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 없는 결론의 끝

인지 왜곡 : 임의적 추론

친구들이 나를 보며 수군거렸다.

'내 옷이 이상한가?'
'얼굴에 뭐가 묻었나?'

'왜 그러는 거지?'
질문을 하면
친구들의 미세한 표정이 말해준다.

내가 잘못한 게 있다고
'지난번에 빌린 책을 늦게 가져다줘서 그런 건가?'
'실수로 부딪힌 게 기분이 나빴나?'

지레짐작을 해 본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그렇게
나는 또 무너진다.




위의 시에

친구들의 "수군거림"과

화자의 "무너짐" 사이에 뭐가 있었나요?


아무것도 없어요.

사실 확인도, 진솔한 대화도 없어요.


오직 추측만 있을 뿐이죠.


시 속의 주인공은 그 공백을 추측으로 채워요.


'내 옷이 이상한가?'

'얼굴에 뭐가 묻었나?'


그런데 이런 질문은

당사자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하는 거예요.


그리고 스스로 답하죠.


"지난번에 책을 늦게 줘서..."

그런 거야 하고요.




내면아이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대요.


"나 혼자 답 찾고 있었어."


제안에서 살고 있는

열세 살의 제가 이야기해 주었어요.


친구들이 저를 보고 소곤거렸던 날.

"또 오해받는 건가?"싶어서 하루 종일 조마조마했던 날.


그때의 저는 친구들에게 물어볼 수 없었대요.


물어봤다가 더 멀어질까 봐.

괜한 질문 했다고 이상하게 볼까 봐.

상처받기 싫어서.


그래서 혼자 답을 찾았었대요.


"분명 내가 뭘 잘못했을 거야."


심리학에서는 이걸 임의적 추론이라고 불러요.

충분한 근거 없이 부정적인 결론으로 뛰어드는 거예요.

인지치료의 아론 벡이 정의한 개념이죠.


그리고 이런 패턴을

치료하는 방법 중 하나가 내면아이와의 대화예요.

과거의 상처받은 나를 현재의 나가 돌보는 과정이죠.




그 전략은 효과가 있었을까요?


있었대요.

미리 최악을 준비하면, 갑자기 당할 때보다 덜 아팠어요.


"역시 그렇지" 하면서 무너지는 게,

"왜?" 하면서 무너지는 것보다 나았대요.


예측 가능하니까요.

통제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대요.


그래서 계속 그렇게 했대요.


열세 살의 나도,

스무 살의 나도,

서른 살의 나도.




그런데 지금은요.


"이제는 물어봐도 괜찮지 않을까?"

내면아이가 제게 말을 걸어오더라고요.


직장에서 선배 두 명이 조용히 이야기하다

제가 지나가자 멈췄던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 습관처럼 하루 종일 "뭘 잘못했지?" 생각했어요.


그때 열세 살의 제가 질문했어요.

"또 혼자 답 찾고 있어?"


생각을 멈추고

"선배님들에게 물어봐도 될까?" 물었어요.


내면아이가 "괜찮아. 지금은 달라."전하는 대답이 들렸어요.


다음날 선배에게 물었어요.

"어제 무슨 이야기하신 거예요?"


선배가 답을 하며 웃었어요.

"아니, 주말에 갈 등산 코스 얘기했어."


허무했어요.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뇌는 패턴을 학습해요.

"미리 알아차려야 안전하다" 이 믿음.

그게 자동 반응이 돼요.


모호한 상황 = 위험 신호.


그래서 즉시 최악을 준비하는 거예요.

인지심리학적으로 보면, 확증 편향도 작동해요.


"뭔가 잘못됐다" 결론을 내리면,

그걸 확인하는 증거만 보이기 시작해요.


친구가 웃어도 "억지로 웃는 거야."

평소처럼 대해줘도 "연기하는 거야."


문제는요.

확인하지 않고 의심으로 굳어진다는 거예요.




다양한 사례들로 확인해 보니 더 잘 알겠더라고요.



스물여덟 살 회사원의 이야기


카톡방이 조용해졌어요. 자신의 메시지 뒤로요.

"내가 분위기 깼나. 다들 나 빼고 다른 방 만들었을까."

그렇게 생각하고는 카톡 답장을 하지 않기로 했대요.


그 후로 친구들에게 진실을 확인해 봤대요.

알고 보니 다들 각자 저녁 먹고 있었대요.


웃으면서 말했어요.

"제 머릿속이 진짜 소설을 쓰고 있더라고요."



서른네 살 프리랜서의 이야기


초등학교 4학년의 내면아이가 말을 걸어오더래요.


항상 혼자였대요.

친구들이 웃으면 자기 얘기하는 줄 알았대요.


그래서 어른이 된 현실의 자신이 내면아이에게

이제는 물어봐도 된다고, 혼자 아니라고, 그렇게 말해줬대요.


그 뒤로 습관처럼 추측하다가도

"어, 또 4학년 내가 나왔네" 알아차린대요.

그럼 그 아이는 고맙다고, 이제 괜찮다고 말해준대요.



마흔한 살 교사의 이야기


남편이 갑자기 한숨을 쉬었대요.

자신이 말한 직후예요.

"내가 또 뭘 잘못했나. 잔소리가 싫었나. 날 싫어하나."

그렇게 생각하고는 조용히 설거지만 했대요.

용기가 나지 않아서 물어보지 못했어요.


내면아이한테 물어봤더니 열한 살 자신이 나왔대요.

엄마한테 물어봤다가 더 혼났던 기억이요.

그래서 열한 살의 내면아이에게 말해줬대요.

"남편은 엄마가 아니야. 물어봐도 괜찮아."


그리고 물어봤어요.

사실 남편은 회사 일 때문에 피곤했대요.


모든 이야기가 사실을 별거 아닌데,

과거의 상처받은 내면아이가 아플까 봐 겁이 나서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이더라고요.




여러 사례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한 것은?


대부분의 추측이 틀렸대요. 확인해보니 아니었대요.


상대방은 전혀 당사자가 그렇게 생각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대요.


그리고 확인하는 게,

상상하는 것보다 덜 무서웠다고 해요.




오늘 하나만 해보기


부정적인 추측이 떠오르면

당신의 내면아이에게 이렇게 질문해 보셨으면 해요.


"지금 누가 말하는 거지?"

몇 살의 당신인가요?


"뭐가 무서워?"

그때 뭘 지키려고 했나요?


"지금은 어때?"

물어봐도 괜찮을까요?




시의 마지막 행을 떠올려 주세요.


"그렇게 나는 또 무너진다."


여기서 '또'라는 단어.


이게 처음이 아니라는 뜻이에요.

이미 여러 번 무너졌어요.


확인하지 않고, 추측만으로, 혼자서.

이 패턴은 반복되고 있어요.


하지만 반복되는 건 멈출 수 있어요.

패턴을 알아차리는 순간부터요.


알아차리는 순간, 당신은 선택할 수 있어요.


제 안에 있던 내면아이에게

저는 이렇게 말해 줬어요.


"이제 혼자 무너지지 않아도 돼. 물어봐도 괜찮아. 확인하는 게 상상하는 것보다 덜 무서워."


다음에 또다시 임의적 추론으로 스스로를 아프게 할 때,

선택을 할 수 있어요.


추측하더라도,

멈추고,

"또 추측하고 있어?" 물어보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내면아이는 다른 선택을 할 거예요.


무너지는 것이 아닌,

나를 단단히 세울 확인으로요.


P.S.

추측하면서 상처받았는데 확인해 보니 아니었던 순간.

하나만 기억해 보세요!

그게 증거예요.

"내 생각이 항상 맞는 건 아니야"라는 증거!


- 내면아이의 이야기를 전하는 상담사로부터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