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과 골리앗
영화감독이 되고 싶어 호주로 떠났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모했지만, 당시에는 나름의 계획이 있었다. 치기 어린 젊음을 불태울 도전이었고, 낭만이 펼쳐지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어김없이 철들라며 채찍을 휘둘렀다.
2년여간의 호주 생활을 통해 영어 실력을 쌓고, 유학자금을 마련해 미국의 영화 학교에 입학하고 싶었다. 이런 목표를 가지고 호주에서의 첫 3개월은 1초를 아껴가며 살았다. 당시 나는 오전 시간에는 어학원에서 IELTS 수업을 들었다. 오후에는 어학원 앞에 있는 카페에서 파트타임으로 설거지 및 기타 잡일을 했다. 퇴근 후 마트에서 유통기한이 하루 남은 고기 한 덩이를 사 집으로 왔다. 호주는 고기가 싸지만 한 푼이라도 더 아끼기 위한 선택이었다. 집으로 오는 길에 도서관에 들러 오전에 배운 내용을 복습하고, 다음날 외울 영어 단어를 정리했다. 버스나 지하철로 이동하는 동안에는 영어 단어를 외우거나 미국 드라마를 봤다. 휴식이 필요할 때면 바다에 갔다. 어학원이 퍼스 - 서호주 주도(主都) - 의 아름다운 해변인 스카보로 비치 앞이어서 짧게 자주 들렸던 것 같다. 어학원에서 사귄 외국 친구들과 가끔은 파티를 즐겼다. 없는 돈을 쪼개가며 20불에 4L 정도 하는 와인을 사 세계 각지 친구들과 어울렸다. 그 싸구려 술은 숙취가 매우 심했다. 피곤했지만 피곤한 줄 몰랐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내가 좋았다. 이렇게 한다면 언젠가는 영화감독이 될 것 같았다.
어학원을 수료하고, 본격적으로 풀타임 잡(full time job)을 구하기 시작했다. 일할 곳을 금방 구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구직 활동은 생각보다 길어졌다. 도시에 있는 공장, 카페, 식당 등을 찾아다니며 이력서를 돌렸다. 매일 검트리(Gumtree, 호주의 벼룩시장 홈페이지) 사이트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알아봤다. 그밖에 호주 정부에서 알선하는 농장 일자리를 알아보며 메일을 돌렸다. 일자리가 있다는 곳을 찾아가 보면 어김없이 이미 채용됐다는 말만 들을 뿐이었다.
수입이 없었으므로 지출을 줄이기 위해 매일 인스턴트식품을 사 먹었다. 미고랭(호주의 인스턴트 누들)으로 세끼를 채웠지만 이마저도 두 끼로 줄였다. 일자리는 계속 구해지지 않았고, 방세를 내고 나면 남는 돈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지출을 줄일 방법을 궁리하다 마트에서 파는 노브랜드 식빵과 감자튀김이 생각났다. 식빵 한 봉지에 1달러(당시 환율로 800~900원), 감자튀김 1kg에 1달러. 식빵 한 봉지를 3 분할해서 아침 점심 저녁을 먹었다. 감자튀김은 4 분할했다. 눈으로 어림잡아 250g씩 나눠 끼니를 해결했다. 이런 생활이 한 달이 넘어가기 시작했고, 나는 점점 지쳐갔다. 제대로 된 식사를 못 하니 몸은 점점 야위었다. 육신을 움직일 에너지가 부족했다.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위축되고, 자신감을 잃었다. 빵과 감자튀김으로 겨우 배고픔을 달래고 나면 무료함과 싸워야 했다.
내게 남는 건 시간뿐이었다. 직접 찾아가거나 채용 공고에 메일을 보내는 등의 구직활동은 반나절이면 끝났다. 처음에는 남는 시간을 기쁘게 받아들이며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마을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지역 커뮤니티에 참여해 현지인과 어울렸다. 운동을 하고, 그간 보고 싶었던 영화를 봤다. 이마저도 길게 가지 못했다.
정신적인 무장은 육체의 굶주림 앞에서 한없이 나약했다. 내 안의 꿈과 패기를 품은 다윗은 배고픔이라는 골리앗 앞에서 처참히 짓밟혀 갔다. 정상적인 식사를 하지 못해서인지 건강이 조금씩 악화됐다. 만성피로에 시달렸고, 잦은 코피를 흘렸다. 피부는 푸석푸석해지고 눈은 생기를 잃어 갔다. 머리카락이 거칠어지면서 자주 빠지기 시작했다. 손끝과 손톱이 갈라졌다. 자주 어지러움을 느끼고, 사소한 일에 짜증을 느꼈다.
처음에는 맛있는 한 끼가 먹고 싶었다. 한국 음식이 자주 생각나고, 엄마가 해주는 집밥이 그리웠다. 연출자라는 원대한 목표 따위는 머릿속에서 잊힌 듯했다. 그보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흰쌀밥에 김치 한 조각만 얹어 먹을 수 있다면 바랄 게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마저도 생각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음식이 생각났다. ‘흰쌀과 고기반찬은 지금의 나에게 사치다’라는 생각이 아니었다. 이 이상 건강이 악화되면 안 된다는 신호를 세포 하나하나가 말하는 것 같았다. 야채나 과일이 먹고 싶었다. 비타민과 식이섬유가 풍부한 음식이 먹고 싶었다. 씹는 순간 몸이 건강해지는 느낌이 그리웠다. 단순히 배고픔을 달래고 싶다는 단계는 지났다. 식빵으로 허기를 억지로 다시 달래고 나면 무료한 시간이 반복됐다.
어느 날 문득 거울을 보니 눈앞에 낯익은 얼굴을 한 폐인이 서 있었다. 나는 점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육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지쳐갔다. 남은 시간이 심심함으로 느껴졌고, 나중에는 내가 처절히 견뎌야 하는 무료함으로 변해있었다. 고요한 정막이 절망이 되어 나를 잠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