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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

by Ted 강상원

나는 결국 승무원이 되지 못했다 part1: 도전



"그저 주변 상황에 맞춰 살아가는 것이 아닌, 내가 주도하는 삶이 주는 충만함과 만족감 덕에 ‘승무원에 도전하길 잘했다’라고 생각했다. 도전의 가치와 삶의 주체성이 주는 기분 좋은 리듬으로 내 심장은 두근댔다."



#20초


32살이 되던 겨울 나는 다니던 대학원을 나왔다. 약 1년여의 연구생으로 있으면서 내 재능의 한계를 느꼈다. 기계공학은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래도 석사 과정에서 자동차로 분야를 좁혀 공부한다면 나름 잘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자동차는 나름 관심 있는 분야였다. 그래서 조금은 적성에 맞을 거라 생각했다. 이러한 믿음은 오히려 ‘나는 기계공학 엔지니어는 못해먹겠다’는 확신을 주었다. 수학과 과학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일은 신비롭고 재밌었지만 이를 현실세계에 끌고 와 분석, 설계, 계산, 연구, 실험, 그래프 작성 등을 하는 일은 재미보다 스트레스였다. 오히려 수학적 재능 부족으로 얻는 무력감만 쌓여왔다.

나의 게으름을 정당화하기 위한 핑계였을지 모르지만 소질, 적성 등을 떠나 나 스스로 열정을 쏟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며 노력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이를 잘 버텨내며 취업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었을 터였다. 다만 내가 열심히 노력해 메카닉 엔지니어로서 능력을 쌓고, 전도유망한 분야에 취업을 하는 미래를 그려보아도 그 그림 속에서 “나는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만 계속 떠올랐다. 편하게 살고 싶다 일지, 잘 살고 싶다일지, 행복하게 살고 싶다일지 모를 고민 속에서 결국 대학원을 중퇴하기로 결심했다. 중퇴하기로 결심했지만 이를 실행에 옮기기 쉽지는 않았다. 하고 싶은 것만 쫓으며 살기에 나는 더 이상 어리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시간 날 때마다 내가 좋아하는 일, 어떨 때 행복하고 어떨 때 스트레스를 받는지, 어렸을 때 꿈꿔왔던 일 등을 적었다. 그리고 계속 나에게 ‘왜?’라는 질문을 던졌다. 왜 여행을 좋아하는지, 왜 영화감독을 꿈꾸었는지, 왜 기계공학 엔지니어로서의 삶에서 답답함을 느끼는지. 결국 답은 찾지 못했지만 나의 시선을 유독 사로잡는 대상이 있었다. 여행이 좋았고, 여행이 고팠고, 여행이 그리웠다.

현실적으로 밥벌이를 하면서 여행을 많이 다닐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지를 고민했다. 고민 끝에 관광통역사 자격증을 취득하기로 했다. 자격증 취득 후 관광통역사로서 경력을 쌓은 뒤 프리랜서 여행 가이드가 되는 것이 좋을 듯했다. 자격증 준비를 위해 관련 책을 사서 읽기 시작했고, 관광통역사와 관련된 자료들을 찾아보며 하루를 보냈다. 준비를 할수록 내 안에 여러 질문이 떠올랐다. 여행 가이드를 하면 정말 여행을 많이 다닐까? 결국 회사에서 지정해 준 곳만 다녀야 하는데, 장소만 외국일 뿐이지 매일 같은 곳을 다니는 것 아닌가? 내가 원하는 여행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원하는 여행은 무엇일까? 나는 왜 여행이 좋을까? 나는 그 속에서 행복할 수 있을까? 나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 여행 그 자체일까 아니면 일상으로부터의 회피 일까?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마음을 여행이라는 낭만적인 말로 포장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저런 질문들이 계속 떠올랐지만 모든 질문들은 결국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본질적인 질문으로 귀결됐다.


이런 고민을 하던 와중 친구와 베트남으로 여행을 가게 됐다. 작은 계기가 인생의 큰 변화를 만들기도 하듯 나 또한 베트남 여행을 통해서 어떠한 계기가 마련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던 것 같다. 고작 여행 한 번이 내 인생의 답을 내려 줄 수는 없지만, 삶의 유레카는 오히려 잠시 고민을 내려놓을 때 찾아오곤 한다. 며칠간 씨름하던 문제의 해답이나 새로운 관점이 샤워 도중 떠오르곤 하는 것처럼 당시 나에게는 고민을 내려놓게 해주는 샤워가 필요했다.

3박 4일의 달콤한 휴식을 마치고 귀국 편 비행기에 몸을 실었을 때였다. 원하는 해답은 얻지 못했지만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다. 친구와 여행의 아쉬움을 수다로 달래며 탑승 수속을 마쳤다. 국내 모 항공사를 이용하였는데, 당시 기내에서 근무하던 남자 승무원의 이미지가 깔끔하면서도 인상 깊었다. 나는 그저 지나가는 말로 “나도 승무원이나 해볼까?”라고 말하였다. 친구는 내가 가볍게 건넨 말에 한 번 해보라고 대답했다. 공채 한 번 지원해 보라며 나의 너스레를 받아 주었다. 일순간 몸 안에 전율이 일어나며 “왜 이 생각을 못 했지?”라는 질문이 머리를 강타했다.

그저 티브이에 나오는 여러 직업이나 누가 돈 벌었다는 이야기를 접했을 때, 누구나 흔히 하는 말을 나 또한 했을 뿐이었다. “나도 유튜브나 할까?”, “나도 공무원이나 할까?”, “나도 사업이나 할까?”, “장사나 할까?”등의 “그저 나도 이거나 할걸 그랬나”식의 가벼운 너스레였다. 그리고 그 너스레가 이후 내 삶을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바꿔놨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 승무원이란 직업을 알아보았다. 나는 두 가지 현실을 마주했다. 첫 째는 ‘승무원의 현실’이었다. 모든 직업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상상 이상(以上)으로 뿌듯함과 보람을 주기도 하지만 이상(理想)과는 정 반대로 비참하고, 남루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그 현실은 직업에 대한 환상을 철저히 부수고, 삶에 대한 회의감을 주기도 한다. 승무원이라는 직업은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 뒤에 더 많은 그림자가 있었다.

승무원으로 일하게 된다면 겪게 될 고충들을 알아보면서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특히 전, 현직 승무원들의 소위 진상 승객 경험담을 읽어 볼 때면 경악을 금치 못하는 사례들도 있었다. 반말과 욕설은 기본에 성희롱과 손찌검을 하는 손님. 인신공격, 서비스 직종을 하대하는 태도 등. 더욱이 승무원은 서비스직 이전에 안전요원으로서의 임무가 우선이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만큼 전염병에 노출될 위험도 크고, 기내에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시 이를 책임져야 하는 것 또한 승무원이다. 승무원일을 그만하고 싶다는 여러 사례를 읽어 보았고, 그 고충이 정말 상당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그럼에도 해 보고 싶었다. 승무원 업무의 스트레스가 대부분 사람에서 온다는 것이 당시 내 결론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승무원직의 보람을 느끼는 것 또한 사람으로 부터라는 이야기가 특히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마치 여행지에서 겪는 불편함으로 피로가 쌓이지만 반대로 그러한 불편함이 여행을 더 특별하게 만들기도 하는 것처럼. 비행기가 익숙하지 않은 제법 연세 드신 승객분에게 몇몇 기내 이용 방법(?) - 예를 들어 의자를 조절한다든가 화장실 위치라든가 콜벨 사용 등 - 을 설명해 드렸더니 너무 좋아하시면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았다는 이야기는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날 정도로 뭉클했다. 몸이 불편하신 손님이 비행기에 내리면서 손을 붙잡고, 축복과 안녕을 빈다는 말을 건네었을 때 ‘내가 비행하는 이유’를 느꼈다는 한 승무원의 이야기는 이 직업이 선사하는 선물 같았다. ‘승무원은 멋진 직업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승무원이 된다면 마주해야 할 무게. 그 삶이 갖는 현실의 무게는 충분히 짊어질 자신이 있다는 확신과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행을 많이 다닐 수 있다는 사실 하나가 나를 강력하게 매혹했다. ‘승무원의 현실’은 내가 진로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망설임의 요소는 아니었다.

문제는 두 번째 현실이었다. 베트남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내가 현실적으로 승무원이 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가능성에 대한 현실이 내 도전을 망설이게 했다. 외모, 나이, 경력 등 나의 모든 구성 요소가 승무원이 되는데 장애물이 될 것 같았다. 무엇보다 외적으로 자신이 없었다. 승무원은 잘생기고, 예쁜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닌가?

승무원 커뮤니티를 통해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의 글을 읽어보고, 승무원 학원에서 면담을 하며 현실적인 조언을 해 달라고 부탁했다. 승무원 학원에서는 잘 꾸미면 될 것 같다고 했지만 믿음이 안 갔다. 그저 학원생 포섭을 위해 듣기 좋은 말을 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자료조사와 학원 면담을 통해 알게 된 점이 있었다. 승무원에게 있어서 외모는 제법 중요하지 않았다. 정말 제법 많이 중요했다. 다만 이것이 객관적 잘생김과 아름다움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승무원은 남들이 봤을 때 외적으로 소위 잘생기거나 예쁜 사람들이 하는 일로 여겨진다. 빼어난 외모가 승무원 당락에 유리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깔끔한 인상과 그 사람이 풍기는 이미지가 중요했다. 깔끔하고, 선하며 신뢰감 가는 이미지. 그런 의미에서 외모는 정말로 중요했다. 하지만 나는 어느 것도 아니었다. 잘생긴 외모는 아니었고, 깔끔한 인상과는 더더욱 거리가 멀었다. 신뢰감 주는 인상이 무엇인지 당시 감이 안 왔지만 일단 나는 확실히 아니었다.

승무원이란 직업을 지속해서 탐구하며 두 현실을 저울질했다. 하나는 원하는 것을 이루었을 때 마주하게 될 현실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한 현실이었다. 해낼 수 있을까의 질문은 할 수 있다는 자신 있는 대답을 내릴 수 있었지만, 될 수 있을까의 질문은 대답을 못한 채로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계속 고민만 하고 있을 수 없어 스스로 데드라인을 정했다. 딱 한 달 동안 승무원이라는 직업을 최대한 알아보면서 고민에 대한 해답을 차츰 내리기로 했다. 한 달 후에도 결정을 못하고 망설인다면 내 길이 아닌 것으로 판단하고 포기하기로 했다. 그렇게 승무원 관련 책, 커뮤니티 글, 유튜브 영상, 승무원 학원 면담, 승무원 모의 면접 등을 하면서 승무원 준비생 베타 테스트를 했다. 아이돌 데뷔를 꿈꾸는 연습생을 연습 삼아해 본 샘이었다.


한 달여의 시간이 다다를 무렵이었다. 나는 여전히 결론을 내리지 못한 상태였다. 스스로 정한 데드라인이 다가오는데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면 나와 이 길은 인연이 없거나 도전할 각오가 서지 않은 것이라 생각했다. 설사 도전하기로 결심한다 하여도 어설픈 각오로는 죽도 밥도 안될 것 같았다.

베트남 여행에서 승무원이라는 유레카를 맞이한 후 한 달 동안 고민하고 고민했다. “그래서 승무원 도전할 거야 안 할 거야?”라는 물음과 씨름하던 와중 학교 후배로부터 연락이 왔다.

후배로부터 연락이 온날로부터 1년 전쯤이었다. 당시 후배는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호주 워킹 홀리데이를 고민하고 있었다. 나는 워킹홀리데이를 먼저 경험해 본 사람으로서 내 경험담과 팁 등을 알려주었다. 후배는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둔 시점에서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가는 것이 맞는지 고민이었다. 후배는 지금 해보지 않으면 평생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하는 반면 막상 떠나기에는 졸업, 취업 등의 현실적 문제가 도전을 망설이게 한다고 했다. 고민 끝에 후배는 결국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약 1년 후 그 후배가 귀국해서 연락이 왔다. 술 한잔 기울이며 그 후배의 호주 여행기를 들었다. 호주에서 겪은 그 후배의 고생과 추억을 들으며 술자리는 무르익었다. 문득 후배는 내가 해준 말 중 이 말이 인상 깊었다고 했다.


“가끔은 미친척하고 딱 20초만 용기를 내 볼 필요가 있어. 장담하는데 멋진 일이 생길 거야”


그 후배가 대학 졸업과 워킹홀리데이를 고민하던 시기에 내가 좋아하는 영화 속 대사를 이야기 해준 적이 있었다. 나는 까맣게 있고 있었는데 후배 말로는 그 말에 용기를 얻어 호주로 떠날 수 있었고,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고 왔다고 했다. 그리고 돌고 돌아 내가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과거에 그 후배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기 위해 건네었던 말이 나에게 되돌아온 것이었다. ‘될 수 있을까?’라는 현실과 씨름하던 와 중 ‘일단 해보자’라는 용기와 응원 속에서 두 번째 현실을 맞닥뜨려 보기로 했다.

이후 나는 대학원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대학원에서 받은 장학금으로 학자금 대출을 갚지 않고, 승무원 학원에 등록했다. 승무원 도전을 결정하기까지 수십 번의 고민을 거듭했지만 결정은 한순간이었다. 내가 앞으로 할 도전은 20초 안에 끝날 일은 아니었지만 망설임은 없었다. 다가올 수백만 초 혹은 수천만 초의 미친 짓이 내 인생을 어떻게 변화시키든 멋진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믿음으로 도전을 결심했다. 여행을 떠나기 위해선 용기가 필요한 법이었다.


“You know, sometimes all you need is twenty seconds of insaine courage, Just literally twenty seconds of just embarrassing bavery. And I promise you, something great will come of it”

- We bought a zoo(우리는 동물원을 샀다) -



#오픈데이(Open Day)


용기와 무모함은 다르다. 승무원을 도전하기로 용기를 냈지만 이것이 내 현실을 바꾸진 못했다. 승무원이 되기 위해 내 부족한 점을 채우고 개선시켜야 함은 당연하지만 여전히 바꿀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내 나이는 이미 30을 넘어 중반으로 향하고 있었다. 32살의 나이로 경력직도 아닌, 신입으로 승무원을 도전하는 일이 가능할까 싶었다. 여러 커뮤니티와 승무원 학원 면담을 통해 알게 된 결과 나이에 관대한 외국 항공사가 제법 있는 것을 알게 됐다. 국내 한 대형 항공사 또한 32살의 나이에 합격한 신입이 있다는 이야기도 알게 되어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차츰차츰 현실 가능성을 가늠하던 와중 ‘30살 승무원’이라는 책을 만났다. 제목부터 내 현실을 반영하는 듯해 자석처럼 그 책에 이끌렸다. 그 책의 저자가 30살 무렵에 승무원에 도전한 경험담은 내게 ‘꿈꾸고, 도전하는 것이 잘못은 아니잖아?’라는 내 생각에 힘을 실어 주었다. 누군가에는 ‘32살 씩이나’ 일 나이일지 모르지만 누군가에게는 ‘아직 32살 밖에’로 비칠 나이일 수 있다. 결국은 내가 나를 어떤 자세로 바라보고, 용기를 내어 도전하되 자기 객관화를 멈추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호주에서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과 한데 어울려 추억을 만들고, 그 친구들과 소통했던 기억이 소중했던 나에게는 외항사가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승무원이 된다면 일터에서 만나게 될 다국적 승객, 다국적 동료들과 나눌 소통이 설렘과 흥분으로 다가왔다. 내 심장을 뛰게 했다. 상대적으로 국내 항공사에 비해 나이에 관대하고, 영어 소통에 있어서 내 강점을 두각 시킬 수 있고, 내 이미지 또한 국내 항공사보다는 외국 항공사에 더 어울린다는 조언을 종합해 외국 항공사를 목표로 설정했다. 그리고 이왕이면 세계 최고 항공사를 목표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카타르 항공(Qatar Airways)’을 목표로 삼았다. 카타르 항공과 더불어 중동 3대 항공사라 불리는 ‘에미레이트 항공(Emirates Airlien)’과 ‘에티하드 항공(Etihad Airways)’ 또한 간절한 내 목표였다. 사실 합격만 시켜준다면 어디든 큰 상관은 없었겠지만, 모든 고3은 서울대를 목표로 공부해야 한다는 말처럼 나 또한 항공업계의 서울대인(외항사니까 하버드인가?) 카타르 항공이 마음속 1순위로 자리 잡았다.

이후 승무원 학원과 승무원 스터디 모임을 병행하면서 조금씩 나를 다듬어 갔다. 스터디에서 만난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본격적인 정기 스터디를 꾸려 나갔고, 승무원 학원보다 승무원 스터디가 더 유익하다 생각한 나는 승무원 학원을 그만두었다. 승무원 스터디를 하면서 ‘무언가에 도전하는 일이 이렇게 설레고 재밌었던 적이 언제였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대학원 연구실에 있을 때는 느낄 수 없는 감정이었다. 그저 주변 상황에 맞춰 살아가는 것이 아닌, 내가 주도하는 삶이 주는 충만함과 만족감 덕에 ‘승무원에 도전하길 잘했다’라고 생각했다. 도전의 가치와 삶의 주체성이 주는 기분 좋은 리듬으로 내 심장은 두근댔다.

경험해 보지 못한 분야에 발을 들이면서 얻는 설렘과 호기심뿐만 아니라 면접 질문을 통해 나를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면접 질문은 의외로 간단했다. 하지만 이 간단한 질문이 내게 던지는 파장은 강렬했다. 자기소개 질문은 나란 사람이 누구인가를 자문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장점 단점을 물어보는 질문은 내가 나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 왔는지 알 수 있었다. 가장 행복했던 기억 혹은 가장 슬펐던 기억이란 질문은 내 삶에 감사하는 태도를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취미 혹은 인생 목표를 묻는 질문을 통해 내 인생의 마인드맵을 그려 보았다. 승무원 면접 예상 질문을 작성하는 일은 나에게 내 인생의 커다란 청사진을 그리고, 나의 행적을 회고하며 현재 나란 사람은 누구인가를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가끔 아이들이 던지는 순수한 질문들이 있다. “행복이 뭐예요?”, “성공이 뭐예요?”, “사랑이 뭐예요?”, “왜 공부해야 해요?”. 질문은 직설적이며 단순하지만 이런 질문을 마주한 우리 어른들이 대답을 선뜻 못하는 이유는 이 질문들이 삶의 본질을 관통하는 질문들이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누구이고, 세상은 무엇이며, 그렇다면 나, 너,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한없이 작아지기도 하고, 때로는 회피하고 싶어 지며 가끔은 우리 자신도 이해 못 할 괘변을 늘어놓기도 한다.


나에게는 유독 두 질문이 힘들었다. ‘자기소개’와 ‘승무원이 되고 싶은 이유’였다. 자기소개에는 일종의 공식이 있었다.


기본 정보 - 이름, 전공, 현재 하고 있는 일 등

경험 - 해외 체류 경험, 서비스 직 경험, 기타 경험

그래서 나는 누구? - 장점, 서비스 마인드, 성격, 승무원으로서의 자질, 기타 활동


이런 정보들을 회사의 인재상(회사 홈페이지에 나온 정보 혹은 기사를 바탕으로)에 맞게끔 적절한 어휘를 골라 최대한 승무원스럽게 말하는 것이었다. 몇 번의 답변을 수정하며 2 - 3가지 자기소개 답변을 만들었다. 결국 나 자신을 이해하지 못해였을까? 주변의 좋은 피드백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기소개 질문에 대한 내 답변에 자신이 없었다.

승무원이 되고 싶은 이유는 여행이 좋아서였는데 면접관에게 이를 그대로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름대로 마인드맵을 그려보고, 스터디원들의 피드백을 받아가며 그럭저럭 답변을 준비하던 중 그저 여행을 많이 다니고 싶은 마음 그 이상의 이유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이유를 꼭 찾아야만 할 것 같았다. 단순히 여행이 좋아서라면 여행이 왜 좋은지, 나에게 여행이 어떤 의미인지를 밝혀 내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작은 불안을 안고 면접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외국 항공사 채용 소식이 떴다.

‘에어마카오(Air Macau)’와 ‘에어아시아(Air Asia)’ 채용 면접이었다. 에어 마카오 면접은 국내에서 진행될 예정이었고, 에어 아시아는 일본인 채용을 위해 오사카에서 오픈 면접(Open Day)이 계획 돼 있었다.

몇몇 외국 항공사의 경우 다국적 승무원을 뽑기 때문에 오픈 면접이 열리는 나라의 국적이 아닌 사람도 채용하곤 한다.(예를 들어 일본에서 열리는 오픈 면접에서 한국인이 채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외국 항공사 지망생들은 해외로 나가 면접을 보곤 한다. 나는 국내에서 진행되는 에어마카오에만 지원할 생각이었다. 비싼 비행기 값까지 들여 외국으로 면접 보러 가는 것이 아직은 사치로 여겨졌던 시기였다. 승무원 준비를 시작한 지 겨우 2달 남짓 했을 때였고, 스스로도 아직 준비가 많이 안된 상태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00번의 면접 연습보다 1번의 실전 면접이 더욱 큰 도움이 된다는 말에 에어아시아 항공에도 지원하기로 했다. 탈락할 것이 뻔하다 생각했지만 이 또한 경험이 될 테고, 경험은 가장 훌륭한 스승 아닌가.

에어마카오 면접이 점점 다가왔다. 여전히 미숙한 점이 많았지만 유독 한 가지가 나를 더 불안하게 했다. 눈썹이었다. 승무원에 도전하기 전에는 사람의 인상에 눈썹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지 못했다. 눈썹 그리는 연습을 매일 했지만 전혀 늘지 않았다. 짱구 눈썹부터 갈매기 눈썹까지 별의별 눈썹을 다 그려본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에어마카오 면접이 국내 한 승무원 학원과 협업해 이루어졌다. 1 ~ 2차 면접은 해당 승무원 학원의 관계자들이 면접을 주관했고, 이후 최종 면접에서 에어마카오 인사팀의 면접을 보는 절차였다. 문제는 면접을 주관하는 승무원 학원이 내가 1주일 전에 그만둔 승무원 학원이었다. 그 학원을 그만두지 않았다 해도 합격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무언가 유리한 부분이 있지 않을까라는 아쉬움이 들었다. ‘나는 카타르 항공에 갈 거니까’라는 마음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그리고 면접날이 다가왔다. 내 첫 승무원 면접이었다. 아침 일찍 정장을 차려입고, 면접장이자 며칠 전까지만 해도 출석 도장을 찍었던 승무원 학원으로 향했다. 면접장으로 향하면서 제발 오늘 눈썹이 자연스럽게 그려지기를 바랐다. 면접장에서 만난 스터디원은 오늘 눈썹이 제법 자연스럽다고 했다. 다행히 안심한 상태로 면접장에 들어설 수 있었다.

면접은 순식간에 진행됐다. 면접관들은 편한 미소로 지원자들을 맞이 해주었지만 내 긴장감은 가라앉지 않았다.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면접이 끝났다. 1 ~ 2분 남짓한 시간 동안 미소와 올바른 자세를 유지하며 편안하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일이 이렇게 힘든지 몰랐다. 그래도 값진 경험으로 생각하고 곧 있을 면접인 '에어 아시에(Air Asia)' 주력하기로 했다.

출국을 2 ~ 3일 앞두었을 때쯤 에어마카오 1차 면접을 통과했다는 문자를 받았다. 호기롭게 도전을 결심했지만 내가 전혀 불가능한 일에 시간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완전히 떨쳐내지는 못했었다. 그런 나에게 에어 마카오 1차 면접 합격은 불안을 씻어 주었다. 더욱더 용기를 가지고 도전을 이어 갈 수 있는 힘을 주었다. 그렇게 조금은 상기된 기분을 안고 오사카로 향했다.

탈락했다. 그 자리에서 바로 탈락했다. 말 그대로 빛의 속도로 탈락했다. 흔히들 얘기하는 광탈을 경험하고 나니 제법 허무했다. 면접을 직접 경험해 본다는 자세로 도전했지만 그 실전은 1분도 되지 않았다. 당일 한국 지원자들은 전부 1차 면접에서 떨어졌다. 같이 간 2명의 동생들과 호텔 방으로 돌아와 허무하게 웃기만 했다. 우리는 적어도 3명 중 한 명 정도는 최종 면접까지는 가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3박 4일 일정을 잡았다. 출국 전 3명 다 1차에서 바로 떨어지면 관광이나 하고 오자라는 우스개 소리를 했다. 3명 중 1명은 최종 면접까지는 보지 않을까라는 이상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관광이나 하자는 우스개 소리는 현실이 됐다. 우울하거나 의기소침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제법 재밌고, 추억에 많이 남을 만한 여행을 하고 왔다.

오사카 길거리는 그 정취가 여전했다.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그 도시가 여전히 그 정체성을 잃지 않고, 그대로 있어준 것이 고마웠다. 날씨는 마치 오사카에 면접이 아닌 관광을 위해 온 것이 아닌가란 생각이 들게 할 정도로 기분 좋은 화창함과 선선함을 선사했다. 오사카의 도톤보리가 주는 분위기를 배경 삼아 산책하던 중이었다. 산책하던 중 우연히 호젠지 신사를 발견했다. 나와 같이 갔던 동생 2명은 신사 앞에서 소원을 빌었다. 아니 나는 소원 대신 다짐을 했다. 눈을 감고, 합장한 채로 내 안의 간절함을 한 번 더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반드시 승무원이 되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카타르 항공’ 면접을 위해 마카오로 향했다. 본 게임은 이제 시작이었다. (오사카에서 귀국 후 한국에서 본 ‘마카오 항공’ 면접은 2차에서 탈락했다.)



#카타르(Qatar)


또 다른 항공사 채용 소식이 떴다. 카타르 항공이었다. 카타르항공 홈페이지에 마카오에서 오픈 면접이 열린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그 당시 카타르 항공은 중국어를 할 수 있는 지원자를 많이 찾고 있었다. 중국어와 영어에 능통하고, 다국적 사람들이 있는 마카오는 카타르항공 입장에서 원하는 인재를 많이 발굴할 수 있는 매력적인 장소였다. 마카오는 한국에서 가깝고, 노선도 많이 존재했다. 그 때문에 카타르항공 승무원을 꿈꾸는 지원자들에게도 기회의 장소였다. 나에게도 그랬다. 생각보다 빨리 기회가 찾아왔다.

면접이 이루어지는 호텔은 아침부터 북적였다. 나는 면접이 이루어지는 호텔에서 도보로 5분 거리의 호텔에 묵었다. 면접은 보통 선착순으로 이루어지고, 이른 시간에 면접을 보는 것이 유리하다. 제법 일찍 나왔다 생각했지만 면접장에 있는 인파를 보니 다른 지원자들은 잠도 안 자고 나왔나라는 생각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카타르 항공 인사 담당자 즉 면접관들이 면접장에 도착했고, 오늘 면접이 어떤 절차로 진행될지를 설명했다. 경청에 있어서 사랑, 배려, 공감의 감정보다 절박함이 훨씬 효과적인 촉매제임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이후 곧 면접이 시작되었고, 나는 내 차례를 기다리며 답변 연습으로 초조함을 달랬다. 구비해간 서류는 구김이 없는지, 빠뜨린 것은 없는지, 머리는 깔끔하게 정돈됐는지, 화장 상태는 양호한 지, 입술 색이 빠져 다시 발라야 하는 것은 아닌지, 준비해온 답변을 잊은 것은 아닌지, 편안하게 웃을 수 있는지 등 체크리스트를 끊임없이 체크하며 면접에 집중하고 있었다.

조금씩 줄이 줄어들면서 어느덧 내 차례가 됐다. 당시 면접 대기실과 면접장은 같은 방에 칸막이 하나만 설치된 상태로 구분돼 있었고, 어느덧 나는 칸막이 제일 끝에 서있었다. 이 모퉁이만 돌면 카타르 항공사 면접관이 있었다. 그 끝자락에 서서 내 앞 지원자가 면접관과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정확히 무슨 말을 주고받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들의 대화가 건물 내벽에 부딪히면 내 귓전을 울렸다. 그리고 더욱더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심호흡을 했다. 면접 진행을 도와주는 호텔 직원은 나에게 ‘이제 네 차례야’라는 손짓을 했다.

최대한 밝은 미소를 유지하고, 눈을 마주하며 자연스럽게 걸어 들어 가려했다. 최악의 경우 걸어 들어오는 모습만 보고 면접관이 나가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일단은 면접실 안에서 면접관 앞까지 무사히 걸어 아는 것부터가 중요했다. 다행히 무사히 도착했고, 준비해온 서류를 내려놓으며 가볍게 인사했다. 면접관은 내 이력서를 훑어보고는 질문을 던졌다.


“Can you introduce yourself?”


가장 기본이면서도 중요한 질문. 수없이 연습하고, 스터디원들의 피드백을 받아가며 수정 보완해 온 자기소개. 나는 그 질문에 가로막혔다. 말도 못 하고 나온 것은 아니었다. 그간의 연습 덕에 준비해 온 자기소개는 있는 그대로 얘기할 수 있었다. 다만 대답을 하면서 이 자기소개가 나와는 정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잘 굴러가는 듯 하지만 어딘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자동차 같았다. 겉으로 봐서 열심히 회전하는 엔진이 있다 했을 때 보이는 것만큼 동력을 뿜어내지 못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내 자기소개는 순식간에 끝났다. 면접관은 이후 내 이력서와 나를 번갈아 보더니, 연락한다는 말로 면접을 끝냈다. 오픈 면접 1차에서 면접관의 연락한다는 말은 탈락이라는 뜻이었다.(간혹 정말 연락이 오는 경우가 있다.) 1차 면접을 통과한 사람에게는 ‘Invitation(지원자들끼리는 줄여서 ‘인비’라고 부른다)’이라는 종이쪽지를 준다. 내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았다.

긴장 탓이었을까, 여전히 연습이 부족해서였을까, 아니면 그저 모든 것이 부족했을까. 나와 달리 같이 간 스터디원 대부분은 그 인비를 받았다. 인비를 받은 스터디원들은 이후 있을 2차 면접 그리고 영어 테스트를 위해 면접장에 남았다. 나는 내가 묵는 호텔로 돌아왔다. 침대에 누워 천장만 하염없이 바라봤다. 방으로 돌아와서 편한 옷으로 갈아입지 않았다. 화장도 지우지 않았다. 나의 면접이 끝났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았다. 아니 실감하기 싫었다. 그렇게 옷과 화장에 첫 카타르항공 면접의 미련을 묻어둔 체 누워 있었다. 그리고 혼잣말로 준비했던 자기소개 답변을 천장에 내뱉었다.

이튿날 스터디원 한 명과 다시 면접장으로 향했다. 스터디원 중 한 명이 최종 면접까지 진출했다. 나는 그 친구를 위해 면접장까지 같이 걸어가 주고 잘하고 오라며 힘을 실어주었다.(그 친구는 그날 최종 합격을 하고, 카타르항공 승무원이 됐다.) 그리고 어제의 면접과 지난 연습과정을 되돌아봤다. 주저앉아 있을 시간은 없었다. 감정을 걷어내고, 실패 원인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분석해야 했다. 그리고 계획을 수정했다. 여전히 카타르 항공사를 목표로 도전하되 어떤 항공사가 됐든 승무원 자체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늦은 나이에 도전을 결심했기에 어떻게든 빨리 합격해야 했고, 이후 다른 항공사로 이직을 할 시 경력직으로 지원하는 것이 유리할 것으로 판단했다. 어느 항공사에서든 일단 승무원으로서 경력을 쌓고, 카타르 항공 혹은 그 밖의 다른 우수한 항공사의 승무원으로서 일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번 면접은 나의 완패로 끝났지만 다음에는 다를 거라는 각오를 다지며 귀국했다.

귀국행 비행기에서 여전히 자기소개 질문이 머리에 맴돌았다. 면접의 미련보다는 다른 의미였다. 승무원을 떠나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어느 정도 답을 내릴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마음속 찝찝한 기분을 지우기 힘들었다.


“나는 누구일까?”



#카타르 어게인(Qatar Again)


이후 국내의 ‘진에어(Jin Air)’ 면접과 싱가포르의 ‘실크에어’ 면접을 연달아 봤다(실크에어 면접을 같이 보러 간 스터디원 1명은 최종 합격을 했다.). 나는 두 면접 모두 1차에서 탈락했다. 여전히 승무원으로서 자질이 많이 부족했다. 특히 1차 면접에서 바로 탈락한다는 것은 이미지 혹은 인상이라 불리는 그 외적인 모습이 모자람을 뜻했다. 외적인 자존감이 떨어졌고, 점점 내가 가는 길에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실패가 거듭되면 이상은 현실에 맞춰 그 키를 낮춘다. 내 목표는 점차 소박해졌다. 연속된 1차 탈락으로 자신감이 조금 떨어져 있었다. 목표는 최종 합격이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1차 통과만 했으면 소원이 없을 것 같았다. 그 인비라는 것을 구경이라도 해보고 싶었다. 인비를 받는다면 승무원으로서 기본 소양은 갖추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인비라는 종이가 손에 쥐어지기만 한다면 ‘일단 이미지는 통과야’라는 말로 다가올 것 같았다. 그 상징에 위로를 받아 도전을 이어 나가고 싶었다. 조금씩 승무원이 되어 살고 싶은 삶을 꿈꾸기보다는 승무원이라는 직책 혹은 그 타이틀을 얻고 싶다는 열망이 강해졌다. 타인의 잣대와 상관없이 나 스스로 만족하는 삶보다 이 항공업계 특히 승무원이라는 세계에서 나라는 존재가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가 높아졌다.

4개월 뒤면 33살이었다. 국내 항공사는 당연히 불가능할 뿐 아니라 외국 항공사 또한 합격할 가능성이 점점 희박해졌다. 애초에 1년만 도전할 생각이었다. 당시 나는 학원 강사로 일을 하고 있었는데, 강사로서 충실한 삶을 살든 혹은 다른 일을 시작하든 조금은 현실적으로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시기라고 판단했다. 돈도 모아야 했고, 부모님의 늙어가는 모습이 점점 더 뚜렷 해 졌다. 벌써 결혼해 아이를 낳고,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친구들과 내가 비교됐다. 비교하지 않으려 했지만 현실적으로 나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꿈을 꾸는데 나이는 상관없다고 하지만, 무언가가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을 수학적으로 환산한다면 나이는 큰 변수임에 틀림없다. 당시 “당신은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에 내 대답은 “승무원이 되고 싶은 32살 취준생입니다.”가 전부였다. 그리고 “그렇다면 왜 승무원이 되고 싶나요?”라고 묻는다면 “……(모르겠어요)”라고 대답했을 것 같다.

내 자아의 불안 혹은 정체성의 혼란과는 별개로 면접 준비는 착실하게 수행했다. 면접 질문을 통해 삶의 본질을 찾아가는 것이야 의미 있겠지만, 당장은 면접에 합격을 해야 하는 전략 수립에 집중하는 것이 옳은 판단 같았다. 다만 면접을 준비하는 과정이나 면접에 탈락한 후 이를 곱씹는 과정에서 ‘나는 누구인가’와 ‘왜 승무원’이라는 두 질문은 어김없이 생각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왔다. 그럴 때면 매번 그보다는 눈앞에 닥친 면접에 집중하자며 스스로 다독였다. 그리고 카타르 항공사의 면접 기회가 다시 찾아왔다.

운이 좋게도 내가 외국 항공사에 도전하던 시기는 말 그대로 면접 풍년이었다. 마카오에서 처음 카타르 항공 오픈 면접을 보고 두 달 후 또다시 카타르항공의 오픈 면접이 열렸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계절. 나는 한국보다 더욱 찌는 듯한 공기를 머금고 있는 마카오로 향했다. 카타르 항공 승무원이 될 수 있는 두 번째 기회였다.

승무원이 되기로 마음먹은 3 ~ 4개월 전과는 확실히 달랐다. 모든 면접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할 준비가 됐었다. 헤어, 메이크업, 의상 등 이제는 순조롭게 준비 가능했다. 숙소를 나서기 전 ‘이번에는 반드시 카타르 승무원이 되겠다’는 결의와 ‘제발 인비만 받았으면 좋겠다’라는 현실적 타협안 사이의 균형을 맞추며 마음을 다잡았다. 인비만 받아도 성공이다라는 생각으로 부담을 내려놓으려 했고, 이번에 승무원이 된다는 생각으로 적당히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면접은 2달 전과 같은 호텔에서 이루어졌다. 면접장에 도착하니 익숙한 듯 생소한 풍경이 펼쳐졌다. 지원자들은 웅성웅성 대며 저마다의 면접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곧이어 면접이 시작됐고, 내 차례가 금방 다가왔다.


“Why do you want to be cabin crew? And Why our company?


탈락했다. 이번에도 인비를 받지 못했다. 두 달 전과는 달리 침착한 태도로 면접 질문에 답을 했다(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하지만 여전히 면접관의 답변은 “오늘 밤에 연락할게”였다.

예상 면접 질문에 대한 답변은 대부분 준비가 된 상태였다. 다만 답변 내용보다는 그 내용을 전달할 때의 지원자가 보여주는 느낌, 이미지, 인상, 어투, 제스처, 자세, 분위기 등이 당락의 중요 여부다. 이점을 고려해 나는 여전히 승무원으로서의 자세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비행일지


당시 나는 나만의 승무원 노트를 제작하였다. 그때 일하던 학원의 제본기를 활용해 A4용지 약 50장 분량의 승무원 노트를 만들었다. 1순위가 카타르 항공이었기 때문에 카타르 항공을 중심으로 노트를 만들었는데, 그 노트의 항목 구성은 카타르 항공사 기본정보(역사, 수상경력, 최근 뉴스, 카타르 항공 CEO 인사말 등), 합격생들의 합격 수기, 예상 면접 질문과 답변 예시, 내 답변 작성을 위한 공란 등으로 이루어졌다. 인터넷을 통해 수집한 자료와 시중에 판매 중인 승무원 면접 대비 관련 서적을 참고 삼아 제작하였다. 예상 면접 질문과 답변 예시 부분에는 a4용지 두 쪽 분량의 공란을 집어넣었다. 첫 번 째 빈칸은 답변 작성을 위해 마인드 맵을 그려보기 위한 칸이었고, 두 번째 빈칸은 답변을 구체적으로 적어보기 위한 칸이었다. 답변들은 스터디를 통해 받은 피드백으로 수정 보완을 거치며 여러 번 작성하였다.

하루는 정기적으로 하는 스터디 외에 다른 스터디에 참석했다. 이미 나의 면접 스타일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아닌 새로운 시각을 얻기 위함이었다. 여느 때처럼 내 승무원 노트를 꺼내 면접에 대한 피드백을 받아 적고, 준비해 간 답변을 점검하며 스터디가 진행됐다. 스터디 도중 쉬는 시간에 다른 한 분이 나에게 그 노트가 무엇인지를 물어보았다. 깔끔한 디자인, 컬러풀한 자료, 좋은 재질의 종이로 출판된 다른 책들과는 달리 나의 것은 A4용지에 적당히 구멍을 뚫어 스프링철 한 제본이었다. 그분은 이 모습에 호기심이 일었던 것 같다. 나는 개인적으로 만든 승무원 노트라고 했다. 혹시 직접 봐도 괜찮냐는 질문에 내 지난날의 일화가 면접 답변에 적혀있어 조금 민망한 태도로 노트를 건네주었다. 어느 정도 훑어본 후 나에게 노트를 돌려주며 한 분이 웃으며 말을 해 주었다.


“거의 책 한 권 만들었네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뭔지 모를 번뜩임이 일었다. 그 번뜩임의 이유를 알 수 없어 그날 남은 시간 동안 스터디에 집중하지 못했다. 스터디가 끝나고 조금 전 느꼈던 그 번뜩임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해하며 사색에 잠겼다. 학원으로 출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그 노트를 차근차근 들여다봤다. 어느덧 노트는 내가 공부한 흔적과 작성한 답변. 그 답변을 위해 그린 마인드 맵으로 가득했다. 이어서 그 노트의 빈칸들을 채워 나갔을 때의 감정이 떠올랐다. 설렘과 흥분 재미로 가득한 기억이었다. 예상 답변을 작성하는 일은 재밌었다. 물론 면접 답변이라는 틀에 맞추어 수정을 거듭하였고, 그 과정은 그리 재밌지는 않았다. 하지만 날것 그대로의 초안을 작성할 때는 흥분되는 마음으로 글을 적어나갔다. 특히 마인드맵을 그린 흔적을 보니 내가 얼마나 즐거운 마음으로 이를 작성했는지가 상기됐다. 승무원이 된다면 꼭 비행일지를 적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 비행일지를 바탕으로 언젠가 승무원의 경력이 제법 쌓였을 때 책을 쓰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승무원으로서 오간 다양한 나라. 함께 일하며 생활한 다국적 사람들과의 소통. 승무원으로서의 삶을 내 안에 차곡차곡 쌓아 책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수필이든, 소설이든 구체적인 장르는 정하지 못했지만 승무원으로서 내 안에 많은 스토리를 쌓아가고 싶었다. 그 이야기가 쌓일 미래가 설렘으로 다가왔다. 반드시 승무원이 되겠다는 다짐을 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왜 승무원이 되고 싶어요?’라는 질문에 조금은 본질적인 답을 찾은 순간이었다. 물론 이러한 이유로 내 면접 답변을 수정하지 않았다. 면접은 엄연한 비즈니스 거래이고, 전략이므로. 다만 내 대답에 스스로 확신이 생겼다. 면접 질문에 며칠 전과 똑같은 대답을 하여도 그 단단함이 강해졌다. 뿌리가 조금 깊어진 느낌이었다.

그 시기에 눈썹 문신을 했는데 예쁘게 잘 나왔다. 그 덕에 외모에 대한 자신감도 높은 상태였다. 외적으로 그리고 내적으로 제법 자신감이 오른 상태에서 ‘실크 항공(Silk Air)’ 면접과 ‘에미레이트 항공(Emirates)’ 면접을 보기 위해 싱가포르로 향했다.


우리는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자기 식대로 인생을 살아가다 일이 잘못돼 고통을 당할 수도있다. 그러나 설령 그런 결과를 맞이하더라도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가게 되면 다른 사람이 좋다고 생각하는 길로 억지로 끌려가는 것보다 궁극적으로는 더 많은 것을 얻게 된다. 인간은 바로 그런 존재이다.
-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자유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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