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에서의 승패는 언제나 예상할 수 없다

사무관 출신 변호사의 대형로펌 적응기 - 20

by 사무관과 변호사

변호사로서 일하다보면, '이 소송은 이길 수 있겠다'라거나 '이 소송은 질 것 같다'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얼마 전 패소한 소송도 그 중 하나였다.

문제는 나 개인적으로 그 소송에서 이길 거라고 확신했던 소송이었다는 것이다.




법리뿐 아니라 사실관계 자체가 우리에게 유리한 사건이었다. 상대방 역시 대형로펌이었는데, 해당 로펌에서 제출한 서면에서 '반박거리를 쥐어짜냈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서면만 그랬던 게 아니다. 실제 법정에서도 우리에게 아주 유리한 분위기였다.

재판장이 상대방의 서면에 대하여 질의했지만 상대방은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 것이다(스스로 말이 안 되는 주장이라는 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고객에게 대놓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100% 승리를 확신했던 사건이었다.


그런데 '패소'라니. 나는 처음에 내가 글을 잘못 읽은 줄 알았다. 그만큼 자신이 있었다.


법리적으로는 우리의 주장이 옳아서였을까. 무슨 이유에서인지 법원의 판결문은 아주 짧았다. 보통 당사자가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을 하는 경우, 법원은 판결문을 길게 써서 쟁점마다 판단 이유를 조목조목 적고 왜 법원이 그런 결론에 도달했는지를 설명하려 한다.


그런데 이번 판결문은 달랐다. 핵심 쟁점에 대한 설명은 매우 짧았고,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주장들이 왜 받아들여지지 않았는지에 대한 언급도 전혀 없었다. 마치 법원의 시선에서는 이 사건이 그렇게까지 복잡한 사건이 아니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더 납득하기 어려웠다. 만약 법원이 판결문을 통해 우리 주장을 왜 배척했는지를 상세히 설명해주었더라면, 비록 결론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법원이 어떤 논리 구조 속에서 판단을 내렸는지 이해는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해당 판결을 이해하기 위한 단서조차 충분하지 않았다. 패소 자체보다도, 그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이 더 크게 다가왔다.


그러면서 혹시 내가 변호사로서의 시선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았다. 우리가 중요하다고 여겼던 법리나 사실관계가, 법원에게는 전혀 다른 무게로 보였을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소송이라는 구조 안에서 이런 경험은 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변호사는 논리를 구성하고 설득을 시도하지만, 최종적인 판단은 법원이나 행정청 등 언제나 다른 위치에 있는 사람이 내리기 때문이다. 그 간극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조금 더 실감하게 되었다.


이 사건 이후로 나는 ‘이길 것 같다’는 느낌을 이전보다 조금 더 경계하게 되었다. 사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확신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 확신이 법원의 판단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변호사가 할 수 있는 일은, 가능한 한 설득력 있는 구조를 만들어내는 것까지일지도 모른다. 그 이후의 판단까지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변호사라는 직업의 본질을 오해하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변호사로서 성장한다는 것은, 승소 경험을 쌓아가는 과정이라기보다 이해하기 어려운 판결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배워가는 과정은 아닐까. 아마도 앞으로도 나는 이런 판결을 몇 번 더 마주하게 될 것이고, 그때마다 비슷한 고민을 반복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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