모 상태를 점검할 수 있다. 다만 더 이상은 상관없었다. 나의 과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의 경험이 필요하다면 그저 공유할 뿐이었다. 나의 장점은 외모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시선 혹은 평가는 더 이상 내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이제는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쁜지를 묻기 위해 거울 앞으로 갈 필요가 없었다. 언젠가 다시 세상이 정한 기준 앞에서 고개 숙이는 날이 올지 모르지만 단단한 무언가가 날 지탱해 줄 것 같다. 나의 자존감일 것이다.


승무원을 한창 준비했던 시기보다 더 늙고, 살도 찌고, 피부도 푸석 해 졌지만 조금은 더 편안한 미소를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행복은 어느덧 타인의 손이 아닌 내 경험과 미소에 새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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