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퇴사를 반복하는가

사무관 출신 변호사의 대형로펌 적응기 - 18

by 사무관과 변호사

공무원과 변호사 생활을 합치면 6년, 내가 사회생활을 해온 총 기간이다.

공무원으로 일하는 동안 나는 1번의 전출, 1번의 퇴직을 했고, 지난 주에는 로펌을 퇴사하기 직전까지 갔었다.

공무원 조직에서 전출은 사실상 민간기업에서의 이직 다르지 않으니 나는 2년에 1번 꼴로 직장을 옮기거나 옮기려고 한 셈이다(심지어 공무원에서 변호사로 직업을 바꾸기까지 했다).


나는 왜 한 직장을 오래 다니지 못할까? 처음에는 단순히 '힘들어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고민할수록 더 근원적인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그 '근원적인 이유'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그 이유를 쓰기 전에 내가 행정고시를 왜 준비했었는지부터 보아야 할 것 같다.

나는 어려서부터 '아주 많이' 중국사를 좋아했다(오히려 한국사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나처럼 중국사와 중국 고전들을 좋아했던 아버지의 영향일 수도 있고, 내가 무협소설을 많이 읽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아무튼 나는 중국사에 관련된 책들을 정말 많이 읽었다. 그런데 송나라 이후의 시대를 다룬 책들을 읽다보면 빠짐없이 등장하는 계층이 있었다. 바로 '사대부(士大夫)'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달까 귀엽달까, 그래서인지 어릴 때의 나는 사대부가 되고 싶었다. '나라의 미래를 이끌어가는 사회지도층'이라는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 행정고시는 과거(科擧) 시험이나 마찬가지로 보였고, 행정고시 합격 후 공무원 생활을 하는 것은 곧 과거 급제 후 관료 생활을 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솔직히 나는 장관이나 차관(보통 '장차관'으로 묶어 부른다)까지 올라,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인물들처럼 무언가 큰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물론 모든 게 내 망상이었다. 사대부 계층이 행정뿐 아니라 정치와 경제까지도 독점했던 시대는 이미 수백 년 전에 끝났다. 오히려 지금은 공무원이 행정을 전담하지도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 정책결정은 행정고시 출신 공무원이 아닌 선거로 선출된 정치인이 하기 때문이다. 공무원의 역할은 이미 정해진 정책을 단순히 집행하는 것일 뿐, 공무원이 무언가 새로운 걸 시도하거나 만들어내기는 어렵다. 그래서 내가 공무원으로 수십 년을 일해 마침내 장차관이 되어도 딱히 할 수 있는 건 없다(덧붙이자면, 공무원 출신 장차관과 정치인 출신 장차관은 그 역할이 다르다). 그리고 나는 이걸 사무관으로 일하기 시작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당연한 건데, 그때의 나는 너무 바보 같았다.


문제는 이걸 깨닫는 과정에서 내가 직장생활의 목표를 완전히 잃었다는 것이다. 사무관으로 일한 지 불과 1~2년만에, 나는 장차관이 되고 싶다는 꿈을 접었다. 그런데 장차관이 목표가 아니라면 굳이 중앙부처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다. 그래서 나는 지방자치단체로의 전출을 선택했다. 개인의 삶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세종시에 사는 것보다는 서울에 사는 게 훨씬 낫기 때문이다.


그러다 해당 지방자치단체에서 1편에서의 '분노조절장애 국장'을 만나게 되었다(1편: https://brunch.co.kr/@b3f354978f7046b/3). 그 이후 나는 잃었던 직장생활의 목표를 새롭게 정할 수 있었다. 내 인생의 방향을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직장생활, 달리 표현하면 '내가 커리어를 주체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 직장생활을 하자'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조직 내에서 특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가고 싶다거나, 대단하게 보이는 직함을 얻는 데에 대한 집착을 버렸다. 그보다는 삶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높이는 방향으로 직장생활을 하자고 결심했다.




그런데 대형로펌에서의 높은 업무강도는 내 직장생활의 목표인 '내 삶에 대한 자기결정권 확보'와는 맞지 않았다. 물론 대형로펌에서 높은 업무강도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은 조직에 어느정도 융화되었다는 방증이며, 향후 '파트너 변호사'가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이기도 하다. 파트너 변호사가 되려면 조직에 대한 기여도를 인정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만약 초임 사무관 때처럼 조직 내 성공을 목표로 하는 사람이었다면, 그러니까 장차관을 하고 싶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대형로펌의 파트너 변호사'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었다면, '높은 업무강도'를 오히려 조직에서 인정받는 증거라고 생각하고 자부심을 느꼈을 수도 있다(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실제로 '높은 업무강도'를 자부심의 근거로 삼는 사람들이 꽤 있다).


하지만 나는 '조직 내 성공'을 더 이상 내 목표로 삼을 수 없었다. 조직이 요구하는 몰입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내 삶에 대한 자기결정권은 축소되고 우선순위에서 밀려났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이 로펌에서 계속 일하는 것이 과연 나의 목표와 일치하는 선택인지 의문이 들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한 직장을 오래 다니지 못했던 이유는, 나에게는 조직 안에서의 성공보다 내가 어떤 기준으로 일하고 있는지를 스스로 설명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 기준이 무너졌다고 느껴지는 순간 나는 다음 선택지를 고민해왔던 것이다.


내 삶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확보할 수 있는 직장생활이 가능할까? 아직 나는 그 답을 완전히 찾지는 못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앞으로도 나는 ‘얼마나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는가’보다는 ‘이 일을 하면서도 내 삶의 주도권을 유지할 수 있는가’를 계속해서 따져보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 질문을 멈추지 않는 한 나는 한 자리에 안주하지 않는 사람으로 남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