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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육아가 적성에 맞지 않았다.

[프롤로그] 나이50, 이제야 내가 뭘하고 싶은지 알았다.

by 승란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나는 나름 대기업 기술직이었는데 육아에 전념하기 위해 1999년 직장을 그만두었다.

가족들에겐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난 힘들어도 항상 가족의 중심에서 모든 케어를 기꺼이 담당하려고 했다.

그런데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고서야 이것이 큰 실수이자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최선을 다했지만 육아는 내 적성에 맞지 않았고, 나는 잘하지도 못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30대 40대를 흘려보냈다.


그동안 나는 어디를 향하고 있었나?

아이들을 잘 키우고 대학을 잘 보내는 것

인성이 바른 아이를 만드는 것

좋은 학원을 검색하며 아이들을 키우는데 필요한 정보력을 갖는 것

스스로 독립하는 날까지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해주는 것

집을 깨끗이 청소하고 가족을 위해 요리하며 항상 깔끔한 옷을 준비해 주는 것

아이들의 견문을 넓혀주기 위해 여행을 다니고 박물관 투어를 하는 것

육아 노하우를 공유하기 위해 학부모 모임에 참여하는 것

... 이렇게 세상의 모든 초점은 내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맞춰졌고

나를 위한 것은 전혀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아이들을 성공키는 것이 나의 가장 큰 보람이자 내 성공과 다름없다고 착각했으니까.


그러나 나는 좋은 엄마가 되지 못했다.

아이들을 내 생각대로 크지 않았다.

하나는 아토피로 피부에 피고름이 맺히고 매일 밤 긁느라 잠을 못 자니 점점 예민한 아이로 자랐다.

하나는 공부는 둘째치고 학교생활 자체를 어렵고 힘들어했다.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괴로워하며 울었고, 그 밝던 아이가 트라우마로 학교를 자퇴했다.

생각지 못한 일들 그리고 나를 원망하는 아이들, 이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입은 가시를 물고 말을 뱉었고 나는 참고, 뱉고를 반복하며 가족들과 만신창이가 되었다.


엎친데 덮친다는 말이 이런 거였어?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 가족을 케어하려 했지만 갑자기 건강하시던 시아버님은 암 판정을 받으셨고 친정 엄마는 낙상으로 골절되어 거동이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가족들이 생각하는 집안에서 제일 한가한 사람은 바로 전업주부인 나였기에 나는 불안정한 내 아이를 두고 이리저리 급히 불려 다녔다.

엎친데 덮친다고 남편은 직장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월급을 안주는 달이 많아졌다.

카드 결제일은 어찌나 빨리 돌아오는지 그야말로 미칠 지경이었다.

결국 나의 가족 케어에 과부하가 걸렸고 나는 무너져버렸다.

우울증... 다 내가 잘못한 것 같다고, 25년 전으로 돌아가 남편부터 만나지 말았어야 된다며,

시간이 앞으로 갈수록 내 생각의 덩어리는 과거를 계속 거슬러가며 후회의 태산을 만들었다.

결국 내린 결론이... '살기 싫다.'

나는... 살기가 싫다.
나 좀 도와줘.


이 또한 지나간다고? 언제 지나가는데?

가슴이 답답하다 못해 숨이 가늘게 느껴졌다. 나 숨은 쉬고 있는 거니?

나는 도움이 필요했다.

이미 가족들은 자기 문제만으로도 엉망진창이라 나를 도울 수 없었고

나를 도와줄 것 같은 지인들에게 연락했다. '나 죽고 싶은 것 같아.'

연락을 받은 그들은 누구 할 것 없이 나를 자꾸 집 밖으로 끄집어냈고 내가 숨 쉴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숨 고르기 후 비로소 깨달은 것

그 누구보다도 가장 적극적으로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나'였기에

적극적으로 나를 돌보기 시작했다.


나를 위한 맛집을 찾아가고

나를 위한 공부를 하고

나를 위한 정보를 모았다.


경단녀의 재취업 도전

집이 굴러가든지 말든지 나는 밖으로 도망갔다.

그러다 '여성인력 개발센터' 경단녀 취업 프로그램의 참가자 선발 면접을 보러 가게 되었다.

경력단절 기간이 어떻게 되세요?

19년 이요.....

요즘은 '경력 보유 여성'이라고 '경단녀'라는 호칭을 쓰지 않는 분위기이지만

나는 내 이름 앞에 '경력 보유 여성'이라고 쓸 수가 없다. 난 아무것도 할 줄 모르니까.

무료이라고 해서 무작정 받기 시작한 것이 '교육 게임 강사 양성과정'...

덜컥 접수하고 나니 밀려오는 낮은 자존감이 발목을 잡는다.

내가 감히 누굴 가르칠 수 있을까? 나를 누가 인정이나 해줄까?

무시당하고 마음만 더 상하는 것은 아닐까?

에라 모르겠다. 아니면 말고,

어차피 집에 있다간 죽겠다고 땅만 파게 생겼으니

돈 드는 것도 아닌데 나가서 해보자!

죽겠다고 땅 파는 것보다 더 나쁜 일은 없다.


이제 나는 강사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면 다시 느껴지는 갑갑함

나는 집을 나왔을 때 만이라도 잊으려고

살면서 내가 이렇게 열심히 공부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절실하게 공부했다.

책을 사고, 시키지도 않은 재능기부, 봉사 커뮤니티까지 만들어 가면서 나를 점점 바쁘게 만들고 드디어

나는 그렇게 꿈꾸던 내 첫 번째 버킷리스트 '다시 커리어우먼'이 되었다.

우려와 달리 내가 집에 없어도 나 때문에 문제가 더 생기거나 하지 않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가정은 더 잘 굴러가고 있었다.

시간이 해결한 건지, 그동안 내가 문제였던 건지 나도 모르겠다.

나는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을 거예요.
해보고 아니면 말죠 뭐!


영화 '씽'에 나오는 전업주부 로지타의 명대사이다.

나는 잘못 들어간 '불 꺼진 터널' 같았던 시간을 이렇게 어렵게 빠져나왔다.

이제 내 직업은 강사다.


버킷 리스트 만들기

그동안 왜 몰랐을까?

알고 보니 나는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많은 사람이었다.

나를 보고 용기를 내는 사람도 있었고, 나처럼 '다시 커리어'를 꿈꾸는 아줌마들도 만났다.

이제 그들과 함께 꿈꾸던 버킷리스트 도장깨기를 하려 한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것들의 도전 '가보 go, 해보 go, 먹어보go'를 하기 위해 당당히 집을 나선다.

나이 50,
이제야 나는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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