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관 출신 변호사의 대형로펌 적응기 - 19
내가 육아휴직을 쓰겠다고 했을 때 선배 어쏘 변호사들 몇 명이 나에게 해준 말이 있다.
대강, 변호사로서 초반 3년의 평판이 중요한데 이 시기에 육아휴직을 쓰면 불리할 수 있으니 자제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취지의 말이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속으로 '아, 로펌에서도 초반 3년의 평판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초반 3년의 평판이 앞으로의 공직생활을 좌우하니, 3년 간은 죽었다 생각하고 일만 하라는 말은 사무관일 때 이미 많이 들어봤기 때문이었다.
내가 만약 이 로펌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람이라면 선배들의 그 말에 많이 흔들렸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선배들과 생각이 달랐기에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처음 변호사를 시작할 때부터 해오던 생각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내가 처음으로 배치되었던 부서[공무원 조직에서는 이를 과(課)라고 부른다]의 과장님은 나보다 행시 기수로는 19년 선배였고, 부이사관(3급 공무원) 직급이었다. 그 과장님은 능력이 뛰어날 뿐 아니라 인품도 훌륭해서 따르는 직원들이 많았고, 조직 내부 평판도 아주 좋았다. 그래서 나는 당연히 그 분이 더 높은 자리까지 올라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분은 정말 우연히 어떤 사건에 휘말려 징계를 받고 말았다(말 그대로 '휘말려'라는 표현 말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그 분이 무언가를 잘못한 건 아니다. 단지 그 사건으로 분노한 여론을 달래기 위한 제물이 필요했는데, 그 분이 마침 그 직위에 있었을 뿐이었다. 다른 누가 그 자리에 왔더라도 같은 징계를 받았을 것이다.
사무관 생활 5년 동안, 이런 경우를 정말 많이 봤다. 조직 내 평판이 좋고 요직도 모두 거쳤던 분이 특정 지역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계속 승진에 실패하거나, 전 정권 때 역점사업을 맡았다는 이유로 좌천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많았다. 특정 지역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승진을 거듭하거나, 전 정권 때 오히려 소외된 사람이 (무능하다는 평판이 지배적임에도) 고위직으로 승진하기도 했다.
요컨대, 공무원은 능력이 크게 처지지만 않는다면 평판보다는 관운(官運)이 승진에 있어 훨씬 중요하다(물론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변호사 역시 평판만으로 조직 내 성공이 보장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다만 관운이 중요한 공무원과는 달리, 로펌에서 살아남으려면(또는 성공을 거두려면) '돈이 되는 사건을 잘 수임해오는 변호사'가 되는 게 중요하다.
물론 '돈이 되는 사건을 잘 수임해오는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워커홀릭 변호사가 되는 게 유리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수임을 잘 하게 되는 것이 아니고, 워커홀릭이 아니라고 해서 수임을 못하는 것도 아니다.
이런 관점에서 로펌의 구조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조직이 실제로 요구하는 것은 성실함이나 헌신이 아니라 대체 불가능성이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밤을 새우며 일을 했는지, 조직의 요구에 얼마나 잘 응답했는지는 어쏘 변호사로서 버텨내는 데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그 사람이 반드시 필요해지는 것은 아니다. 결국 로펌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가'가 아니라,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되는 이유가 있는가'에 가깝다.
이 기준에서 보면, 초반 3년의 평판 역시 절대적인 의미를 갖기는 어렵다. 평판이 좋다는 것은 함께 일하기 편한 사람이라는 뜻일 수는 있어도, 그 자체로 사건을 수임해오거나 로펌의 수익을 늘려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로펌이 최종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태도가 아니라 결과이고, 그 결과는 결국 대체 가능한 노동이 아닌 대체 불가능한 역할에서 나온다.
그래서 나는 육아휴직을 둘러싼 조언을 들으면서 그 조언이 과연 로펌의 구조를 정확히 반영한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5년 간 사무관으로 일하며 반대되는 경우를 너무나 많이 보았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어떤 전문성을 쌓고,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변호사로 성장하는지가 더 중요한 게 아닐까? 내 삶에 대한 선택과, 변호사로서의 경쟁력이 반드시 반대 방향에만 서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